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마리아(1903)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김마리아
金瑪利亞 | Mariya Elenovna Kim[1]'''

김마리아(좌)와 아들 이인종(우)
<colbgcolor=#0047a0><colcolor=#ffffff> '''출생'''
1903년 9월 5일
한성부 성동방 대구면 송천리
(現 서울특별시 성동구)
'''사망'''
1970년 2월 10일 (향년 66세)
서울특별시
'''본관'''
경주 김씨
'''별칭'''
'''호(號)''': 추산(秋山)
'''아명(兒名)''': 김수란(金秀蘭)
'''부모'''
아버지 김미하일로비치
'''배우자'''
이범석
'''자녀'''
장남 이부흥, 차남 이인종
'''학력'''
국방대학교 (졸업 / 1기)
'''종교'''
개신교 침례회
'''군복무'''
한국 광복군 '''상사 전역'''
'''상훈'''
건국포장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1. 개요
2. 생애
2.1. 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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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운동가, 정치인, 군인.

2. 생애


1903년 생으로, 러시아로 귀화한 교포 경주 김씨 김미하일로비치(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의 딸[2]로, 마상 쌍권총 실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한다. 만주에서 활동하다 일본제국 경찰에 잡혀 고문을 당한 적이 있고, 이때의 후유증으로 병을 얻게 되었다.
1925년 8월에 후일 광복군 참모장,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이 되는 이범석과 만나 결혼하였다.
해방 후에는 남편 이범석과 이기붕이 권력 암투를 벌일 때 이를 지원하며 이기붕의 아내인 박마리아[3]와 대립하기도 했으며, 싸움에서 밀려 이범석이 실각하자 직접 경무대로 가서 이승만과 말다툼을 벌였다는 일화가 있다.
1970년, 만성 당뇨병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2.1. 사후


1977년에 대한민국 건국포장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1] 러시아명[2] 1901년생이라는 기록도 있으며 김미하일로비치가 1896년생인데 어떻게 딸인지 가계 조사가 필요하다[3] 이 쪽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여성 친일반민족행위자 가운데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