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에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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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물 개요 및 활동 내역
2. ANTHEM 시절
3. 그의 인생 역정기
4. ANIMETAL 프로젝트
4.1. 비하인드 스토리?
6. ANTHEM 탈퇴와 아이센시
7. 현재
8. 보컬리스트로서의 평가
9. 여담
10. 음반 및 라이브 활동 내역
10.1. 싱글
10.4. Eizo Japan
10.5. Album
10.6. 네리마 절규구락부
10.6.1. 앨범
10.6.2. 멤버
10.7. 그 외 참가


1. 인물 개요 및 활동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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坂本英三 (さかもとえいぞう)[1]
1964년 2월 23일 ~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출신. 학력은 니혼대학 문리학부 사회학과 중퇴.
ANIMETAL로 그를 처음 봤다면, 코스프레를 연상시키는 우스꽝스러운 차림으로 애니송을 우악스러운 샤우팅 섞어 부르는 코믹한 모습으로 기억하겠지만 '''사실은 일본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헤비메탈 보컬리스트'''이다.
나오는 무대에 따라 표기가 다른데 밴드 음악, 헤비메탈 씬에선 한자 표기(坂本英三)를 사용하고 있으며 ANIMETAL, JAM Project 등 애니송계에서 활동할 때는 히라가나(さかもとえいぞう)로 이름을 표기한다.

2. ANTHEM 시절


1985년 헤비메탈 밴드 ANTHEM의 2대 보컬로 데뷔했으며 '''「WILD ANTHEM」'''으로 대뷔. 그 후 87년 불멸의 역작으로 불리는 '''「BOUND TO BREAK」'''를 발매하고 일약 메탈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밴드의 보컬리스트가 된다. 그 후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ANTHEM 투어등을 돌며 Live 앨범인 '''「Show Carries On」''' 발매 후 탈퇴. 이미 그 전부터 탈퇴 의사를 밝혀왔고, 87년 투어까지만 하고 탈퇴하기로 시바타 나오토와 이야기가 된 상태였다고 한다. 훗날 그가 탈퇴 이유를 밝혔는데,
'''"도저히 다른 멤버들의 텐션을 따라갈 수 없어서, 이런 정신상태로 노래하면 다른 멤버들에게 민폐인 것 같아요."'''
또한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ANTHEM 활동 시절 일찍 결혼을 해서, 투어 당시에 이미 딸이 있었고 가장으로서 책임도 져야 했으며, 음악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까 하는 내적 갈등도 심했다고 한다.

3. 그의 인생 역정기


ANTHEM 탈퇴 후에는 생활이 막막해져 각종 직업을 전전하고 다녔다. 그야말로 한편의 영화와 같은 이야기들. 여기서 그가 거쳐온 직업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진다. [2]
  • 안경점 점원 : 1987년 10월 '메가네 드럭'에 정식 입사. 정사원 채용시험에서 단 한 문제만 틀려서 96점을 받았고, 전체 수석으로 입사했다고 한다. 원래 시력이 나빠서 콤플렉스가 있었던데다 접객하는 것도 좋아했기 때문에 천직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1년 넘게 안정된 판매원으로 생활했으나, 노래 개인연습을 했는데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오는 것에 충격받고 이렇게 박제처럼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네리마 마초맨'을 결성하고서 퇴사했다고 한다.
  • 레스토랑 웨이터 : 결혼을 일찍 했고 딸도 있었기 때문에,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야 했다. 전설의 ANTHEM의 보컬리스트였던 그가 취직 정보지를 읽고 이력서를 쓰면서,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버블 경기 시절이었기 때문에 일반 샐러리맨 정도의 수입은 됐지만, 제대로 된 직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훗날 밝혔다.

  • 알프스 전기 명예사원 : 2005년, 알프스 전기사의 CM송 빛으로 감싸여를 부른 공로로, 명예사원증을 받았다고 한다. 음원이 정식으로 발매되지는 않았지만, 전기사 사원들에게 MD로 배포되었다고.

