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HEM(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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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시바타 나오토 - 모리카와 유키오 - 시미즈 아키오 - 타마루 이사무

1. 개요
2. 바이오그래피
3. 활동 내역
3.1. 시대별 음반과 활동 멤버
3.2. 라이브 앨범
3.3. 영상물
4. 멤버
4.1. 현재 멤버
4.2. 前 멤버
5. 그들의 음악


1. 개요


1981년에 결성된 '''일본의 전설적인 헤비메탈 밴드.'''
LOUDNESS, VOW WOW와 함께 일본 록/헤비메탈사에서 절대로 빼놓을수 없는 거물급의 밴드이다.
우리나라에선 ANIMETAL, JAM Project의 멤버였던 사카모토 에이조가 몸담았던 밴드로 알려져 있다.[1]
일본 내에서는 가장 높은 평가와 인기를 자랑했던 쟈파메탈(J-METAL)의 핵심격인 밴드이며,[2] 이 밴드의 역사가 가히 쟈파메탈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실제로 Bound To Break를 발매한 이후 인기는 최고조에 달해 1년에 라이브 무대만 거의 500회 이상을 했다고 한다.

2. 바이오그래피


베이시스트 시바타 나오토가 리더로 1981년 결성되었다. 첫 등장은 1984년으로, HEAVY METAL FORCE라는 옴니버스 앨범에 WARNING ACTION!이란 곡을 제공했다. 당시 보컬은 마에다 토니로, 이후 탈퇴하게된다. 나오토는 오디션을 통해 사카모토 에이조와 모리카와 유키오를 저울질하던 중, 사카모토 에이조를 선택. 사카모토 에이조와 함께 메이저 데뷔를 한다.
메이저 데뷔는 1985년으로, 첫앨범 ANTHEM을 릴리즈, 이어 1986년 TIGHTROPE, 1987년 BOUND TO BREAK 앨범이 연달아 성공하면서 미국 LA 공연이 성사되기도했으며, 그때의 현장을 라이브로 담은 앨범이 발매되었다. 특히 Bound To Break는 Double Dealer의 Desert of Lost Souls와 함께 Burrn지에서 선정한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락 앨범 1위에 오른다.''' 현재도 일본 메탈씬에서 저 앨범은 LOUDNESS의 THUNDER IN THE EAST와 함께 바이블로 통하고 있다. [3]
다만 미국에서의 지명도는 LOUDNESS에게 밀려서 Show Must Go On이나 Bound To Break와 같은 곡 외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다만 일본에서의 평가는 LOUDNESS에 떨어지지 않는다. 일단은 일본에서도 LOUDNESS가 더 알려져 있는건 맞지만 현재 매니아들의 평판은 ANTHEM이 더 뛰어난 편, 일단 멤버의 변동폭이 동시대 LOUDNESS보다 적었고 음악의 기복이나 편차도 상대적으로 거의 없다시피 했다. LOUDNESS가 주다스 프리스트처럼 온갖 다양한 장르를 시도해서 실패한 경험도 있는 반면 ANTHEM은 아이언 메이든처럼 초지일관 멜로디 강한 정통 헤비메탈을 고집했다. 쟈파메탈 고유의 음악성을 굳이 외국의 메탈과 뒤섞지 않아서 호평을 많이 듣는 편이다. IMMORTAL이나 Black Empire 같은 비교적 최신 앨범도 큰 호평을 받았다.
연속된 라이브 일정으로 인한 위압감과 피로, 가족의 존재, 멤버의 텐션을 전혀 따라오지 못하겠다는 보컬 사카모토 에이조는 탈퇴를 표명했고, 나오토는 새로운 보컬로 에이조와 마지막까지 경쟁하던 모리카와 유키오를 데려온다. 그레엄 보넷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그레엄 보넷이 자신이 만든 곡을 불러주는것이 꿈이였던 시바타 나오토와 그레엄 보넷의 스타일을 닮기 원했던 모리카와 유키오의 궁합은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이후, 모리카와 유키오는 '일본의 그레엄 보넷'이라 불리우게 된다. [4]
