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61 히엔
'''3식 전투기 Ki-61 히엔 (三式戦闘機 キ61 飛燕)'''
'''Type 3 Fighter Kawasaki Ki-61 'Hien' (Tony)'''
1. 개요
2. 제원
* Ki-61 1형 을 (キ61-I乙)
- Ki-61 2형 PDF
3. 개발
일본군 육군은 카와사키 사에 이용한 고고도 요격기와 중저고도용 경전투기의 개발을 요구했다. 이전에 일본은 독일에게 5대의 Bf109 E-7을 구입하였는데 기체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으나 해당 기체에 장착된 수랭식 엔진인 DB601에는 많은 관심이 있었고[6] , 당시 항공업체 중에서 수랭식 엔진을 개발해 본 경험이 있는 카와사키가 독일에게 라이선스 생산을 허가받아 Ha-40이라는 이름으로 양산하게 된다.[7] 이 엔진을 사용하여 고고도 요격기로 개발된 것이 Ki-60인데, 목표했던 속력에 훨씬 못미치는 속력과[8] 떨어지는 비행안정성 등의 이유로 시제기 3대만이 제작된 상태에서 취소되게 된다. 결국 육군의 요구에 맞춰 당시 개발되었던 두 기종 중 살아남은 것이 중저고도용 경전투기로 개발되었던 Ki-61 히엔으로, 당시 주력 제공전투기인 Ki-43 하야부사보다 월등한 속도, 요격기인 Ki-44 쇼키보다 월등한 기동성 등으로 육군에서 호평을 하고 제식 채용하였다.
카와사키 중공업은 예전부터 항공기술의 발달을 위하여 외국의 기술자들을 초청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특히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카와사키 사의 기술진들이 해외의 기술 발전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당시 해외로부터 초청한 외국 기술자들에게 기술 자문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해외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던 시대적 조류에 맞춰서, 고고도용 중전투기와 중저고도용 경전투기를 굳이 따로 만들지 않고 그냥 왠만하면 하나의 전투기로 가능한 한 어지간한 상황에 다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43년 12월에는 1540 마력의 Ha140 엔진을 장착한 Ki-61-II의 시제기가 비행하였으며 1944년부터 생산에 들어가게 된다. Ki-61-I와 Ki-61-II의 테스트 결과를 보면 수평속도에서는 상당한 발전이 있어서 680km/h의 속력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상승력은 대전 후반기 기체중에서는 제법 처지는편이다.[9] 다만 주익에는 기관포를 장착하지 않았는데, Ki-84 하야테는 기관포를 주익에 장착해도 기체 성능에 큰 문제가 없는걸 봐서는 Ki-61의 주익 형상의 문제인 듯하다. 카와사키사가 열심히 갈고 닦아서 만든 Ki-61 II였지만, 나름 잘 설계되었다고 해도 Bf 109G형수준의 엔진을 장착한 기체였다는 것이다. 1944년부터 생산된 Ki-61 II는 동시기 연합군 기체에 비해 독보적인 성능을 보여줄 수 없었다.[10]
4. 특징
이 기체는 일본군의 전투기로서는 특이하게 '''수냉식 엔진'''을 채택한 장비였다. 원래 일본군은 육군, 해군 가릴 것 없이 정비성, 내구성, 전투손상에 대한 내구성 등을 들어 공랭식 엔진을 채택하고 있었다. 히엔 이외에 수냉식 엔진을 사용한 경우는 급강하폭격기인 D4Y 스이세이의 초기형 정도지만 정비성 및 신뢰성등을 이유로 후기 생산분은 공랭식으로 교체했다.
3식전 1형 병(丙)의 무장은 기수의 12.7mm 기관총 2정과 주익에 20mm MG 151 기관포 2문을 장착하여 매우 강력한 수준이었는데, 400기 정도만 제작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3식전 1형 병(丙)에 단 MG 151/20E 기관포를 양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MG 151/20E의 카피를 시도했으나 일본의 공업수준으로는 지속적인 생산, 정비 및 운용이 불가능했다. 결국 잠수함으로 수입한 800정의 MG 151/20E를 '''마우저포'''라는 별칭을 붙이고, '''특수장비로 분류하면서'''까지 소중하게 사용해야했고 결국 MG 151/20E 대신 Ho-5를 탑재한 3식전 1형 정(丁)을 내놓는다. 비록 MG 151/20보다 성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영 못쓸 물건은 아닌데다가 Ho-5가 보다 작고 가벼워서 기수에 2문을 장착할 수 있게 되기는 했다.
