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곤 성역 회전

 


'''다곤 성역 회전
Battle of Dagon Starzone · ダゴン星域会戦'''
날짜
우주력 640년, 제국력 331년 표준력 7월 14~22일
장소
자유행성동맹령 다곤 성역
교전 당사자
[image]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image]
[image] '''자유행성동맹''' [image]
지휘관
헤르베르트
고틀리프 폰 잉골슈타트
파센하임†
하젠클라버†
알렌슈타인
카우프만
부로
슈미틀린
비로라이넨
링 파오
유수프 토패롤
안드라슈
네이스미스 워드
휴 외르스테드
올레빈스키
문가이
병력
은하제국군 원정함대
함선수 52,600척, 장병 440만 8000명
자유행성동맹군
함선수 불명, 장병 250만여 명[1][2]
피해 규모
함선 불명, 장병 403만 9800명 전사[3]
함선 불명, 장병 16만 명 전사
결과
은하제국의 참패
1. 개요
2. 배경
3. 제국의 토벌준비
3.1. 제국 내의 이견
3.2. 제국 원정군 편성과 출발
4. 동맹의 준비
5. 전투의 시작
5.1. 제국군의 오판과 동맹군의 오판
5.2. 동맹군의 공세
5.3. 다곤의 포위섬멸전
6. 전투결과
6.1. 전후 처리
6.2. 기타

은하영웅전설 외전 <황금의 날개>의 에피소드
(시작)

다곤 성역 회전

라인하르트 폰 뮈젤 1차 암살미수사건

1. 개요


ダゴン星域会戦
  • 등장 작품
    • 은하영웅전설 1권 <여명편> 서장 <은하계사 개략>[4]
    • 은하영웅전설 외전 1권 <황금의 날개> 1장 <다곤 성역 회전기>
  • 시기: 우주력 640년, 제국력 331년 표준력 7월 14일 ~ 22일 4시 30분
은하제국자유행성동맹 사이 벌어진 전투이자, 160년간 지속될 기나긴 제국-동맹 전쟁의 시작.
은하제국군 원정함대가 포위되어 섬멸당한 까닭에 '다곤의 섬멸전' 또는 '다곤 섬멸전'라고도 불린다.

2. 배경


민주국가 은하연방이 전제군주제의 은하제국으로 변모하며 공화파 인사들이 처참하게 제거당하고 주변 인물들까지 탄압받았어도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의지는 200여년이 흘러도 변함이 없었다. 은하제국은 이런 공화주의에 대한 열망을 제거, 처형, 강제노동소에 수용 등으로 답했다.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든 가혹한 환경에 잡혀온 사람들은 수없이 제국령에서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대부분 실패하여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그러던 와중 알레 하이네센이라는 한 청년의 주도로 약 40만 명의 유배자들이 대거 탈출을 시도,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할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무려 약 1만 광년의 긴 여정 끝에 지도자 알레 하이네센과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나 하이네센의 동지였던 응웬 킴 호아가 남은 사람들을 이끌고 수십년이 넘는 여정을 계속한 끝에 후일 바라트 성계라 이름 붙여질 성계에서 인류가 정착할 완벽한 조건을 가진 행성을 발견,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자유행성동맹을 건국하였다. 초대 시민은 약 16만 명.
피땀어린 노력 끝에 수백년만에 부활한 민주공화주의의 불꽃을 꺼트리지 않도록 동맹 시민들은 열성적으로 인근 성계를 개척하고 인구를 늘리며 국력을 신장시켰다. 골덴바움 왕조는 아직 1만 광년이나 떨어진 미지의 행성에 '불손한 공화주의자'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몰랐으나 자유행성동맹은 언젠가 제국과 마주할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고 그 때를 대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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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동맹의 아버지들의 예측대로 우주력 640년, 제국력 331년 2월,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의 변경지역 소규모 함대가 마주치며 제국은 자유행성동맹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언젠가 제국과 접촉하리란 것을 알고 대비하고 있던 동맹군과는 다르게 제국군은 생각하지 못한 외계함대의 출현에 크게 당황하였고 결국 참패하여 누구도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다만 제국군 함선 한 척이 격침되기 직전 본토로 필사적인 교신을 시도한 덕분에 은하제국측에서도 자유행성동맹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었고 제국은 과거 수백년간의 모든 기록들을 다시 꺼내 면밀히 검토한 결과 오래 전 불손한 공화주의자들이 대거 탈출했던 기록이 발견, 당시에는 어디서도 이들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미지의 우주 어딘가에서 모두 죽었을 것이라 판단하여 흐지부지 넘어갔으나 이 일을 계기로 은하제국은 이 도망자들이 죽지 않고 어딘가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3. 제국의 토벌준비


은하제국은 전신인 은하연방, 그보다 더 전인 지구통일정부 시절부터 범죄자 소탕, 항로 안전 등의 이유로 상당 규모의 함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지구통일정부가 은하연방이, 은하연방이 은하제국이 되었어도 함대의 규모는 인류의 발자취가 닿는 곳이 넓어지는 만큼 더욱 커져만 갔으며 당시 은하제국 함대는 제국 건국 이후 빈번하게 벌어지는 여러 종류의 반란,[5] 공화파 내지 반제국파들의 파괴행위, 난동 등을 진압하며 병사들은 강인하게 장교들과 장군들의 노련함은 더욱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렇기에 제국 정부와 군부에서는 군무상서 팔켄호른 원수가 동맹령 원정을 '대규모 토벌'로 표현할 정도로 반란세력 토벌에 전혀 위기감을 느끼지도 달리 특별히 생각하지도 않았다.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개입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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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3세는 장남 구스타프를 황태자에 서임하여 은하제국의 공식적인 후계자로 공인시켜두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황태자는 선천적으로 건강이 매우 좋지 못하여 국가를 통치할 능력은 고사하고 황태자의 직무는 커녕 일개 개인으로써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 조차 무척 힘들어하였다. 황실 근위대 열병식에 참석하던 중 실신한 일까지 있어 황제는 자신의 큰아들이 거대한 제국을 통치할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황제는 황태자를 폐위시키기로 결심한다.
프리드리히 3세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은 앞서 말한 구스타프. 차남 막시밀리안 요제프는 몸도 튼튼하고 머리도 좋은 데다가 인격 면에서도 흠잡을 곳이 없어서 그야말로 완벽한 황제감이었으나 본인이 제위계승에는 일체 관심을 두지 않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하급 귀족의 여식인 탓에 문벌귀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어 황태자의 자리를 물려받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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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 헤르베르트는 신체적 요소와 외가 집안 배경, 지혜, 정치적인 야심에 있어서 흠잡을 곳은 없었다. 그러나, 막시밀리안 요제프랑 달리 성격에서는 그야말로 완벽한 찌질이였다. 그야말로 매사에 신중함이 부족하며, 오만하고 자만이 심했고, 황실의 일원으로 태어나 살면서 고난을 겪어본 적이 없다보니 성격적인 부분에서 황태자감으로 적합한 지에 대하여 다소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헤르베르트가 살면서 겪어본 힘든 일은 사냥을 나가 노리던 사냥감을 놓친 일, 시녀(헤르베르트의 작은형님이자 황제의 차남 막시밀리안 요제프를 모시고 있고 훗날 황후 자리에 오르는 지클린데)에게 추파를 던지다 퇴짜를 맞은 일 정도 밖에 없었고 그런 고난(?)에 대해 제위하면 반드시 보복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터였다.
그리고 막내인 리하르트는 모든 면에서 헤르베르트보다 뒤처졌다. 결국 프리드리히 3세는 고심 끝에 헤르베르트를 황태자로 낙점하고 때마침 나타난 대규모 반란군을 토벌하는 원정함대 사령관직을 수여하여 제국 정부과 군부의 고위인사들에게 차기 황위 계승자가 임명되었음을 간접적으로 공표하였다.
한때 제국 수뇌부에서 '대규모 수렵'이라 불리며 대수롭게 않게 여겨진 원정작전은 훗날 제국의 새로운 황제로 등극할 헤르베르트 대공의 제위계승을 빛내주어야 한다는 새로운 목적이 생기자 역사상 전무후무한 거사라는 미사여구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6]

