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다 마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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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田雅樹(1964년 2월 17일 ~ ) 홋카이도 출생
홋카이도 삿포로 카이세이 고등학교 졸업
일본의 록 음악 보컬 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싱어송라이터.
前 FLATBACKER(E.Z.O), LOUDNESS의 보컬리스트이자 현 FiRESiGN의 베이시스트이자 백보컬.
LOUDNESS의 니이하라 미노루, ANTHEM의 사카모토 에이조, VOW WOW의 히토미 겐키, SABER TIGER의 시모야마 타케노리와 함께, 일본 메탈 팬들에게 '''일본의 5대 메탈 보컬'''로 거론되는 전설적인 메탈 보컬리스트. 다만 5대 보컬 운운하는 이야기는 공식적인 자료는 아니다. 일본의 3대 메탈밴드로는 일반적으로 LOUDNESS, ANTHEM, VOW WOW가 꼽히지만 지역에 따라 44 MAGNUM, E.Z.O 혹은 DEAD END등이 꼽히기도 한다.
단 이 항목에서는 밴드가 아닌 보컬리스트를 다루기 때문에 호사가들이 말하는 5대 보컬 호칭도 표기한다.
어둡고 끈적하게 휘감는 듯한 음색의 소유자로, 동양적인 느낌과 서구적인 느낌을 반씩 섞은 듯하다. LOUDNESS 시절에는 본명인 '야마다 마사키(山田雅樹)'로 활동했지만, 그 외에는 이름을 영문으로 표기한 '''MASAKI'''로 활동했다. 일생에 대해 밝혀진 사실이 적은데, 본인이 인터뷰를 좋아하지 않아 그다지 응하지 않았고 라이브나 음악 활동 외에는 본인이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신비주의 노선을 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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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TBACKER 시절'''
자세한 것은 알려진 바가 없으나, 홋카이도 삿포로 카이세이 고등학교을 다니던 '''18세'''에 FLATBACKER를 결성했다. 밴드 결성 2년 후인 84년, 데모 앨범 <몰살(皆殺し)>이 발매되자 플랫백커는 일본 록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잔혹한 내용의 가사와 파괴적인 사운드 때문에 '''문제작'''으로 불렸으며, 이런 영향 덕에 도쿄에서까지 공연하는 등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 인기의 중심에는 야마다 마사키의 악마적인 보컬이 있었으며, 멤버들 중에서도 특히 두각을 드러냈던 건 보컬을 맡은 야마다와 드러머 혼마 히로츠구였다.
삿포로 근방의 레코드사에서는 플랫백커에게 대규모 푸쉬를 해 주었고, 80년대 일본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람의 언급으로는 '''헤비메탈을 전혀 알지 못하는 친구도 이 밴드의 이름을 알 정도였다'''고 기억할 정도였다. [1]
'''메이저 데뷔 전''' 도쿄 공연.
그의 보컬 기량이 최고조였을 때는 미국 진출 전이던 이 때로, 당시 라이브를 보면, 20대를 겨우 넘긴 신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원숙하고 압도적인 무대 매너를 보여준다. 살벌하기까지한 저음역대와 악마같은 고음역대가 포인트. 놀라운 것은 성대에 많은 무리가 가는 저런 창법으로도 기복도 없다는 점이다. 성향은 전혀 다르지만, 히토미 겐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고 평가받았다.
86년 미국으로 진출해, 밴드명을 E.Z.O로 개명하고 L.A를 거점으로 활동한다. 본격적으로 미국에 진출한 E.Z.O 시절 그의 보컬에는, 미국 본토에서 오래 산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블루지한 느낌이 크게 가미되었다. FLATBACKER의 분장을 포함한 스타일은 유지하되, 당시 미국에서 한창 유행하던 팝 메탈이나 L.A 메탈로 음악적 성향이 바뀌었기 때문.
이 스타일의 변화가 KISS의 진 시몬스의 의도였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은 카더라 통신이다.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이 모습의 마사키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90년에 밴드가 갑자기 해체되고, 그도 자연스럽게 침묵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미국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진다.