  • 택시기사 : 아마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유명한 직업일 것이다. 불경기와 동시에 자파메탈 암흑기까지 찾아와 음악으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었고, 아이는 점점 커가고, 특별한 기술은 없고, 한 번 사직한 안경점으로 다시 들어갈 체면은 안 되고... 결국 자기가 가진 2종 운전면허를 이용해 택시를 운전했다. ANIMETAL 발매 후에도 한동안 택시 운전수를 했는데, ANIMETAL이 뜰 거라는 생각을 전혀 안 했기 때문이었다고.

4. ANIMETAL 프로젝트


1996년은 일본 메탈의 암흑기였다. 1987년 MAKE-UP의 해체를 시작으로 90년에는 VOW WOW, DEAD END, E.Z.O, 92년에는 ANTHEM, 93년 BLIZARD, 94년에는 EARTHSHAKER가 줄줄이 해체했다. 일본 최초의 헤비메탈 밴드였던 LOUDNESS 조차 간신히 명맥만 유지할 뿐, 팀의 미래를 알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유명 밴드가 이 지경이었으니 로컬 씬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당시 라이브하우스에서는 '''메탈밴드라면 무조건 퇴짜를 놓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때 사카모토 에이조가 10여년 만에 메이저로 복귀한 앨범인 ANIMETAL이 발매되었다. 애니메이션의 곡을 헤비메탈로 편곡해 부르는 프로젝트인 이 괴상한 밴드는 '''자파메탈의 구세주'''가 되었다. 섹스 머신건즈CONCERTO MOON도 큰 인기를 얻으며, 자파메탈 씬은 숨통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에 부활했다.
자파메탈 부활의 신호탄을 쏜 가장 큰 공은 바로 ANIMETAL 프로젝트였다는것에는 그 누구도 이견을 달지 못한다.
ANIMETAL 마라톤 1집은 3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오리콘 앨범 차트 9위에까지 오른다. 세일즈나 차트 성적만으로 보자면, ANIMETAL이 그의 전성기나 다름없다. 앨범의 어레인지 수준도 높았고, Volcano와 Gargoyle로 주목받은 '일본의 마이클 솅커' SHEJA는 물론, 기타 킬러로 불리는 테크니컬 베이시스트 마사키의 연주력도 좋았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한동안 잊혀진 보컬리스트인 에이조의 절규에 가까운 샤우트가 앨범 전체를 관통했다. 구매력 있는 30~40대 남성들은, 추억을 자극하는 옛날 애니송을 커버한 이 앨범을 구매하기 시작했고 가라오케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그 전까지는 헤비메탈을 가라오케에서 부르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지만 수많은 직장인들의 회식이나 파티 혹은 장기자랑으로 ANIMETAL을 부르기 시작했다. 가벼운 사회적 현상이기도 했던 것.
그는 그렇게 꿈을 완전히 접지 않고 노력했으며 끝내는 부활했다. ANIMETAL은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그의 '''리즈시절'''이다.

4.1. 비하인드 스토리?


흔히 알려진 이야기로는, 소니뮤직의 중역[3]이 택시기사를 하던 그의 택시에 우연히 탑승했는데 '''연말이 쓸쓸하여 함께 가라오케에 갑시다.''' 라는 제의를 하게 되었고 택시 기사인 그 역시 쓸쓸한 연말을 보내는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며 가라오케를 갔는데 애니메이션 노래를 엄청난 샤우팅으로 부르는 그의 모습에 경악해서 그를 ANIMETAL 프로젝트에 낙점했다.
...라는 내용인데 이건 말 그대로 '''한국에서만 퍼진 도시전설'''이라고 보시면 되겠다. 홍보를 위한 신데렐라 스토리라고도 하는데 일본 웹에서는 그 내용을 찾아 보기가 힘들다. 아마 ANIMETAL이 처음 소개될때 즈음에 한국에서만 퍼진 낭설로 추측된다.
아래 내용은 ANIMETAL의 기획자 츠쿠다 쥰죠씨의 인터뷰 내용이다.[4]

기획이 먼저 만들어졌기 때문에 노래를 부를 사람이라든가 기타 문제는 하나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죠. 우선 밴드 쪽은 히사타케군이 잘 아는 스튜디오에 부탁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보컬만큼은 역시 앨범 기획 자체가 헤비메탈이다 보니, 헤비메탈 잡지라든가 뭐 그런 곳에 실리도록 하려면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진 사람에게 부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했죠. 그래서 여러 군데에 알아봤습니다.

