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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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州 南山 彌勒谷 石造如來坐像. 8세기 경 통일신라 시대에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 내 미륵골에 있는 옛 보리사(菩提寺) 터(추정)에 위치하고 있던 석조 불상 1점. 현재 보리사(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산66-2)에 소재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136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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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
8세기 경 서라벌 지역의 신라인들이 제작하여 훗날 옛 보리사(菩提寺) 법당에 조성했던 석조 불상으로, 사찰의 이름을 따 보리사지 석조여래좌상(菩提寺址 石造如來坐像)이라고도 부른다.
이 불상이 위치한 보리사(菩提寺)는 886년(신라 헌강왕 12년)에 창건된 사찰로, 당시 경주시 남산 지역에 존재하던 수많은 사찰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곳으로 파악되고 있다. 불상의 양식 및 조형기법으로 볼 때 이 불상은 보리사가 창건되기 100여년 전에 이미 만들어져 다른 사찰에 봉안되어 오다가 최종적으로 보리사 터에 자리잡아 현대까지 이어져내려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불상이 마지막으로 위치했던 보리사는 신라시대 당시에는 헌강왕과 정강왕릉의 위치를 정하는 기준이 될 정도로 유서 깊은 사찰이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숭유억불 정책에 의하며 완전히 폐사되었고, 이후 수백여년간 이 불상 하나만을 남겨둔채 폐사지로 흔적만 남아 있던 것을 1911년에 보경사(寶鏡寺) 비구니 박덕념(朴德念)이 다시금 중창하고, 1932년 비구니 남법명(南法明)이 중수하면서 다시 보리사의 명맥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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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에는 지금도 수많은 신라시대 불상들이 현존하고 있는데, 이 불상은 대좌(불상을 올려 놓는 자리)와 광배(부처님의 몸에서 비춰 나오는 빛을 표현한 조각물)를 모두 갖추고 있는 불상으로 그 가치가 더욱 높다. 특히 이 불상의 광배 뒷면에는 세상의 모든 질병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한다는 약사여래불이 가는 선으로 조각되어 있어 8세기 경 신라 불교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불상의 목에는 신라 특유의 삼도(불교에서 악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 죽어서 가는 세상으로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의 세 곳을 뜻함)가 뚜렷히 새겨져 있다.
불상의 손 모양은 오른손을 오른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 끝은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해서 배꼽 앞에 놓아두고 있는데, 이러한 손모양을 항마촉지인이라 하여 모든 악마를 굴복시켜 없애버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통견으로 표현한 옷에는 군데군데 옷주름이 새겨져 있다. 불상은 8각의 대좌 위에 앉아 있으며 별도로 마련된 광배에는 화불과 보상화 그리고 당초무늬로 장식되어 있는데, 광배의 내부에는 굵은 철선(凸線)으로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고 이 선을 따라 12잎의 꽃무늬를 새겼으며, 두광과 신광의 안쪽에는 보상화문·당초문을 화려하게 새겼고, 두광에는 3구의 화불(化佛), 신광에는 4구의 화불을 배치하였으며, 바깥쪽으로는 불꽃무늬를 유려하게 새겨놓았다. 이처럼 불꽃무늬·화불·꽃무늬 등이 빽빽이 새겨진 장식적인 광배는 이후 한국 석조불상 광배의 전형적인 형태를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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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은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 전에 조성된 8세기 신라 불상의 세련된 불격(佛格)을 사실주의 조각으로 성공시킨 당대의 역작으로 높이 평가된다. 이에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1. 개요
慶州 南山 彌勒谷 石造如來坐像. 8세기 경 통일신라 시대에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 내 미륵골에 있는 옛 보리사(菩提寺) 터(추정)에 위치하고 있던 석조 불상 1점. 현재 보리사(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산66-2)에 소재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136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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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
8세기 경 서라벌 지역의 신라인들이 제작하여 훗날 옛 보리사(菩提寺) 법당에 조성했던 석조 불상으로, 사찰의 이름을 따 보리사지 석조여래좌상(菩提寺址 石造如來坐像)이라고도 부른다.