또한 해군기와는 달리 나름대로 방어에도 신경을 쓴 기체이기도 하다. 조종석 뒤에는 방탄판이 설치되어 있었고 주익에 연료탱크가 달려있기는 하였으나[11] 이 또한 자동방루탱크여서 방어에 제법 신경을 쓴 기체이기도 하다.
5. 실전
[image]
B-29의 요격을 시도하는 Ki-61. 일본군 항공전력 중 B-29를 요격 가능한 몇 안되는 기종 중 하나였다.
기존의 일본 전투기들과는 다른 엔진, 설계 덕분에 선회전 올인이 아닌 일격이탈 전술이 가능한 기체였으며, 제로센과는 달리 엔진의 출력이 올라가면서 기체의 설계에 여유가 생겨 충분한 구조강도를 확보하고도 요구되는 성능을 달성하여 급강하성능 또한 매우 우수했다.[12] 이로 인해 깜짝 놀란 미국 육군 항공대 지휘관들은 "P-40 워호크로는 역부족입니다, P-38 라이트닝의 배치가 필요합니다."라고 외쳐댔다. 아무래도 당시 태평양 방면에 배치된 미 육군 전투기들의 성능이 모자르다보니 히엔의 성능이 더욱 부각되었을 것이다.[13]
6. 문제점
엔진을 제작할 카와사키에서도 고출력 수랭식 엔진 생산의 노하우가 없어서 품질이 들쭉날쭉 했다. 기체를 정비할 정비인원들도 수랭 엔진은 처음이라 제대로 된 정비가 안 된 상태에서, 혹사에 가까울 정도의 소모전과 예비 기체와 부품을 수송하는 수송선이 자꾸만 격침이 되는 바람에 그다지 활약을 못했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해군의 함상폭격기인 D4Y 스이세이에서도 되풀이 됐는데. 기껏 독일에서 DB 601엔진을 라이선스를 받고(육군과는 별개로 받았다.) 기체 설계도 수랭엔진에 맞추어서 설계를 했지만, 잦은 고장과 빈약한 엔진 생산량과 정비인원들의 불만으로 인해 버려졌고 나중에는 공랭 성형엔진으로 탑재하고 다시 비행을 했다.
또한 황당하지만 같은 독일제 DB 601엔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육군의 하40[14] 엔진과 해군의 아츠타 엔진은 서로 호환이 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육군이 니켈을 전략광물로 지정하에 사용을 금지하는 바람에 하40 엔진 성능이 떨어지자 해군이 쓰던 아츠타 엔진으로 대신하려다 밝혀졌다.
게다가 히엔이 본격적으로 배치되기 시작했던 것은 1943년이다. 이미 유럽 전선에서는 Bf109G가 B-17에게 맞서고 있을 시기였다. 사실 히엔의 성능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당시 태평양 방면의 미군기들이 영 시원찮았던 것이 크다. 미 육군 항공대는 P-40이 주력이고 해군 항공대는 F6F 헬캣이 1943년 9월에나 투입되었고 그 이전에는 F4F 와일드캣이 주력이었다. 2식전 쇼키보다 느리고, 제로센 후기형과 별 차이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히엔은 '고속기' 취급이다.
이후 도입된 Ki-61-II형이 있고 속력도 제법 빠르고 화력도 괜찮아서 제대로 생산만 되었다면 활약할 수 있었겠지만 생산이 1944년에 시작되었고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간 것은 1944년 8월이다. 결국 선행생산분 30대를 포함해서 404대를 만들었는데 엔진이 부족해서 실제로 완성된 기체는 99대가 전부이다. 안 그래도 공업능력이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 Ha140 엔진을 생산하는 공장이 B-29의 공습에 파괴되는 상황까지 발생하였으니 엔진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7. 종말
도쿄 대공습 이후로는 국지 전투기로 잠시 각광을 받았는데 일본기 중 B-29가 날아다니는 고도까지 올라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체였고 실제로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공업능력과 생산력의 한계로 새로 생산되는 기체는 성능이 더욱 떨어졌고 나중에는 엔진까지 부족했다. 결론은 성능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제조한 국가의 공업능력의 부족으로 그 성능을 못 살린 전투기이다.
