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100
1. 개요
일본 육군이 마지막으로 실전에 투입한 육상 단좌전투기로 카와사키사에서 생산하는 기존의 3식 전투기 2형(Ki-61-II개(改))의 동체와 미쯔비시 Ha-112[1] 엔진을 조합하여 만들어진 기체이다.[2] 주로 줄여서 '5식전'으로 불렸다.[3] 전체적으로 수냉식 엔진 전투기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엔진은 공랭식이므로 그 특이한 라인이 인상적이다.
약 400대 가까이 생산됐지만 대전 말기여서 히엔이나 하야테 같은 별칭도 없었고, 연합국 코드명 또한 받지 못했다.
2. 제원
출처
3. 파생형
전술한 것 처럼 대전 말기에 난잡하게 생산되었기에 1형 갑과 을의 차이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8] 보통은 캐노피의 차이를 구분점으로 보는 게 널리 받아들여져 있다.
- 키100(キ100) - Ki-100: Ki-61-II개(改)을 개조해서 만든 시제기. 3대가 만들어졌다.
- 5식 전투기 1형 갑[키100-I 갑](五式戦闘機一型甲[キ100-I 甲]) - Ki-100-Ia[9] : Ki-61-II개(改)을 개조해서 만든 첫 양산형. 약 269~275대가 생산됐다.
- 5식 전투기 1형 을[키100-I 을](五式戦闘機一型乙[キ100-I 乙]) - Ki-100-Ib: 물방울형 캐노피를 장착하고 신규로 생산한 기종. 약 118대가 생산됐다.
- 5식 전투기 2형[키100-II](五式戦闘機二型[キ100-II]) - Ki-100-II: 고고도 성능 개선을 위해 터보차저(배기 터빈)를 장착한 시제기. 3대가 만들어졌다.
- 키119(キ119) - Ki-119: Ki-100의 동체를 기반으로한 전폭기. 전황의 악화로 개발이 부진했다. 실물 크기 목업만 만들어졌다.
4. 실전
최초 시제기 비행이 1945년 2월이었다. 이미 다른 국가들은 한창 제트전투기를 개발 및 생산을 하던 시점이다.
최초의 격추를 45년 4월 7일에 당했는데 B-29를 요격하러 갔다가 방어 기총에 떨어졌다. 그리고 같은 날 히노키 요헤이 소좌가 5식 전투기로 B-29를 1기 격추했다.
소수만 생산돼서 주로 본토 방공전에만 투입되었기에[10] 다른 기체들과 달리 일본 외 국가에서의 노획과 운용 사례는 없었다.
5. 평가
일본군의 보급과 정비 사정 때문에 온갖 문제가 빈발하던 수랭식 엔진 대신 여러 면에서 검증받은 킨세이를 장착하여 정비성이 올라갔고[11] 무게 등 여러 면에서도 한층 나아졌으며 전방위 시야가 제공되는 신형 캐노피를 장착한 버젼도 생산되었다. 거기다가 최대 속도는 비록 별로 오르지 못하였지만, 3식 전투기 히엔(Ki-61)보다 신뢰성이 높고, 운동성이 높아서 히노키 요헤이 소좌 등 일선 조종사들은 머스탱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제대로 된 정비를 받기 힘들어서 허구한 날 엔진이 깽판을 치는 히엔이나 하야테보다는 신뢰성이 있었고, 또한 하야부사보다는 한 단계 성능이 좋은 기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대 출력이 1500마력, 실제 전투 출력은 1200마력 안팎 수준인 킨세이 엔진의 한계는 명확했기에, 제 성능을 내던 4식 초기 생산분을 몰아본 파일럿들은 4식보다 못하다고 평했고, 모의전을 위해 머스탱을 몰던 파일럿들 또한 머스탱과의 대등한 전투는 무리라고 평했다.
6. 대중매체
6.1. 게임
- 워 썬더에서 일본 항공 병기에서 1형이 육군 항공대 라인에, 2형이 프리미엄 기체로 등장한다. 자세한 사항은 각 문서 참고.
-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에서 정규트리의 일본 육군트리 102레벨에서 등장한다. 성능은 완벽한 ki-61의 하위호환 취급으로, 히엔에 비해 공격력 속도 기동 모두 후딸리기 때문에 아무도 쓰지않는 지뢰 취급이다. 게다가 이 게임에서는 전투기 한정으로 프리미엄 기체가 킹왕짱을 먹고있는지라...
7. 둘러보기
[1] 해군의 금성, 즉 킨세이 엔진[2] 원래 수냉식 엔진을 위해 개발된 기체에 공랭식 엔진을 얹어 성능이나 평판이 확 올라간 케이스. 당장 2차대전 소련 최고의 전투기인 La-5/7 계열도 원래는 수냉식 엔진에 맞춘 LaGG-1/3에 공랭식 엔진을 얹었더니 성능이 확 올라간 경우이다. 하지만 C.200같이 수랭식 비행기에 공랭엔진을 달아 망한 경우도 있다.[3] 전후 살아남은 에이스들은 인터뷰에서 5식전 대신 키백이라는 뜻의 '키노햐쿠(きのひゃく)'라고 부르기도 했다.[4] 외부 연료 탱크 사용 시 2,200 km.[5] 시제기 3대, 갑형 중 약 269~275대가 Ki-61-II개(改)을 개조해서 만들어짐, 을형 118대[6] Ki-61-II개(改)를 개조해서 만들고 폭격을 많이 맞던 대전 말기에 생산되기까지 한 바람에 정확한 생산수가 알려지지 않았다. 생산수가 다 다르지만 2형 포함해서 약 400대 미만이 생산됐다고 본다.[7] 미완성 시제기 1대 미포함.[8] 오히려 구분조차도 안했다는 이야기도 있다.[9] a 대신 甲을 그대로 읽어서 Ki-100-I Ko라고도 한다. 이하 을(Otsu)도 같다.[10] 그 소수 생산된 것마저도 히엔이나 하야테보다 신뢰성이 높았기에 적극 투입되었고, 패전 당시 남는 기체가 적을 수 밖에 없었다.[11] 킨세이가 당시 일본에서 얼마나 적절한 엔진 취급이었냐 하면, 제로센 최후기형에도 이걸 달아 성능을 올려 보자는 이야기가 있었으며 해군 함폭 D4Y 스이세이는 애초에 수랭식 엔진으로 양산되었지만 엔진의 정비 문제 등으로 결국 킨세이를 장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