이 불상이 위치한 보리사(菩提寺)는 886년(신라 헌강왕 12년)에 창건된 사찰로, 당시 경주시 남산 지역에 존재하던 수많은 사찰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곳으로 파악되고 있다. 불상의 양식 및 조형기법으로 볼 때 이 불상은 보리사가 창건되기 100여년 전에 이미 만들어져 다른 사찰에 봉안되어 오다가 최종적으로 보리사 터에 자리잡아 현대까지 이어져내려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불상이 마지막으로 위치했던 보리사는 신라시대 당시에는 헌강왕과 정강왕릉의 위치를 정하는 기준이 될 정도로 유서 깊은 사찰이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숭유억불 정책에 의하며 완전히 폐사되었고, 이후 수백여년간 이 불상 하나만을 남겨둔채 폐사지로 흔적만 남아 있던 것을 1911년에 보경사(寶鏡寺) 비구니 박덕념(朴德念)이 다시금 중창하고, 1932년 비구니 남법명(南法明)이 중수하면서 다시 보리사의 명맥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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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에는 지금도 수많은 신라시대 불상들이 현존하고 있는데, 이 불상은 대좌(불상을 올려 놓는 자리)와 광배(부처님의 몸에서 비춰 나오는 빛을 표현한 조각물)를 모두 갖추고 있는 불상으로 그 가치가 더욱 높다. 특히 이 불상의 광배 뒷면에는 세상의 모든 질병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한다는 약사여래불이 가는 선으로 조각되어 있어 8세기 경 신라 불교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불상의 목에는 신라 특유의 삼도(불교에서 악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 죽어서 가는 세상으로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의 세 곳을 뜻함)가 뚜렷히 새겨져 있다.
불상의 손 모양은 오른손을 오른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 끝은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해서 배꼽 앞에 놓아두고 있는데, 이러한 손모양을 항마촉지인이라 하여 모든 악마를 굴복시켜 없애버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통견으로 표현한 옷에는 군데군데 옷주름이 새겨져 있다. 불상은 8각의 대좌 위에 앉아 있으며 별도로 마련된 광배에는 화불과 보상화 그리고 당초무늬로 장식되어 있는데, 광배의 내부에는 굵은 철선(凸線)으로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고 이 선을 따라 12잎의 꽃무늬를 새겼으며, 두광과 신광의 안쪽에는 보상화문·당초문을 화려하게 새겼고, 두광에는 3구의 화불(化佛), 신광에는 4구의 화불을 배치하였으며, 바깥쪽으로는 불꽃무늬를 유려하게 새겨놓았다. 이처럼 불꽃무늬·화불·꽃무늬 등이 빽빽이 새겨진 장식적인 광배는 이후 한국 석조불상 광배의 전형적인 형태를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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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은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 전에 조성된 8세기 신라 불상의 세련된 불격(佛格)을 사실주의 조각으로 성공시킨 당대의 역작으로 높이 평가된다. 이에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3. 바깥고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 두산백과 :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 한국어 위키백과 :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 영어 위키백과 : Borisa Sitting Buddha
- 답사여행의 길잡이 2 - 경주 : 경주 남산 미륵곡 석불좌상
- 대한민국 여행사전 : 경주 남산 미륵곡 석불좌상
- 대한민국 구석구석 :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4. 보물 제136호
신라시대의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남아 있는 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의 석불좌상으로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불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한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게 솟아 있으며, 둥근 얼굴에서는 은은하게 내면적인 웃음이 번지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힘없이 축 늘어진 느낌이며, 군데군데 평행한 옷주름을 새겨 넣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로 향하고 왼손은 배부분에 대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인데 다소 연약해 보인다. 불상과는 별도로 마련해 놓은 광배(光背)는 매우 장식적인데, 광배 안에는 작은 부처와 보상화·덩쿨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특히 광배 뒷면에는 모든 질병을 구제한다는 약사여래불을 가느다란 선으로 새겨 놓았는데, 이러한 형식은 밀양 무봉사나 경북대 광배 등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