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틀리프 폰 잉골슈타트

 


1. 개요
2. 작중 행적


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은하제국의 장군으로 다곤 성역 회전에 참전했다. 계급은 중장.

2. 작중 행적


본편으로부터 150년 전, 은하제국의 초계함대가 자유행성동맹군의 공격을 받아 전멸한 이후 은하제국은 자유행성동맹을 참칭하는 '불경한 반도'들을 섬멸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은하제국은 오랜 내란과 반란을 이겨내고 노련한 제독과 강병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반도들을 토벌하는 데는 별 문제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당시 황제 프리드리히 3세가 황태자인 장남 구스타프 대신 삼남 헤르베르트 대공을 토벌군 총사령관이 임명하면서 일이 커졌다. 이는 프리드리히 3세가 병약한 구스타프 대신 헤르베르트를 황태자로 삼겠다는 뜻이었고 이에 따라 원정은 '대규모 수렵'에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거사'로 탈바꿈한다. 황제의 이복동생인 슈테판 폰 바르트바펠 후작이 원정을 반대했으나 황제의 심기를 거슬러 작위와 군 계급, 영지의 8할을 박탈당하고 제도 오딘에서 추방당했으므로 아무도 원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3세는 헤르베르트가 군재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므로 헤르베르트를 보좌할 참모진에 다수의 노련한 제독들을 배치했다. 하지만 헤르베르트의 반발로 프리드리히 3세는 원정군 인사권의 절반을 헤르베르트에게 주었고, 헤르베르트는 사교실에 어울리던 자기 친구들을 참모진에 배치했다. 이때 프리드리히 3세의 의향으로 배치된 게 고틀리프 폰 잉골슈타트 중장이다.
원정에 떠난 후 총사령부는 헤르베르트와 그 친구들의 유흥장으로 변모했으나 잉골슈타트를 비롯한 참모진들은 이를 묵인했다. 왜냐하면 군에 관해서는 1도 모르는 헤르베르트가 공연히 군무에 간섭하느니 그냥 이렇게 노는 게 전투에 방해되지 않고 공을 세우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헤르베르트는 원정함대에 일어난 사고에 일일이 보고를 받더니 나중에는 요란하게 치장된 전용 셔틀로 사고현장에 방문했다. 헤르베르트의 시찰이 끝날 때까지 함대는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잉골슈타트를 비롯한 참모진은 없는 말을 지어내서라도 헤르베르트의 관심을 전장으로 돌려놓아야 했다.
이런 사건사고 속에서도 원정함대는 이제르론 회랑을 통과하여[1] 다곤 성역에 도착해서 먼저 동맹군과 소규모 교전을 벌였다. 전투가 벌어지자 잉골슈타트는 실질적인 총사령관으로서 익숙하지 않은 지리에다가 불안정한 공역인 다곤 성역을 보고 제국함대를 고밀도로 집중 배치해서 공격하는 반란군을 격퇴하여 소모시킨 다음 결정에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7월 16일 제국군이 동맹군 올레빈스키 함대를 격파하는 첫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에 들뜬 헤르베르트 대공은 전군의 식사에 포도주를 보급하는 등 장병들의 사기를 돋궈주더니 다음 날 전 함대에 총공격을 명령했다. 이 명령을 듣고 잉골슈타트는 아연실색했다.
암담한 제국군 참모진의 반응에도 동맹군은 오히려 제국군이 상식을 무시하고 병력을 분산한 것을 보고 제국군이 아군의 예상보다 훨씬 더 성계의 지리를 잘 파악하는 게 아닐까? 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제국군은 초반에 동맹군을 밀어붙이며 승기를 잡았지만 제국함대는 지리도 모르는 다곤 성역에 분산 배치되어 고립되었다. 한편 제국군의 의도에 한참 고민한던 동맹군 총사령부는 마침내 제국군이 어떤 의도로 병력을 분산한 게 아닌, 그저 '''병신'''이라서 병력을 분산 배치했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 즉시 G16 공역에 위치한 제국군 본대를 동맹군 전 병력으로 쳤다.
동맹군의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잉골슈타트는 분산된 제국함대에 각각 일정범위의 공역을 맡겨 전투를 담당하고, 필요할 경우 유턴해서 본대를 공격하는 적군의 배후를 친다는 분진합격,分進合擊,전술을 구상했고 이를 위한 수백 척의 연락용 셔틀을 운행했으나 불충분한 지리정보, 각각 고립된 대병력을 운용하는데 지나치게 정밀한 작전 등으로 각각 분산된 제국군은 동맹군의 발자취만 쫓은 채 우왕좌왕했다. 그래도 제국군 본대는 돌진하는 동맹군을 부로 함대가 동맹군의 좌측면으로 돌아가 견제하여 전진 속도를 늦추는 데 성공했다. 이때 후방의 카우프만 함대를 부로 함대의 오른쪽에 병렬 배치하여 동맹군의 좌측 후방에 화력을 집중했다면 승리할 수도 있었지만, 헤르베르트의 변덕스러운 명령에 대비해서 예비병력을 확보해야 했고 동맹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데다가 동맹군 외르스테드 함대가 제국군의 통신과 심리를 교란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결국 제국군은 마지막 승기를 놓쳤고, 7월 20일 파센하임 중장이 전사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헤르베르트는 잉골슈타트를 호출해서 그를 매도했으며 계급장을 뜯고 군화로 짓밟았다. 이 사태에 잉골슈타트를 비롯한 참모진들 모두의 무인의 긍지는 큰 상처를 입었다.
결국 제국군은 동맹군의 포위섬멸전에 무려 400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며 참패했고, 황제를 꿈꾸던 헤르베르트 대공의 꿈도 박살나버리고 말았다. 이 대참패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고, 제국군은 그 책임자로 잉골슈타트를 택했다.
잉골슈타트는 전투에서 살아남았지만 위병에게 총을 뺏겨 자결하지 못했다. 총을 뺏기자 그는

"......그렇군. 내 목숨은 적이 아니라 아군의 총을 위해 남겨두어야 하는 모양이지?"[2]

[3]

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제도 오딘의 비밀군사법정에서 참패의 책임뿐만 아닌 보급물자 횡령과 정보 혼란의 혐의까지 덧씌워져 사형을 언도받았다. 잉골슈타트는 군사재판에서 침묵을 지켰으나, 그와 사이가 나쁜 오스발트 폰 뮌처 중장은 변호인으로 지명되자 열과 성을 다해 잉골슈타트를 변호하고 검사측을 규탄했다.
하지만 이 군사법정은 원정 실패의 책임을 가리는 게 아닌, 패전의 책임을 한 사람에게 덧씌우는 게 목적이었으므로 감형을 요구하는 뮌처의 마지막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잉골슈타트는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 열과 성을 다해 자신을 변호해 준 뮌처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의사를 표명한 뒤 하전입자 광선총에 맞아 사망했다.
[1] 물론 그때는 이제르론 요새가 없었다.[2]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1권 <황금의 날개>, 김완, 이타카(2011), p.54[3] 만약 그가 여기서 자살하면 패전에 대한 책임은 차순위에게 넘어갈 것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