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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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결교회는 18세기 성공회 사제 존 웨슬리의 완전성화론 입장을 따라 19세기 미국에서 형성된 종파이다. 19세기 말 미국 동부 및 중서부 지역에서 일어난 제2차 대각성운동 때, 피미 팔머, A.B. 심슨 등을 중심으로 일어난 성결운동(holiness movement)을 출발점으로 한다. 중생(重生)·성결(聖潔)·신유(神癒)·재림(再臨)의 사중복음이라는 용어는 A.B. 심슨이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후에 성결운동은 20세기 들어 오순절운동으로 발전됨으로, 성결운동은 경우에 따라서는 웨슬리안-성결운동 또는 성결-오순절운동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의 성결교회는 찰스 카우만과 나카다 주지가 설립한 동양선교회(OMS; 현 One Mission Society참조)를 출발점으로 한다. 동양선교회가 마틴 냅(M. W. Knapp)의 만국성결교회(International Apostolic Holiness Church, 이후 Pilgrim Holiness Church)에 뿌리를 둠으로, 현재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f the Wesleyan Church (현재 미국 중서부에 본부를 두고 있는 Wesleyan Church 교단은 옛 만국성결교회를 합병)와 국제교류를 하고 있다.참조 또한, 세계성결교회연맹(World Federation of Holiness Church; 구, 아태성결교회연맹)을 통해, OMS를 통해 설립된 한국, 일본, 대만 성결교회 중심의 정기적 교류도 하고 있다.
한국 성결교회의 주된 교단으로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예수교대한성결교회(예성),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나성)가 있으며, 3개 교단은 한국성결교회연합회를 조직해서 교류하고 있다.
2. 역사
한국 성결교회의 모체는 미국의 찰스 카우만(Charles E. Cowman)와 레티 카우만(Lettie B. Cowman) 부부, 어니스트 길보른(E. A. Kilbourne), 나카다 주지(中田重治)에 의하여 극동지방 선교를 목적으로 1901년에 설립된 동양선교회(東洋宣敎會, The Oriental Missionary Society)이다. 이 선교회는 1901년 일본 동경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창설하고 설교를 시작함으로써 비롯되었다.
동양선교회는 처음에 교회가 아닌 전도관(mission hall) 전도를 주로 하였으나, 점차 교인이 많이 모임에 따라 교회가 형성되고 교역자를 양성하기 위해 전도관 내에 성서학원(bible institute)을 세워 하나의 교파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원래 동양선교회는 어떤 교단에 소속된 단체가 아니고 복음주의적 신앙동지들로 구성된 선교회로, 창립자들은 감리회 출신이며 그 신학적 배경은 알미니안 계통의 웨슬리안 체험주의에 입각한 복음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운 전도표제인 중생(重生)·성결(聖潔)·신유(神癒)·재림(再臨)의 사중복음(四重福音)은 원래가 그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던 A.B.심슨(A.B. Simpson)의 사중복음, 즉 중생하게 하는 그리스도, 성결하게 하는 그리스도, 치료하게 하는 그리스도, 재림하는 그리스도라는 교리에 근거한 것으로, 이는 감리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 사상의 유산이기도 하며, 복음주의사상의 계승으로 볼 수가 있다.
한국 성결교회는 일본 동경에서 동양선교회 소속 성서학원을 졸업한 정빈(鄭彬)·김상준(金相濬) 두 사람이 1907년에 귀국하여 서울 종로에 복음전도관을 세움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두 사람이 전도활동을 시작한 지 3년 뒤인 1910년에 두 사람의 강력한 요청으로 동양선교회는 영국인 존 토마스(John Thomas)를 초대 감독으로 한국에 파송함으로써 직접적인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1911년 경성성서학원(서울신학대학교 전신)을 창립하였으며, 1921년에 새로운 감독인 길보른이 부임하면서 명칭을 조선예수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로 바꾸고,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1936년 교단분열이 일어나 10여개 교회의 목회자들이 이탈하여 '하나님의 교회'[1] 를 만들게 되며, 이후 미국의 나사렛교회와 연합하여 대한기독교나사렛성회를 만들게 된다.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선교사들이 추방되고 교회가 강제해산되게 되며[2] , 1945년 재건총회가 열리게 되고 1949년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라는 이름으로 개정된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하여 155명의 교인이 순교하고, 교단의 목회자 다수가 납북되고, 교단의 기반이 사실상 괴멸당하지만, 신도들의 힘으로 기적적으로 재건에 성공한다.
1961년, 교회일치운동에 대한 동참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게 되며, 이후 '''예수교대한성결교회'''(예성)가 분열되어 독립해 나가게 된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통합을 위한 노력을 하였으나, 진보를 배격하는 예성의 보수적인 신학적 학풍으로 인하여 번번히 실패하게 된다. 예성측에서 기성과의 통합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3] 탈퇴를 들었었다. 이에 기성이 NCCK를 탈퇴하였으나 그 이후에도 교단의 통합은 흐지부지한 상황이다.
현재, 한국성결교회연합회 (기성, 예성, 나성의 교류기구)를 중심으로 "한국성결교회"라는 명칭을 공동 사용하자는 의견이 있으며, 나성은 2018년 총회에서, 예성은 2019년 총회에서 이에 대한 결의를 했다.[4]
3. 특징
- 대한민국에서 자생된 교단이다.
- 기독교대한감리회보다 보수적이고,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과 비슷한 정도의 중도성향을 보인다.
- WCC,교회협회원 교단은 아니다. 하지만 에큐메니컬 운동에는 적극적이다.
4. 조직도
5. 교단가
6. 교세
지방회가 각 지역별로 있지만 중부지방 특히, 서울특별시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 다음이 대전광역시를 포함한 충청도 지역이다. 아래와 같이 지방회가 지역별로 분포되어 있다.
- 서울지역
- 인천지역
- 경기지역
- 강원지역
- 충청지역
- 호남지역
- 영남지역
- 지역지방회
7. 산하 기관
- 서울신학대학교
- 중앙성결교회
- 활천
- 한국성결신문
- 한우리교회
[1] 1962년 안상홍에 의해 설립된 곳과는 다르다.[2] 손양원 목사처럼 일제 당시 개별 교회나 목사가 탄압받은 적은 많았지만, 유이하게 침례교와 더불어 교단 해체령을 받은 교단이다. 당시 동양선교회 연회록을 보면 창시개명과 국민의례(동방요배와 일제의 승전을 기원하는 기도가 들어간다)까지는 어떻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는데 직접적인 신사참배 부분에서 문을 닫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초기 교단 해산령을 받자 이명직 등이 타협을 시도했다. 심지어 성서가 유대 사상에 기반을 두어 국체에 반한다면서 자체 해산을 발표해버린다.[3] 교회일치운동에 앞장서는 교회 연합 기구이다.[4] 출처: 2019. 5. 29. 데일리굿뉴스 보도 "예성 신임총회장 문정민 목사, ‘한국성결교회’ 공동명칭 사용 촉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