일반적으로야 알려져 있지 않더라도 헤비메탈계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사람한테 부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했죠. 그래서 알아본 중에 Mandrake Root라는 인디즈 레이블의 카와모토씨란 분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헤비메탈만을 다루는 사람이라서 많이 알고 있더군요.

그래서 "누가 좋을까?", "누구라면 가능성이 있을까?"하고 서로 상의하던 중에, ANTHEM의 사카모토 에이조라면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꽤 코믹한 곡들을 불렀던 사람인데, 괜찮지 않을까 하더군요. 그래서 부탁을 해봤더니 단번에 OK해줬던 것이죠. 뭐,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5. JAM ProjectANTHEM


2000년 JAM Project의 창립 멤버였으나 개인사정으로 졸업(탈퇴)하였다. 2010년 9월 17일, 잼 프로젝트 탄생 10주년 콘서트인 JAM Project LIVE 2010 10th Anniversary Tour MAXIMIZER~Decade of Evolution~의 9월 17일자 도쿄 무도관 공연에 미즈키 이치로와 함께 스페셜 게스트로 등장했다. 잼 프로젝트의 두번째 라이브였던 JAM second mission EVOLUTION 이후 거의 8년만의 재등장이었기 때문에, 라이브는 매우 성황리에 끝났다.
2001년부터 ANTHEM에 복귀해 활동했지만 2014년 ANTHEM을 탈퇴하였다. 또 지금의 그를 있게 한 ANIMETAL은 2006년 봉인(해산)하였다. ANIMETAL을 봉인한 이후에는 '''EIZO Japan'''이라는 ANIMETAL의 연장선상에 있는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를 한바 있으며 EIZO Japan의 활동을 중단하고 ANIMETAL의 전 기타리스트 SHEJA와 '''아이센시(哀旋士)'''라는 팀을 결성해서, 수많은 애니송을 헤비메탈로 커버하고 있다. 다만 아이센시는 평가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좋지 않은데 아래에 서술한다.

6. ANTHEM 탈퇴와 아이센시


2014년 2월, 사카모토 에이조의 '''ANTHEM 탈퇴''' 소식이 전해진다. 공식적으로는 서로의 앞날을 위한 선택이라고 전했으나, 업계에서는 에이조의 개인활동과 아이센시의 결성이 최대의 원인이었다는 추측이 많다. 특히 자신의 팬이 많은 남미에서의 잦은 공연과 보컬 강연까지, ANTHEM보다 개인 활동의 비중이 컸던 사카모토 에이조의 행보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는 꾸준히 나오고 있었으나 외부적으로 큰 문제는 되지 않고 넘어가 왔다. 사카모토 에이조의 ANTHEM 탈퇴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원인이 바로, 그의 새 프로젝트인 '''아이센시'''다.
아이센시의 기타리스트는 ANIMETAL 시절 1집에서 4집까지 함께 했던 SHEJA인데,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의 마이클 솅커'로 불리던 실력파지만 술버릇이 최악이라 일본 록계에서 학을 떼는 인물이다.
하필 이런 인간과 팀을 짠다며 비난이 폭주하자, 결국 에이조도 트위터를 탈퇴한다. 시이쟈의 행동은 아이센시 초반부터 민폐였던 것.
많은 선후배가 학을 떼는 시이쟈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에이조에게 자파메탈 관계자와 팬들이 실망했다는 반응을 드러내고 극단적으로는 역적 취급까지 하는 등, 아이센시 하나 때문에 에이조의 커리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아이센시의 드럼 세션에 ANTHEM의 드러머인 혼마 히로츠구도 참가했는데, 이런 행보에 'ANTHEM에 집중하지 않는 개인 활동으로도 모자라 이제 팀까지 깨려고 드냐'고 생각한 시미즈 아키오와의 갈등이 커져서 감정대립으로 이어졌다고. 결국 리더인 시바타 나오토와도 문제가 생겨 탈퇴에 이른다.
결국, 현재 에이조는 아이센시 프로젝트로 인해 자파메탈 계열에서 반쯤 내쫒긴 상황이라, 다시 자파메탈계에서 그를 보기는 힘들 듯하다. 아이센시는 이제 겨우 앨범 한 장 싱글 한 장 냈는데 벌써 에이조의 흑역사가 되고 말았다.

