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타이브레이커 게임
1. 개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놓고 1978년 10월 2일에 진행된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단판 승부.[1] 한마디로 요약하면 뒷심을 보인 양키스와 허무 개그의 절정을 보여준 레드삭스의 모습 그대로를 보인 시즌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1978년의 두 팀
우선 레드삭스는 1975년 월드시리즈를 7차전으로 가는 접전끝에 스파키 앤더슨이 이끄는 신시내티 레즈에게 패했다. 그리고 이듬해에 월드시리즈에 나섰던 뉴욕 양키스 역시 신시내티 레즈에게 4게임 '''싹슬이로 광탈당하는 치욕을 맛본다'''. 그러나 그 다음해인 1977년 명장 토미 라소다감독이 이끄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6차전으로 매듭짓고 우승을 만끽했다. 1978년에 들어서면서 두 팀은 강력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레드삭스는 이해 전년시즌 양키스에서 활약한 마이크 토레즈를 자유계약선수로 영입하고, 당시엔 선발투수였던 세이브의 달인 데니스 에커슬리까지 영입해서 명실상부한 동부지구 강자로 나설 채비를 했다. 이에 질세라 양키스는 구스 고세지를 영입해 불펜을 강화하였다. 이미 론 기드리, 스파키 라일 같은 기라성 같은 투수에 서먼 먼슨, 레지 잭슨, 그레익 네틀스 같은 훌륭한 타자까지 보유하고 있었던 양키스는 올해도 승리로 장식,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레드삭스 역시 그냥 있지는 않았다. 칼 야스트렘스키, 프레드 린, 릭 버를슨, 그리고 불세출의 포수 칼튼 피스크와 짐 라이스가 버티는 타순으로 기필고 3년만의 월드 시리즈 진출을 이루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3.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그래도 잡는다
이렇게 시작된 1978년도의 시즌은 레드삭스의 독주로 시작됐다. 무려 10경기까지 벌어져 밀워키가 2위, 양키스가 3위였던 시즌은 그러나 양키스쪽에서 부상선수들이 발생하고 참다못한 양키스 구단주였던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당시 감독이던 빌리 마틴 감독을 해임시킨 뒤 밥 레몬을 후임감독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양키스의 회복은 보이지 않고 급기야 레드삭스와 14 1/2경기차로 벌어지게 된다. 이때가 바로 7월 중순. 그러나 양키스는 이때부터 힘을 내기 시작, 그 이후로 53승 23패를 해 추격을 하는 반면, 레드삭스는 38승 36패를 하는 데 그쳤다. 특히 양키스와의 대결한 4경기 중 4경기 모두 졌다. 결국 양팀은 단판 승부로 지구 우승을 가려야하는 처지로 들어섰다.
4. 외나무다리 승부
결국 10월 2일, 이 두 운명의 앙숙은 외나무다리 승부를 펄쳤다.
장소는 레드삭스의 홈구장이었던 펜웨이 파크. 양키스는 24승 투수였던 론 기드리를 내세웠고, 레드삭스는 전 양키스 소속이던 마이크 토레스를 내세웠다. 레드삭스는 칼 야스트렘스키가 2회말에 솔로포를 터뜨린 후 5회에는 짐 라이스의 1타점 적시타로 2대 0을 만들어 앞서간다. 그러나 양키스는 6회초 크리스 챔블리스와 론 화이트가 각각 안타를 친 1사 1,2루 상황에서 벅키 덴트가 마이크 토레즈의 투구를 통타 좌월 3점 홈런을 터뜨려서 양키스의 3대 2 역전을 이뤄낸다. 레드삭스는 토레즈를 강판시키고 그 자리를 마무리 밥 스탠리를 올렸으나 타석에 들어선 리버스가 출루하고 2루에 도루, 이렇게 1사 2루에 서먼 먼슨이 2루 적시타와 레지 잭슨의 홈런으로 5대 2로 리드해나갔다.
양키스는 마무리 구스 고시지를 등판시켜 그대로 경기를 매조지려고 했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던 레드삭스가 8회말에 반격을 감행하여 프레드 린과 칼 야스트렘스키의 안타로 5대 4로 점수차를 줄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9회말, 레드삭스는 최후의 대반격을 감행한다. 1사후 1번타자 벌레슨이 1루에 출루한 상황에서 2번 타자 제리 레미가 우익수 방면으로 강한 직선타를 날린다. 그리고 여기서 양 팀의 운명을 엇갈리게 만든 수비 장면이 나온다. 양키스의 우익수 루 피넬라는 이때 '''햇빛에 시야를 가려서 공의 궤적을 놓친 상태였지만, 공을 잡을 수 있는 것처럼 태연히 연기하였고, 여기에 감쪽같이 속은 벌레슨은 2루까지만 진루한다.''' 이어 짐 라이스가 큼직한 외야플라이를 날렸고, 정상적이었다면 동점 희생플라이가 되어야 했을 이 타구는 단순한 진루타에 그치고 만다. 어느 쪽도 쉽사리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2사 1,3루의 상황. 레드삭스의 주장 야스트렘스키가 레드삭스 팬들의 간절한 기도와 함께 타석에 서지만, 그의 초구 타격은 허무하게도 3루수 쪽으로 향하는 파울 플라이볼이었고 그대로 경기는 끝났다. 그렇게 양키스는 플레이오프행 막차를 탔고 레드삭스는 망했어요.
5. 여담
- 이후 양키스는 ALCS에서 로열스를 꺾은데 이어 월드시리즈에서는 다저스와 리턴 매치를 가졌는데 다시 한 번 승리를 거두고 월드시리즈 2연패를 차지한다. 다만 이 해가 양키스의 마지막 불꽃이었고 그 이후 양키스는 데릭 지터로 대표되는 90년대 후반의 제2의 전성기가 오기전까지 처절한 암흑기를 거치게 된다.
- 양키스는 전년도와 이 해, 연속 사이 영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전년도인 77년에는 스파키 라일이, 그리고 이 해에는 25승으로 아메리칸 리그를 평정한 론 기드리가 그들이었다.
- 보스턴은 이 해의 대역전극 참사 33년 후 또 한번 어메이징한 추락을 경험한다.
[1]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리그가 각각 3대 지구로 재편성되어서 플레이오프가 DS -CS- WS 3단계로 짜여진 것은 1994년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동부-서부 지구로만 분류되었고 각 지구의 우승팀이 곧바로 CS를 치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