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오야 마사토
古尾谷康雅
1. 개요
1957.05.14~2003.03.25
후루오야 마사토는 1957년 5월 14일에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일본인 아버지와 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무녀독남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후루오야 야스마사로 후루오야 마사토는 예명이다. 존버로즈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구두 세일즈맨으로 일하다가 20세로 1977년 극단 히마와리에 입단하여 영화배우로 데뷔하여 후루오야 마사토 명의로 영화배우로 활동하게 되었고 1990년대 이후에는 드라마에서도 출연하여 활동을 하였으나 2003년 3월 25일 집에서 목을매고 자살하였다.
후루오야 마사토의 본명은 어디까지나 후루오야 야스마사이며 장남이 태어났을때 자신과 같은 배우의 길을 겪길 바라는 마음이었는지 몰라도 자신의 예명인 후루오야 마사토(古尾谷雅人)에서 한글자를 빼고 후루오야 마사토(古尾谷雅)로 이름을 지었다.[1]
2. 활동
후루오야 마사토의 아버지는 1923년생이며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이후 배우로 활동하였고 영화감독으로 활동해 왔다. 후루오야 마사토의 어머니는 1923년 동갑내기로 추정되고 있으나 정확한 출생연도는 알려진 바 없다.
후루오야 마사토는 1978년 영화배우로 데뷔하였고 1979년 영화 '천사의 창자'에서 단역으로 출연하여 같은 단역으로 연기를 했던 카누마 에리와 1982년 결혼했다. 카누마 에리의 본명은 후루야 토시에로 카누마 에리는 예명이다. 1952년 12월 1일 생으로 슈퍼전대 시리즈 중 비밀전대 고레인저와 배틀피버 J와 태양전대 선발칸에 출연했던 배우로 비밀전대 고레인저에서는 이글연락원 가토 요코로 출연했고 베틀피버 J에서는 1화에서 1대 미스 아메리카 역을 맡은 다이안 마틴의 복장을 하고 국방부의 주요 간부들을 살해하는 비밀결사 에고스의 스파이로 특별출연했으며 태양전대 선발칸에서는 기계제국 블랙마그마의 지령을 받아 활동하는 스파이 이자 기계 인간인 다크 Q로 활동한 바 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어 장남 타카토 하야토와 차녀 미즈노 레이를 두었다.
장남 타카토 하야토는 1983년 1월 7일 생으로 타카토 하야토는 예명이며 본명은 부친과 같은 후루오야 마사토로 한자 하나만 다르다. 아버지인 후루오야 마사토의 이름 한자는 古尾谷雅人이며 아들인 후루오야 마사토의 이름 한자는 古尾谷雅로 음독 할때는 발음이 후루오야 마사토로 동일하다. 즉, 후루오야 마사토 2세로 보면된다. 타카토 하야토의 데뷔 계기는 후루오야 마사토가 자살한 2003년 3월 25일 천장 대들보에 목을매고 죽은 후루오야의 시신을 엄마 카누마 에리와 함께 최초 발견자로 언론에 소개되어 유명세를 탄 것으로 이를 계기로 동년 4분기 드라마 라이온 선생에 출연하며 데뷔하였다. 고쿠센 등 드라마에 출연하여 얼굴을 알려왔으나 점차 인기가 떨어져 잠정은퇴 후 사업에 종사한다고 알려졌었다. 이후 2019년 아버지의 예명인 후루오야 마사토(古尾谷雅人)로 다시 데뷔를 하여 활동하고 있다. 다시 데뷔를 결심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를 본명인 후루오야 마사토 대신에 예명인 타카토 하야토로 데뷔한 것은 아버지인 후루오먀 마사토의 죽음으로 유명세를 얻어 데뷔하였다는 인식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뛰어난 연기자로 알려진 아버지 후루오야 마사토와 이름이 같은 것이 부담이 되어 타카토 하야토로 데뷔하였다고 공개한 바 있다. 허나 은퇴 이후에도 연기를 하고 싶다는 갈망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버지인 후루오야 마사토가 자살했던 나이와 자신의 나이가 동갑이 되는 2019년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는 각오로 기자회견을 열어 아버지의 본명 후루오야 마사토(古尾谷雅人)의 이름을 계승하여 2대 후루오먀 마사토로 데뷔를 한다며 선언하여 현재 활동 중에 있다.