7. 현재


결국 아이센시 이후 블로그와 SNS 모두 개점 휴업 상태로 그나마 베프로 유명한 D.T.R의 보컬이었던 다케우치 미츠오가 SNS를 통해 간간히 언급해주는 것이 근황 보고가 된 상태다.
2015년부터는 AMG MUSIC에서 보컬 트레이너겸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으며 '''AMG 사카모토 가극단'''이란 이름으로 AMG 계열사 아래의 가수 유망주 그룹을 이끌고있다. 프로듀서로서 충격과 공포의 '''아오오니 극장판'''의 주제가와 드라마 고양이 사무라이 시즌2의 주제가를 작곡했다. 또한 성우 콘도 카나코의 앨범에 작곡가로서 참여하기도 했다.
2017년 부로 SNS 활동을 재개함과 동시에 AMG MUSIC 출신의 제자들을 모아 Sweet Miracle이라는 인디밴드를 조직해 기타리스트겸 프로듀서로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이와함께 2016년 여름 공연 중 목에 이상을 느껴 겨울에 성대 수술을 했음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수술 후 중저음은 그럭저럭 가능하나 ANIMETAL 시절의 초절 샤우팅을 내면 3일 정도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고. 본인은 절망하기 보다 '''"아무도 따라할 수 없었기에 전설이었다"'''라며 현재와 타협하고 긍정적으로 살 것을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2018년에는 같은 소속사 ORGA Entertainment의 밴드인 ulma sound junction의 베이시스트인 타무라 히사오, 드러머 카세모토 타모츠와 함께 메탈 밴드 'EIZO'를 결성했다. 6월에는 첫 곡으로 "Hyper Starting Over"를 발표했다. 작사가는 난바카의 주제가를 담당했던 하시구치 카나데리야.


8. 보컬리스트로서의 평가


일단 쟈파메탈 계열에서는 개성이 가장 뚜렷하고 드러난 보컬리스트로 꼽힌다. 해외 진출 후 많이 미국화된 LOUDNESS니이하라 미노루, 미국에서 오랜기간 활동하며 거의 현지화가 된 E.Z.O야마다 마사키, 음악적 배경부터가 브리티쉬 하드록 계통인 VOW WOW겐키 히토미 등에 비해 보컬 색깔 자체는 일본적 색깔이 누구보다 강하다. 하지만 당대의 대가들에 비해 보컬리스트로의 평가는 떨어지는 편인데, 라이브 시의 기복이 많이 심했으며[5] 앞서 말한 보컬의 색깔이 너무 튀기 때문에[6] 많은 리스너들에게 씹히거나 안주거리가 되기도 했다.
또한 ANTHEM의 개념없는 팬들 사이에서는 ANTHEM의 3기 보컬리스트인 '''모리카와 유키오'''와의 비교 논쟁도 꽤 있었던 모양이다.[7] 문제는 에이조와 비교되는 보컬리스트들은 하나같이 아시안임을 포기했다는(...) 괴물같은 보컬리스트들이 대부분이라 이에 대해서도 에이조가 피해를 많이 보는 편. '''정말 쓸때없고 의미없는 논쟁이다.''' 보컬리스트의 기량이란것은 단순히 수치화 시킬수가 없는 문제이며 당대의 대가들끼리 그런 논의는 정말 의미가 없는 문제다. 다만 본인 스스로는 '''오디션때 모리카와와 최종적으로 겨루었지만 사실 보컬리스트로서의 재능이랄까. 뭐 그런건 뭐 그런건 사실 굳이 묻지 않아도 결론이 나버린 상태였습니다.''' 라고 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카모토 에이조의 보컬 실력이 폄하될수는 없는건 그는 '''다른 힘이 떨어진 보컬들에 비해 전성기가 언제인지도 모를정도로 기량이 원숙'''해지고 더욱 괴물 보컬리스트가 되어 40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다.
확실히 ANTHEM 초기에는 원숙함이 떨어져 라이브에서의 실수가 많았던 편이며 ANIMETAL 시절에는 악에 받친 듯 극악의 스크래치를 넣으며 샤우트 하는 창법을 많이 보여주었다. 덕분에 기복이 매우 심했던 편이다. 라이브가 불안하다는 말은 바로 이때 생겨버린 말. 그러나 ANTHEM 재결성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창법에 변화를 주어 현재는 무리한 샤우트나 스크레치가 아닌 다소 담백한 창법으로 바꾸었으며 필요 이상의 힘을 주며 부르지 않기에 '''라이브에서의 기복이 심하다는건 이미 옛말이 되버린지 오래.''' 이런 것들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대가가 되었는지 보여주는 반목이다.
일단 그가 거쳐온 밴드가 '''자파메탈계의 끝판왕. 전설의 ANTHEM'''이다. 그는 그런 곳의 보컬리스트였고. 그리고 앞서 비교당했던 보컬리스트들은 '''일본 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헤비메탈 보컬리스트로 꼽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보컬리스트로 꼽히고 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9. 여담