1988년 GYPSY WAYS에 이어 1989년 발매된 HUNTING TIME 앨범은 BOUND TO BREAK와 더불어 ANTHEM 역사상 최고의 앨범으로 취급받는다. 사실상 ANTHEM의 모든 정수가 집약된 앨범으로 짧은 런닝타임 안에 헤비메탈이 보여줄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앨범. 이후 발매한 앨범들은 쟈파메탈의 암흑기로 불리는 시대에 나온 앨범이였기에 흥행에 실패했으며, 이때 무렵부터 리더인 시바타 나오토와 기타리스트 후쿠다 히로야와의 불화가 일게된다.
시바타 나오토와 후쿠다 히로야의 골은 상당히 깊어지면서, 히로야는 ANTHEM의 다음 앨범을 위한 곡에 기타 레코딩에만 참여했고, 결국 탈퇴한다. 시바타 나오토는 차기 기타리스트로 HURRY SCUARY의 나카마 히데아키를 영입한다.
1990년 NO SMOKE WITHOUT FIRE 앨범을 리리스. 4월에는 한국 공연도 성사됐다. 역시 이 때의 보컬도 모리카와 유키오[5] 이 때 시나위가 오프닝 무대에 섰었는데 당시 보컬이였던 김종서의 멘트가 압권이였다. '''여러분 우리들의 친구를 불러보아요! ANTHEM!''' (...)
1991년 나카마 히데아키가 오토바이 사고로 입원하게 되면서[6] ANTHEM은 활동 휴지를 선언한다. 나카마 히데아키는 ANTHEM을 통해 해외 진출을 노리고 있었으나 쟈파메탈의 암흑기에서 그러한 기회는 불가능 했다. 설상 가상으로 Vow Wow와 같은 팀들도 줄줄히 해산하는 비극을 맞는다. 그러자 나카마 히데아키는 불만을 가졌던 차에 사고를 계기로 ANTHEM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1991년 8월, 모리카와 유키오의 지인의 소개를 통한 오디션을 열어, 당시 20세의 시미즈 아키오를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지명한다.
1992년 3월, 유명 키보디스트 돈 에이리의 도움과 함께 DOMESTIC BOOTY 앨범을 발매. 하지만, 모리카와 유키오는 더이상 시바타 나오토와 함께할 마음이 없었다. 모리카와 유키오가 탈퇴를 표명함에 따라 시바타 나오토는 더이상 ANTHEM이 활동하기 어렵다고 판단, 해체를 선언한다. 7월 닛산 파워스테이션에서의 라이브를 마지막으로 ANTHEM은 해체한다.
이후, 각각의 길을 걷고 있던 멤버들은 1999년 프로젝트 앨범의 제작을 위해 다시 모인다. 보컬은 시바타 나오토의 꿈이였던 '''그레엄 보넷''', 시바타 나오토가 지금껏 그레엄 보넷을 생각하며 작곡한 곡들을 리메이크하여 그레엄 보넷이 불렀다.
2000년 프로젝트 앨범 HEAVY METAL ANTHEM 발매. 당시 50줄이 넘어간 보넷이였지만 세계 최고의 메탈 보컬리스트중 하나인 그의 파워를 앨범에서 그대로 느낄수 있다. 시바타 나오토는 이 일을 계기로 ANTHEM의 부활을 선언, 2대 보컬인 사카모토 에이조와 함께 꾸준히 활동 중이다.
2005년에는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어, 메이저 데뷔 이후 탈퇴했던 모든 멤버를 불러서 공연했다. 2010년, 25주년 기념 투어를 진행했다. 2012년, 무릎 부상으로 인해 드러머 혼마 히로츠구가 무기한 휴식을 취한다고 발표했다. 2012년 10월 24일 유니버설 뮤직 그룹 이적 후 첫 앨범인 BURNING OATH 앨범을 냈다. 서포트 드러머로 타마루 이사무가 참여해 음반 작업을 도왔으며 투어에도 함께했다.[7] 2013년 1월 시바타 나오토가 위암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하면서 ANTHEM 활동도 일시 정지되었다. 쾌유를 빌어주자. 2013년 4월 3일 궁극! 변태가면의 OST로 BLAST를 발매. 제작은 기타리스트 시미즈 아키오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2013년 4월 결국 부상으로 인해 빠져있던 드러머 혼마 히로츠구가 밴드 탈퇴를 선언했다.
2014년 2월 14일부로 보컬 사카모토 에이조가 밴드를 탈퇴했다. 리더인 시바타 나오토는 새 보컬로 모리카와 유키오를 발표함과 동시에 서포트 드러머였던 타마루 이사무가 정식 멤버가 됨을 알렸다.
현재는 Nuclear Blast 소속으로 아시아 메탈밴드로서 최초로 이 회사 소속이다.