88년 Loudness의 니이하라 미노루 해고 후 가장 먼저 가입 제의를 받았으나 당시에는 '''"E.Z.O 소속이기에 그만둘 수 없다"'''며 거절했다. 결국 마이크 베세라가 방출된 92년, 타케우치 미츠오(JOE-ERK출신, 이후 타이지와 D.T.R 결성)와의 경합 끝에 라우드니스의 멤버가 되었다.
미국에서 활동한 덕분에 유창한 영어실력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LOUDNESS의 작사를 도맡아 하며 3기 라우드니스의 음악적 성향 변화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자세한 내막은 '''앨범 LOUDNESS'''를 참조.
드림팀이라고 불린 이 조합은 소속사와의 분쟁, 타이지의 배신 등 악재가 겹쳐 1년도 채 못 가 와해되고, 93년 결국 '''"라우드니스를 탈퇴하겠다"'''며 잠시 소동을 벌였으나, 드러머 히구치 무네타카의 간곡한 설득으로 팀에 남기로 한다.
하지만 이후 자파메탈 신에는 빙하기가 닥쳤고, 설상가상으로 어수선한 라우드니스에서 이렇다 할 활동을 하기도 힘들었으며, 결국 97년작 GHETTO MACHINE, 98년작 DRAGON, 99년작 Engine의 소위 '''괴작 3연작'''으로 불리는 암흑기가 찾아온다. 당시 앨범의 수록곡들은 팬들도 인정할만큼 난해하고, 스타일도 변해있었으며, 마사키는 FLATBACKER와 E.Z.O 때의 전성기를 지나 보컬리스트로서의 기량이 날이 갈수록 떨어져 결국 괴작 3연작때에 이르어선 퇴물 취급을 받았고, 라이브에서의 컨디션마저 들쭉날쭉했기 때문에 최악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에 들어서야 그나마 '''시도는 나쁘지 않았다'''는 평이 나오지만, 그간 쌓아 온 좋은 평가를 이 4기 라우드니스 시절에 다 깎아먹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쯤 되면 흑역사.
결국 2000년 타카사키 아키라가 오리지널 멤버로의 부활을 선언하며 파란만장했던 제 4기 LOUDNESS에서의 활동도 끝난다. 당시 오리지널 멤버 재집결에 대해서는, 타카사키 아키라 본인의 의사뿐 아니라 LOUDNESS 활동에 피로를 느끼고 의문을 품고 있던 야마다 마사키가 "'''오리지널 멤버로 다시 해보는건 어떻겠냐'''" 며 조언한 일도 도움이 되었다고 타카사키 아키라가 말했다. 한 마디로 대인배
그나마 할 만한 여담으로는, 히구치 무네타카의 탈퇴 후 FLATBACKER와 E.Z.O에서 함께 했던 혼마 히로츠구를 영입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고 그와 함께 LOUDNESS로 활동했다는 정도다.
1997년부터 LOUDNESS 활동과 더불어 '''「DENGEKI(전격)」'''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고, 혼마 히로츠구와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인 '''「SNAKE BITES」'''를 기획하지만 데모 한장 못 내고 파토난다. 그 후 돌연 미국행을 결정하여 록밴드 '''「GORO」'''를 결성하는데, 이 때부터 '''베이시스트'''로 활동을 개시했다. 2002년까지 활동했지만 큰 반응은 없었고, 이 13년에 이르는 긴 공백기 동안 숱한 루머가 퍼졌는데, 대표적인 루머는 다음과 같다.
워낙 신비주의적인 인물이라 소문만 무성할 뿐이였다.
GORO의 해체 후 뉴욕에서 화장품(향수) 회사에 취직해 직장인으로 지냈다고 한다. 음악에 미련을 못 버리고 일본인 여성 보컬리스트인 AYA와 '''「AYA & MASAKI」'''라는 유닛을 결성. 아메도리라는 사이트에서 오디션을 받는 등의 활동을 하다 '''FiRESiGN'''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베이시스트이자 백 보컬리스트로 지금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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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리스트인 AYA와는 각별한 인연으로 보이는데 AYA는 '''「마사키씨와 밴드를 하는 것은 언제나 꿈이었습니다. 트윈 보컬로 활약하고 싶어요.」'''라며 마사키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보였다. 결국 2002년 13년만에 귀국하여 오사카, 요코스카, 삿포로에서 투어를 돌며 음악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내에서의 반응은 '''「세계를 풍미한 전설적인 보컬이 이런 아마추어 같은 음악을 하고 있다니」''', '''「일본으로 다시 돌아와서 다시 강력한 모습을 보고 싶다」'''등, 안타까운 반응이 대다수. 하지만 마사키 본인은 FiRESiGN이 만족스러운 듯 매우 정열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다시 일본에서 활동할 마음은 없는 것으로 보여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2020년 현재 FiRESiGN 은 활동을 중단했고 다시 소식을 알 길이 사라졌다.
