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구치 이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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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樋口(ひぐち 一葉(いちよう'''
'''성명'''
히구치 이치요
'''출생'''
1872년 5월 2일 도쿄
'''사망'''
1896년 11월 23일
'''국적'''
일본
'''직업'''
소설가
'''본명'''
히구치 나쓰코(樋口夏子)
'''호적 등록명'''
히구치 나쓰(樋口奈津)
1. 개요
2. 생애
3. 평가
4. 대표작
5. 기타


1. 개요


근대 일본의 소설가. 5000엔 앞면에 있는 사람이다.[1]
이치요는 필명이며 본명은 히구치 나쓰코(樋口夏子)이다. 호적상 이름은 히구치 나쓰(樋口奈津).

2. 생애


1872년 5월 2일에 현재의 도쿄도 치요다구[2] 우치사이와이정(内幸町)에서 태어났다. 사족(士族)[3]이었던 아버지 노리요시의 2남 3녀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1883년 세이카이 소학교 고등과 제4급[4]을 수석으로 졸업하는등 매우 영특한 아이였지만 여자에게 더 이상의 교육은 필요없다는 어머니의 반대로 더 이상 학업을 잇지는 못했다. 가난했던 집안에 10대 무렵부터 큰오빠와 아버지를 잃고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삯바느질과 세탁 등 허드렛일로 돈을 벌었고 19세 때 소설을 배우기 시작하여 등단했으나 가난함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1896년 11월, 24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도쿄를 단 한번도 떠난 적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 ‘키재기’ ‘13야’ 등 14편의 주옥같은 단편소설들을 남겼다.

3. 평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 작가 중 첫 번째 여성 작가.
24년의 생애 중 숨을 거두기 전 1년 2개월 동안 일본의 근대 문학사에 남는 작품을 남겼다
5000엔권 지폐에 등용되면서 지폐의 인물이 되고 나서 작품들이 재평가 되고 있다.

4. 대표작


첫 작품은 『밤 벚꽃(闇桜)』이며[5] 대표작으로는 『섣달 그믐(大つごもり)』, 『키 재기(たけくらべ)』, 『탁한 강(にごりえ)』 등이 있다.

5. 기타


  • 이치요라는 필명은 달마가 잎 하나를 꺾어 강을 건넜다는 일화에서 나왔다.
  • 그녀의 스승 나카라이 도스이는 소설가, 기자였다. 부산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어를 할 수 있었고 아사히 신문 부산 특파원으로서 조선의 사건을 보도하거나 춘향전을 번역해 연재하기도 했다. 이치요의 생전 일기에 구운몽을 필사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역시 그의 영향으로 보인다. 아내를 잃은 도스이와 연인관계였는가, 아닌가 하는 점은 후세에 영원한 떡밥으로 남는다. #
  • 한국의 승려 출신 문학가인 김일엽의 필명 '일엽'은 이광수가 히구치 이치요의 이름을 따와 지은 것이다. 김일엽의 삶 또한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고 가난에 시달리는 등 히구치 이치요와 유사한 점이 있었다.
[1] 일본 지폐에 두 번째로 등장한 여성이다. 첫 번째는 1881년 발행된 1엔권 지폐에 등장한 진구 황후(...) 앞면이 아닌 뒷면까지 포함한다면 세 번째다. 두 번째는 2천엔권 지폐에 등장한 무라사키 시키부[2] 당시는 다른 이름이었다. 지금의 도쿄의 구들은 1930년대에 다시 이름들이 정해진 것이다.[3] 사무라이[4] 초등학교 5학년에 해당된다.[5] 1892년 출간. 이때부터 이치요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