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봉

 

'''고운봉
高雲峰
'''
<colbgcolor=#878787><colcolor=#fff> '''본명'''
고명득 (高明得)
'''본관'''
제주 고씨
'''출생'''
1920년 2월 9일
충청남도 예산군
'''사망'''
2001년 8월 1일 (향년 81세)
서울특별시
'''학력'''
예산공립농업학교 (졸업)
'''가족'''
배우자, 고아진
'''종교'''
개신교
'''데뷔'''
1939년 '국경의 부두'
1. 개요
2. 생애
3. 대표곡
4.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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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가수이다.

2. 생애


1920년,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났다. 17살이 되던 1937년 예산공립농업학교(현 공주대학교 예산캠퍼스)를 졸업하고 서울특별시로 올라온다. 평소 자신이 존경하던 가수가 소속되어 있는 태평레코드에 찾아가는데, 그를 첫눈에 알아본 문예부장 박영호에 의해 "고운봉"이라는 예명을 얻고 전속 가수로 활동하게 된다. 이후 국경의 부두와 아들의 하소가 알려져 인기 가수가 되었다. 1941년 발매한 선창도 큰 인기를 얻게 된다. 1942년에는 콜럼비아레코드로 이동했다. 종전 후에는 일본에 건너가 활동을 하다가 1958년 귀국한다. 이후 대표곡 중 하나인 명동 블루스를 크게 히트시킨다.
2000년에는 고향인 예산에 그를 기리는 선창 노래비가 세워졌다. 자신이 직접 제막식에서 선창을 불렀다.
2000년까지는 가요무대에도 손수 출연하는 등 팔순이 넘은 몸에도 정정했으나, 이듬해인 2001년 3월에 뇌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졌고, 8월 1일 오후 2시 20분, 서울특별시 강동구 성심병원에서 노환에 따른 뇌경색 투병 끝에 별세했다.
현인과는 막역지간으로, 비록 고운봉이 1920년생이지만, 현인은 1919년 12월 생으로 고운봉과 3달 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친구로 지낸 듯 하다. 해방 후에 명동 대폿집에서 둘이 만나서, 현인이 "이제 나라를 찾았으니 한국 가요 건설에 힘을 쓰자" 라고 했다고.

3. 대표곡


  • 국경의 부두
  • 선창
  • 남강의 추억
  • 홍등야곡
  • 명동 블루스
  • 백마야 가자
  • 인생은 육십부터

4. 수상


  • 옥관문화훈장(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