차녀 미즈노 레이는 1985년 11월 26일 생으로 오빠인 후루오야 마사토와 배우로 활동했으며 결혼 전 본명은 후루오야 레미(古尾谷快令)로 결혼 후에는 남편의 성을 따라 미즈노 레이(水野快令)로 이름이 바뀌었다. 2003년 데뷔한 오빠 후루오야 마사토보다 배우로서는 12년이나 선배로 1992년 요미우리TV의 드라마시티 92의 단막극 恋人たちのターミナル(연인들의 터미널)에서 아역배우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이름인 레미의 히라가나인 레미(ミィ)를 예명으로 배우로 활동을 하였으며 결혼 후에는 자신의 이름 미즈노 레이(水野快令)에서 이름만 히라가나로 바꿔 미즈노 레이(水野ミィ) 예명으로 배우 활동을 하였으며 일러스트 작가로 겸업 활동을 하였으나 배우는 잠정은퇴하였다.
후루오야 마사토는 원래 영화에 주로 출연하던 배우였으나 1990년 기묘한 이야기(世にも奇妙な物語) 시즌1 12화 지나치게 친절한 가족(親切すぎる家族)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드라마 비중을 늘려가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켄모치 이사무로 출연하며 인기를 높였다. 그의 아내는 카누마 에리로 1975년 작 비밀전대 고레인저에서 이글연락원 가토 요코로 데뷔한 것을 계기로 배틀피버 J에서 1화 비밀결사 에고스의 스파이 및 암살자로 특별출연 하였고 태양전대 선발칸에서는 기계제국 블랙마그마의 다크 Q 역할로 출연한바 있다. 후루오야 마사토와 결혼 후 1983년 장남 후루오야 마사토(古尾谷雅)를 낳고 1985년 딸 후루오야 레미(古尾谷快令)[2] 를 낳은 후 육아에 전념 하겠다는 이유로 1986년 배우를 은퇴하였다. 이전 문서에 카누마 에리에 대한 설명을 청바지를 입은 카누마 에리라는 의미불명의 설명이 여러번 나오는데 이는 일본 위키에 소개된 카누마 에리에 대한 설명을 그대로 베껴와 활용한 것이다. 일본의 초 인기작인 1대 슈퍼전대 비밀전대 고레인저에서 이글 연락원 가토 요코의 역할을 맡은 바 있는데 이때 복장이 청바지를 입었다. 청바지 항목을 보면 알다시피 원래 미국에서 광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입었던 작업복에서 유래된 것으로 남자들이 입는 것이라는 인식이 일본에서 있었기때문에 그다지 유행하지 않았으나 가토 요코의 몸매를 드러내는 청바지 패션이 비밀전대 고레인저의 인기와 더불어 상승하여 신인 카누마 에리의 인기를 높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기로 인해 작중 이글 연락원들이 대거 등장하였으나 대부분 단역에 그치고 상당수는 신인이던 카누마 에리가 약 2년동안 해당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언론에서 카누마 에리를 청바지 패션의 카누마 에리로 대거 소개하면서 여성들의 청바지 패션이 폭발적으로 늘어 청바지의 카누마 에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문제는 수십년 전 일본 언론에 소개되었던 카누마 에리의 수식어를 그대로 나무위키에서 갖다 붙여넣기 식으로 활용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3. 사망 이후
후루오야 마사토는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켄모치 이사무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예능 및 드라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자살하여 2002년 출연한 모닝구 무스메 서스펜스 드라마 스페셜 : '얼룩고양이 홈즈의 범죄학강좌, 내가 녀석이고 녀석이 나'가 그의 유작이다.