3.1. 제국 내의 이견


대규모의 수렵이 역사상 유례 없는 거대한 원정으로 뒤바꾸어졌으나 은하제국 수뇌부에서는 황제의 이복동생, 슈테판 폰 바르트바펠(Stephan von Bartbaffel) 후작을 필두로 하는 '원정 반대파'가 황제의 의중을 거스르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바르트바펠 후작은 황제가 참석한 어전회의에서 3가지 이유를 들어 원정계획을 격렬하게 비판하였다.

"이번 원정에는 세 가지 불리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 시간에서 불리합니다. 준비기간이 지나치게 부족합니다.

그러나 필승을 기하려면 조사와 정보 분석에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이는 적에게 방어를 준비할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이 피하기 어려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신지?

둘째, 지리조건에서 불리합니다.

아군은 1만 광년을 원정해야 할진대, 대군의 보급만을 생각하더라도 이 원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적은 분명 정밀한 성도,星圖,를 지녀 지리에도 밝을 터인데, 반면 아군은 이정표도 없는 적지에서 싸워야만 하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인적자원에서 불리합니다.

이처럼 중대하고도 어려운 원정의 지휘를 숙련된 장수에게 맡기지 않고, 전쟁과 카드놀이조차 구분하지 못하며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는 교만한 자에게 던져주다니, 이 무슨 망령된 짓이란 말입니까.

공사,公私,의 차이를 모르고, 국운,國運,과 가운,家運,을 동일시하며, 나아가 국가와 민중을 해하는 일이 없도록 본관은 절실히 희망하는 바입니다.[7]

이 발언은 어전회의장에 있던 모두를 전율케했다. 황제가 이미 이 전쟁을 허가했고 차기 제위계승자를 위한 의식으로 이용한 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공표했음에도 바르트바펠 후작이 이를 대놓고 거스르며 반대의 목소리를 냈고, 특히 후작의 마지막 발언은 일반 신하들이 감히 입에도 올리지 못할 위험한 수준의 발언이었다. 바르트바펠 후작으로써는 단지 원정계획의 어려움과 사령관의 자질 문제를 동시에 지적한 것이지만 그 강도가 너무 과했다. 황태자와 황제를 동시에 비판했기 때문이다.
다른 장소도 아니고 부황과 중신들이 모두 참석한 어전회의장에서, 그것도 자기 자신이 있었음에도 면전에서 대놓고 비판당한 당사자 헤르베르트는 숙부에게 격한 분노를 터트렸으나 이어진 후작의 일침에 차마 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숙부님께서는 저를 가리켜 교만하다 하셨습니까? 부당한 말씀을 하신다면 아무리 일족의 장로,長老,라 하여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장로라 불리기에 지나치게 젊은 숙부는 나이 차이가 열 살 도 되지 않는 조카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헤르베르트 대공, 경이 두 형님을 추월하여 제위에 오르기를 바란다면 이번 원정을 지휘할 생각은 접어두시오. 경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하니. 진정으로 제위를 바란다면 최소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그 정도 판단력은 갖추어야 하지 않겠소이까. 시정잡배라면 폐해는 기껏해야 가족과 지인에만 미칠 터이나, 황제라면 수백 항성세계에 영향이 미치는 법이외다. 함부로 무훈을 자랑하기 전에 무력을 남용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배워야 하지 않겠소."

황제는 자신의 의중을 알면서도 반대하고, 대공은 물론 자신까지 비판하는 후작의 모습에 심기가 크게 불편해졌다. 그러나 황제는 노기를 잠시 억누르고 그렇다면 후작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후작은 이미 1세기 이상 방치된 일이니 굳이 지금 당장 행동을 취할 필요는 없다고 운을 뗀 뒤 제국령과 반란세력권의 접촉지점에 대규모 군사거점을 건설하여 외적의 침입을 막고 훗날 준비를 마치고 원정에 나서야 한다고 답하였다.
후작의 방안에는 달리 그릇된 부분은 없었고 황제 본인도 여기에 별 말이 없어 상황이 이렇게 끝나려나 싶을 찰나,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생각하여 분노를 터트렸던 헤르베르트 대공이 후작의 발언에 꼬투리를 잡으며 상황은 파국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대공은 후작이 제국령과 반란군의 세력권을 나누어 말한 부분을 문제삼으며 은하제국이 온 우주의 유일한 정치체제이며 황제 폐하는 전 인류의 통치자라는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였고 이에 바르트바펠 후작이 반론을 가한다.

"타인의 의견에 꼬투리를 잡는 것이 황제의 자격이라 배우셨소? '''골덴바움 가문의 장래가 기대되는구려'''."

상술했듯이 바르트바펠 후작은 문제 발언으로 황제의 심기를 건드렸기에, 프리드리히 3세는 후작의 말이 끝나자 마자 억눌렀던 분노를 폭발시켰고 어전회의에서 바르트바펠 후작의 발언을 금지시켰다. 어전회의의 참석한 다른 중신들은 후작의 발언과 황제의 분노를 지켜보며 은연에 후작의 운명을 직감했으며, 이후 그 누구도 반대의견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결국 황제의 뜻에 따라 원정을 진행하는 것으로 회의는 마무리지어졌다.
자신의 앞날을 직감한 바르트바펠 후작은 회의장을 나서자 마자 지니고 있던 제국군인의 직위를 반납하고 황궁에서 물러났다. 황제 프리드리히 3세는 바르트바펠 후작을 수도 오딘에서 추방하여 다시는 오딘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라 명했고 후작의 작위를 남작으로 강등시키고, 후작 영지의 8할 이상을 몰수하였다. 바르트바펠 '남작'은 이후 남은 영지의 자택에 칩거하며 다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약 3년 뒤 병으로 사망했다.[8]

