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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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3. 바깥고리
4. 보물 제666호


1. 개요


慶州 南山 三陵溪 石造如來坐像. 8세기 ~ 9세기 경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의 삼릉계곡에서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 석조 불상.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 72-6에 소재 중이며, 대한민국 보물 제666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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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높이 142㎝, 대좌 높이 96.7㎝, 총 높이 2.38m.
경주 삼릉계곡에서 만들어진 8세기~9세기 경 통일신라 시대의 석조 불상으로, 원래는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시멘트로 보수되어 다소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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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발견 당시의 모습.사진 출처
정확히 언제 이렇게 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제강점기 때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에 이미 불상이 크게 손상되어 있었다. 광배의 경우 크게 파손되어 윗부분이 3분의 1 정도 결실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고, 몸통 또한 우측이 상당 부분 파손되었고 얼굴 또한 코 밑에서 턱까지 완전히 박살이 난 채로 참수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차원에서 유학자들이 불상을 끌어낸 후 목을 치는 일이 다반했는데 이 불상 역시 그때 변을 당했던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문제는 당시 일제가 이 신라시대 불상을 복구를 하려고 했는데 기술 수준이 낮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굉장히 엉성하게 작업을 해버렸다. 턱 부분을 대충 시멘트로 발라 머리 윗부분과 몸체를 이었는데 차라리 손보지 않음만 못한 수준이 되어 남산의 훌륭한 불상에 먹칠을 하고 만 것이다.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어 석가불로 추정되며,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아래의 연화대좌는 크게 상·중·하대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대석은 넓직한 1장의 자연석이며, 상면 중앙에 8각의 각형 2단굄을 장식하고 중대석을 떠받쳤다. 중대석은 8각이며, 각 면에 안상(眼象)이 음각되어 있고, 상대석은 연화좌로서 8각의 각형 1단 받침을 갖추었다. 각 연판 안에 꽃무늬를 다시 장식하여 화사하게 처리하였으며, 연화대좌 위에는 광배를 꽂았던 자리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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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조(丸彫)에 가까울 만큼 양감을 강조한 이 불상은, 같은 장소에서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약사여래좌상과 양식이 비슷하지만, 힘이 줄어든 옷주름 선, 섬세하고 미려한 장식적인 무늬의 광배와 대좌 등을 통해 볼때 그보다는 좀 더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불상의 제작 연대는 8세기 ~ 9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200~1,300여년 전에 만들어진 한국의 석조 불상으로, 신라인들의 불교문화 및 석조공예술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며, 또한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이 처했던 문화재 수난사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이에 1980년 6월 11일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3. 바깥고리



4. 보물 제666호


삼릉계곡의 왼쪽 능선 위에 있는 이 석조여래좌상으로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들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자리잡고 있다. 얼굴은 원만하고 둥글며, 두 귀는 짧게 표현되었다.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의 옷주름선은 간결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허리는 가늘고 앉은 자세는 안정감이 있다. 대좌(臺座)는 상·중·하대로 구성되었는데, 상대에는 화려한 연꽃무늬를 조각하였으며, 8각 중대석은 각 면에 간략하게 눈모양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하대는 단순한 8각대석으로 되어 있다.

8각의 연화대좌에 새겨진 연꽃무늬와 안상을 비롯하여 당당하고 안정된 자세 등으로 보아 8∼9세기에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