연합함대
1. 정의
해군의 함대가 2개 이상 연합하여 1명의 지휘관에게 통솔되는 형태를 말한다. 말 그대로 함대의 연합으로, 영어로는 Combined Fleet이라고 부르며, 대규모 작전을 위한 임시적인 연합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연합함대가 만들어져도 원래 함대는 그대로 존재하며, 목적이 달성되면 연합함대는 바로 해산하고, 각 함대는 원위치로 복귀하는 경우가 많다.
임진왜란 시기 삼도수군통제사라는 관직이 신설되기 전의 조선 함대도 사실상 연합함대 방식으로 운용되었다. 물론 실질적 지휘자는 이순신.[1]
사실 여러 함대를 묶었다고 해도 '연합함대'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과거 일본 정도 뿐이다. 미군은 보다 유연하게 '기동부대(Task Force, TF)'를 구성하는 경우가 많았다.[2] 대표적으로 미드웨이 해전의 TF 16과 TF 17이라든지, 필리핀 해 해전 TF 58이 있다. 해당 작전이 끝나면 기동부대는 해산하고 본래의 함대 편제로 돌아가며, 다시 작전에 투입될 때 그 상황에 맞는 기동부대를 다시 편제한다. 연합함대와 같은 상설조직은 아니었다.[3]
2. 일본 해군의 연합함대
연합함대는 원래 함대의 연합이라는 일반명사지만, 일본 제국의 연합함대가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그냥 연합함대라고 말하면 일본 제국의 연합함대인 것으로 지칭될 정도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물론, 일본 제국의 연합함대도 연합함대의 일반적인 특징을 상당수 가지지만, 그것보다는 독자적인 특징이 많아서 명칭부터 차이가 있다. 일단 일본 스스로는 連合艦隊(れんごうかんたい 렌고칸타이)라고 부르며, 일본에서 사용했던 옛날 한자 명칭으로는 聯合艦隊 라고 표기한다.[4] 일본군 내부에서 사용한 영어 약칭은 GF(Grand Fleet이나 General Fleet)라고 표기하는데, 일본식 영어를 사용한 것으로, 타국에서는 그냥 Combined Fleet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5]
그리고 연합함대의 사령관은 연합함대사령장관 (連合艦隊司令長官, れんごうかんたいしれいちょうかん 렌고칸다이시레쵸칸)이라는 독자적인 명칭을 가진다.
2.1. 개요
일본의 해군은 메이지 유신 3년 후인 1870년 8월 24일에 창설되었다. 그 이후 여러가지의 편제 변경을 통해 연합함대 창설 전에는 크게 2종류의 함대로 구성되었다. 일단 상비함대라는 이름으로 주력함 및 신예함을 묶은 함대가 있었으며, 경비함대라는 이름으로 노후함등 2선급 전력과 어뢰정, 잠수함 등으로 구성된 해안 방어를 위한 함대를 보유했다.
연함함대라는 명칭은 1884년에 만들어졌다. 당시 일본 해군성에서는 함대편제령이란 제도를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함대의 편성, 함대를 구성하는 함의 능력에 따른 명칭을 규정함과 동시에 2개 함대 이상을 집합하여 연합함대를 구성할 수 있다."라는 항목이 들어가면서 연함함대라는 명칭을 최초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 때의 연합함대는 일반명사로서의 연합함대로 큰 훈련시나 전쟁 당시에만 임시로 편성한 것이지 정규함대로 존속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동안 제1함대의 사령관이 연합함대사령장관을 겸임했다.
따라서 실제로 연합함대가 결성된 때는 청일전쟁이 개전한 후인 1894년이다. 당시 일본 해군은 주 목표로 상정한 북양함대에 비해 함선의 숫자와 질이 모두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상비함대건 경비함대건 간에 모든 함선을 다 끌어모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경비함대를 굳이 존속시킬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으며, 경비함대를 상비함대로 편입시키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이때 군령부 관방주사인 야마모토 곤노효에 대령이 경비함대를 서해함대로 개명한 후, 상비함대와 서해함대를 통합 운영하는 연합함대를 조직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해당 안은 채택되었고, 그 결과 청일전쟁 개전 6일 만에 처음으로 연합함대가 편성되었다.
