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자감
1. 중국사의 국자감
수나라 때 중국 주요 도시에 설치됐고 이후 청나라까지 중국 역대 왕조의 중앙 최고학부 교육기관으로 기능했다.
2. 한국사의 국자감
992년(고려 성종 11)에 설립되었고[1] 명칭은 중국의 것을 가져와 국자감이라 짓고 내부적으로는 신라의 국학을 계승했다. 고려시대에는 국자감 명칭을 가장 오래 사용했다가 이후 명칭을 국학, 성균감을 거쳐 성균관으로 바꾼다. 조선왕조 성립 이후 기존 개성의 성균관은 개성 성균관으로 하고 한양에 새로운 성균관을 만들었다.국자감(國子監)을 세우고 유관(儒官)을 선택한 인원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었으며, 횡사(黌舍 학교를 말함)를 새로 열어 태학(太學)의 월서계고(月書季考)하는 제도를 퍽 잘 지켜서 제생(諸生)의 등급을 매긴다.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中
개성 성균관 문서 참조.
3. 유사기구
3.1. 한국
3.1.1. 국립
3.1.2. 사립
3.2. 외국
[1] 성종 때 설립되었다는 말은 아직 불분명하고 그냥 정비되었다는 설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