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근

 

'''곽경근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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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축구감독 '''
[image]
''' 이름 '''
'''곽경근'''
'''郭慶根 | Gwak Kyung-Keun'''
''' 출생 '''
1972년 10월 10일 (52세) /
대한민국 경기도 부천군(현 경기도 부천시)
''' 국적 '''
대한민국
''' 신체 '''
184cm
''' 직업 '''
축구선수(공격수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우라와 레드(1995)
후쿠시마 FC(1995~1997)
부천 SK(1998~2002)
부산 아이콘스(2003~2004)
''' 감독 '''
여의도고등학교(2005~2011)
부천 FC 1995(2012~2013)
서울디지털대학교(2017)
톈진 터다(2017 / 코치)
1. 개요
2. 선수 시절
2.1. 일본
2.2. 부천 SK
2.3. 부산 아이콘스
3. 지도자 생활
3.1. 부천 FC
3.2. 근황


1. 개요


대한민국축구선수 출신 감독. 프로화 이후 부천 FC의 초대 감독이며 2017년톈진 터다 코치를 맡았다.

2. 선수 시절



2.1. 일본


부평고등학교 시절, 노정윤, 이임생과 함께 대활약하며 부평고 축구부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였으며, 고려대 입학 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표로 발탁되기에 이른다. 당시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표 총감독이었던 데트마어 크라머는 곽경근을 두고 몸싸움과 스피드를 겸비한 공격자원으로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바르셀로나 올림픽 본선 무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직후,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하였으며, 이후 부상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으면서 김호 감독이 이끌던 1994년 미국 월드컵 엔트리 발탁에도 실패, 1년 여 동안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채 고려대를 졸업하였다.
비록 부상으로 공백기간이 길었지만 국가대표급 공격 자원인 곽경근 선수를 탐내는 팀이 많았지만 노정윤과 남대식 당시 고려대 축구부 감독의 주선으로 곽경근은 입단 테스트 끝에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행이 결정 되었고, 곽경근은 일본행을 택하면서 드래프트 거부 선수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부상도 완쾌되지 않은 상황에서 곽경근은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 장벽 속에 제대로 된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겉돌았고 결국 6개월여 만에 우라와에서 방출당했고, 결국 JFL 팀이었던 후쿠시마 FC와 입단 계약이 체결되면서 2년동안 후쿠시마에서 활약하게된다. 후쿠시마에서 2년간 도합 36골을 성공시키는 등 나름의 활약을 펼쳤다.

2.2. 부천 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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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SK의 황금기를 함께 했던 공격수'''
1997시즌을 마지막으로 후쿠시마 FC가 해체되자 1998년 드래프트를 신청하며 1순위로 부천 SK에 지명되면서 K리그에 입문하게 되었고, K리그 데뷔전이었던 포항전부터 골을 넣으면서 기세를 탔으며, 입단 첫 해였던 1998시즌에 리그에서 총 30게임에 출장해 9골 2도움을 기록하며 부천 공격을 이끌었다. 3년동안 2자리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부천 SK의 마지막 전성기를 지휘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특히 니폼니시 감독 재임 시절 주로 최전방에서 볼을 주고받다가 측면 침투하는 선수에게 넣어주고, 측면에서 벌리면서 크로스를 올리면 중앙에서 해결하는 형태의 패턴으로 많이 기용되었다.
하지만 2002년 즈음부터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트나즈 트라판 감독 부임 후 부터는 득점력이 살아나지 않으면서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고, 결국 2003 시즌을 마치고 김기동, 이임생 등과 팀에서 방출되었다.

2.3. 부산 아이콘스


부천에서 방출된 후 팀동료였던 이임생과 함께 자유계약으로 부산 아이콘스로 이적하였다.
곽경근은 이안 포터필드의 신뢰 아래 꾸준히 센터 포워드로 출장했지만, 공격 위치를 잡는데 애를 먹으며 저조한 득점력을 보였고, 결국 포터필드 감독은 곽경근을 센터백으로 포지션 변경을 꾀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고, 곽경근은 센터백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2년간 부산에서 활동한 뒤 은퇴하였다

3. 지도자 생활



3.1. 부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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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차범근 축구교실의 한축을 이루고있는 여의도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2005년 부임해 활동하였으며, 2012년 부천 FC의 2대 감독으로 부임하며 대략 10년만에 부천종합운동장으로 복귀하였으며, 팀의 프로화 이후에도 감독직을 이어갔다.
팀의 프로 입문 후 첫시즌이였던 2013시즌에 8승 9무 18패로 8개팀 중 7위라는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였으며, 이에 부천팬들은 무색무취 전술이라며 불만을 가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임창균 등 젊은 선수를 육성하는 등 긍정적인 모습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2014년 드래프트에서 신인선수 선발과 관련해 각종 비리 논란이 터져나오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곽경근이 선발한 선수들의 소속 대학이 구단 유스 선수들이 진학한 대학과 대부분 일치했으며, 이외에도 U-18 팀 선수들의 학부모들 중 일부가 납부한 회비가 구단 모르게 누군가에게 징수되었으며, 학부모들이 구단의 주식을 차명계좌까지 동원하며 대량 매입한 것 등의 정황이 추가적으로 제기되었으며, 이에 곽경근은 기자 회견을 열어 해당 의혹을 전면 부인하였으나 구단은 감독에 대한 감사를 시행하였고 감독이 감사에 불성실하게 임하였다는 이유로 결국 2014년 1월 8일부로 감독직에서 경질을 당하고 말았다. 이후 곽경근은 구단의 일방적인 해임 결정에 무효확인 및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 판결을 거두었다.
그런데 후임인 송선호 감독이 부천을 팀을 잘추슬러 리그5위 그리고 다음시즌에는 리그3위와 FA컵 4강등 성적을 내며 평판이 떨어졌다.

3.2. 근황


이처럼 논란 속에 부천을 떠난 곽경근 감독은 김포에 자신의 유소년 축구클럽인 KKK FC를 창단해 총감독으로 활동하였으며, 이후 서울디지털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 시즌 중반 이임생 감독이 이끄는 톈진 터다의 코치로 부임하였으나, 얼마 안가 이임생 감독이 감독직에서 물러나면서 코치직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