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베르트(은하영웅전설)
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본편에서 150년도 더 전의 인물로, 은하제국 20대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삼남이었다. 작위는 대공, 계급은 원수, 기함은 괴팅겐.
2. 상세
신체적 요소와 지혜, 정치적인 야심, 외가 집안 배경에 있어서 딱히 흠잡을 곳은 없었다. 그러나 '''매사에 신중함이 부족하며 자만이 심했고''', 황실의 일원으로 태어나 살면서 고난을 겪어본 적이 없다보니 성격적인 부분에서 크게 부족한 찌질이였다.
헤르베르트가 살면서 겪어본 힘든 일이라고는 '''사냥을 나가 노리던 사냥감을 놓친 일, 작은형 막시밀리안 요제프를 모시는 시녀[1] 에게 추파를 던지다 퇴짜를 맞은 일''' 정도밖에 없었다. 황위 계승권을 지닌 황실의 일원으로서 형의 시녀에게 추파나 던지고 다니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니다.
당시 황태자였던 장남 구스타프는 선천적으로 건강에 문제가 있어서, 황태자로서의 직무는 커녕 일상생활조차 힘들어했다. 황실 근위대 열병식에 참석했다가 실신했을 정도. 결국 황제 프리드리히 3세는 황태자를 바꾸기로 결정한다.
차남인 막시밀리안 요제프는 몸도 튼튼하고 머리도 좋은데다 됨됨이도 흠잡을 곳이 없어서 그야말로 완벽한 황제감이었으나, 본인이 제위계승에는 관심이 없었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하급 귀족의 여식인 탓에''' 문벌귀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 막내인 리하르트는 모든 면에서 헤르베르트보다 뒤처졌기에 헤르베르트를 황태자로 낙점하였고, 때마침 나타난 대규모 반란군을 토벌하는 원정함대 사령관직을 수여하여 제국 정부과 군부의 고위인사들에게 '''차기 황위 계승자가 임명되었음을 간접적으로 공표'''하였다.
그러나 숙부인 슈테판 폰 바르트바펠 후작이 이 결정을 반대했다. 후작은 황제와 헤르베르트 대공의 면전에서 '''"보급도 어렵고 지리적으로도 불리한 이 원정의 사령관 자리를, 전쟁과 카드놀이도 구분 못 하고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는 교만한 자에게 던져주다니 무슨 망령된 짓이냐"'''며 그 둘을 동시에 강하게 비판했다. 당연히 헤르베르트는 자신의 원정군 사령관 임명에 반대하는 바르트바펠 후작에게 격한 분노를 터뜨렸으나, '''"죽기 싫으면 원정 지휘할 생각은 접어라, 황제 자리를 바란다는 자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도 구분 못 하느냐"'''는 후작의 일침은 정론이었기에 제대로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결국 바르트바펠 후작은 그 비판의 어조가 너무 강경하여 프레드리히 3세의 격노를 샀고[2] , 헤르베르트는 당초 계획대로 원정군 사령관으로 임명된다. 이후 아버지의 인선[3] 에 크게 반발하며 인사권의 절반을 확보하고는, 자기 사교실 친구들에게 벼슬자리를 부여했다. 그 결과 태어나서 처음 군복을 입어보는 20대의 장성 넷과 영관급 장교 여덟이 탄생했다.
그래도 오딘에서 출정한 직후 한동안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긴장감을 적절하게 유지했다. 그러나 몇 달이 걸리는 긴 여정이 계속되자 지루함을 느끼더니 긴장감을 모두 잊고, 어느 순간부터는 군복을 입는 것조차 거부하며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지휘관과 참모진 절반이 자신의 연회장 친구들이었던 탓에 병사들의 훈련을 관람하거나 패거리들이 가져온 '수상한' 입체영상 등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등, 원정군 총사령부를 음주와 도박이 판을 치는 여흥장으로 만들어버렸다. 급기야 함대 참모진이 '''함대에 여자가 없으니 반반한 외모의 병사를 찾는 거 아니냐'''는 걱정까지 할 정도였다. 거기다 원정 함대가 이동하는 동안 각종 사고 등이 발생할 때마다 함대 기함의 대형 화면을 통해 일일히 보고를 받으며 시간을 낭비해 참모진을 힘들게 하더니, 나중에 가서는 화려하게 장식된 전용 셔틀에 탑승해 알아볼 필요도 없는 사소한 일까지도 일일이 시찰에 나서며 원정함대의 진군 속도를 느리게 하였다.
첫 전투에서 작지만 제국군 최초의 승리를 거두자, 장병들을 치하하며 전원의 식사에 포도주를 배급하고 직위와 명예를 약속하여 제국군의 사기를 드높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행동하여 문제가 없을 때에는 과하게 낙천적이고 문제가 발생하면 과하게 비관적인 성격을 가진 탓에, 작은 승리를 거둔 상태에서 자신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 자신하더니 '''황위계승자로써 자리를 명백하게 굳혔다'''며 기쁨에 도취되었다. 급기야 큰형은 오래 못 살 사람이니 편안하게 내버려두고 작은형은 자신의 분수를 잘 알고 있으니 영지와 직위를 하사하고 동생 리하르트는 건방지게도 제위를 노리고 자신과 경쟁했으니 가만두지 않겠다[4] , 덤으로 작은형의 시녀인 지클린데가 감히 자신을 무시했다며 '''황제가 될 사람'''을 무시한 죄가 얼마나 중한지 깨닫게 해주겠다는 식으로 먼 미래의 계획까지 세웠고, 끓어오르는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며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당연히 이 공격으로 원정함대는 분산되거나 고립되는 등 혼란에 빠졌지만, 다행히 예상을 뒤엎는 제국군의 대대적인 공세에 자유행성동맹군은 혼란에 빠졌고 그 자신이 기함을 전진시켜 제국 함대를 격려하였기에 도리어 그의 생각대로 승리를 할 뻔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전개로 상황을 오판한 참모부 때문에 승리의 기회를 놓쳤고, 헤르베르트의 어설픈 지휘와 제국군의 혼란스러운 사정이 동맹군에게 알려지면서 그의 파멸이 시작되었다. 즉, 제국군의 패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헤르베르트였던 것이다.
