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오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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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메이 덴노와 메이지 덴노 시절에 사용했던 연호.
메이지 시대에 일세일원제가 확립되기 이전까지, 일본에서는 '혁명개원(革命改元)'이라 하여 역학적으로 큰 변화의 기운이 일어나는 신유년과 갑자년에 연호를 바꾸어서, 반역의 기미를 차단하고 자연재해 등으로부터 액땜을 하는[1] 주술적인 관습이 있었다. 1865년 역시 갑자년이라서 연호를 바꾸어야 했던 일본 조정은 신하들(실질적으로는 도쿠가와 막부)로부터 연호를 건의받아 그 중에서 채택했는데, 구와나 번 번주인 마쓰다이라 사다아키(松平定敬)가 올린 연호 후보 중에서는 간에이(乾永), 분류(文隆), 다이레키(大暦), 만토쿠(万徳), 게이오(慶応), 메이테이(明定), 덴세이(天政)가 있었고, 공가인 다카쓰지 오사나가(高辻修長)가 올린 연호 후보로는 '''헤이세이(平成)'''가 있었다. 이를 받은 당시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는 '무엇으로 채택되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예려(叡慮)하신 바와 같이 게이오(慶応)가 마땅할 것으로 생각되옵니다[2] '라며 고메이 덴노의 의향을 전적으로 따를 것이라는 의향서를 조정에 바쳤다. 이로써 에도 시대 내내 관습적으로 막부가 건의해서 결정하던 연호제도는 끝을 고하게 되었고, 얼마 안 가 1868년 10월 23일에 메이지(明治)로 개원하면서 일세일원제가 시작된다.
해당 연호의 출전은 소명태자가 편집한 문선(文選)의 다음 구절이다.
'''慶'''雲'''應'''輝,皇階授木。
상서로운 구름이 응하여 밝게 빛나매, 황위는 목덕(木德)에게 하사되었도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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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文選)》, 한고조공신송(漢高祖功臣頌) 중에서
[1] 마치 압력솥으로 밥을 지을 때 솥이 폭발하지 않도록 증기를 빼주는 것과 같다고 이해하면 된다.[2] 「何以被採用所存無之候」「叡慮之通慶応可然被存候」[3] 고대 중국에서는 오행의 순서에 따라 천명이 이어진다고 여겼는데, 이를 '오덕종시설'이라고 한다. 선양의 경우에는 상생, 선양이 아닌 경우에는 상극으로 보았다. 헌원황제는 토덕, 하나라는 목극토의 목덕, 은나라는 금극목의 금덕, 주나라는 화극금의 화덕, 진나라는 수극화의 수덕, 전한은 토극수의 토덕이었다가, 한무제 때 상생설을 받아들이면서 수생목의 목덕이 전한을 상징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