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각영

 


金珏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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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生
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 김대중 정부 말기에 제32대 검찰총장으로 재직했다. 현재 하나고등학교 이사장을 맡고 있다.

2. 생애


1943년에 충청남도 보령시에서 태어났다. 1962년 대전고등학교(41회)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고대법대 졸업 후인 1970년에 제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의 합격기는 지금도 인터넷에서 읽을 수 있다.#
1975년 대구지검 검사가 되면서 검찰생활을 시작했다. 1989년 광주지검 부장 시절에는 조선대생 변사 사건을 깔끔히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통영지청장 시절 ‘떡값 파문’으로 승진이 늦었으나, 1999년 조폐공사파업 유도 사건 직후 대검 공안부장에 발탁돼 능력을 인정받았다.
2000년 7월 15일 제41대 서울지검장으로 임명되었다. 서울지검장 시절이던 2002년 2월 진승현·정현준 게이트의 수사를 맡았다. 그러나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서 '대통령 아들 봐주기' '부실수사' 등을 문제 삼으면서 부산고검장으로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그 후 2002년 8월 대한민국 법무부 차관으로 중앙에 복귀했다.
2002년 11월11일 `피의자 사망'사건의 여파로 이명재 당시 총장이 전격사퇴하자, 그 뒤를 이어 검찰총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언론에서 검찰내 충청 인맥의 대표주자로 ‘공안통’이며, 외유내강형으로 일처리가 꼼꼼하고 빈틈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3년 2월 25일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노무현 대통령한테서 `임기 보장' 약속을 받자, 전국 평검사 회의를 상설화하는가 하면,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국민의 소리' 코너를 신설하는 등 개혁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검찰인사와 관련해서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마찰을 빚었다. 김각영이 천거한 몇 사람의 검사에 대해 강금실이 "정치적으로 의혹을 받았던 분들이 있어 받아들일 수 없다. 고문사건과 관련된 분도 있다"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
결국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취임한지 12일만인 2003년 3월 9일에 가시돋힌 퇴임사를 남기며 물러났다. "새 정부가 파격인사라는 이름 아래 서둘러 기준 없는 인사를 벌이고 있다"는 발언을 한 것.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검사와의 대화'에서 공개적으로 "현 검찰 수뇌부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이 결정타가 되었다는 평가다.
2020년 금태섭 전 의원의 발언에 따르면 검사와의 대화를 TV로 본 김 총장이 퇴근하려고 대검 청사를 나서고 있는데 대검 기획과장이 슬리퍼 차림으로 쫓아와 그 날 안으로 사표를 내야 한다고 강권해 사직했다고 한다.#

3. 기타


외모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과 닮았다는 이유로 한때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