일단, 이때까지의 연합함대는 아직 일반명사로서의 연합함대였으므로 청일전쟁이 종전된 후에 해산되었으며, 그 이후에 다시 연합함대가 결성된 때는 10년 후인 러일전쟁시기였다. 물론 이 연합함대도 러일전쟁후에 해산되었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 말에 1번, 1915년부터는 거의 매년 대규모의 연습을 위해 연합함대가 편성된 후 훈련에 임했다. 그래서 1923년경에 이르면 사실상 상설화했다.
중일전쟁이 시작되자 1933년 5월부터는 연합함대를 정식적인 조직으로 만들었으며, 1937년부터 일본이 완전한 전시체계로 돌입하면서 중국 방면 함대와 더불어 양대 함대가 되었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의 개전으로 '''일본 해군 그 자체를 상징할 수준으로 위상이 올라갔다.'''[6] 그리하여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해군 그 자체로 활동'''하였으며,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하자 1945년 10월에 일본 해군과 함께 해산되었다.
2.2. 해전사
연합함대 기함이 참전한 해전만 표시.
- 청일전쟁
- 황해해전 (메이지27년 9월 17일) - 기함: 방호순양함 마쓰시마
- 웨이하이전 (메이지28년 2월 12일) - 기함: 방호순양함 마쓰시마
- 러일전쟁
- 황해해전 (메이지37년 8월 10일) - 기함 : 전함 미카사
- 쓰시마해전 (메이지38년 5월 27일~28일) - 기함 : 전함 미카사
- 태평양전쟁
2.3. 특징
일본의 연합함대는 타국의 연합함대와는 달리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진다.
- 상설조직이다. 타국의 연합함대와는 달리 상설조직으로 함대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다.
- 통제하는 함대의 수와 양이 많다. 단순히 해군 휘하의 복수의 함대를 결합한 타국의 연합함대와는 달리 사실상 일본 해군의 모든 함선을 통제하는 조직이다.
- 위상이 높다. 타국의 연합함대는 아무리 크더라도 해군참모총장 밑에 있는 함대사령관의 위치이고 일본의 경우도 명목상으로는 다르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7] 그 인물이 힘이 있는 경우 군령부총장이나 해군대신과 거의 비슷한 위치에 올라선다.[8] 당시 상대편인 영미의 경우 어디까지나 해군참모총장 밑의 함대 조직이므로 국방 장관 or 합동참모의장-해군참모총장으로 이어지는 군령권 및 군정권 체계를 준수해야 한다.[9] 하지만 일본의 연합함대는 형식상으로는 군령은 군령부총장, 군정은 해군대신의 지휘를 받지만, 독자적인 작전수립 및 실행능력을 보유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군령부총장이나 해군대신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다. 물론 아무리 군부 입김이 쎈 일본 제국이지만, 위에서 내린 명령을 거역하는 순간 사령장관의 정치적 생명은 그 자리에서 끝난다고 보면 된다.
- 독자적인 지원조직을 보유한다. 타국의 연합함대는 임시 조직이므로 소속 함대 중 가장 전력의 비중이 크거나 혹은 다른 이유[10] 등을 근거로 휘하 함대 사령관 중 1명이 연합함대의 수장을 겸임하고, 해당 함대의 참모 및 다른 함대에서 지원나온 참모들로 지원조직을 결성한다. 하지만 일본의 연함함대는 연합함대사령장관부터 독자적으로 임명되어서 상시 활동하며, 사령장관을 보좌하기 위해 참모장, 참모부장, 수석참모, 포술참모, 수뢰참모, 항공참모, 통신참모, 항해참모, 기관참모, 전무참모, 정무참모, 주계장, 군의장, 기관장, 암호장, 기상장 및 기타 참모들이 독자적으로 임명된 후 상시 배치된다.
2.4. 문제점
하지만, 일본의 연합함대는 위에 열거한 특징으로 인해 아래와 같은 문제점을 가졌다.