3.2. 제국 원정군 편성과 출발


바르트바펠 후작의 의견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옳고 그름에 대한 것이 아니었고 황제의 이복동생이던 후작이 강직하게 반대를 멈추지 않다가 비참하게 내쫒기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다만 황제는 자신의 손으로 쫓아낸 이복동생의 말처럼 아들 헤르베르트를 '교만하다'고까지 보지는 않았지만, 대규모 함대를 지휘할 역량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은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차기 황태자로써 화려한 '경력'을 달아주는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만큼 총사령관은 헤르베르트 대공이었으나 실질적인 지휘는 경험많은 노련한 제독들과 참모들이 담당하도록 원정함대 인사에 상당부분 개입하였다.
그런데 헤르베르트 대공이 황제가 준비해둔 함대 지휘부 인사에 크게 반발하였고 결국 황제가 한 발 물러나 인사권의 절반을 헤르베르트 대공이 담당하도록 조치하였다. 대공은 후작의 우려대로 받아든 인사권을 아낌없이 휘둘러 사교실 친구들에게 벼슬자리를 부여했고 그 결과, 생전 처음 군복을 입어보는 20대의 장성 넷과 영관급 장교 여덟이 탄생했다. 그리고 헤르베르트 본인은 제국 원수직을 하사받아 원정함대 총사령관이 되었다.
대공 전하는 물론이요 대공이 선발한 지휘관들은 제국군 장병들에게는 가히 재앙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나 다행스럽게도 황제가 직접 개입한 나머지 절반의 인사들은 흠 잡을 곳이 없었다. 고틀리프 폰 잉골슈타트 중장, 하젠클레버 중장, 파센하임 중장 등 실전 경험이 출중한 유능한 제독들이 함대에 배치되었으며 이들은 사실상 지휘관과 참모진이랍시고 자리에 앉아있는 장식품들 대신 원정함대를 총지휘하게 되었다. 원정함대는 5만 2600여척, 장병은 총 440만 8000명이었다.
헤르베르트 대공은 여러 우려들과는 달리 오딘에서 출정한 직후 얼마 동안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긴장감을 적절하게 유지했다. 그러나 몇 달이 걸리는 긴 여정이 계속되자 지루함을 느낀 대공은 긴장감을 모두 잊고 어느 순간부터는 군복을 입는 것조차 거부하며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주요 지휘관과 참모진 절반이 자신의 연회장 친구들, 원정군 총사령부가 음주와 도박 등 여흥으로 점철되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9]
게다가 원정 함대가 이동하는 동안 아군 함선끼리의 사고, 각종 사고 등이 발생할 때마다 함대 기함의 대형 화면을 통해 일일히 보고를 받으며 시간을 낭비해 참모진을 힘들게 하더니, 급기야 화려하게 장식된 전용 셔틀에 탑승해 일일이 시찰하기 시작했다. 이는 대부분 사령관이 보고 받을 필요도 없는 사소한 일들이었으나 대공이 보고를 넘어 아예 하나하나 시찰하겠다며 나서는 통에 황족에 대한 예우를 준수하느라 매번 모든 함대가 움직임을 멈추고 대공 전하의 시찰이 끝나기를 기다려야만 했고 대규모 반란군 진압을 위한 원정함대를 지휘석의 장식품들 대신 총괄하고 있던 진짜 참모진들의 심정은 울화로 들끓었다. 그렇다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대공 전하를 어찌할 수는 없으니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참모진들은 마음에도 없는[10] 갖가지 말을 지어내 대공을 설득해 함대를 다시 움직여야만 했다.

4. 동맹의 준비


변경 성역에서 제국 함대와 충돌하였다는 소식은 동맹정부에게도 신속하게 보고되었다. 자유행성동맹의 존재를 알아차린 은하제국군이 어떤 방식으로든 군사행동을 펼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고 승리하면 다행이지만, 패배하면 선조들이 백여 년에 걸쳐 지켜낸 민주공화주의의 불씨가 꺼질 것이었다.
은하제국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바, 건국 직후부터 군사력 증강에 최선을 다했으나 기초적인 국력 차가 너무 심각했다. 국력은 물론 방위를 위한 군사력도 크게 모자란 상황에서 대대적인 침공이 예고되었고 동맹정부는 국가적인 총비상이 걸렸다. 다행스럽게도 이 시기 동맹의 정치가들은 선조들이 수호해온 민주공화주의를 지켜내야한다는 사명감을 잊어버리지 않았고 능력은 물론 인품도 훌륭한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 의장 마누엘 후안 파트리시오는 정적이었으나 국가를 위해 입각했던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 국방위원장 코넬 영블러드의 보고를 받아 즉각 대응에 나선다.
파트리시오 의장은 자유행성동맹군 통합작전본부장 겸 후방근무본부장을 역임하고 있던 비로라이넨 대장의 추천을 받아 유능한 링 파오 중장유수프 토패롤 중장을 방어 작전을 총지휘할 사령관과 이를 보좌할 참모장에 임명하였다. 다만 이 두 장군은 능력에는 트집잡을 여지 하나 없는 유능한 인물들이었으나 인격과 성격 면에서 문제가 많았다. 참모장 유수프 토패롤 중장은 상관이고 부하건 간에 문제가 있다면 독설을 퍼붓는 것을 주저하지 않아 평판이 몹시 좋지 않았고 사령관 링 파오 중장은 문자 그대로 난봉꾼으로 여자를 수시로 갈아치우며 잠자리를 함께하며 엄청난 구설수를 만들고 다녔다.[11]
이에 사령관 인사를 재고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심지어 국방위원장 코넬 영블러드가 직접 찾아와 재고를 요청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파트리시오 의장은 링 파오의 행동이 결코 칭찬 받을 일은 아니나 모두 범죄의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니었냐고 되물었고 영블러드는 그건 맞지만 동맹 시민들의 군부와 정부에 대한 신뢰 문제라며 재고를 요청했다.[12]
파트리시오 의장은 링 파오 중장을 학교의 여자 기숙사 사감으로 임명하려는 것이 아니라[13] 제국군에 맞서 조국의 운명을 지킬 사령관으로 임명하는 것이라며 개인 사생활과는 별개로 지휘관으로써의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들어 인사 명령을 번복하지 않았다.

"오늘 내 군 경력을 통틀어 가장 끔찍한 명령을 받았지, 어떤 명령인지 듣고 싶나?"

"그거 꼭 들어보고 싶은걸."

"자네와 함대를 짜라더군. 자네가 사령관이고, 내가 참모장이라는 거지. 어때, 끔찍한 이야기 아닌가?"

"흐음......."

링 파오는 자못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진짜 나 같아도 사양하고 싶은 명령인걸. 나랑 같이 싸우라니......."

