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w Nothing
1. 개요
'''Know Nothing'''
1850년대 미국에서 활동하던 제노포비아 집단. 이후 정치 정당으로 발전한다.
2. 배경
19세기 초중반 미국에 오는 이민자들은 아일랜드인과 독일인들이 대다수였다. 아일랜드인들은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대표되는 아일랜드의 참담한 현실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들이었고, 독일인들은 정치 및 경제적 불안정을 견디지 못해 미국으로 이민 온 이들이었다. 이렇게 약 3천만에 달하는 이민자가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였다.
아일랜드인과 독일인보다 먼저 살고있던 미국인들은 이들을 반기지 않았다. 일거리를 놓고 경쟁해야 할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종교였다. 당시 미국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이들은 개신교 신자였는데, 아일랜드와 독일에서 밀려드는 이민자들은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였던 것이다. 미국인들 중에는 이민으로 가톨릭 신자들의 세가 커지면 미국이 교황의 통치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걱정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의 걱정이 사실이건 아니건 미국인 사이에서 이민배척주의자(nativist)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이민배척주의자들은 1844년 필라델피아에서 아일랜드계 미국인을 상대로 싸움을 걸어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3. 흥망성쇠
1849년 뉴욕에서 성조기단(Order of the Star-Spangled Banner, OSSB)이라는 비밀결사가 결성된다.[1] 반가톨릭주의 성향을 가진 앵글로색슨 개신교도 남성만이 입단할 수 있었던 이 조직에는 여러가지 규칙이 있었다. 그 중 제일 유명한 규칙은 만약 외부인이 성조기단에 대해 물어보면 "난 아무것도 몰라(I know nothing)"라고 대답해야 한다는 규칙이었다. 이 규칙에서 이들의 제일 잘 알려진 별명인 "Know Nothing"이 생겨났다.
성조기단은 1853년 미국당(American Party)이라는 정당을 창설한다. 정계에 진출한 것이다. 이민배척주의 성향의 노동계층을 주 당원으로 둔 이 당은 외국인 거지와 범죄자의 추방, 미국 국적 취득을 위해 체류해야 하는 기간을 21년으로 연장, 학교에서 성경 읽기 의무화, 가톨릭 신자와 외국 출생자들의 선거권 및 공직에서 일할 권한 박탈 등을 주장했다.
이들은 빠르게 성공을 거두었다. Know Nothing 당원들은 시카고 시장, 메릴랜드 주지사, 로드아일랜드 주지사와 같은 요직에 올랐다. 1854년 선거 이후에는 43명의 국회의원이 Know Nothing 소속이었다.
하지만 "가톨릭 꺼져 이민자 꺼져"만을 외치는 정당이 오래 갈리는 없었다. 거기다가 당시 미국인들은 가톨릭 이민자들보다 더 큰 문제로 분열되어있었다. 1856년 선거에서 Know Nothing은 대통령 후보로 전직 대통령 밀러드 필모어를 내보냈지만 21% 득표율로 3위에 머물고 30석 이상의 의석을 잃게 된다. 이후 이들이 전처럼 활약하는 일은 없었다. Know Nothing은 1850년대 말에 해체된다.
4. 기타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의 등장인물인 윌리엄 커팅, 일명 도살자 빌은 Know Nothing의 일원이자 갱단 두목, 권투선수, 그리고 도살자였던 윌리엄 풀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 윌리엄 풀은 1855년 아일랜드계 권투선수 존 모리세이와 다투다가 루이스 베이커라는 남자에게 총을 맞고 죽는다.
5. 같이 보면 좋은 자료
- "미국 정책에 대한 변호"의 스캔본(영문): Know Nothing의 일원이었던 토머스 R. 휘트니가 쓴 책. 사실 제대로 된 제목은 "미국 정치에 대한 해외 영향력의 침략, 그 중에서도 교황의 간섭에 대한 대항으로써의 미국 정책에 대한 변호"다. 사실 370쪽 정도 되니 관심이 깊게 있지 않는 이상 같이 안 봐도 된다.
6. 참고 자료
- 스미소니언 - 어떻게 19세기 Know Nothing이 미국 정계를 바꾸었는가(영문)
- 내셔널 지오그래픽 - Know Nothing: 미국 최초의 반이민주의 정당(영문)
- 한국일보 - 기억할 오늘: 노우나씽(2.18)
[1] 사실 이 녀석들 전에도 연합미국인단(Order of United Americans)이라는 비밀결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