성량은 히토미 겐키보다 떨어지고 라이브에서의 스태미너는 니이하라 미노루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런 단점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면 아시아 정상급 보컬리스트로 불리는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의 영향을 받은 일본 메탈 보컬리스트는 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로 많으며, 특히 SABER TIGER의 시모야마 타케노리는 마사키를 '내 노래 인생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보컬리스트'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딱히 언급은 없지만 Volcano의 보컬 Nov의 경우는 누가 들어도 보컬 스타일이 딱 마사키를 연상시킨다. 특히나 21세기에 들어서는 성량,테크닉 보다는 곡의 분위기에 맞추는 개성파 보컬들을 더 높게 평가하는 편이다.
일본 록 팬들이 가장 기다리는 인물이며 사랑했던 뮤지션 중 한 명이지만, 그 유명세에 비해 바이오그래피가 너무 적은 것이 안타까울뿐.
1985년 FLATBACKER 시절의 '''Leopard's Eyes'''
E.Z.O 시절의 '''Flashback Heartattack'''
LOUDNESS 시절의 '''Slaughter House'''
E.Z.O의 명곡인 '''House Of 1000 Pleasures''' [3]
FiRESiGN의 '''Samsara'''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아직 살아있다.
山田雅樹(1964년 2월 17일 ~ ) 홋카이도 출생
홋카이도 삿포로 카이세이 고등학교 졸업
일본의 록 음악 보컬 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싱어송라이터.
1. 개요
前 FLATBACKER(E.Z.O), LOUDNESS의 보컬리스트이자 현 FiRESiGN의 베이시스트이자 백보컬.
LOUDNESS의 니이하라 미노루, ANTHEM의 사카모토 에이조, VOW WOW의 히토미 겐키, SABER TIGER의 시모야마 타케노리와 함께, 일본 메탈 팬들에게 '''일본의 5대 메탈 보컬'''로 거론되는 전설적인 메탈 보컬리스트. 다만 5대 보컬 운운하는 이야기는 공식적인 자료는 아니다. 일본의 3대 메탈밴드로는 일반적으로 LOUDNESS, ANTHEM, VOW WOW가 꼽히지만 지역에 따라 44 MAGNUM, E.Z.O 혹은 DEAD END등이 꼽히기도 한다.
단 이 항목에서는 밴드가 아닌 보컬리스트를 다루기 때문에 호사가들이 말하는 5대 보컬 호칭도 표기한다.
어둡고 끈적하게 휘감는 듯한 음색의 소유자로, 동양적인 느낌과 서구적인 느낌을 반씩 섞은 듯하다. LOUDNESS 시절에는 본명인 '야마다 마사키(山田雅樹)'로 활동했지만, 그 외에는 이름을 영문으로 표기한 '''MASAKI'''로 활동했다. 일생에 대해 밝혀진 사실이 적은데, 본인이 인터뷰를 좋아하지 않아 그다지 응하지 않았고 라이브나 음악 활동 외에는 본인이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신비주의 노선을 탔기 때문이다.
2. FLATBA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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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TBACKER 시절'''
자세한 것은 알려진 바가 없으나, 홋카이도 삿포로 카이세이 고등학교을 다니던 '''18세'''에 FLATBACKER를 결성했다. 밴드 결성 2년 후인 84년, 데모 앨범 <몰살(皆殺し)>이 발매되자 플랫백커는 일본 록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잔혹한 내용의 가사와 파괴적인 사운드 때문에 '''문제작'''으로 불렸으며, 이런 영향 덕에 도쿄에서까지 공연하는 등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 인기의 중심에는 야마다 마사키의 악마적인 보컬이 있었으며, 멤버들 중에서도 특히 두각을 드러냈던 건 보컬을 맡은 야마다와 드러머 혼마 히로츠구였다.