3. 활동 내역



3.1. 시대별 음반과 활동 멤버


(숫자는 활동년도 - 표시는 앨범)
'''1981~1983'''
보컬 - 마에다 "앤빌" 토니
기타 - 코이나가 "레이븐" 쇼오지
베이스 - 시바타 "매그넘" 나오토
드럼 - 오우치 "드럼" 타카마사
보컬 - 마에다 "TONY" 토니
기타 - 코이나가 쇼오지
베이스 - 시바타 나오토
드럼 - 오우치 "MAD" 타카마사
'''1984'''
보컬 - 마에다 "TONY" 토니
기타 - 후쿠다 히로야
베이스 - 시바타 나오토
드럼 - 오우치 "MAD" 타카마사
'''1985~1987 - ANTHEM, TIGHTROPE, BOUND TO BREAK'''
보컬 - 사카모토 에이조
기타 - 후쿠다 히로야
베이스 - 시바타 나오토
드럼 - 오우치 "MAD" 타카마사
'''1988~1990 - GYPSY WAYS, HUNTING TIME, NO SMOKE WITHOUT FIRE'''
보컬 - 모리카와 유키오
기타 - 후쿠다 히로야
베이스 - 시바타 나오토
드럼 - 오우치 "MAD" 타카마사
'''1990~1991 - Best 1981-1990'''
보컬 - 모리카와 유키오
기타 - 나카마 히데아키 [8]
베이스 - 시바타 나오토
드럼 - 오우치 "MAD" 타카마사
'''1991~1992 - DOMESTIC BOOTY'''
보컬 - 모리카와 유키오
기타 - 시미즈 아키오
베이스 - 시바타 나오토
드럼 - 오우치 "MAD" 타카마사
'''- 해산 -'''
'''2000 - HEAVY METAL ANTHEM'''
보컬 - 그레엄 보넷
기타 - 시미즈 아키오
베이스 - 시바타 나오토
드럼 - 오우치 "MAD" 타카마사
'''- 재결성 -'''
'''2001~2014 - SEVEN HILLS, OVERLOAD, ETERNAL WARRIOR, IMMORTAL, BLACK EMPIRE, HERALDIC DEVICE, BURNING OATH, ABSOLUTE WORLD'''
보컬 - 사카모토 에이조
기타 - 시미즈 아키오
베이스 - 시바타 나오토
드럼 - 혼마 히로츠구[9]
'''2014~현재 - ABSOLUTE WORLD, ENGRAVED'''
보컬 - 모리카와 유키오
기타 - 시미즈 아키오
베이스 - 시바타 나오토
드럼 - 타마루 이사무

3.2. 라이브 앨범


'''1987 - THE SHOW CARRIES ON!'''
ANTHEM의 첫 해외공연인 LA공연을 음원으로 담은 라이브 앨범, 2005년 컴플리트 박스로 완전판이 발매되었다.
'''1992 - LAST ANTHEM'''
닛산 파워스테이션에서의 라이브를 담은 앨범. 멤버들은 이 앨범과 관련해 절대 입을 열지않는다.
'''2003 - LIVE MELT DOWN'''
OVERLOAD 앨범 발매 이후 가진 도쿄, 오사카, 나고야 투어에서 선별한 곡들을 담은 라이브 앨범.
'''2005 - PROLOGUE LIVE BOXX'''
현재의 멤버로 과거의 곡들을 라이브. 초기 3부작을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전부 라이브로 부른 것을 담은 앨범.
'''2010 - PROLOGUE LIVE BOXX 2'''
GYPSY WAYS, HUNTING TIME의 곡들을 라이브.
'''2015 - TRIMETALLIC'''
PROLOGUE LIVE BOXX 시리즈의 연장선으로, NO SMOKE WITHOUT FIRE, DOMESTIC BOOTY의 곡들을 라이브 재현함으로써 해산 이전의 전 앨범 라이브 커버 완료.