국방위원장을 필두로 하는 재고 요청은 해결했으나 이제는 다른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바로 사령관과 참모장 본인들. 유수프 토패롤 중장의 독설은 보통 누군가 잘못한 일이 있었을 때 폭발한다. 그런데 참모장으로써 모셔야하는 사령관이 다름 아닌 링 파오 중장. 올바른 군인은 커녕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도 덜 갖춘 것으로 보이는 자가 상관이 되자 유수프 토패롤 중장이 내뱉은 독설의 농도가 평상시보다도 몇 배는 더 지독해졌고 빗발치는 보고에 국방위원장 코넬 영블러드는 휘하 국방위원들을 보내 참모장을 다독이도록 했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이 그대로인데 일이 해결될 리 없다. 맹렬한 독설의 반격에 국방위원들이 압도되어[14] 쓸쓸히 복귀하였고 이들은 국방위원장을 찾아가 국가의 운명이 걸린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미 파트리시오에게 설득된 영블러드는 초연한 태도로 사령관과 참모장을 신임하였고 국방위원들은 의장과는 정적 관계에, 링 파오의 사령관 임명에 있어 앞장서서 반대하던 당사자가 의장을 한번 만나고 돌아오더니 태도가 정 반대로 돌아서 있는 모습에 의장이 위원장을 세뇌라도 한 것이냐며 경악한다.
국방위원들은 조국의 운명이 벼랑 끝에 내몰려 있는 상황에서도 이런 사령관과 참모장을 그냥 둘 수 없다며 자진하여 이번에는 사령관 링 파오 중장을 찾아간다. 이들은 진정으로 국가의 위기를 걱정하며 사령관의 의지를 북돋아주기 위해 찾아간 것이나 문제는 링 파오는 식사 중. 성격이 개차반스럽기로는 유수프 토패롤 못지 않고, 여기에 식사 시간을 방해받았다고 불쾌해진 링 파오는 민주주의는 못 먹지만 디저트는 먹을 수 있지 않느냐며 국방위원들을 놀렸다. 이에 분노한 위원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게 된다.[15]
이런저런 사건들을 거치며 자유행성동맹 통합작전본부는 링 파오 중장을 사령관에 유수프 토패롤 중장을 참모장으로 임명하고 각기 경험있고 유능한 네이스미스 워드, 안드라슈, 외르스테드, 올레빈스키, 문가이 제독들을 휘하 지휘관으로 배속시켜 약 250만 명의 대군을 편성했다.[16] 병력 수는 제국군의 절반으로 압도적인 열세이나 자국령 내에서 방어전을 펼치는 만큼 상황이 그렇게 절망스럽지는 않았다.[17]
동맹군은 방어전에 유리한, 여러 장해물들로 미궁처럼 엮인 다곤 성역을 전장으로 설정하여 출격한다.

5. 전투의 시작


우주력 640년, 제국력 332년[18] 7월 8일. 동맹군에 유인작전에 걸려든 제국군은 다곤 성역으로 진입한다.
전방 지역에서 초계활동을 펼치고 있던 동맹군의 구축함 야노슈가 제국 원정군을 포착하였고 동맹군은 정찰 활동을 거듭하며 7월 10일 쯔음에는 제국 함대의 규모를 어느 정도 파악하였다.
7월 14일, 양측의 선발 분함대 사이에서 교전이 벌어진다. 약 3000만 km의 거리에서 포격을 몇 차례 주고받다가 동맹군이 철수 했고 전투 규모도 작고 거리도 떨어져 있어 양측 모두 손실은 없었다.
실질적으로 제국 함대를 총지휘하던 고틀리프 폰 잉골슈타트 중장은 궁정 사교실로 둔갑한 총사령부를 떠나 전함 괴팅겐 제2함교에 집무실을 설치하여 본격적인 지휘 활동에 들어갔다. 정보수집 및 분석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 동맹군의 의도에 말려들어 진입한 다곤 성역은 불안정한 항성과 대량의 전자파, 삼중의 소행성대가 항성을 에워싼 험준한 지형이었고 적군에 비해 정보가 극히 부족하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잉골슈타트 중장은 아군을 집중배치하되 선제공격에는 나서지 말고 들어오는 적군의 공격을 막아내어 반격하는 것을 반복하여 적군의 전력을 소모시키고 정보를 수집한 다음 결전에 나서는 기본 전략을 수립하였다.
7월 16일, 첫 전투가 벌어졌고 제국군이 승리하였다. 동맹군 올레빈스키 제독이 지휘하는 함대가 전면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제국군이 펼친 종심진에 걸려들어 협공을 당했다. 외르스테드 함대와 워드 함대가 신속하게 지원에 나서 전멸은 면했으나 병력의 3할을 상실하였고 적군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된 사령관 링 파오 중장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교전을 피하라는 지시를 하달한다.

5.1. 제국군의 오판과 동맹군의 오판


16일의 전투는 소규모로 벌어져 전쟁에서 전술적인 영향력 하나 없는 작은 교전이었다. 그러나 이 부질없는 제국군의 승리는 다곤 성역 회전의 승패를 결정한 가장 거대한 전략적 복선으로 작용했다.
은하제국군 원정함대 총사령관 헤르베르트 원수는 승리에 기뻐하며 장병들을 치하하고 승전 이후 직위와 명예를 약속하며 당일 장병들의 식사에 포도주를 배급하도록 명했다. 잉골슈타트 중장은 의미 없는 승리에 도취되는 것이 아닌가를 걱정했으나 총사령관이 이를 장병들의 사기 진작에 이용하며 병사들의 사기가 크게 오르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또한 지리적으로 어두운 적의 영역에서 싸우는 만큼 당분간 신중하게 적의 행동에 대응해야 한다고 판단했으나 상황은 잉골슈타트의 생각을 깨부수고 급변하기 시작한다.

"적은 두려워할 존재가 못 된다. 망설일 이유가 어디 있으랴. 전군은 즉시 공세에 나서라. 폐하의 적을 족멸,族滅,하여 제국의 변경을 안녕케 하리라."[19]

과거 바르트바펠 후작이 지적한 적이 있었으나, 사실은 지적했던 것 이상으로 헤르베르트 대공은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려 하지도 않고 그때 그때 내보이기 때문에 상황이 아무런 문제 없이 진행될 때는 대책없이 낙천적이고 상황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심각하게 비관적으로 돌아선다는 것이다.
총사령관 헤르베르트 대공은 16일의 보잘 것 없는 승리에 기뻐하더니 이 싸움에서 자신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며, 나아가 차기 황위계승자로써의 입지를 완벽하게 굳혔다며 도취되었다. 급기야 큰형 황태자 구스타프는 오래 살지 못할 몸이니 편안한 최후를 맞이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작은형 막시밀리안 요제프는 제위를 넘볼 처지가 못된다는 '분수'를 알고 있으니 적당한 직위와 영지를 하사하여 잘 살도록 해주고[20], 동생 리하르트는 감히 자신이 가져갈 제위를 탐하려 했으니 가만 두지 않겠다며 오딘으로 개선해 황위를 물려받을 미래를 꿈꾸며 끓어오르는 흥분을 억누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튿날인 17일, 모든 함대를 진격시키라는 명을 내린다.
잉골슈타트 중장은 복잡한 다곤 성역의 특성을 보고받으며 숫적으로 월등하지도 쉽게 승리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안전한 퇴로를 확보시킨 상황에서 동맹군을 전면전으로 끌여들여 단번에 괴멸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일 동맹군이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중심으로 전면전에 관심이 없다면 철수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자기도취에 극도로 흥분한 총사령관의 즉흥적인 공격 명령에 잉골슈타트 중장이 세운 계획은 모조리 수포로 돌아갔고 명령에 따라 마구잡이로 전진한 제국 함대는 다곤 성역 각지에 분산되어 고립되고 만다.

"적은 대체 어디 있나?"

이 심각한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더더욱 심각했다.