- 최고사령관이 3명이 된다. 원래 1개 부대에는 1명의 졸장이 2명의 명장보다 좋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1개 조직내에는 명령 및 통솔자가 1명인 것이 적당하며, 2명 이상이 되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다가 이도저도 아닌 결과를 만든다. 현대의 국가, 그 중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가 되며[11] 합참의장을 위시한 참모총장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 역할을 하며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의 명을 받아 이들을 지휘, 감독하고 군정과 군령을 담당하며, 각 군 사령관들이 실질적으로 작전을 수행한다.[12]
하지만 일본군에서는 육군과 해군이 따로 노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육군과 해군 내에서도 육군성-참모본부, 해군성-군령부의 군정과 군령이 각각 따로 나뉘었으며, 3장관은 명목상으로는 동격이고 임무영역이 분리되어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복잡하게 얽힌 관료제 특성상 제대로 정리가 되질 않았다. 일본 해군내에서는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가 군령부총장이던 시절 고유권한을 빼앗아온 이후 해군성은 명목상 가장 우위에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제일 끗발이 딸리는 조직이 되었고, 군령부와 연합함대의 힘싸움에서는 힘있는 인물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졌다. 따라서 3인의 합의가 없으면 큰 일을 하기 어렵고[13] , 이 중 1인이 독자적으로 다른 일을 추진할 경우 다른 지휘관이 막기 어렵다. 참고로 육군은 육군대신, 참모총장, 교육총감 3인이 육군 3장관을 구성하고 있었지만 서로의 일이 극명하게 갈리고 교육총감은 육군성과 참모본부보다 끗발이 달렸기에 해군과 같은 혼란은 없었다.
명목상 지휘계통으로는 일단은 장관인 육군대신, 해군대신이 상위직으로 대우받았지만 사실상의 위치로는 군령부총장이나 참모총장이 더 위상이 컸다.[14][15][16]
또한, 태평양전쟁기에는 새로운 문제가 생겨났는데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진주만 공습을 통해 일본 내에서 언터쳐블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17] 물론 그 이전에도 진주만 공습을 강압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덕분에 실제 계급과는 달리 설사 윗사람인 군령부총장이라 하더라도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건드리기 어렵게 된 격이다. 그리고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해군 내 비주류파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군인치고 정치력이 만렙을 찍은 사람이라[18] 여차하면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거나[19] 불리하면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식으로 영악하게 굴었으니 더더욱 통제가 어렵다. 사실 위에서 나온 연합함대 사령장관의 문제점의 절반 이상은 따지고 보면 저 야마모토 이소로쿠 때에 나온 문제라고 봐도 무방하다.[20] 이런 문제는 공식적인 제도 문제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국가 최고위 기관을 구성하는 각 하부조직 수뇌부들간 의사소통능력이 급속도로 저하된 일본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군 내에서 나타난 격이다. 게다가 이 무렵부터 관료주의, 파킨슨의 법칙, 보신주의가 맞물려 연합함대는 사실상 실전에 참여하지 않는 조직이 되었는데, 이 때문에 군령부총장과 업무영역이 중복되고 정작 현장 최고지휘관에게는 필요한 재량권이 부여되지 못하는 문제가 추가되었다.[21]
명목상 지휘계통으로는 일단은 장관인 육군대신, 해군대신이 상위직으로 대우받았지만 사실상의 위치로는 군령부총장이나 참모총장이 더 위상이 컸다.[14][15][16]
또한, 태평양전쟁기에는 새로운 문제가 생겨났는데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진주만 공습을 통해 일본 내에서 언터쳐블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17] 물론 그 이전에도 진주만 공습을 강압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덕분에 실제 계급과는 달리 설사 윗사람인 군령부총장이라 하더라도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건드리기 어렵게 된 격이다. 그리고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해군 내 비주류파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군인치고 정치력이 만렙을 찍은 사람이라[18] 여차하면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거나[19] 불리하면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식으로 영악하게 굴었으니 더더욱 통제가 어렵다. 사실 위에서 나온 연합함대 사령장관의 문제점의 절반 이상은 따지고 보면 저 야마모토 이소로쿠 때에 나온 문제라고 봐도 무방하다.[20] 이런 문제는 공식적인 제도 문제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국가 최고위 기관을 구성하는 각 하부조직 수뇌부들간 의사소통능력이 급속도로 저하된 일본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군 내에서 나타난 격이다. 게다가 이 무렵부터 관료주의, 파킨슨의 법칙, 보신주의가 맞물려 연합함대는 사실상 실전에 참여하지 않는 조직이 되었는데, 이 때문에 군령부총장과 업무영역이 중복되고 정작 현장 최고지휘관에게는 필요한 재량권이 부여되지 못하는 문제가 추가되었다.[21]
- 특정목표에만 전체 해군이 매달린다. 원래 일본이 연합함대를 결성한 목적은 함대결전사상에 따른 것이며, 타국의 경우도 보통 연합함대를 구성할 경우에는 적의 주력함대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 자체만으로는 사상의 문제점은 크지만 어느 정도 납득은 가는 상태다.