3.3. 영상물


'''1987 - THE SHOW CARRIES ON'''
'''1992 - LAST LIVE'''
마지막 라이브를 비디오 영상으로 담았다. 40분 정도의 영상으로 LAST ANTHEM보다 양이 적다. 참고로 재결성된 ANTHEM에서는 공식적으로 '''이 라이브에 대해 절대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흑역사'''
'''2001 - ANTHEM, back then'''
1987년 시부야 공연을 DVD로 만들었다. 나오토, 에이조와 당시 사장이던 인물이 인터뷰한 영상과 해외 공연 영상, 몇곡의 PV가 첨부되어있다.
'''2001 - LIVE MELT DOWN THE SHOW STILL CARRIES ON'''
ANTHEM의 성지, 가와사키 CLUB CITTA에서의 라이브를 DVD로 담았다.
'''2005 - ANTHEM 20th Anniversary Tour 2005'''
20주년 기념 라이브. 메이저 데뷔 이후 ANTHEM을 거쳐갔던 모든 멤버들이 참여했다.
'''2009 - LIVE IMMORTAL'''
IMMORTAL 앨범 발매 후 가진 라이브.
'''2015 - BLAZING FAITH~revisited'''
메이저 데뷔 후 첫 앨범인 ANTHEM의 전곡을 스튜디오에서 부른 스튜디오 라이브를 수록했다. 또한 앨범 ABSOLUTE WORLD 전곡 라이브를 수록.
'''2016 - 30+'''
30주년 기념 라이브. 1부엔 비교적 최신곡들이라 할 수 있는 재결성 이후의 곡들을, 2부에는 과거 해체 이전의 추억의 곡들을 공연했다.

4. 멤버



4.1. 현재 멤버


'''시바타 나오토(柴田直人)'''
해당 위키 항목 참조
'''시미즈 아키오(清水昭男)'''
해당 위키 항목 참조
'''모리카와 유키오(森川之雄)'''
보컬 오디션에서 사카모토 에이조와 끝까지 경합했던 인물로, 그래험 보넷과 비슷한 창법과 안정적인 가창력을 가졌다. 사카모토 에이조에 비해서는 성량이 더 크고 굵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풍의 분위기는 덜한 편. 1990-1992년까지 비교적 짧은 기간동안 활동하다 탈퇴 후 시미즈 아키오와 함께 밴드를 결성했다가 음악성에서의 심각한 견해 차이로 해산. 이후 1995년부터 오디션에서 만난 드러머 사와 유우와 함께 THE POWERNUDE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활발하게 활동하였다.[10] 이후 2014년 3월 모리카와가 정식으로 ANTHEM에 복귀하고 원년 멤버인 사와 유우가 탈퇴하면서 THE POWERNUDE는 사실상 활동 중지 수순에 들어갔다.
'''타마루 이사무(田丸勇)'''