"지금은 그보다도 우리는 대체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해답을 내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 제국군 슈미틀린 제독과 오퍼레이터의 대화

지형 정도 하나 없는 상황에서 병력을 마구 분산시켜 사방에 고립된 제국군은 필히 전멸당했어야 했다. 그러나 예상과 상식을 뒤엎는 제국군의 맹렬한 진격에 동맹군 사령부가 혼란에 빠찌며 전황은 예상 밖의 또다른 예상 밖으로 흘러갔다.
동맹군의 링 파오 중장과 유수프 토패롤 중장은 이제까지의 제국함대의 '상식적인' 움직임을 당연하게 여겼다. 정기적인 보급도 불가능하고 지리적인 정보 하나 없는 제국군이 취할수 있는 당연한 행동을 염두하고 이에 맞춰 작전을 세워두었는데 느닷없이 제국군이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취하자 동맹군 사령부는 제국군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다고 오판하였고 작전 전체가 어그러졌다고 판단한 링 파오 중장은 고심 끝에 외르스테드 제독에게 제국군 본대에 대한 공격을 지시룰 하달한다.
7월 18일 정오, 동맹군 외르스테드 제독의 공격은 맹렬했다. 잉골슈타트를 위시한 제국군 지휘부는 헤르베르트 대공이 겁이라도 먹고 도주해버리면 전선이 그대로 붕괴될 수도 있다는 불길함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러나 헤르베르트 대공은 겁을 먹기는 커녕 되려 기함을 전진시키도록 명하며 총사령관의 용기에 자극받은 각 함대는 반격을 개시하여 동맹군이 압도당하기 시작한다.
이에 동맹군 안드라슈 제독이 우회하여 제국함대의 우익을 화려하게 날려버리기 시작했으나 전면전을 벌이기에는 병력 차가 압도적 열세였던 동맹군은 자칫 돌파당해 섬멸당할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헤르베르트 대공의 즉흥적인 명령으로 공세를 개시한 터라, 제국군 지휘부는 동맹군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동맹군이 숫자가 적어 진영의 두께가 얇다는 점도 몰랐고 동맹군 안드라슈 제독의 거센 공세에 동맹군이 포격섬멸전을 시작했다고 오판해버려 헤르베르트 대공을 설득하여 공세를 중단하고 일시 후퇴하며 동맹군은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동맹군은 상황이 예측을 벗어난데다가 패배 위기에까지 몰리자 사령관은 물론 참모장까지 불안함에 빠지고 만다. 사령부와 통신을 취하던 안드라슈 제독은 이런 분위기에 분개하여 독설까지 퍼붓는다.

"귀관들은 당장 예편원을 쓰시오! 본관은 유서를 품에 넣고 있소."

유수프 토패롤은 원래 성격대로면 더 큰 독설로 되받아치고도 남을 인물이었으나 불안감에 고심이 깊어져 그저 침묵만을 지켰고 이 모습을 본 부관 알드리치 소령은 이제 모든게 다 끝났을지도 모르겠다며 각오하기도 했다.
허나 링 파오와 유수프 토패롤은 패배감에 무력해진 것이 아니라 상황 타계를 위해 적군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거의 하루 동안 고심을 거듭한 링 파오와 유수프 토패롤은 서서히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제국군의 지휘관이 전투 경험이 없으며, 무의미하게 병력을 분산시킨 것이란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제야 알았어. 저놈들은 '''병신'''이야."

유수프 토페롤의 대답은 간결하기 그지없었다. 단 한마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동감."[21]

- 링 파오와 유수프 토패롤의 대화


5.2. 동맹군의 공세


제국군의 사령부가 어떤 이유에서든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링 파오는 작전을 새로 수립한다. 링 파오가 전 병력을 제국군 사령부가 위치한 G16 지역에 집중시키라는 지시를 하달하자 각 지역에 분산된 제국군이 분진합격,分進合擊, 전술[22]을 꺼내들면 오히려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시하였으나 링 파오는 역공의 위험성을 알지만 그럼에도 작전 수행을 지시한다.
제국군 잉골슈타트 중장은 문가이 제독의 우려대로 동맹군이 총사령부를 노리고 공세를 개시하면 분진합격 전술로 응전할 생각이었다. 이에 따라 다수의 연락선을 두어 제국군 전체를 유기적으로 제어하려 했으나 헤르베르트 대공의 생각없는 명령으로 아군 함대가 너무 심각하게 분산되어 있었고 잉골슈타트의 필사적인 제어에도 제국 함대는 반응이 한 박자씩 느려져 앞서 내려온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 이미 상황이 바뀌어 있었고 이를 보고하여 새로운 지시가 내려올 때는 이미 상황이 또 다르게 바뀌어버리며 대응력을 상실하고 만다.
7월 19일 16시, 아군이 유리해졌다고 판단한 링 파오는 예비병력까지 모두 동원하여 전면적인 공세를 개시하였다. 잉골슈타트도 이에 대응하여 후방에 대기중인 카우프만 제독의 예비병력을 동원하려 했으나 헤르베르트 대공의 즉흥적인 지시에 대응하기 위해서 예비병력을 뺄 수는 없었고, 부로 제독이 지휘하는 제국군 함대가 동맹군의 좌측면에 말려드는 바람에 동맹군의 진격속도가 둔화되며 카우프만 함대를 대기시키게 된다.
전투는 다음날까지 계속되었고 제국군에서 최초로 장성급 전사자가 나왔다. 제국군 파센하임 중장은 분산 고립된 상황에 정보까지 차단되어 아군 알렌슈타인 함대를 적으로, 동맹군 외르스테드 함대를 아군으로 '''착각'''했고 동맹군 외르스테드 함대가 공격을 개시하자 두 함대를 모두 적으로 판단한 파센하임 중장의 오판 끝에 함대는 큰 피해를 입고 파센하임 중장도 전사하고 만다.
안 그래도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던 헤르베르트 대공은 크게 격노하여 잉골슈타트 중장을 호출하여 모욕적으로 매도하더니 계급장을 잡아 뜯어버려 바닥에 내팽겨치더니 짓밟아 버렸다. 잉골슈타트 중장은 큰 충격을 받았고 이 여파로 제국군 지휘부 전체가 마비되어 버린다.[23] 제국군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이들이 이렇게 되자 이후 제국군은 통일된 전략이 결여된 상태로 패배를 거듭하기만 한다.
헤르베르트 대공은 모든 병력을 재집결시키라고 명했으나 지리적으로 어두운 상황에서 사방에 분산된 제국군은 명령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고 또 급히 명령을 내린다고 통신망을 마구 사용한 탓에 명령 내용이 동맹군측에 모두 흘러들어가 동맹군 사령부는 제국군의 상태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까지 제공해주고 만다.
7월 20일, 22시 40분. 동맹군 사령관 링 파오는 제국함대가 집결하는 시기에 맞춰 포위공격을 감행했고 제국군은 동맹군의 포위망에 갇히게 된다.