  • '인드벌크의 가게'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프로를 향한 본격적인 솔로 프로젝트였지만 쫄딱 망했음. 음반이 발매됐는지 조차도 모르고, 자파메탈은 붕괴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는 버블경제 붕괴 시대였다.
  • 네리마 마초맨은 에이조가 리더로 곡을 쓰고 기타를 연주하며, 음악 자체를 즐기는 것에 의의를 두었기에 메이저 데뷔는 할 생각도 없었다고 한다.
  • 작사, 작곡가로도 활동하는 중이다. 다만 그의 작사/작곡 능력은 일본 내에서 그다지 높은 평가는 못 받고 있다. 코믹하고 유쾌한 곡들이 대부분이기도 하고 곡 자체도 썩 좋은 편은 아니라고.
  • 우리나라로 치면 MBC문화강좌와 비슷한 성격의 보컬 강연이나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대단히 유쾌한 사람이라고 한다.
  • 자신의 택시 운전 경력을 재미있게 생각한다. "세계 최고의 드라이버였던 적이 있었다"고 회고하기도. 97년 5월 1일까지 여러 레코드사 앞을 택시로 다니면서 디렉터 등을 태우고, 계속 자신을 홍보했다고 한다.
  • 딸은 상당한 미인이라고 한다.

10. 음반 및 라이브 활동 내역



10.1. 싱글



10.2. ANIMETAL


  • 애니메탈 마라톤(1997)
  • 애니메탈 마라톤 II ~특촬편~ (1998)
  • 애니메탈의 베스트 (1998)
  • 애니메탈 마라톤 III ~츠부라야 프로덕션편~ (1998)
  • COMPLETE FIRST LIVE (1999)
  • COMPLETE LAST LIVE (1999)
  • 애니메탈 마라톤 IV (2001)
  • 애니메탈 마라톤 V (2003)
  • 애니메탈 마라톤 VI (2004)
  • 애니메탈 마라톤 VII ~싸워라! 메탈 히어로~ (2005)
  • DECADE OF BRAVEHEARTS (2006)
  • 바람의 검심 유신지사의 진혼곡 ~영원의 미래

10.3. ANTHEM


  • ANTHEM (1985)
  • TIGHTROPE (1986)
  • Bound To Break (1987)
  • Live Album The Show Carries On (1987)
  • Seven Hills (2001)
  • Overload (2002)
  • Live Album LIVE MELT DOWN (2002)
  • IMMORTAL (2007)
  • Black Empire (2008)
  • Heraldic Device (2011)
  • Burning Oath (2013)

10.4. Eizo Japan


  • Eizo Japan 1 (2009)
  • Eizo Japan 2 (2009)
  • Eizo Japan 3 (2010)
  • 90년대 슈퍼 애니송의 전설 (2010)[8]

10.5. Album


  • Another Face(1998)
  • 메탈 일직선(2000)
  • SHOUT DRUNKER 애수(2002)
  • Metal Handsome Man(2003)
  • Metal Handsome Man 4 Forever Young(2006)
  • Heavenly Days(2014)

10.6. 네리마 절규구락부


練馬絶叫倶楽部. 네리마 절규클럽의 한자표기. 사카모토 에이조가 90년대 중후반 ANIMETAL 활동과 병행하면서 계획한 프로젝트다. 자신의 학창시절 음악성이 형성되는데 많은 영향을 준 70년대 히트메이커 고 히로미, 노구치 고로, 카류도의 곡들을 하드록, 헤비메탈 버전으로 커버한 앨범이다. 유명 뮤지션부터 같이 인디 밴드 활동을 하는 친구까지 다양한 사람이 참여했다.