남은 기체는 히엔의 공랭식 버전인 Ki-100 용으로 돌려졌다. 그러나 해당 기체는 여러보로 히엔II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항공기였고 이후 남아있던 히엔은 미국에 압류되었다가 일본에 반환되어 1960년대 중반까지 날아다녔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히엔은 총 3대가 확인되었으며 일본의 박물관에 II형 1대, 미국에 I형 1대와 형식을 알 수 없는 1대가 보존되어있다.
8. 추축국의 유사 기체와의 비교
- 최고 수치는 강조체로 표기했으며 최저 수치는 기울림체 표기를 했다.
- 비교대상중 Bf109 F형이 아닌 E형인 이유[18] 는 F형의 DB 601E 엔진의 출력이 1,300PS이기 때문이다.
기동성은 히엔 을이 가장 좋다. 왜냐하면 히엔 을은 날개가 긴 만큼, 넓은 주익을 기반으로 가장 작은 익면하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156.5kg/m^2) 다만 속력만 따지면 폴고레가 더 우수한데, 이건 히엔이 반대로 날개가 길기 때문이다. 날개가 길어서 공기저항이 더 크기 때문. 그렇지만 최고속력의 차이가 고작 10km/h정도인 것을 보면 히엔의 설계는 유체역학적으로 좋은 설계라는 증거이다. 한편 Bf 109E-3의 최고속력이 좀 모자른 모습을 보이는데, 이점은 Bf 109E형이 상대적으로 매끈한 동체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21]
마지막으로 히엔 정인데, 히엔 정의 기동성 하락은 중량 증가와 기관포 탑재가 그 원인이다. 특히 히엔 정은 히엔 병(丙)에 장착된 MG 151이 부족해서 대신 자국제 ホ5포를 장착한 모델인데이다. 히엔 병은 히엔 을에 비해 동체가 길어지고 상대적으로 무거운 탄약과 기관포를 장착해서 히엔 병의 기동성은 히엔중에서 가장 떨어진다. 히엔 정으로 개량하면서 기관포를 교체했고, 주익에 툭 튀어나온 기관포가 동체안으로 들어가서 좀더 기동성이 상승했지만 일본이 느낀 것은 늘어난 중량에 비해 엔진 출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9. 파생형
- 키61(キ61) - Ki-61: 시제기, 12대가 만들어졌다.
- 3식 전투기 1형갑[키61-I갑](三式戦闘機一型甲[キ61-I 甲]) - Ki-61-Ia[30] : 기수의 7.7 mm 89식 기관총 2정과 주익의 12.7 mm Ho-103 기관총 2정으로 무장한 첫 양산형. 약 388대가 생산됐다.
- 3식 전투기 1형을[키61-I을](三式戦闘機一型乙[キ61-I 乙]) - Ki-61-Ib: 뒷바퀴의 내장 기능을 삭제하고 기수 무장을 89식 기관총 2정 대신 Ho-103 기관총 2정으로 교체해 무장을 통일한 기종. 약 600여대 가까이 생산됐다.
- 3식 전투기 1형병[키61-I병](三式戦闘機一型丙[キ61-I 丙]) - Ki-61-Ic: 1형을에서 주익 무장을 20 mm MG 151/20으로 교체한 기종. 을형을 개조한 것과 신규 생산을 포함해 약 400여대 가까이 생산됐다.
- 3식 전투기 1형정[31] [키61-I정](三式戦闘機一型丁[キ61-I 丁]) - Ki-61-Id: 기수 무장을 Ho-5 기관포로, 주익 무장을 Ho-103 기관총으로 교체한 기종. Ho-5 기관포의 기수 내장을 위해 기수를 늘려서 전장이 늘었다. 약 1350여대가 생산 됐다.
- 키61-II(キ61-II) - Ki-61-II: 엔진을 액랭식 하140(Ha-140)으로 교체하고 주익도 Ho-5 기관포의 탑재를 위해 더 길게 만든 '2형 날개'를 장착한 시제기, 그러나 엔진과 날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실패한다. 10대 미만이 생산됐다.