5.3. 다곤의 포위섬멸전


7월 21일 0시 45분, 네이스미스 워드의 함대가 42만 7천7백 문의 함포 중에서 30만 문이 넘는 함포를 발사, 가동률 75%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기록하며[24] 제국군의 좌익을 날려버렸다.
네이스미스 워드 함대의 맹렬한 공격에 제국군이 대열을 유지하지 못하고 밀려나자 이번에는 안드라슈 함대의 맹공이 개시되었다. 안드라슈 제독이 내린 명령은 오직 돌진[25] 단 하나. 제국군은 계속되는 공격에 평정을 상실하며 측면이 붕괴되었고 제국군 하젠클레버 중장이 여기에 휘말려 전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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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군은 포위망을 돌파하려는 여력을 상실해가며 점차 한 구역으로 밀려나며 밀집되었다. 동맹군은 제국 함대를 하나하나 사냥해나가며 포위망을 좁히며 제국군을 밀어붙였다. 숫적으로 열세인 동맹군의 포위망은 두께가 얇아 제국군이 한 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반격을 개시하면 포위망 돌파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잉골슈타트가 여전히 제국군을 지휘하고 있었다면 포위망에 무력하게 갇힐 일도 없고 갇히더라도 곧 돌파하는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잉골슈타트는 하루 전 헤르베르트에 의해 지휘권을 박탈당했다. 무능하고 경험도 없는 헤르베르트는 포위망을 돌파할 시도조차 하지 못하도록 맹공을 가하는 링 파오와 유수프 토패롤의 작전에 말려들었고, 곧 일방적인 학살극이 전개되었다.
너무 밀집해 있었던 까닭에 함선 하나가 피격당해 폭발하자 옆에 붙은 다른 함선이 여기에 휘말려 같이 몰살되는 비극까지 벌어졌다. 제국 함대는 전의를 상실한 총사령관과 함께 포위망에 갇혀 서서히 녹아내렸다.
7월 22일 4시 30분, 은하제국 원정함대는 완벽하게 괴멸되었다. 헤르베르트 대공은 황족을 이대로 죽게 둘 수 없다는 참모진의 사력을 다한 노력 끝에 섬멸당하기 직전 필사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전장에서 도망쳐 살아남았다.
동맹군 사령부는 기적적인 대승에 대한 보고를 하이네센에 "샴페인을 20만 박스쯤 준비하라."라며 축약하여 올렸고 하이네센에서 전장의 소식만을 기다리던 최고평의회 의장 마누엘 후안 파트리시오는 국방위원장 코넬 영블러드와 함께 3차원 체스를 두다가 보고를 받아들었는데, 내용을 묻는 영블러드의 강렬한 눈빛을 받아가며 한 글자 한 글자 읽고 담담하게 승전보를 전해주었다.[26]

6. 전투결과


제국군 피해
생환병력 32만 8200명 (생존률 8.3%)
전사 - 파센하임 중장(아군 오사)
전사 - 하젠클레버 중장
동맹군 피해
생환병력 234만 (생존률 93.6%)
제독 전사자 없음

6.1. 전후 처리


  • 은하제국은 처참한 결과를 공표할 수 없어 정보를 통제하고 전황이 유리하지 못해 자진 철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 패전의 진짜 책임자인 헤르베르트 대공은 황족이라는 이유로 재판을 피할 수 있었으나 별궁에 유폐되어 평생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죽었다.[27]
  • 이복 아우의 충언을 무시하고 아끼던 아들을 억지로 사령관에 앉혀놔, 참담한 대패에 크게 기여한 프리드리히 3세는 큰 충격을 먹고 당해, 제위 7년째인 제국력 331년 돌연 사망한다. 프리드리히 3세는 이후 제국사에서 패전 황제라는 치욕적인 명칭으로 불러지며 무능한 황제로 그 이름을 널리 알린다.
  • 자유행성동맹의 운명이 걸린 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링 파오 중장과 유수프 토패롤 중장은 건국 이래 최고의 전쟁영웅이 되어 훗날 원수까지 승진하였다. 그러나 영웅의 탄생으로 민주주의 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이유로 두 원수는 사실상 동맹에서 경원시되었다.[28]
  • 고틀리프 폰 잉골슈타트 중장은 명백히 자신의 잘못이 아닌 패전에 책임을 다하려 자살하려 했으나 위병에게 총을 압수당하고 일시 구속되었다. 이때 잉골슈타트 중장은 자신이 패전의 총책임자로 임명되었음을 알고 쓴웃음을 지었다.
압송된 잉골슈타트 중장은 패전의 책임을 모두 뒤집어쓰고 비공개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물론 말이 재판이지 개정 이전부터 판결이 내려져있는 형식적인 '촌극'일 뿐이었고 심지어 잉골슈타트 중장의 변호인으로는 오스발트 폰 뮌처 중장이 지목되었는데, 지명의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뮌처 중장은 약 10년에 걸쳐 잉골슈타트 중장과 서로 얼굴조차 보기 싫다고 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재판이라고 부를수도 없는 촌극은 변호인 뮌처 중장이 지명자의 뜻을 대놓고 거스르며 전력을 다해 잉골슈타트 중장을 변호하고 나서며 예상치도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 검찰은 말했습니다. 피고에게는 제국군을 철수시키지 않았던 모든 책임이 있다고. 그러나 피고는 총사령관이 아닌 일개 참모에 불과했습니다. 검찰은 말했습니다. 피고는 승리를 위한 작전을 세우지 않았다고. 그러나 피고는 참모장이 아닌 일개 참모에 불과했습니다. 검찰은 말했습니다. 피고는 보급물자를 횡령해 아군을 해했다고. 그러나 피고는 경리감이 아닌 일개 참모에 불과했습니다. 검찰은 말했습니다. 피고는 아군의 통신을 교란했으며 이로 인해 전황이 아군에게 불리해졌다고. 그러나 피고는 통신감이 아닌 일개 참모에 불과했습니다. 일개 참모! 고작해야 일개 참모가 원정군의 총지휘, 작전, 보급, 통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최고도의 권한을 가질 수가 있습니까? 만약 그럴 수 있었다면 그것은 한 개인에게 권한을 집중한 조직 그 자체의 죄일 것입니다. 조직의 죄가 아니라면 한 개인의 무법발호를 방임한 각 분야 책임자의 죄일 것입니다.[29]
> - 오스발트 폰 뮌처 중장의 변호 중에서
뮌처 중장은 이로 인해 훗날 탄핵자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뮌처 중장은 잉골슈타트 중장에게 걸린 죄목이 명백하게 무고하게 씌워진 누명임을 주장하며 가열차게 비판했으나 이미 판결이 난 재판이었기 때문에, 무죄까지는 안 되더라도 징역형으로 감형이라도 되어야 한다는 뮌처 중장의 필사적인 최후 변론도 사형 판결을 막아내지 못했다. 잉골슈타트 중장은 재판은 물론 사형이 집행될때 까지 어떠한 발언도 하지 않았으나, 집행 당일 입회인으로 찾아온 뮌처 중장에게 말없이 깊이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현했다.
뮌처 중장은 지명자의 의도를 무시한 댓가를 치뤘다. 변경 지역으로 좌천되어 한직을 전전했으나 훗날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에 의해 복권되어 사법상서로 임명된다.