하지만, 일본의 연합함대는 상설조직인데다가 사실상 일본 해군의 모든 함선을 다 통제하므로, 결국 함대결전사상에만 일본 해군이 몰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타국의 경우 연합함대를 만들더라도 통상로를 호위하는 조직이나 대잠수함 전력, 연안방어등의 임무를 맡은 함대는 편성에서 제외하여 그들이 해당 임무에 전념하도록 함으로서 균형을 잡는데, 일본의 연합함대는 그러지 않기 때문에 순양함이나 구축함등의 보조함선들도 함대결전에만 최적화하게 만들어지고, 전술도 야간에 어뢰공격을 하는 등 함대결전에만 맞추어졌기 때문에 실제 전쟁에 돌입한 후에는 통상로 보호나 대잠수함전 등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만든다.
- 연공서열 중시와 경직성 강화가 심화된다. 원래 일반명사인 연합함대는 유연한 조직이므로 연합함대의 수장 및 참모를 결성시나 중간에 자유롭게 변경하거나 조합편성해서 인재를 발굴하고, 각 함대 사령관을 연합함대 사령관으로 지명하거나 순차적으로 임명하여 지휘경험을 쌓게 하는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연합함대는 상설조직인데다가 수장 자체가 일왕 직속인데다가 따로 임명받고, 휘하 참모들도 다 독자적으로 임명받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유연성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함대 위에 군림하는 상부조직이므로 연합함대 직속의 장교가 된다는 것 자체가 출세의 지름길이다. 따라서 일본 특유의 연공서열 중시가 더 강화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앞서 언급한 함대결전사상 중시에 따라 연합함대의 참모진도 포술이나 수뢰전 위주의 참모가 중시되고, 항공모함 관련의 비행관련 참모나 보급, 정비등의 참모들은 한직으로 무시되거나 원래 전공과 관련없는 참모가 임명되는 경우가 있어서 문제를 더 키우게 된다.
2.5. 평가
결국, 이런 문제점으로 인해 일본의 연합함대는 매우 비효율적인 조직이 되고 말았다.
안 그래도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처럼 일본군 자체가 육군과 해군으로 나뉘어서 서로 대립하는 상황에서 일본 해군 안에 거대한 파벌을 만든 것 자체가 문제다. 당장 조직 내부에 수장이 3명이나 생겼는데 해당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기를 기대하는기는 어렵다.
