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이씨
1. 개요
'''광주광역시'''를 관향으로 하는 대한민국 성씨이다.
광산(光山)은 광주(光州)의 다른 이름이다. 이 때문인지 일부에서는 광주 이씨(光州李氏)라고 하기도 한다.[1] 경기도 광주시를 본향으로 하는 광주 이씨(廣州李氏)와 헷갈리지 말자.
순백(珣白), 숙백(淑白), 승백(升白) 세 형제를 중시조로 하여 상서공파(尙書公派), 한림공파(翰林公派), 제학공파(提學公派)[2] 로 크게 나뉜다.
2. 시조 논란
시조가 이종금(李宗金)인지 이정(李靖)인지 광산이씨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광산 이씨의 대종(大宗)인 상서공파 측에서는 시조를 향공진사(鄕貢進士)를 지낸 이정을 시조로 삼고 있으나, 소수파인 한림공파(대구나 고령에 살고 있음)에서는 시조를 이종금으로 삼고 있다. 광산이씨 종친회의 기본적인 입장은 향공진사(鄕貢進士) 이정을 시조로 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궁예에게 세 아들이 있긴 했으나[3] 전부 주살(誅殺)당해서 자손이 남아있지 않아 궁예의 후손이라고 하는 이종금이라는 시조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강비가 낳은 3남 김순백은 신굉 청광과 달리 주살당하지 않았으므로 광산이씨의 원류로 볼 수도 있는 가능성은 있다.그렇기 때문에 신라 종성(宗姓)인 김씨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인정하지 않는다.[4]
그런데 광산 이씨 상서공파와 한림공파는 사실상 본관이 다르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광산 이씨 상서공파의 Y 염색체 하플로그룹은 O2a1b1a1a1a(O-F11, 옛 O3a1c1)이고, 한림공파의 Y 염색체 하플로그룹은 O1b2a1a2a1(O-CTS723, 옛 O2b1b)이다. 두 하플로그룹은 지금으로부터 약 3만 500년 전에 갈라졌다. 광산 이씨 족보에는 상서공파와 한림공파가 13세기 말, 지금으로부터 약 750년 전에 갈라진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를 통해 두 공파가 족보에 나온 것보다 훨씬 먼저 갈라졌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쯤 되면 두 공파의 문중 회장들이 모여서 본관을 둘로 쪼개야 할 것 같다.
3. 인물
- 이선제(李先齊) - 조선 전기의 문신.
- 이발 - 조선 중기의 문신. 호남계 동인의 정신적 지주로 당대의 석학이었으나, 송강 정철과의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기축옥사 때 주살당한다. 본인은 물론 집안 자체가 멸문당하는데, 호남의 벌열로 꼽혔던 광산 이씨가 조선 중기 이후 몰락하게 된 결정적 이유다. 얼마나 한이 맺혔던지 전라남도에 세거한 광산 이씨의 후손들은 제사를 지낼 때 고기를 다지면서 "정철, 정철!" 이라 외칠 정도라고 한다.
- 이경채 - 독립운동가.
- 이국헌
- 이병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 때 청와대 비서관, 노무현 대통령 때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 이연술 - 호남의 거상. 화니백화점 창업주 겸 삼양시내버스(현 을로운수) 창업주.
- 이영수(야구)
4. 같이 보기
[1] 예를 들면 조선 중기인 17세기 중반 조종운(趙從耘)이 편찬한 통합보(統合譜)인 씨족원류(氏族源流)에 광주이씨(光州李氏)라고 기록돼 있다.[2] 철종 때 편찬된 광산이씨대동보 이후로 후손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3] 궁예의 후손에서 나왔다고 하는 순천 김씨도 궁예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있다.[4] 반면에 경주 김씨쪽 족보에 나온 신라김씨 동원분관 분성록을 보면, 광산 이씨가 나와 있는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