6.2. 기타


유력 황위계승자였던 헤르베르트가 몰락하고 은하제국에서는 제위 계승을 둘러싼 추악한 싸움이 벌어졌다. 프리드리히 3세 사후 장남 구스타프가 제위에 올랐으나 원최 몸이 병약한데다가 암살을 두려워하다가 급사하였다.[30] 그러나 구스타프는 동생 막시밀리안 요제프의 능력을 눈여겨보고 있어 죽기 전부터 동생을 다음 황위 계승자로 지목했고 죽기 직전에 놀라서 다가온 배다른 아우 막시밀리안 요제프에게 황위를 잇는다고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이렇게 하여 막시밀리안 요제프는 형 구스타프의 뒤를 이어 골덴바움 왕조 최고의 성군으로 불리는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로 등극하였다.
자유행성동맹군의 질이 많이 떨어진 말기에 이르러선 저 포위섬멸전을 제국군의 2배 병력으로 아스타테 회전에 그대로 복붙하려다,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전술에 2/3이 박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스타테 회전에서 동맹군 함대사령관들은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 라인하르트의 2만 척에 비하여 동맹군은 3개 함대 4만 척이다. 3개 함대가 뭉쳐서 동시에 공격한다면 라인하르트로써도 완승을 거두기는 힘들었을 텐데 알아서 병력을 분산한 걸로도 모자라, 실제론 포위망이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그저 제국군이 동맹군에 포위당한 것에 쫄아서 자멸할 것으로만 기대했다. 그러니 제4함대가 두드려 맞고 있을 때에도 나머지 2개 함대의 사령관들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각개격파당했다. 더구나 그때 양 웬리는 단순히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작전을 입안했는데 이마저 기각당했다. 루빈스키도 어째 동맹군은 달라진 게 없다고 혀를 찼을 정도다.
특히나 다곤 성역 회전은 기본적으로 제국이 동맹령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을 때 처음으로 진행된 대규모 군사작전이었다. 기본적으로 정보적인 면에서 동맹 측이 여러모로 유리했던 것이다. 따라서 상대가 지역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세 방위 포위를 하는 전술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스타테 성역 회전의 경우 150년 세월이 지났고 당시에는 수차례의 전투로 인해 동맹령에 대한 정보가 많이 누적되어 있는 상태였고 특히나 페잔을 통해 입수된 동맹의 자체적인 정보도 일부는 얻을 수 있는 상태였다.[31] 즉, 정보적인 차이는 거의 없는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의 병력 분산은 하등의 도움이 되질 않는다.[32] 특히나, 기본적으로 라인하르트의 제국함대의 경우 3개의 함대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초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했지만 동맹의 함대들은 이러한 초계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후방에 등장한 함대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파악하는 데 시간을 보내기나 했다.
다곤 성역 회전에서 동맹군이 제국군을 포위했을 때 동맹군의 병력이 적어 포위망이 얇아 돌파당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동맹군은 제국군이 돌파 시도를 못하게끔 병력을 운용했다고 위에 나오는데, 아스타테 회전에서 동맹군 제독들은 포위를 '''시도'''하면서 이미 포위망이 완성된 것처럼 마음을 놓고는 제국군이 예상지점에서 벗어나는 이상행동을 보이는데도 처음에 세운 계획표대로만 움직여 제4, 6함대는 측후방을 공격받아 일방적으로 패했다.[33]
다곤 성역 회전은 지리적 이점을 이용한 전투이다. 비록 막판에 제국군 수뇌부가 멍청이라는 것을 간파한 링 파오와 유수프 토패롤이 병력을 분산해 포위섬멸진을 형성해 제국군을 궤멸시키긴 했지만 이마저도 다곤 성계의 지리적 이점이 없었다면 어려운 일, 헤르베르트를 대신해 제국군을 이끌다시피한 잉골슈타트가 다곤 성계에서의 전투에서 이길 확률이 낮다고 본것은 어디까지나 다곤 성계의 지리적 상황이지 동맹군의 규모도 동맹군의 수뇌부도 아니다. 즉 다곤 성역 회전에서 동맹군과 그들을 이끌었던 링 파오가 승리할 수 있던 1등 공신은 다곤 성계의 지리적 이점이지 병력을 분산한 포위섬멸진이 아니다. 포위섬멸진은 단지 그 승리를 굳히는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을것이다.[34]

