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빈 이씨

 



'''조선 명종의 후궁'''
'''경빈 이씨 | 慶嬪 李氏'''
'''빈호'''
경빈(慶嬪)
'''출생'''
1541년(중종 36)[1]
장소 불명
'''사망'''
1595년(선조 28) 6월 29일
(향년 55세)
조선 황해도 연안부 우사(寓舍)
'''본관'''
전의(全義)
'''부모'''
부친 이첨정
모친 전주 이씨
'''부군'''
명종
'''자녀'''
자녀 없음
'''묘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 후궁묘역
1. 개요
2. 생애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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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명종의 후궁. 그녀의 외종사촌이 인빈 김씨이다.

2. 생애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조모 나씨(羅氏)가 데려다가 키웠다. 나이 16세에 문정왕후의 시녀로 있다가 1558년(명종 13년) 18세의 나이로 명종의 후궁이 되었다. 명종 말년에 종4품 숙원에 책봉되었으나 슬하에 자식은 없었다.
이씨는 인순왕후보다 오래 살아서 임진왜란의 발발까지 보았다. 강화도황해도 연안으로 피란 생활을 하면서 많은 고초를 겪은 듯 하다. 결국 한창 전쟁 중인 1595년 연안의 우사에서 사망하여 열악한 상황에서 장례를 치렀다. 이후 전쟁이 모두 끝난 1602년(선조 36) 10월 24일에 묘소를 경기도 양주군 풍양으로 이장한다.
시간이 흘러 1755년(영조 31년) 6월 14일, 당시 영조는 왕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추숭 작업에 열중이었다. 인빈 김씨를 높이는데, 이씨도 마땅히 추증해야 한다는 뜻에 따라 '''경빈(慶嬪)'''으로 추증했다.

3. 여담


  •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문정왕후명종에게 아들이 없어 근심하던 중에 꿈을 꾸게 되었다. 꿈에서 어떤 사람이 "상주(尙州)의 이 아무개가 딸이 있는데 궁중에 들여오면 좋을 것이다." 하였다. 이에 사람을 시켜 백방으로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한 승려가 그 사람이 누군지 알려주어 궁중에 들였으니 그 사람이 바로 경빈 이씨라고 한다. 하지만 이씨는 아들이 없었고, 대신 외종사촌인 인빈 김씨선조의 후궁이 되어 4남 5녀를 낳는다. 어찌보면 문정왕후의 꿈이 이뤄진 셈.
[1] 출처: 《상촌선생집》 제24권 숙의 이씨 묘지명(淑儀李氏墓誌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