자살한 이유는 아내 카누마 에리가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1980년대 후반 아이돌이 주연의 드라마나 영화가 주류가 되었고 1990년에 들어서면서 거품경제를 배경으로 트렌디 드라마가 주류로 되는 가운데도 남편은 어디까지나 강경하고 진지한 역할 만 고집하여 일을 선택하게 되어 배우로 활동하는 폭이 줄어 들었고 커리어가 올라가는 과정에서 개런티도 올라 기용하는 측도 남편을 기피하게되었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일이 줄어 하루 종일 집에있는 것도 많아져, 집에 틀어박혀 낮에 자고 밤에 정처없이 인근 공원을 돌아다니는 등 주야가 역전된 생활이 반복되었으며 수입이 격감한 것으로 인해 주민세와 거품경제 시기 말기에 1억 5000만엔에 구입한 아파트의 대출이 거품경제의 몰락이 겹치며 상환이 밀리게 되었다고 한다. 카누마 에리도 원래 여배우였었다는 자존심을 버리고 인근 스낵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빚 상환을 하는데 노력했으나 결과적으로 부채는 3억엔까지 늘었다고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친아버지의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계모와의 분쟁 문제가 표면화 되었는데 원래 화장실에서 오랫동안 손을 씻는 정도의 결벽적인 성격이었을 뿐인 사람이 배우로서의 활동에 제동이 걸리고 그로인해 빚을 갚지 못하여 빚 독촉을 받는 등 다양한 초조감에 의한 스트레스와 밤낮 역전의 황폐한 생활 등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일상화 되었다고 한다. 아내 카누마 에리와 언쟁 중에는 얼굴에 중상을 입힐 정도의 폭력을 행사하여 남편이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였고, 그와 반대로 '무대에서 죽는 것이 배우로서 숙원'이라거나 '자신은 필요없는 사람이 아닌가'라고 비관적인 진지하게 말을 하는 등 불안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한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버지가 남긴 거액의 유산이 최후의 보루였는데 아버지의 후처인 계모는 후루오야 마사토의 나이와 불과 몇살 차이나지 않았는데 아버지의 타계 이후 빚을 갚기위해 상속을 알아보던 중 아버지의 현금과 부동산 등이 모두 계모의 명의로 이전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계모에게 재산분할을 요구하였으나 계모가 이를 거절하여 언쟁이 불거졌고 재산을 둘러싼 소송을 벌이던 중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했다는 것이 카누마 에리의 의견이었다. 이 과정에서 죽은 후루오야 마사토의 아버지도 비판을 받았다. 후루오야 마사토가 1957년생인데 계모도 언론에서 제기한 바에 의하면 1950년 이후 생으로 최대한 많게봐도 6살 정도이기 때문에 후처와 나이가 30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도 결혼을 했고 결국 후처로 인해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했다는 비판이 있었으며 전처가 죽은지 얼마되지 않아 재혼을 감행하여 이를 반대한 아들 야스마사[3] 와 의절한 상태가 되었고 이로인해 그가 죽는 과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 계모가 명의를 자신의 이름으로 이전하는 등 사문서위조를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자살 당시에는 유서가 발겭되지 않아 타살 의혹이 제기 되었는데 이유는 소송 과정 중 계모가 남편 사후 자신의 명의로 이전을 한 과정에서 사문서 위조 정황이 드러나는 등 후루오야 마사토에 매우 유리했는데도 갑작스레 죽어서 계모에 의해 타살되어 자살로 위장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시신부검에도 별다른 타살정황이 드러나지 않아 자살로 발표되었으며 유족도 이를 납득하였다. 이후에도 남은 유족들이 후루오야 마사토의 소송을 계승하여 계모에게 소송을 진행하여 유산을 배분하라는 판결이 내려져 계모가 빼돌린 대부분의 유산은 유족들에게 돌아가 남은 유족들은 빚 상환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자살 이후 10주기가 되는 2011년 추모식을 열린 바 있으며 현재는 자신의 아들인 후루오야 마사토(古尾谷雅)가 자신의 예명 후루오야 마사토(古尾谷雅人)를 계승하여 2대 후루오야 마사토가 됨에 따라 1대 후루오야 마사토가 되었다.
카누마 에리에 의하면 비밀전대 고레인저에서 55화부터 67화까지 2대 키레인저 쿠마노 다이고로로 출연한 다루마 지로는 자신과 친분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후루오야 마사토와도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다루마 지로는 37살이던 1988년 배우활동을 그만두고 필리핀으로 건너갔는데 후루오야 마사토가 자살한 이후에 언급되는 친분관계에 연예계에서 한참전에 은퇴한 다루마 지로의 친분이 드러난 인간관계일 정도로 대인관계에 서툴렀다고 하는데 자살한 유명 배우의 친분이 고작 한참전에 은퇴했던 다루마 지로 밖에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씁쓸한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