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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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을 연고지로 하는 클럽들간의 경기를 칭하는 말. 현재는 분데스리가에 소속된 헤르타 BSC과 1. FC 우니온 베를린의 경기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2. 역사
2.1. 서베를린
독일 어느 도시보다 많은 축구구단이 있었음에도 독일이 분단되어 고립되어있었기에 분데스리가에서 베를린 구단을 보기는 힘들었다. 당시 서베를린에서 가장 큰 클럽은 헤르타 BSC와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이었는데, 주로 2. 분데스리가에서 마주쳤으며 이 두팀사이에는 치열한 경쟁이 있었고, 자연스레 라이벌리로 진화했다. 동시에 두팀의 합병 제안도 꾸준히 나왔는데 그때마다 부결되었다.
이 라이벌리는 80년대 들어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이 3부리그로 강등당하며 통일 이전에는 보기 어려워졌다.
중간중간 블라우바이스 90 베를린, SV 타스마니아 베를린, SCC 베를린, 헤르타 첼렌도르프, 슈판다우어 SV, 바커 04 베를린이 승격하며 색다른 베를린 더비가 치뤄지기도 했다.
2.2. 동베를린
동시에 동베를린은 서베를린과는 달리 동독의 중앙에서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군경클럽으로 창단되어 원래는 라이프치히를 연고로하다 베를린으로 옮긴 포어베르츠 베를린, SG 디나모 드레스덴 1군 선수단이 베를린으로 옮겨져 창단된 BFC 디나모와 노동자들의 클럽이었던 1. FC 우니온 베를린이 그 대표적인 예.
가장 처음 전성기를 맞았던 클럽은 60년대의 FC 포어베르츠 베를린이었다. 하지만 1971년 동독 슈타지 회장 에리히 밀케가 디나모 베를린을 지원하며 연고지가 강제로 프랑크푸르트 오데르로 옮겨졌고, 해체... 이후 디나모 베를린과 우니온 베를린만 남은 상태에서 디나모는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으며, 그렇지 못했던 우니온 베를린은 점점 반정부적인 성향을 띄게 된다. 동독 치하에서 서포터는 우니온이 더욱 많았으나, 정부의 지원이라는 격차를 이기지 못하고 디나모 베를린은 10연속 리그 우승을 했던 반면 우니온 베를린은 계속해서 하위권에 머물렀다.
2.3. 통일 이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 1월 27일 헤르타 BSC가 1. FC 우니온 베를린에게 친선경기를 제안했다.[5] 이는 당연히 받아들여졌고,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서 5만1270여명의 동서독 관중들이 함께 경기를 관람했다. 경기는 헤르타의 악셀 크루제의 선제골, 우니온 안드레 지록스의 동점골로 1대1의 상황에서 디르크 그라이저의 중거리골이 터지며 헤르타가 2대1로 승리했다.
통일이후 1. FC 우니온 베를린은 3부리그였던 NOFV-오버리가로 배정되어 승격을 노리는 팀이 되었고, BFC 디나모는 구단의 주축선수들이 모두 서독 클럽으로 이적하며 다시는 상부리그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과거 서독 클럽이었던 헤르타 BSC와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은 통일이후 살아나기 시작했다. 헤르타는 분데스리가 승격에 성공했고, TeBe는 ''괴팅거 그루페(Göttinger Gruppe)''라는 투자회사의 후원으로 2부리그 승격에 성공했다. 1998년 DFB 포칼에서 두팀이 만났는데, TeBe가 헤르타를 4대2로 꺾는 이변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은 이후 투자회사가 재정난으로 휘청이며 다시 강등당해 한때 6부리그까지 강등당한다.
그사이 1. FC 우니온 베를린도 4부리그까지 강등된 상태였다가 2008-09시즌 3. 리가 창설멤버에 포함, 우승을 거머쥐고 2. 분데스리가로 승격했다. 그리고 얼마뒤 슈타디온 안 데어 알텐 푀르스테라이 리노베이션 기념으로 헤르타와 함께 친선경기를 벌이게 된다. 그러나 이때부터 헤르타와의 라이벌리가 불타기 시작한다. 헤르타의 서포터 겸 라디오 해설가였던 만프레트 장겔이 "경기장 아나운서가 우리와 우리 선수 중 한 명을 향해 계속 시비를 걸었다"라고 말했고 이에 우니온의 회장인 디르크 칭글러가 "의문의 여정에 대한 사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라고 표현했다. 다음시즌인 2009-10시즌 헤르타 BSC가 분데스리가에서 강등당하며 정말 오랜만에 정식으로 베를린더비가 성사되었다. 우니온 홈에서 열린 경기는 1대1 무승부, 헤르타의 홈에서 열린 경기는 토르스텐 마투슈카의 결승골로 2대1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 시즌 헤르타가 승격에 실패하며 다음시즌도 만나게 되었다. 이때즈음부터 두 구단사이의 관계가 금이가기 시작했다. 2010-11시즌 우니온의 홈에서 열린 경기에서 헤르타가 2대1로 승리했는데, 경기후 인터뷰에서 당시 우니온 선수였던 크리스토퍼 크비링이 "그들(헤르타 팬들)이 우리 경기장에서 응원하고있다. 이것은 토가나오게 만든다. 저놈들이 응원할때마다 나를 아프게 만든다"라는 인터뷰를 남겼고, 여기에 당시 우니온 감독이었던 우베 노이하우스는 "훌륭한 우니온 선수다"라고 덧붙였다. 이 시즌이 끝나고 헤르타가 다시 분데스리가로 승격하며 한동안 보기 힘들어졌다. 2012-13시즌 또 헤르타가 강등당하며 다시 성사되었다. 이때는 우니온 1승과 무승부로 끝났다.
2018-19시즌이 끝나고 우니온이 분데스리가로 승격하는데 성공하며 다시 베를린더비가 성사되었다. 2018-19시즌 10라운드에서 치뤄진 베를린더비는 우니온의 홈에서 치뤄졌는데,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헤르타 울트라스들이 우니온 팬석을 향해 조명탄을 날렸고, 후반전 중간에도 양팀 팬석에서 조명탄이 넘나들며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경기는 제바스티안 폴터의 PK골로 우니온의 1 대 0 승리. 27라운드 헤르타의 홈에서 치뤄진 경기에서는 4 대 0으로 헤르타가 크게 이겼다. 하지만 이때는 코로나로 인해 경기장에 팬들이 들어오지 못해 큰 충돌은 없었다. 헤르타의 홈에서 치뤄진 2020-21 시즌 분데스리가 10라운드 경기는 우니온의 로베르트 안드리히의 퇴장으로 인한 우니온의 악조건에서 헤르타의 3 대 1 승리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