그리고, 일본이 전쟁을 수행할 때 굳이 연합함대라는 조직을 이렇게 키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당장 군령부가 해야 할 일이 매우 애매해진다. 원래 제대로 된 상태라면 해군대신의 휘하에서 실제 작전은 군령부가 책임지고 만들고, 함대조직도 군령부가 다 장악하며, 연합함대는 대규모 전투시에나 상황에 맞추어서 한시적으로만 조직한 후 목적이 달성되면 해산하면 되는데, 연합함대라는 조직이 상설화되어 활동하기 때문에 군령부의 존재는 부차적인 조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군령부는 제2차 세계대전동안 실제 운영할 수 있는 전투조직이 해안방어육전부대, 해안포부대, 소형 함선 일부, 항공부대 일부에 불과하여 일본군 입장에서는 부차적인 조직만 운영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며, 군령을 받는 입장인 연합함대사령장관과 협의해야 일본 해군 전체에 제대로 된 군령을 내릴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여기에 앞서 말한 함대결전사상 중시 등의 사소한(?)문제점까지 합쳐지면 그냥 답이 없다(...)
애초에 이런 문제로 인해 타국에서는 연합함대를 비상설조직으로 만든 것이며, 미국의 경우에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래 명예직에 가까운 미국 해군 총제독에 어네스트 킹 제독이 임명되자, 해군참모총장이 할 일이 애매해지는 것을 바로 발견하고 즉시 해군참모총장을 미국 해군 총제독이 겸임하도록 해서 문제를 해결한 전례가 있다. 따라서 굳이 옥상옥의 조직을 만들고, 해군 내부의 수장을 3명으로 만들며, 군대 전체의 명령권이 혼란에 빠지도록 만든 일본의 연합함대는 비효율적인 조직이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전후 일본 해군의 후신격인 해상자위대는 기동함대에 해당하는 자위함대를 편성했는데, 선배들이 저지른 실책을 반면교사로 삼아 해역함대격인 지방대 등을 편성하여 자위함대에 모든 함정이 쏠리지 않도록 하고 있다.
2.6. 유사품
일본 육군에도 비슷한 조직으로 관동군이 있다. 역시 일개 총군 주제에 덴노 직속이라 육군사령부의 명령을 잘 안들었다.[22] 특히 이들은 만주사변이나 할힌골 전투를 정부의 허가없이 제멋대로 일으킨 전력에 인간 대상의 생체실험까지도 시도 한 적이 있어서 막장성에서는 연합함대보다 심각하다.
일본의 소설에는 은하영웅전설에는 연합함대를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우주함대라는 조직이 있고 수장의 이름도 사령장관이다. 그러나 이 쪽은 단점이 크게 부각된 점은 없다. 왜냐하면 통합작전본부는 전략을, 우주함대 사령부는 전술을 담당하는 식으로 서로의 역할이 분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소하게는 시드니 시톨레 통합작전본부장과 라자르 로보스 우주함대 사령장관이 대립했다. 자세한 내용은 제국군 3대 장관, 동맹군 3대 장관 참조.
2.7. 변천사
2.7.1. 역대 사령 장관
2.7.2. 역대 참모장&참모부장
2.7.3. 역대 함선
2.7.4. 역대 기함
방호순양함 - 마쓰시마
전함 - 미카사
전함 - 시키시마
전함 - 나가토(전함)
전함 - 무츠(전함)
전함 - 야마시로
전함 - 이세
전함 - 공고(순양전함)
전함 - 하루나(순양전함)
전함 - 야마토
전함 - 무사시(전함)
경순양함 - 오요도
2.7.5. 시기별 편제
2.8. 관련작
도서
- 이토 마사노리『연합 함대의 마지막』& 『연합 함대의 영광』
- 사카모토 마사츠와 / 후쿠가와 히데키 『일본해군편제사전』
- 연합함대(도호, 1981년도, 감독: 마츠바야시 슈에)
-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태평양 전쟁 70년째의 진실-(도에이, 2011년도 영화, 감독: 나루시마 이즈루)
