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령총 다등식 등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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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금령총에서 발굴된 신라시대 등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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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한국문화재재단 등잔과 촛대
다배식토기(多杯式土器), 여러잔토기(─盞土器), 모자고배(母子高杯) 등으로도 부른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일본인 우메하라(梅原末治) 등이 금령총을 발굴·조사하던 중 발견한 신라시대 등잔으로,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소형방제경(小形髣製鏡), 주형토기(舟形土器), 그림이 그려진 백화수피제(白樺樹皮製), 금동제신발, 은제허리띠, 띠드리개, 금동장안장틀(金銅裝鞍橋), 발걸이(鐙子), 금동장고리자루칼, 금은장소도(金銀裝小刀), 금동제합(金銅製盒), 쇠솥, 각종 그림이 그려진 칠기(漆器), 유리잔 등 약 만여점의 고신라시대 유물들과 함께 출토되었다.
제작 연대는 같이 출토된 다른 유물들과 마찬가지로 대략 6세기 초엽(서기 500년대 초)으로 추정된다.
신라고분에서만 주로 출토되는 양식으로, 뚜껑이 없는 고배와 같은 신라토기로 아가리 위에 5개의 잔이 달려 있다. 잔의 바닥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고, 파이프와 같이 속이 빈 아가리에 연결되어 있다. 이 구멍으로 기름을 붓고 심지를 끼워 불을 켜게 된 토제등잔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명기(明器)이다. 이러한 형태의 등잔이 신라무덤에서 굉장히 자주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신라시대 당시에는 양산형으로 흔하게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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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392-1 일대 신라시대 적석목곽묘에서 발견된 다등식 등잔. 금령총과는 달리 6개의 잔으로 이루어져 있다.사진 출처 : 경주박물관 특별전시 - X선으로 본 우리 문화재, 경주서 신라시대 유물 무더기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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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해외로 유출되어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6세기경 신라시대 다등식 토기.사진 출처 : 나라밖우리문화재 보스톤미술박물관 No 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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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5세기경 신라시대 다등식 등잔. 다른 다등식 등잔과는 달리 원뿔 모양의 잔이 연결되어 올라가 있는 형태이고, 비어있는 등잔 속에 구슬이 들어 있어서 등잔을 움직이면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져 있다.사진 출처 : 관악구 공식 블로그 - 널리널리 알려지길! 문화재 보물단지 호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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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함안군 ‘보물급 희귀 등잔형 토기’ 출토
신라보단 수량이 적지만 가야에서도 이러한 형식의 등잔이 한번씩 발견된다. 2015년에 경상남도 함안군의 말이산고분군에서 발견된 다등식 등잔. 높이 2.1㎝, 직경 6.1㎝ 크기의 등잔 7개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 현재까지 확인된 등잔형토기 가운데 가장 많은 등잔이 부착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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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6세기 경에 신라, 가야 지역에서 양산형으로 흔히 쓰이던 모델이지만 의외로 과학적인 형태로 제작되어 있다. 그릇의 입술 부위는 관(管)으로 되어 있고 작은 잔 각각의 내면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어 그 아래의 관과 서로 통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의 잔에 액체를 부으면 아래로 흘러 들어가 서로 통하여 같은 높이를 이루게 되고, 다른 잔에 기름을 따로 넣을 필요 없이 일정하게 촛불이 유지되게끔 고안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 전에 한국인들이 흔하게 사용하던 등잔으로, 당시 생활문화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1. 개요
1924년 금령총에서 발굴된 신라시대 등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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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한국문화재재단 등잔과 촛대
다배식토기(多杯式土器), 여러잔토기(─盞土器), 모자고배(母子高杯) 등으로도 부른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일본인 우메하라(梅原末治) 등이 금령총을 발굴·조사하던 중 발견한 신라시대 등잔으로,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소형방제경(小形髣製鏡), 주형토기(舟形土器), 그림이 그려진 백화수피제(白樺樹皮製), 금동제신발, 은제허리띠, 띠드리개, 금동장안장틀(金銅裝鞍橋), 발걸이(鐙子), 금동장고리자루칼, 금은장소도(金銀裝小刀), 금동제합(金銅製盒), 쇠솥, 각종 그림이 그려진 칠기(漆器), 유리잔 등 약 만여점의 고신라시대 유물들과 함께 출토되었다.
제작 연대는 같이 출토된 다른 유물들과 마찬가지로 대략 6세기 초엽(서기 500년대 초)으로 추정된다.
신라고분에서만 주로 출토되는 양식으로, 뚜껑이 없는 고배와 같은 신라토기로 아가리 위에 5개의 잔이 달려 있다. 잔의 바닥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고, 파이프와 같이 속이 빈 아가리에 연결되어 있다. 이 구멍으로 기름을 붓고 심지를 끼워 불을 켜게 된 토제등잔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명기(明器)이다. 이러한 형태의 등잔이 신라무덤에서 굉장히 자주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신라시대 당시에는 양산형으로 흔하게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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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392-1 일대 신라시대 적석목곽묘에서 발견된 다등식 등잔. 금령총과는 달리 6개의 잔으로 이루어져 있다.사진 출처 : 경주박물관 특별전시 - X선으로 본 우리 문화재, 경주서 신라시대 유물 무더기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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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해외로 유출되어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6세기경 신라시대 다등식 토기.사진 출처 : 나라밖우리문화재 보스톤미술박물관 No 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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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5세기경 신라시대 다등식 등잔. 다른 다등식 등잔과는 달리 원뿔 모양의 잔이 연결되어 올라가 있는 형태이고, 비어있는 등잔 속에 구슬이 들어 있어서 등잔을 움직이면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져 있다.사진 출처 : 관악구 공식 블로그 - 널리널리 알려지길! 문화재 보물단지 호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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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함안군 ‘보물급 희귀 등잔형 토기’ 출토
신라보단 수량이 적지만 가야에서도 이러한 형식의 등잔이 한번씩 발견된다. 2015년에 경상남도 함안군의 말이산고분군에서 발견된 다등식 등잔. 높이 2.1㎝, 직경 6.1㎝ 크기의 등잔 7개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 현재까지 확인된 등잔형토기 가운데 가장 많은 등잔이 부착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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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6세기 경에 신라, 가야 지역에서 양산형으로 흔히 쓰이던 모델이지만 의외로 과학적인 형태로 제작되어 있다. 그릇의 입술 부위는 관(管)으로 되어 있고 작은 잔 각각의 내면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어 그 아래의 관과 서로 통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의 잔에 액체를 부으면 아래로 흘러 들어가 서로 통하여 같은 높이를 이루게 되고, 다른 잔에 기름을 따로 넣을 필요 없이 일정하게 촛불이 유지되게끔 고안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 전에 한국인들이 흔하게 사용하던 등잔으로, 당시 생활문화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