결국 동맹군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제국군은 헤르베르트의 즉흥적 명령을 우려하면서 중요한 기회들을 스스로 제약했다. 게다가 파센하임 중장이 아군인 알렌슈타인 제독의 함대를 적으로, 적인 동맹군 외르스테드 제독의 함대를 아군으로 착각하며 알렌슈타인 함대의 진로를 막는 바람에 휘하 함대가 괴멸당하고 파센하임 자신도 전사했다. 제국군 최초로 장성급 전사자가 나오자, 헤르베르트는 격노하여 잉골슈타트 중장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능력자라 매도하고 계급장까지 잡아뜯었다. 당연히 잉골슈타트 중장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제독 모두가 무인(武人)의 긍지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고, 이후 제국군은 통일된 전략이 결여된 상태로 얻어터지기만 한다. 이후에는 즉시 병력을 집결할 것을 명령하였으나 지리적으로 어둡던 제국군은 총사령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고, 이 통신을 방수한 동맹군이 제국군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결국 다곤 성역 회전에서 대패한 후 황위 등극의 꿈은 완전히 깨지고, 황족이어서 그나마 군사재판은 피할 수 있었다. 대신 애꿎은 잉골슈타트가 패전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고 사형당했다. 그러나 워낙에 큰 패배였기 때문에, 헤르베르트는 정신이상 치료라는 명목으로 별궁에 연금당해 결혼도 못하고 평생 거기서만 살다가 죽게 된다.
여하튼 이 다곤 성역 회전의 패배가 워낙에 엄청나서 제국은 큰 충격에 빠졌고, 이후 동맹이라는 탈출지가 있다는 사실에 반제국파들이 줄줄이 동맹으로 달아나는 일이 벌어진다. 아끼던 아들 헤르베르트가 참패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면서 프리드리히 3세는 제국 역사에서 '''패군제(敗軍帝)'''라는 오명으로 불렸고, 이 패전에 충격을 받았는지 제국력 331년 그 해, 프리드리히 3세는 겨우 재위 7년만에 죽었다.
다만 여전히 황제 자리에 욕심이 났는지, 백일제 구스타프 1세의 죽음이 헤르베르트와 관련이 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제국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구스타프 1세는 죽기 전 미리 막시밀리안 요제프를 후계자로 지명해놓았기 때문에, 헤르베르트가 다시 권력을 쥐는 일은 없었다. 물론 막시밀리안 요제프가 쉽게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건 또 아니다. 여러 번 암살 위협에 시달려서 황후 지클린데는 항상 권총을 휴대하고 다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약을 먹은 후유증으로 시각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는 골덴바움 왕조 최고의 성군으로 역사에 남을 업적을 남겼으며, 뒤를 이은 사촌 코르넬리우스 1세도 비록 무모한 동맹 원정으로 큰 피해를 입긴 해도 내부 정치적 치세는 잘한 편이라 끝내 헤르베르트는 황제가 될 수 없었다. 우습게도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를 곁에서 보좌하며 큰 공을 세운 사법상서 오스발트 폰 뮌처는 잉골슈타트를 마지막까지 옹호하던 인물이었다.
3. 기함
괴팅겐은 헤르베르트의 기함이다. 이름의 유래는 독일 니더작센주에 있는 도시 괴팅겐.
괴팅겐의 형상은 현대 제국 표준전함과 비슷하다. 헤르베르트가 살던 때까지만 해도 함대의 규모가 수천 척에 불과했기 때문에 후대와 달리 따로 함대 기함을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괴팅겐도 함선 자체는 평범한 표준전함이었다.
괴팅겐이 속한 제국군 표준전함은 당시 제국군의 주력 함선으로 운용되었으며, 과거 은하연방 시기의 전함을 발전시킨 전함이다.
함수에는 6문의 대구경 광선포를 탑재했다. 이는 100년 뒤인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투입된 제국군 표준전함에 계승되었다.
다곤 성역 회전에 제국군 총기함으로 참전했으며, 제국군이 몰살당하는 와중에도 어찌어찌 탈출하여 오딘으로 귀환했다.
[1] 이 시녀가 바로 훗날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의 황후가 되는 지클린데이다.[2] 이후 프리드리히 3세는 바르트바펠 후작의 제국 수도 출입을 금지하고, 영지의 8할을 몰수한 것도 모자라 작위까지 남작으로 강등시킨다.[3] 프리드리히 3세는 바르트바펠 후작에 분노했으나, 헤르베르트에게 대규모 함대를 지휘할 역량이 없다는 점은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차기 황태자로서 화려한 '경력'을 달아주는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만큼, 실질적인 지휘는 고틀리프 폰 잉골슈타트 등 노련한 제독들과 참모들이 담당하도록 원정 함대 인사에 상당 부분 개입했다.[4] 리하르트는 경쟁 상대인 헤르베르트가 사령관이 되었다는 것에 겁을 먹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