[1] 원균이야 휘하 함대를 죄다 날려먹어서 지휘권을 주장할 만한 근거가 빈약했고 사실상 최대 세력이었던 이억기 함대는 작전구역이 생소해서 지휘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기는 어려웠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최대세력이자 주요 작전구역을 관할로 둔 경상우수군이 주도권을 쥐어야 했다. 실제로 이후의 삼도수군통제사는 경상우수사가 겸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2] 그대로 옮기면 임무부대 정도가 되지만 번역시에는 기동부대로 번역한다. #1, #2, #3[3] 뿐만 아니라 같은 함대에 소속된 함정들이라도 일단 기동부대를 구성하고 나면 서로 다른 태스크 그룹에 배속될 수도 있었다. 태스크 그룹(Task Group, TG)이란 기동부대 예하의 소규모 전단을 일컫는다.[4] 발음은 똑같다.[5] 영어권에서 Grand Fleet이라고 하면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의 주력함대를 지칭한다. 영어 위키피디아 Grand Fleet 영어 위키피디아 Combined Fleet 항목에는 일본군의 연합함대에 대한 내용밖에 없다.[6] 서열상으로는 중국방면함대와 연합함대가 동등한 등급이지만 태평양 전쟁의 개전이후 중국방면함대에 소속되어있던 3, 4 함대가 연합함대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이후에도 점점 규모가 작아지다가 종전 직전에는 아예 사라졌다.[7] 사실 현대의 관료제 하에서도 특정 기관 간에 상하위관계가 있음에도 직무상 독립이 이루어지는 영역이 있다. 예를 들어서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기초지자체와 광역지자체는 명목상 동급이기도 하지만 기초지자체장과 광역지자체장은 상하위관계기도 하기 때문에 사무영역에 따라 광역지자체장이 기초지자체장을 지휘할 수도 있고 전자가 후자를 간섭하지 못할 수도 있다. 법관 역시 엄연히 상하관계가 있지만 상급법원은 하급법원의 판결에 영향을 원칙적으로 미칠 수 없다.[8] 지휘계통상으로는 군령부의 작전에 따라 실전부대를 지휘하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수준의 독자적 작전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견 모순으로 보이는 이런 복잡한 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일본군에서 사단장과 함대 사령장관은 덴노의 직속으로서 상주 친견권을 가지고 있었다(실질적으로 함대 사령장관의 친견권은 연합함대 사령장관이 대행했다)라는 복잡무쌍한 관료제를 이해해야 한다.[9] 2차대전 이전 독일군은 영미와 달리 군령과 군정을 분리하는 병정분리주의를 취했고 이는 일본에 도입되었다.[10] 가령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할 수 있다. 동해에서 대한민국 해군이 일본 해상자위대 함대나 러시아 태평양 함대와의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해 해역을 관할하는 제1함대와 제7기동전단이 연합해서 가칭 '동해 연합함대'를 결성한다고 해보자. 이 때 실제 전력상으로는 제7기동전단이 우월하므로 작전의 효율성을 위해서 제7기동전단 전단장이 이 연합함대의 수장을 겸임할 수 있다. 하지만 제1함대가 동해 해역을 직접 관할하고, 편제상 해작사 예하의 '전단'인 7기동전단에 비해 제1함대는 정규 '함대'라는 상징성이 있으므로 이 상징성과 정치성을 일부러 부각시켜 분쟁에 뒤따르는 외교전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제1함대 사령관이 이 연합함대의 수장을 겸임할 수도 있다. [11] 물론 대부분의 내각 책임제의 경우 총리가 맡는다.(원래는 대부분의라는 표현이 없었지만, 이렇게 표기한 것은 내각제에서 반드시 총리가 군 통수권자를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당장에 한국의 2공화국 시기 총리였던 장면이 정부의 수장으로 실질적인 정책 운영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장면 정권이라고 표현하지만, 5.16쿠데타때에 상황을 보면 군 통수권이 대통령이였던 윤보선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12] 민주공화제 국가에서 최고사령관은 언제나, 당연히 선거로 선출된 국가 원수가 겸임한다. 간혹 국방부 장관이나 참모 총장이 군의 최고사령관라고 잘못 알거나 혹은 대통령은 어디까지나 명목상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통령은 군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군 통수권자이자 최고사령관이고 국방부 장관이나 참모총장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을 보좌하는 직위이다.