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피겨 스케이팅)

 

'''종합선수권 여자 싱글 챔피언'''
[image]

김채화
(2007)

'''김나영
(2008, 2009)'''

김해진
(2010)


[image]
<colbgcolor=#cc0000> '''이름'''
김나영(金羅英, Kim Nayoung)
'''국적'''
대한민국[image]
'''출생'''
1990년 1월 18일(33세), 전라북도 전주시
'''학력'''
연수여자고등학교
인하대학교 체육교육과
'''신체'''
158cm
'''종목'''
피겨 스케이팅
1. 소개
2. 선수 경력
2.1. 어린 시절
2.2. 노비스 시절
2.3. 2005-06 시즌
2.4. 2006-07 시즌
2.5. 2007-08 시즌
2.6. 2008-09 시즌
2.7. 2009-10 시즌
2.8. 2010-11 시즌
2.9. 2011-12 시즌
3. ISU 공인 최고점수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2.1. 어린 시절


6살 때 처음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했으며 9살인 1998년 종별선수권 여자 초등부 B조에서 우승했다.

2.2. 노비스 시절


2002년 12월 골든베어 노비스 부문에 출전해 4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이던 2003년에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기량 향상이 늦어졌다. 이후 두 시즌 동안은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2.3. 2005-06 시즌


이 시즌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되었다. 2005 JGP 에스토니아와 2005 JGP크로아티아에서 각각 19위와 16위를 하며 주니어 그랑프리 데뷔를 했다. 2006 종합선수권 주니어 부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2.4. 2006-07 시즌


[image]
2006 JGP 대만
2006 JGP 노르웨이에서 12위를 하고, 2006 JGP 대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국제대회 첫 메달을 획득하였다. 2007 종합선수권에서는 주니어 부문 우승을 했다.
첫 시니어 국제대회에 출전하여 2007 사대륙선수권에서 13위를 기록했다.

2.5. 2007-08 시즌


아시안 트로피 시니어 부문에 참가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image]
2007 JGP 크로아티아
2007 JGP 오스트리아에서 21위에 그쳤으나, 2007 JGP 크로아티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8 종합선수권에 시니어 부문으로 처음 참가하였고 우승을 차지했다. 2008 사대륙선수권2008 세계선수권에서는 각각 4위[1]와 19위를 기록했다.

2.6. 2008-09 시즌


네벨혼 트로피에서 7위를 기록했다. 2008 컵 오브 러시아[2]에서 9위를 기록하며 시니어 그랑프리에 데뷔했다. 2008 NHK 트로피에서는 국제대회에서 첫 트리플 토룹 점프를 성공하며 9위를 기록했다. 이 대회 직후 이창주로 코치를 옮겼으며 2009 종합선수권에서는 2연패를 달성했다. 2009 사대륙선수권2009 하얼빈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는 16위와 7위를 기록했다. 2009 세계선수권에서는 17위에 오르며 김연아와 함께 한국 올림픽 여자싱글 출전권을 2장으로 만들었다.[3] 이후 트리글라브 트로피에서 은메달을 따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2.7. 2009-10 시즌


뉴질랜드 동계체전에서 3위를 했다. 이 대회가 끝나고 캐나다로 전지훈련지를 옮겨 미셸 레이를 새로운 코치로 선임했다. 올림픽 출전선수를 뽑는 2009 회장배 랭킹대회에서는 6위를 하여 올림픽에는 참가할 수 없었다.[4]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2010 종합선수권에서는 5위에 그쳤다. 2010 사대륙선수권에서는 15위를 기록했다.

2.8. 2010-11 시즌


동계체전에만 참가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2.9. 2011-12 시즌


동계체전에만 참가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 대회를 끝으로 은퇴했으며, 현재는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3. ISU 공인 최고점수


'''ISU 공인 최고점수'''
<colbgcolor=#cc0000> '''쇼트'''
53.08(2008 사대륙선수권)
'''프리'''
105.41(2008 사대륙선수권)
'''총점'''
158.49(2008 사대륙선수권)
[1] 2020년 대회에서 유영이 은메달을 따기 전까지, 2016년 대회의 박소연과 2018년 대회의 최다빈과 함께, 김연아를 제외하고 사대륙선수권 최고 순위로 기록되어 있었다.[2] 처음에는 NHK 트로피에만 배정을 받았으나 추후 다른 선수가 기권하면서 공석이 생겼다. 원래대로라면 추가배정을 위해 연맹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했으나, 당시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당시 팬카페 회장인 15세 남학생과 20대 여대생 팬의 주도 덕분에 추가배정을 받았다.[3] 만약 김연아 선수만 출전했다면 올림픽 출전권 3장을 얻을 수 있었다. 어느 국적의 선수든 혼자 출전했을 때 금메달이나 은메달을 따면 올림픽 출전권을 3장을 딸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올림픽 출전권을 한장만 따도 훌륭한 결과였기 때문에 만행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또한 국가대표 선수들 중 김연아 말고는 마땅히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선수도 없었으니 3장을 따와도 별 다를 것이 없었다.[4] 곽민정이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올림픽에 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