삿포로 근방의 레코드사에서는 플랫백커에게 대규모 푸쉬를 해 주었고, 80년대 일본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람의 언급으로는 '''헤비메탈을 전혀 알지 못하는 친구도 이 밴드의 이름을 알 정도였다'''고 기억할 정도였다. [1]
'''메이저 데뷔 전''' 도쿄 공연.
그의 보컬 기량이 최고조였을 때는 미국 진출 전이던 이 때로, 당시 라이브를 보면, 20대를 겨우 넘긴 신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원숙하고 압도적인 무대 매너를 보여준다. 살벌하기까지한 저음역대와 악마같은 고음역대가 포인트. 놀라운 것은 성대에 많은 무리가 가는 저런 창법으로도 기복도 없다는 점이다. 성향은 전혀 다르지만, 히토미 겐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고 평가받았다.
3. E.Z.O 시절
86년 미국으로 진출해, 밴드명을 E.Z.O로 개명하고 L.A를 거점으로 활동한다. 본격적으로 미국에 진출한 E.Z.O 시절 그의 보컬에는, 미국 본토에서 오래 산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블루지한 느낌이 크게 가미되었다. FLATBACKER의 분장을 포함한 스타일은 유지하되, 당시 미국에서 한창 유행하던 팝 메탈이나 L.A 메탈로 음악적 성향이 바뀌었기 때문.
이 스타일의 변화가 KISS의 진 시몬스의 의도였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은 카더라 통신이다.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이 모습의 마사키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90년에 밴드가 갑자기 해체되고, 그도 자연스럽게 침묵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미국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진다.
4. LOUDNESS 시절
88년 Loudness의 니이하라 미노루 해고 후 가장 먼저 가입 제의를 받았으나 당시에는 '''"E.Z.O 소속이기에 그만둘 수 없다"'''며 거절했다. 결국 마이크 베세라가 방출된 92년, 타케우치 미츠오(JOE-ERK출신, 이후 타이지와 D.T.R 결성)와의 경합 끝에 라우드니스의 멤버가 되었다.
미국에서 활동한 덕분에 유창한 영어실력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LOUDNESS의 작사를 도맡아 하며 3기 라우드니스의 음악적 성향 변화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자세한 내막은 '''앨범 LOUDNESS'''를 참조.
드림팀이라고 불린 이 조합은 소속사와의 분쟁, 타이지의 배신 등 악재가 겹쳐 1년도 채 못 가 와해되고, 93년 결국 '''"라우드니스를 탈퇴하겠다"'''며 잠시 소동을 벌였으나, 드러머 히구치 무네타카의 간곡한 설득으로 팀에 남기로 한다.
하지만 이후 자파메탈 신에는 빙하기가 닥쳤고, 설상가상으로 어수선한 라우드니스에서 이렇다 할 활동을 하기도 힘들었으며, 결국 97년작 GHETTO MACHINE, 98년작 DRAGON, 99년작 Engine의 소위 '''괴작 3연작'''으로 불리는 암흑기가 찾아온다. 당시 앨범의 수록곡들은 팬들도 인정할만큼 난해하고, 스타일도 변해있었으며, 마사키는 FLATBACKER와 E.Z.O 때의 전성기를 지나 보컬리스트로서의 기량이 날이 갈수록 떨어져 결국 괴작 3연작때에 이르어선 퇴물 취급을 받았고, 라이브에서의 컨디션마저 들쭉날쭉했기 때문에 최악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에 들어서야 그나마 '''시도는 나쁘지 않았다'''는 평이 나오지만, 그간 쌓아 온 좋은 평가를 이 4기 라우드니스 시절에 다 깎아먹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쯤 되면 흑역사.
결국 2000년 타카사키 아키라가 오리지널 멤버로의 부활을 선언하며 파란만장했던 제 4기 LOUDNESS에서의 활동도 끝난다. 당시 오리지널 멤버 재집결에 대해서는, 타카사키 아키라 본인의 의사뿐 아니라 LOUDNESS 활동에 피로를 느끼고 의문을 품고 있던 야마다 마사키가 "'''오리지널 멤버로 다시 해보는건 어떻겠냐'''" 며 조언한 일도 도움이 되었다고 타카사키 아키라가 말했다. 한 마디로 대인배
그나마 할 만한 여담으로는, 히구치 무네타카의 탈퇴 후 FLATBACKER와 E.Z.O에서 함께 했던 혼마 히로츠구를 영입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고 그와 함께 LOUDNESS로 활동했다는 정도다.