[13] 원래 작전은 군령부가 수립해야 하지만 2차 세계대전 기간, 실제로는 연합함대와 군령부의 작전안을 비교한 후 협의에 의해 어느 한 쪽이 채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14] 이 자리에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황족이 보임되거나 아니면 원수 칭호를 받은 이들이 보직되었다. 당장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사령장관으로 있을 때 대장이었지만, 군령부총장 나가노 오사미는 원수대장이었다.[15] 군령부가 '해군군령부'가 아닌 그냥 군령부인 이유는 육군과의 자존심 싸움 때문.[16] 도조 히데키가 내각 총리에 취임하면서 육군대신을 겸하고 있을 때에는 육군부와 해군부가 그래도 권한을 가졌을 것이다. [17] 사후에도 도고 헤이하치로에 준하는 대접을 받을 지경이었다.[18] 사실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주요 역할은 일선 함대 지휘라고 보기 어렵다. 그동안의 이력을 보면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주로 해군성 관련 보직을 거쳤거나 아니면 항공 분야 육성사업을 주로 수행한 관료형 군인에 가깝다. 실제로 연합함대 사령장관이 되기 전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해군 차관이었고 원래대로라면 차기 해군대신이었다. 그런데 살기 위해 억지로 연합함대 사령장관이 된 것이다.[19] 진주만 공습이라던가[20]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라이벌로 거론되는 체스터 니미츠는 상관인 킹이나 같이 일하기 어려운 맥아더하고 별 불화를 겪지 않았고, 니미츠는 항공모함과 인연 정도는 맺어본 적이 있다지만 그보다는 주로 잠수함 분야가 전공이었다. 도리어 니미츠는 이런 문제는 자신이 일일이 나서지 않고 자신보다 훨씬 이쪽 분야 전공자인 윌리엄 홀시 등의 일선 지휘관들에게 대체로 일임했고 자신은 유럽에서 아이젠하워가 그런 것처럼 부하인 함대사령관들을 통제하는 일종의 CEO 역할에만 충실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와 비슷한 사람이 미군에 있었는데 바로 맥아더이다. [21] 니미츠가 자신이 손을 대지 않아도 돌아가는 조직을 만드는 데 주력한 것과 많이 비교되는데 일본 해군의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경우 니미츠의 역할은 군령부총장의 몫이고 연합함대 사령장관의 역할은 홀시나 스프루언스가 맡았던 역할에 가깝다. 일본군의 경직된 체제하에서 현장의 유연한 판단 재량권이 주어지려면 연합함대 사령장관 정도의 직책/계급빨이 필요했던 것이고, 러일전쟁 시기에는 그나마 이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갔었다. 전근대 해전의 전통을 따라 최고지휘관(연합함대 사령장관)이 기함에 좌승해 선두지휘를 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있지만 일본 해군의 경우는 오히려 최고지휘관이 선두지휘를 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어 진주만 공습이나 레이테 만 해전 등 굵직한 결전에서도 최고사령부의 의도가 현장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선두지휘시 사령부의 생존성을 위해 기함으로 주어진 가장 크고 튼튼한 전함이 해상 호텔 노릇이나 하는 잉여 신세가 된 것은 덤.[22] 생각해보면 일본에게서는 이것이 이상할 것이 없는게, 조선주둔군을 생각해보면 이와 비슷하다. 왜냐하면 조선총독이 ''덴노 직속''에 ''위치상 수상과 동렬''인데, 한반도에서 모든 권한을 가진다. 이에 따르면 조선주둔군 운영에 있어서 육군부 따위에 지시를 받지 않는다. [23]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제1함대의 제독 뿐만 아니라 연합함대의 제독도 동시에 맡았다.[24] 상선개조 특설순양함이다. 인도양에서 연합군 상선에 대한 공격 즉 통상파괴임무에 투입되었다. 이전에는 통상임무가 가능한 순양함으로 분류한 것을 충격적인 사실인 것처럼 적어두었는데, 영미 연합군과 독일 등의 추축국 모두 원양상선을 징발, 무장시켜 타국 통상로 파괴에 활용했다.[25] 전대가 아닌, 연합함대의 통신기지가 있는 곳을 말한다.[26] 이 두 배들은 각각 1942년 8월 1일부터 다이요, 운요로 개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