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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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권중혁(權重爀)

명우(明祐)
본관
안동 권씨[1]
생몰
1921년 ~ 현재
출생지
경상북도 영일군 죽남면 입암동
(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2]#
추서
건국포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건국포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권중혁은 1921년 경상북도 영일군 죽남면 입암동(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에서 아버지 권대진(權大鎭)과 어머니 월성 이씨 이종롱(李鍾巃)의 딸 사이의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보성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4년 1월 20일, 그는 소위 학도 특별지원병 제도에 의해 일본 제국 육군에 강제 징병되어 대구 제24부대[3]에 배속되었다.
이때 대구 24부대에 징집된 학병은 총 600여 명에 달했는데, 입대한 지 10일 쯤 뒤에 3대대 3중대 소속의 27명을 제외하고 모두 중국 화북지방으로 보내져 이후 일본 제국 육군의 대륙타통작전에 이용당하였다.
한편, 27명에 잔류하게 된 그는 김이현(金而鉉)·문한우·권혁조 등과 함께 탈출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먼저 탄약고 폭파 및 무기탈취와 독극물에 의한 일본군의 몰살, 그리고 집단 탈출 후 국외로 나가 독립투쟁의 대열에 참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이같은 무력항쟁 및 독살계획은 실행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으므로 이들은 일단 집단 탈출을 시도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거사일인 그해 8월 8일 동지 6명은 하수구를 통하여 탈출에 성공한 뒤 대구 팔공산에 숨어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탈출을 탐지한 일본 군경의 추격으로 그는 결국 영천군 신녕면 뒷산에서 체포되었다.
체포 후 3개월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가 1944년 12월 일본군 임시군법회의에서 징역 4년형을 언도받고 일본 기타큐슈고쿠라(小倉)육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15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출옥 후 귀국하였으며, 200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수여되었다.
2019년 현재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거주하고 있다.#
[1] 복야공파 우전(禹銓)계 32세손 '''중(重)''' 종(宗) 인(仁) 무(武) 항렬.[2]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권대진도 이 마을 출신이다.[3] 보병 80연대. 지금의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캠프 헨리 부지에 위치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