10.6.1. 앨범


  • 練馬絶叫倶楽部 - 壱(1997)

10.6.2. 멤버


'''사카모토 에이조''' - 보컬, 기타, 키보드
'''시마 노리후미'''[9] - 기타
'''코바야시 신이치로'''[10] - 기타
'''카세 타츠야''' - 기타, 키보드, 퍼커션, 보컬
'''후지야 이치로'''[11] - 베이스
'''오오다키 도시노리'''[12] - 드럼
'''쿠마가야 야스히로''' - 드럼
  • 참여 가수진
    • 쿠라시마 신이치로
    • 후지타 겐스케
    • 나가노 사토시: 사카모토 에이조의 인디시절 밴드 네리마 마쵸맨의 기타
    • 하시모토 유키미츠: 네리마 마쵸맨의 드러머
    • 오자키 타카오[13]
    • SONOMI: 본명은 타메오카 소노미. 싱어송라이터로 Jazztronik에도 게스트 보컬로 참여한 바 있다.
  • 특별게스트
    • 이노마타 요시치카[14] - 키보드
    • 츠루 노리히로[15] - 바이올린
    • 아사쿠라 미키: 8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가수
    • 다나카 마사유키: 북두의 권 오프닝으로 유명한 사랑을 되찾아라를 부른 크리스탈 킹의 보컬
    • 다케우치 미츠오[16]
    • 모리카와 토시유키

10.7. 그 외 참가


  • 前髪 - GuitarFreaks & Drummania XG2 / V8 수록곡.
  • Cry for the Sky - Xuse에로게 바르바로이 OP[17]
  • UNDEAD HEART(怒りのWarriors) - 신 태고의 달인 옐로우 버전 수록곡.
  • 가면라이더 세이버 - 원더 라이드 북 시스템 타이틀곡 담당.#
  • [18]

[1] 그대로 읽으면 '''판본영삼'''으로, 국내 팬 한정으로 '영삼이 형'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2] 출처는 http://cafe.daum.net/jrockdivi/LSuO/137 (다음카페 '일본 록 디비보기')[3] 혹은 부사장[4] 출처 : mirugi.com[5] 96년 ANIMETAL 첫 공연때는 그야말로 모든 파트가 절망적인 모습을 보여준다.[6] 거기다가 영어 발음도 좋은 편이 아니다.[7] 실제 ANTHEM의 팬들 사이에서는 모리카와 유키오가 에이조에 비해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는 기타리스트에서도 시미즈 아키오와 후쿠다 히로야간의 비교로 이어지기도 한다. 근데 이쪽은 두 명의 스타일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8] 발매원은 Avex. EIZO Japan 4집이라는 설도 있는데, 사카모토 에이조 본인 블로그에서도 EIZO Japan 4의 곡이라며 소개한 곡이 전부 이 앨범에 들어간 곡들이다.[9] CONCERTO MOON의 리더[10] 지옥의 메커니컬 기타트레이닝 저자. 현재 지옥 콰르텟으로 활동 중[11] 이후 토요사키 아키, V6, 동방신기, BoA에게 곡을 제공해주며 JPOP 작곡가로 활동 중. 현재 Jazztronik의 베이시스트[12] 사카모토 에이조의 인디시절밴드 인디볼그의 가게 멤버[13] CONCERTO MOON의 초대 보컬[14] 고 히로미의 백밴드 출신으로 현재 작곡가[15] 바이올리니스트겸 작곡가[16] D.T.R의 보컬. 사카모토 에이조의 절친으로 유명하다[17] 2004년도 발매작품. 딱히 가명을 쓴 것도 아니고 본명으로 참가하였다. 후일 Xuse Vocal Collection Vol 3에 포함되었다.[18] 데모 녹음에 참여했다. 이후 보컬은 조니 지오엘리로 변경. 음원은 지금도 세가 공식 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