- 키61-II갑[32] (キ61-II甲) - Ki-61-IIa: 1형정처럼 Ho-103 기관총 2정과 Ho-5 기관포 2정으로 무장한 기종.
- 키61-II을(キ61-II乙) - Ki-61-IIb: Ho-5 기관포 4정으로 무장한 기종.
- 3식 전투기 2형[키61-II개](三式戦闘機二型[キ61-II改]) - Ki-61-II KAI: Ki-61-II에서 다시 날개를 1형과 같은 것으로 바꾼 양산형. 무장은 1형정과 동일했으나 Ho-5 기관포의 장탄수가 2배로 늘었다. 그러나 엔진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기에 5식 전투기 Ki-100으로 전환되는 일이 많았다.
- 3식 전투기 3형[키61-III](三式戦闘機三型[キ61-III]) - Ki-61-III: 원래 계획은 성능이 향상된 액랭식 하240(Ha-240) 엔진을 장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계획의 실패로 나중에는 2형 을의 다른 명칭으로 구분되게 됐다.
10. 기타
- 히엔에 탑재된 엔진은 독일제 DB601A 엔진을 면허생산한 Ha-40 이었는데 이 때문에 히엔은 Bf109나 C.202와 유사한 형태가 되어 히엔과 처음 조우한 미군 조종사들은 일본이 동맹국의 기체를 수입하거나 면허생산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히엔의 코드네임인 Tony는 이 때문에 붙여진 것. C.202 항목 참조. 참고로 처음에는 Bf109와 닮아서 Mike라는 코드네임이 붙었다가, 이후 M.C.202를 닮았다고 Antonio로 이름이 또 바뀌다가 결국 Tony로 코드네임이 결정됐다고...
- 더 화이팅에서 사나다 가즈키의 궤도가 휘어지는 잽 이름이 날으는 제비, 즉 비연인데 여기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 중화민국군에서도 소수의 노획한 히엔을 운용했다.#
- 대한민국 공군 초대 참모총장이었던 김정렬이 일본 육군사관학교 전투기과를 졸업하고 1944년 4월부터 종전 때까지 히엔을 조종하였다. 1945년 2월부터는 수마트라 팔렘방으로 이동하여 히엔을 조종하여 영국군 전투기와 매일 같이 교전을 벌였다고 한다.
11. 대중 매체
11.1. 게임
- 월드 오브 워플레인에서 일본 2차 전투기 트리의 6티어 전투기로 등장한다.
- 함대 컬렉션에서 2016년 봄 이벤트 "개설! 기지항공대" 보상으로 3식전 히엔, 3식전 히엔(비행 제244전대) ,3식전 히엔 1형丁이 풀렸다.
- 워 썬더에서 공랭식 버전인 Ki-100을 포함해 모든 형식의 히엔이 등장한다.
-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 에서도 워썬더와 동일하게 공랭식 엔진 장착형인 5식 방공기(ki-100)를 포함해서 모든 시리즈가 등장한다. 하지만 ki-100의 경우 하필이면 추축군 정규트리 최고의 단발 레시프롭기인 Ta 152H-1과 레벨제한이 같았기에...안습.
- 모바일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인 Gunship Sequel WW2에 일본 육군항공대 2티어 전투기로 등장한다.
11.2.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 애니메이션 황야의 코토부키 비행대 2화에서 코토부키 비행대가 타는 Ki-43 하야부사와 전투를 벌인다.
- 마츠모토 레이지의 (더 콕핏) '철의 용기병'에서 미군이 노획한 것으로 보이는 기체가 등장한다.이후 엔진 고장으로 스스로 추락함.
- 나는 당신을 위해 죽으러 갑니다 후반부에서 Ki-43 하야부사가 오키나와 전투의 카미카제를 할 때 호위하러 온 삼식 히엔이 등장한다.