[1] 사실 말도 안 되는 숫자이다. 16만 명이 하이네센에 도착하여 자유행성동맹을 건국한 것이 불과 113년 전이니 겨우 5세대 지났다. 다산장려를 했다고 하니 평균 한 부부당 자식 6명을 평균 20세를 전후하여 낳도록 했고, 미래시대라 수명은 넉넉하여 하이네센에 도착한 16만명부터 최근에 태어난 아기까지 다 살아 있다고 가정하자. 이렇게 하면 한 세대 당 3배씩 증가하는데, 세대당 인구를 모두 누적하더라도 인구가 6,000만 명도 안 되고, 게다가 마지막 세대인 4,000만 명 가량은 아직 어린이 내지 청소년 세대이다. 즉 성인 2,000만 명 중 250만을 군대에 갈아넣었다는 것인데, 그건 그냥 병영국가이고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동맹은 언젠가 제국과 맞붙는 날이 올 것이란걸 예상하고 있었고, 건국 초기에는 인구의 절대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현대의 한국처럼 징병제+예비군제를 운영하고 있었으면 제국의 대규모 침입에 대응하여 총동원령을 내리고 비축해둔 전함들과 전투병기를 모두 동원하였다 치면 불가능 한건 아니다. 당장 인구가 겨우 2천5백만의 북한도 정규군만 100만이 넘고 준군사조직까지 합하면 500만 이상이 편제되어 있으니.[2] 사실 비밀리에 제국에서 망명한 인원들도 있었을 테니 완전히 불가능한 숫자는 아니겠지만... 뭐 원래 이 소설은 대략적인 숫자에 대해 신경쓰지 않기로 악명이 높긴 하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일개 정치범 수용소에서 맨땅에 헤딩하면서 탈출에 성공한 인원 수가 16만 명이니 이들이 다른 정치범 수용소을 하나라도 해방시킬 수 있었다면 사실 그것만 해도 기본 인구가 최소한 두 배는 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거기다 원래 제국에서는 이런 정치범 수용소를 딱히 감시하지도 않고 내버려두는 경우가 많아서(이후 동맹의 존재가 발견되자 이런 정치범 수용소를 점검했다고 하니...) 완전히 불가능하진 않았을 수도 있다.[3] 총병력의 91% 이상이다.[4] '제국군 몰살' 정도로만 짤막하게 언급된다.[5] 특히 최근 1세기 사이에는 황제가 새로 즉위할 때마다 제위를 두고 각종 음모가 판치고 있었다.[6] 다만 은하연방 성립 이전의 시리우스 전역 이후 수 백년만의 벌어진 항성 규모의 국가간 전쟁이었으니 전무후무한 거사가 맞기는 하다. 반란군의 규모는 어엿한 '함대'를 자체적으로 건설하여 운용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기존 제국 내에서 벌어진 소규모 동란과는 비교도 안될 상대이기도 했다.[7]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1권 <황금의 날개>, 김완, 이타카(2011), p.24[8] 120여년이 지난 후에야 제국은 이제르론 회랑에 요새를 지어 바르트바펠 후작의 의견을 수용했다.[9] 병사들의 훈련 관람부터 패거리들이 가져온 '수상한' 입체영상 등을 보며 시간을 보냈고 함대 참모진은 불안감에 급기야 함대에 여자가 없으니 반반한 외모의 병사를 찾는게 아니냐는 걱정까지 했다.[10] 대규모 원정함대를 관리하는 것보다 대공에게 없는 말을 지어내는 것이 더 힘들었다고 한다.[11] 여기에 난봉꾼 짓으로 여러 소송에 휘말린 것은 물론 과거 미르푸르카스 행성 통신기지에서 근무하던 시절, 기지에 있던 14명의 여군 중 12명과 잠자리를 가진 전설적인 사건을 일으킨 바 있다.[12] 링 파오가 여자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 모두는 상호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형법상 범죄로 간주할 일은 단 1건도 없었다. 문제는 도덕성, 미르푸르카스 행성 사건에서도 12명의 여군 중 3명이 유부녀였다. 여자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뿐이지 남자를 상대로는 충분히 범죄를 저지리고 다니는 셈. 대외적 평판에 있어 유수프 토패롤의 그것은 링 파오에 비하면 추앙받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지경이다.[13] 진짜 사감으로 임명하면 재밌지 않겠냐며 농담을 던지려 했지만 앞에 있는 영블러드 국방위원장은 정말 심각하게 인사 명령 재고를 요청하고 있어서 이 농담은 속으로 삼켰다(...)[14] 자신에게 주어진 '숭고한 일'을 자기 혼자 짊어지는 것은 너무 불공평한데 다른 사람들이 이걸 좀 가져가야 하는게 맞지 않냐며 빈정거렸다.[15]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 치고는 행실이 형편없는 수준이지만 사실 저 두 사람이 가장 압박감을 느끼고 있을 위치인 만큼 국방위원들이 식사 자리까지 나타난 건 과한 처사이긴 했다. 파트리시오 의장이나 영블러드 위원장이 구태여 나서지 않고 있던 것도 이미 큰 일을 맡긴 만큼 이제 이들을 신뢰하고 도와주기로만 했기 때문이다.[16] 휘하 제독들 모두 사령관과 참모장의 면면을 보고 인사 명령에 다소 거부함을 느꼈다. 그러나 명령은 명령이고 이들이 군인으로써 무능한 것은 결코 아니었기에 그냥 따르기로 한다.[17] 적을 최후의 한 명까지 격멸시킬 필요는 없다.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적군에게 타격을 주어 철수시키기만 해도 성공한 것이기 때문이다.[18] 외전 1권 황금의 날개 9페이지와 본편 4권 120페이지에는 다곤 성역 회전이 벌어진 해가 제국력 331년으로 적혀 있지만, 30페이지에서는 제국력 332년으로 적혀 있다. 우주력 310년이 제국력 원년임을 생각해보면 제국력 331년이 옳다고 생각된다.[19]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1권 <황금의 날개>, 김완, 이타카(2011), p.35[20] 다만 이 와중에 요제프의 시녀 지클린데는 차기 황제를 무시한 죄를 중하게 묻겠다며 이를 갈았다.[21]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1권 <황금의 날개>, 김완, 이타카(2011), p.43[22] 분산하여 진격하다가 재집결하여 공격하는 방식. 여러 방향에서 전진하여 적을 포위 격멸하기 위한 기동형태.[23] 황족이자 최고사령관이 중장을 면전에서 모욕했다. 상급자가 하급자를 다른 하급자 앞에서 매도하는 행위는 당사자의 권위를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로 조직 운영에 있어 정말 치명적인 상처를 가하는 것. 심지어 잉골슈타트 중장은 전투가 한창인 상황에서 호출되어 이렇게 됐으니 제대로 된 지휘가 가능할 리가 없다.[24] 수천 척의 함대가 동시에 발포하기 위해서는 아군 피해를 막기 위해 안전이 확보된 완벽한 대형을 갖추고 사령부의 지시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하달되어야 한다. 네이스미스 워드 제독이 유능하기도 했지만 헤르베르트가 지휘하는 제국군이 너무 엉망이다보니 동맹군이 대형을 갖추고 있어도 대응하지 못해 가능했던 일.[25] 이 당시 안드라슈가 내린 명령이 "제1명령, 돌진하라! 제2명령, 돌진하라. 제3명령, 오로지 돌진하라!"였다. 덕분에 이전에는 신중한 지장으로 알려졌던 안드라슈는 이 뒤론 닥돌하는 맹장으로 이름을 떨쳐(?)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다.[26] 동진의 명재상 사안의 일화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사안은 바둑을 두다가 비수대전의 승전보를 듣고 아무 일 없듯이 "우리 애송이들이 적을 물리쳤다는구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리고 나중에 바둑 둔 손님이 가자마자 미치도록 좋아하며 날뛰다가 다리가 삐었음에도 그걸 모르고 여전히 기뻐했다는 나중 일화도 있다.[27] 다만 여전히 황제 자리에 욕심이 났는지 백일제 구스타프 1세의 죽음이 헤르베르트와 관련이 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제국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구스타프 1세는 죽기 전 미리 남동생 막시밀리안 요제프를 후계자로 지명해놨기 때문에 헤르베르트가 다시 권력을 쥐는 일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막시밀리안 요제프가 쉽게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건 절대 아니다. 암살 시도도 여러 번 받아서 자신의 시녀 출신이자 황후였던 지클린데는 남편을 지키기 위해 항상 권총을 휴대하고 다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살자의 습격을 받아 장님이 되고 말았다.[28] 은하제국의 시조인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 은하연방에서 전쟁 영웅으로 이름을 날리며 제정을 세운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29]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1권 <황금의 날개>, 김완, 이타카(2011), p.55~56[30] 별궁에 유폐당한 헤르베르트의 모략으로 인한 암살이라는 설이 있다.[31] 페잔은 양측의 균형을 중시했기 때문에 한쪽에 너무 유리하거나 위험한 정보를 주지는 않았겠지만.[32] 물론 분산하는 척하면서 상대방을 끌어들여 치는 등의 고급 전술도 아니었다.[33] 솔직히 일반 상식에서보면 이건 라인하르트가 뛰어난 것보다 동맹측 3명의 제독이 너무 무능했다고 밖에는 볼 수 밖에 없다. 손자병법에서 굉장히 많이 강조하는 항목이 지피지기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일반 군사학에서도 기본적으로 색적과 아군 현황 파악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이라서 이런 불상사가 있었다고 변명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정작 적군인 제국군은 동맹군의 명확한 위치를 파악해서 각개격파한 시점에서 동맹군 수뇌부의 무능함은 변명할 여지가 사라진다. 게다가 적이 무조건 아군의 작전대로 움직여줄 것이라는 생각은 정밀 기초적인 전술적 미스다. 근데 그걸 최소 소장은 달고 있는 양반들이 했다는 거다. 아니 그 똥별들 곁에 괜찮은 참모들이 있었는데도 그걸 무시하기까지 했다. 이정도면 정말 구 일본 제국군 수준이라고 봐도 좋을듯 그나마 파에타가 부상을 입어 양 웬리에게 지휘를 맡겼기 망정이지 그것도 아니었다면 다곤 성역 회전 제국군 승리 버전이 될뻔했다.[34] 더 정확히는 넓게 퍼진 제국군을 동맹군이 사방팔방에서 각개격파하면서 한군데로 밀어내었고 그 결과 포위섬멸진이 완성된 것인데 제국군이 넓게 퍼졌던 것과 동맹군이 포위할 때 제국군이 힘없이 밀려나갔던 이유가 바로 이 다곤 성역의 지리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사실 원래 다곤 성역의 지리 자체가 험난한 탓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제국군은 다곤 성역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던게 가장 큰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