4.2. 前 멤버


Vocalist
'''그레이엄 보넷(Graham Bonnet)'''
'''사카모토 에이조(坂本英三)'''
Guitar
'''후쿠다 히로야(福田洋也)'''
ANTHEM의 첫 데뷔를 함께한 기타리스트로 강력한 디스토션 사운드와 아밍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과격한 플레이로 ANTHEM의 초기 음악성에 꽤 영향을 주었다. 리더인 시바타 나오토와 밴드의 활동 방향 및 음악성에 대한 견해 차이가 벌어져 대판 싸우고 탈퇴. 출중한 기타 실력[11]과 함께 무대 매너도 뛰어나 그를 선호하는 팬층도 상당하다. 밴드 탈퇴 후 인디즈 활동을 하다가 1995년부터 유명한 음악학교인 MI JAPAN의 기타 강사로 재직하였다. 2003년 청력이상 등의 이유로 프로 뮤지션으로서의 생활을 접고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듯.참조
'''나카마 히데아키(中間英明)'''
Drumer
'''오우치 타카마사(大内貴雅)'''[12]
'''혼마 히로츠구(本間大嗣)'''
야마다 마사키가 리더로 있던 FLAT BACKER로 메이저 데뷔, 이후 KISS의 진 시몬즈의 도움으로 E.Z.O로 개명하여 미국 시장에 진출, 빌보드 TOP200의 150위권안에 드는등 선전했으나 4년뒤 해체하였다. 이후 하마다 마리의 서포트 드럼으로 활동하다 1994년 히구치 무네타카가 탈퇴한 LOUDNESS에 가입했다. 1999년, LOUDNESS의 리더 타카사키 아키라가 LOUDNESS의 오리지날 멤버로의 복귀를 선언하면서 자연스레 탈퇴되었다. 이후 LOUDNESS에서 우정을 쌓은 사바타 나오토가 재결성한 ANTHEM에 참가했다. 2004년에 무릎통증으로 잠시 활동을 휴식했던 전력이 있다. 이 시기에는 원 멤버였던 오우치 타카마사가 서포트로 참가했다. 2012년 무릎 통증으로 인해 무기한 활동 휴식을 발표했다. 결국 2013년 4월 탈퇴.

5. 그들의 음악


ANIMETAL 시절의 사카모토 에이조를 생각하시면 오산으로, 리즈시절의 사카모토 에이조의 위엄을 느낄수 있는 영상이다.
재결합 후 베스트 앨범인 CORE 초회한정판에 들어있는 DVD영상
[1] 애니메이션으로 일본 노래를 접하는 경우가 많은 국내 상황 때문인지 엔하위키에는 국내외적으로 더 인기가 높았던 동시대 일본의 전설적인 밴드들인 Loudness 와 VOW WOW 를 제치고 가장 처음 등록된 밴드이기도.[2] 라우드니스 10집이전까진 본국 일본에서의 인기는 안셈이 더 높았다고 한다. [3] Burrn은 시모야마 타케노리에게 과할 정도로 애정을 표하고 있으며, 음악적 기준을 당최 알 수 없는 서양 록 빠돌이에 가까운 행위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이키마츠 0점 사건.[4] 실제로 Sheja의 Tribute에서도 잉베이 말름스틴이 만들고 그레험 보넷이 보컬이였던 알카트로즈의 Jet To Jet을 멋지게 소화해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사카모토 에이조가 유명하지만 ANTHEM의 팬들 중에서는 모리카와 유키오의 실력이 훨씬 낫다는 의견도 많다. 이는 사카모토 에이조 본인도 언급했던 사항.[5] 사카모토 에이조는 한국에 관광으로도 온적이 단 한번도 없다. 본인에게 직접 확인[6] 오토바이 사고는 사실상 핑계고, 나카마 히데아키는 합류 초기부터 ANTHEM에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았다. 특히 라이브 무대에서 솔로를 자기 멋대로 바꿔 연주하고 상습적으로 지각하는 등 거의 초딩 짓을 하고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님.[7] 7번 트랙 Ghost In The Flame만 기존 멤버인 혼마가 참가[8] 베스트 앨범에 수록된 'A.D.D.'라는 연주곡이 나카마 히데아키가 Anthem 시절 유일하게 레코딩에 참여한 곡이다.[9] 2004년에 고질적으로 발생하던 무릎 통증으로 잠시 활동을 중단하고 있던 시기에는 오우치 타카마사가 서포트 멤버로 대행, 2009년에 복귀한다.[10] 잠깐의 활동 중지 기간을 빼면 17년동안 한결같이 활동했고, 2008년 내한공연을 하기도 하였다.[11] 일본 메탈 잡지 BURRN!!에서 진행한 세계 기타리스트 순위 투표에서 16위를 기록.[12]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서포트 멤버로 참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