5. 이후
1997년부터 LOUDNESS 활동과 더불어 '''「DENGEKI(전격)」'''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고, 혼마 히로츠구와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인 '''「SNAKE BITES」'''를 기획하지만 데모 한장 못 내고 파토난다. 그 후 돌연 미국행을 결정하여 록밴드 '''「GORO」'''를 결성하는데, 이 때부터 '''베이시스트'''로 활동을 개시했다. 2002년까지 활동했지만 큰 반응은 없었고, 이 13년에 이르는 긴 공백기 동안 숱한 루머가 퍼졌는데, 대표적인 루머는 다음과 같다.
워낙 신비주의적인 인물이라 소문만 무성할 뿐이였다.
6. FiRESiGN ~ 현재
GORO의 해체 후 뉴욕에서 화장품(향수) 회사에 취직해 직장인으로 지냈다고 한다. 음악에 미련을 못 버리고 일본인 여성 보컬리스트인 AYA와 '''「AYA & MASAKI」'''라는 유닛을 결성. 아메도리라는 사이트에서 오디션을 받는 등의 활동을 하다 '''FiRESiGN'''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베이시스트이자 백 보컬리스트로 지금에 이른다.
[image]
보컬리스트인 AYA와는 각별한 인연으로 보이는데 AYA는 '''「마사키씨와 밴드를 하는 것은 언제나 꿈이었습니다. 트윈 보컬로 활약하고 싶어요.」'''라며 마사키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보였다. 결국 2002년 13년만에 귀국하여 오사카, 요코스카, 삿포로에서 투어를 돌며 음악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내에서의 반응은 '''「세계를 풍미한 전설적인 보컬이 이런 아마추어 같은 음악을 하고 있다니」''', '''「일본으로 다시 돌아와서 다시 강력한 모습을 보고 싶다」'''등, 안타까운 반응이 대다수. 하지만 마사키 본인은 FiRESiGN이 만족스러운 듯 매우 정열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다시 일본에서 활동할 마음은 없는 것으로 보여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2020년 현재 FiRESiGN 은 활동을 중단했고 다시 소식을 알 길이 사라졌다.
7. 평가
성량은 히토미 겐키보다 떨어지고 라이브에서의 스태미너는 니이하라 미노루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런 단점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면 아시아 정상급 보컬리스트로 불리는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의 영향을 받은 일본 메탈 보컬리스트는 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로 많으며, 특히 SABER TIGER의 시모야마 타케노리는 마사키를 '내 노래 인생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보컬리스트'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딱히 언급은 없지만 Volcano의 보컬 Nov의 경우는 누가 들어도 보컬 스타일이 딱 마사키를 연상시킨다. 특히나 21세기에 들어서는 성량,테크닉 보다는 곡의 분위기에 맞추는 개성파 보컬들을 더 높게 평가하는 편이다.
일본 록 팬들이 가장 기다리는 인물이며 사랑했던 뮤지션 중 한 명이지만, 그 유명세에 비해 바이오그래피가 너무 적은 것이 안타까울뿐.
8. 그의 노래
1985년 FLATBACKER 시절의 '''Leopard's Eyes'''
E.Z.O 시절의 '''Flashback Heartattack'''
LOUDNESS 시절의 '''Slaughter House'''
E.Z.O의 명곡인 '''House Of 1000 Pleasures''' [3]
FiRESiGN의 '''Samsara'''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아직 살아있다.
[1] https://www.youtube.com/watch?v=_l7yFws04SU 의 댓글 참조[2] 실제로 미국으로 건너간 EZO 시절부턴 일본에서 공연을 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외국에서의 바쁜 스케쥴 때문이란 공식 입장보단 마약 소지 혐의 때문에 공연을 열고 싶어도 열수가 없었다는 루머가 지배적이다. [3] E.Z.O로는 일본에서 단 한번도 라이브를 한 적이 없었는데, 라우드니스로 활동하던 시절 팬 서비스로 이 곡을 연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