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누가사 하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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衣笠駿雄 (きぬかさ はやお)
1915년 2월 23일 ~ 2007년 2월 11일
일본의 군인, 자위관.
1915년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육군 중좌였다. 1936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48기로 졸업했고 육군대학을 55기로 마쳤다. 병과는 항공으로 육군 항공대에서 근무했다. 일본육군항공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1945년 일본의 패전 당시 계급은 육군 소좌였다.
종전 후인 1951년에 경찰예비대에 입대했고 공수부대인 일본 육군의 정진단(挺進団) 출신들과 공수 관련 업무를 연구했다. 1955년에 첫 임시 공수부대를 창설했다. 1958년에 1등육좌 시절에 제1공정단[1] 이 창설되자 초대 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1963년에 육장보로 승진했고 1966년에 육장으로 승진 육상막료부장 등을 지냈다. 1970년에 야마다 마사오에 이어 육상막료장에 올랐고 1971년에 나카무라 류헤이에게 이임했다. 육상막료장을 이임한 뒤에 이타야 류이치에 이어 6대 통합막료회의의장으로 영전했다. 1973년에 퇴임했고 통막의장은 육막장과 마찬가지로 나카무라 류헤이가 이임했다.
2007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衣笠駿雄 (きぬかさ はやお)
1915년 2월 23일 ~ 2007년 2월 11일
1. 개요
일본의 군인, 자위관.
2. 생애
1915년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육군 중좌였다. 1936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48기로 졸업했고 육군대학을 55기로 마쳤다. 병과는 항공으로 육군 항공대에서 근무했다. 일본육군항공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1945년 일본의 패전 당시 계급은 육군 소좌였다.
종전 후인 1951년에 경찰예비대에 입대했고 공수부대인 일본 육군의 정진단(挺進団) 출신들과 공수 관련 업무를 연구했다. 1955년에 첫 임시 공수부대를 창설했다. 1958년에 1등육좌 시절에 제1공정단[1] 이 창설되자 초대 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1963년에 육장보로 승진했고 1966년에 육장으로 승진 육상막료부장 등을 지냈다. 1970년에 야마다 마사오에 이어 육상막료장에 올랐고 1971년에 나카무라 류헤이에게 이임했다. 육상막료장을 이임한 뒤에 이타야 류이치에 이어 6대 통합막료회의의장으로 영전했다. 1973년에 퇴임했고 통막의장은 육막장과 마찬가지로 나카무라 류헤이가 이임했다.
2007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