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ine Paner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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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 스위스의 명품 시계 브랜드.
본사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소재하나 제조공장은 스위스 뇌샤텔에 위치한다.
2. 역사
파네라이의 시작은 1860년 이탈리아의 사업가 조반니 파네라이(Giovanni Panerai)가 세운 회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업초기 파네라이는 시계전문회사가 아니라 이탈리아 해군에 납품하는 군납용품 업체였으며 따라서 초창기에는 시계뿐만 아니라 군용 나침반, 손전등 등도 납품한 기록이 있다.
본격적인 시계제조는 1936년 이탈리아 해군에 납품한 "라디오미르(Radiomir)"를 제조하면서 부터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해군은 어두운 바닷속에서도 시계의 시인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시계를 제작할것을 주문하였고 파네라이사는 이러한 해군의 요구에 부응하여 아연황화물과 라듐브롬화물을 혼합하여 일명 "라디오미르"라는 야광물질을 개발, 시계에 적용시켜 해군에 납품하였고 이 야광물질을 그대로 시계이름에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 라디오미르 시계를 착용한 이탈리아 해군 특전대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1년 12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항구에 정박해 있던 영국해군의 전함과 구축함들을 침몰시키는 전과를 세웠고, 이로 인해 파네라이의 라디오미르 시계가 시계덕후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파네라이는 계속 이탈리아 해군에 시계를 납품하였고 1950년에는 라디오미르 이외 독특한 구조와 외형의 방수기능을 가진 "루미노르(Luminor)"시계를 개발하여 특허를 획득하였으며 이 루미노르 시계의 용두모양이 파네라이 시계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파네라이의 시계는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고 주로 군납용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그 후 1960~70년대 쿼츠시계 광풍이 전세계적으로 몰아치자 당시 대부분의 기계식 시계 제조사들과 마찬가지로 파네라이 역시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결국 80년대 이후에는 시계제조를 한동안 중단하였다. 이후 1993년 이탈리아 시덕후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다시 시계제조를 시작하였으나 이때에도 시덕후들이나 아는 그저그런 브랜드였다.
95년, 재난영화 "데이라잇(Daylight)"영화 촬영에 한창이던 할리우드의 대스타 '''실베스터 스탤론'''이 이탈리아를 방문했다가 우연찮게 파네라이를 보고 완전히 빠져 버리게 되었다. 스탤론은 자신의 우람한 체구에 걸맞는 빅 사이즈의 남성적인 파네라이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자신도 구입하고, 지인들 선물용으로 200피스를 한꺼번에 구입하면서 파네라이는 직간접적으로 헐리우드에 홍보되기 시작됐다.[1] 그리고 스텔론이 선물로 준 지인중에 한명이 리치몬드 그룹[2] 의 회장 요한 루퍼트 였는데 그 또한 파네라이에 매료되면서 파네라이가 리치몬드에 인수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후, 리치몬드의 막강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럭셔리 브랜드로 포지셔닝을 취하기 시작한다.
즉, 현재의 명품 스포츠워치 브랜드 파네라이는 스탤론이 재건 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탤론은 여전히 세계 제1의 파네리스티[3] 로써, 현재도 수많은 그의 영화에 직접 파네라이를 차고 나온다.
이후 1997년 리치몬트 그룹의 산하브랜드로 인수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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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 4에 등장한 파네라이.
3. 특징
파네라이 시계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브랜드의 시계와 비교할 때 [4] '유별나게 독특한 디자인'에 있다. 복잡한 카운터나 인덱스 따위없이 철저히 미니멀리즘/디버전스에 입각한 다이얼과 케이스 디자인은 파네라이 시계의 캐릭터성을 가감없이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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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기있는 모델 중 하나인 루미노르 PAM111
또 다른 특징은 다른 시계브랜드와는 다르게 파츠의 교체, 특히 스트랩을 교체(이하 '줄 교체')하는 즐거움이 파네라이를 이해하는데 가장 큰 요소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브랜드의 시계들도 줄을 교체할 수 있지만 파네라이는 아예 제작사가 줄 교체를 자주 조장하는 정도인지라, 일단 구조부터 줄 교체에 용이하고 시계제작사 자체제작의 OEM 스트랩은 물론 극렬 파네리스티들이 직접 제조하는 애프터마켓 스트랩의 종류가 무궁무진하여 파네라이의 팬덤 주축이 되는 가장 큰 요소가 되고 있다.
무브먼트는 과거엔 롤렉스, 후에 유니타스 계열 범용 무브먼트를 사용했었다. 아주 가끔 고급모델의 경우, JLC의 무브를 사용할때도 있다. 최근에는 ETA의 무브먼트 공급문제 때문에 비(非) 스와치 그룹의 회사들처럼 파네라이도 자사가 직접 제조하는 인하우스 무브먼트로 거의 대체가 되었다.
4. 파네리스티
다른 브랜드보다도 유난히 팬덤이 두툼하여 파네라이 시덕후를 의미하는 "파네리스티(Paneristi)"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을 정도이며 이러한 원인은 독특한 디자인이 큰 몫을 차지한다고 볼 수도 있다. 허나 파네라이 시계를 처음보는 일반인이나 디자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타 시덕후들에게는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파격적인 디자인을 보이고 있다.
5. 여담
2000년대 이후 파네라이는 시덕후라면, 그리고 패션에 약간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로 유명한 시계브랜드로 성장했으며 최근 자사무브도 여럿 개발하여 기술적으로도 큰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를 노린 중국의 짝퉁 제조가들이 이러한 파네라이의 성장을 주목하고 대량으로 짝퉁을 양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정밀도는 몇몇 한국 명품 짝퉁 수준(...) 일단 미니멀리즘을 중시한 시계 디자인도 그렇고, 자사무브를 적용하기 전까지 범용무브를 큰 수정 없이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 등, 대량 생산하기에는 매우 편리한 브랜드 특징을 악용하고 있는 것.
그리고 여기에 낚인 사람들은 정밀하게 복제된 짝퉁의 사용을 조장하기까지 하여, 정품 보급에 상당히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시계가 그렇듯 아무리 짝퉁 제작이 정교해져도 짝퉁은 짝퉁일뿐. 실제 마감이나, 소재, 오차등의 품질 수준은 단가 문제상 짝퉁이 따라올수 없다. 무브먼트 가성비가 미친듯이 떨어지던 때 한동안 위블로처럼 정품사느니 짭사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었다. 실제로 위 사진에 있는 PAM 111 모델의 경우, 짭의 수준이 이미 한계치에 달했다. 케이스 폴리싱과 글라스 작업, 스트랩 교체를 하면 전면은 물론이고 뒷백까지 진품과 거의 분간이 안 가는 수준이다.
실제로 과거 파네라이는 아무런 마감이 안된 에보슈 수준의 유니타스 무브먼트를 박다가 뒷백을 까본 한 소비자가 항의한 일도 있었다. 파네라이측의 대답은 우린 잘못없지만 교환은 해줄테니 돈내놔라.(...) 현재는 디스플레이 백 모델이 다수라 이런 걱정이 덜하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