[1] 독일 공군의 Bf109와 매우 흡사하여 붙여졌다.[2] 이탈리아 공군의 M.C 202와 닮았다 하여 붙여졌다.[3] 쇼와 18년, 황기 2603년[4] 다만 2형의 경우 (후술할 문제점으로 인해서) 엔진이 들어간 기체는 99대밖에 없고 나머지는 Ki-100으로 생산되었다.[5] 카와사키 ha40 계열 엔진.[6] 일본은 연구를 거듭한 결과 결국 수랭식 엔진이 차세대 군용기에 우수한 성능을 제공한다는 결론을 내려 수랭식 엔진의 확보에 혈안이 되어있었다.[7] 해당 자료[8] 600km/h를 목표로 했는데 첫 시제기는 548km/h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후 개량한 시제기들도 560km/h의 속력을 내는데 그쳐서 목표치를 훨씬 밑도는 결과가 나왔다.[9] 다만 일본에서 측정한 Ki-61 II(3식전 2형)의 속력은 610km/h로 나와있다.[10] 선회전은 우월하지 않냐고 물을 수는 있겠지만 Ki-61 II의 익면하중은 191.2 kg/m^2로 Bf109 G형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 결국 좀더 날렵한 수준인 것.[11] 사실 제로센이 이걸로 까인건 날개에 달려있다는 자체보다는 그렇게 해놓고도 방어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는게 크다. 날개에 연료탱크를 장착하는건 미군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니 연료탱크가 있다는 자체로 까기는 좀 뭣한 경우.[12] 히엔이 도입되기 시작한 1942년에는 아직 호마레 엔진 같은 고출력 엔진이 나오기 전이니 히엔의 출력도 고출력이었다. 다만 급강하 성능은 객관적으로 보면 좀 애매한데, 상대하는 적의 성능이 한수 아래다 보니 큰 문제는 아니였다.[13] 하단의 비교표를 보면 히엔 1형은 고작 Bf109 E형수준이다. 그렇지만, 영국이나 독일이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P-40의 성능을 호커 허리케인보다 낮게 평가한 것을 생각해보면 미군이 일본 육군의 신형기의 성능은 결코 무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P-40보다 못한 P-39 에어라코브라와 같은 기체도 운용하고 있던 마당이니 더욱.[14] ハ는 발동기(엔진)의 첫글자로, 일육군의 항공엔진은 사카에건 킨세이건 호마레건 간에 전부 하XX라는 모델명으로 불린다.[15] 토크때문에 왼쪽 날개가 오른쪽 날개보다 21cm 더 길다.[16] DB 601 Aa의 이탈리아 라이선스 버전[17] DB 601 Aa의 일본 라이선스 버전[18] 실전 투입 시기를 고려하면 F형이 E형 C.202나 Ki-61에 더 가깝다.(1941년 vs. 1939년)[19] 히엔은 일본 육군기체답게 일본 해군기체와 다르게 엄연히 방루장치와 조종사 보호용 철판이 있는 기체이다. 비록 유럽 기체에 비하면 좀 부실하긴 해도 말이다.[20] 일본 육군도 광활한 대륙에서 활동하기 위해 해군처럼 극단적으로 항속거리를 확보할려는 수준은 아니였지만, 타국에 비해 연료탑재에 더 신경을 쓴 편이다.[21] Bf109가 매끈한 동체를 가지게 된 것은 F형 부터이다. F형과 E형의 마력차이는 200PS지만, 최고속력과 상승력 모두 급격하게 좋아진 이유가 바로 동체형상이 매끈해진 탓도 크다.[22] 토크때문에 왼쪽 날개가 오른쪽 날개보다 21cm 더 길다.[23] +MW50[24] DB 605 A의 이탈리아 라이선스 버전. 통칭 티포네(Tifone).[25] 일본 해군은 이 엔진을 킨세이(金星)라고 불렀다.(...)[26] MW50을 사용 할 경우, 1,800PS이다.[27] TAIC에서 전투비상출력으로 측정시에는 680km/h가 나왔으나 여기서는 일본쪽 측정결과를 기록한다.[28] 3000m를 기준.[29] 5000m까지 상승하는데 6분. [30] a 대신 甲을 그대로 읽어서 Ki-61-I Ko라고도 한다. 이하 을(Otsu), 병(Hei), 정(Tei)도 같다.[31] 3식 전투기 1형개(三式戦闘機一型改)가 될 예정이었다고도 한다.[32] Ki-61-II가 실패했기에 나중에 만들어진 추측성 구분 명칭이다.[33] Ki-61-II의 경우처럼 나중에 만들어진 추측성 구분 명칭이다.[34] 물방울 캐노피를 사용한 5식 전투기는 을형으로 추측돼 구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