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구치 이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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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근대 일본의 소설가. 5000엔 앞면에 있는 사람이다.[1]
이치요는 필명이며 본명은 히구치 나쓰코(樋口夏子)이다. 호적상 이름은 히구치 나쓰(樋口奈津).
2. 생애
1872년 5월 2일에 현재의 도쿄도 치요다구[2] 우치사이와이정(内幸町)에서 태어났다. 사족(士族)[3] 이었던 아버지 노리요시의 2남 3녀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1883년 세이카이 소학교 고등과 제4급[4] 을 수석으로 졸업하는등 매우 영특한 아이였지만 여자에게 더 이상의 교육은 필요없다는 어머니의 반대로 더 이상 학업을 잇지는 못했다. 가난했던 집안에 10대 무렵부터 큰오빠와 아버지를 잃고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삯바느질과 세탁 등 허드렛일로 돈을 벌었고 19세 때 소설을 배우기 시작하여 등단했으나 가난함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1896년 11월, 24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도쿄를 단 한번도 떠난 적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 ‘키재기’ ‘13야’ 등 14편의 주옥같은 단편소설들을 남겼다.
3. 평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 작가 중 첫 번째 여성 작가.
24년의 생애 중 숨을 거두기 전 1년 2개월 동안 일본의 근대 문학사에 남는 작품을 남겼다
5000엔권 지폐에 등용되면서 지폐의 인물이 되고 나서 작품들이 재평가 되고 있다.
4. 대표작
첫 작품은 『밤 벚꽃(闇桜)』이며[5] 대표작으로는 『섣달 그믐(大つごもり)』, 『키 재기(たけくらべ)』, 『탁한 강(にごりえ)』 등이 있다.
5. 기타
- 이치요라는 필명은 달마가 잎 하나를 꺾어 강을 건넜다는 일화에서 나왔다.
- 그녀의 스승 나카라이 도스이는 소설가, 기자였다. 부산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어를 할 수 있었고 아사히 신문 부산 특파원으로서 조선의 사건을 보도하거나 춘향전을 번역해 연재하기도 했다. 이치요의 생전 일기에 구운몽을 필사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역시 그의 영향으로 보인다. 아내를 잃은 도스이와 연인관계였는가, 아닌가 하는 점은 후세에 영원한 떡밥으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