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야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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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출처: 포토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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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전 프로야구 중계자로서의 모습
1. 소개
전 한화 이글스 투수이자, 전 대전광역시 체육회 임원이며 현 범죄자. 해설하던 시절엔 KBS 대전의 프로야구 한화 홈경기를 주 1~2회 해설했다.
2. 아마추어 시절
고교 시절 박정진, 김건덕과 함께 3대 투수로 꼽혔으며(우완투수 3인방에는 김건덕, 김병준 외에 최동진이 들어간다.) 1994년 세계 청소년대회 우승의 주역이었다. 한편 오창선, 김승권과 함께 1994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대전고의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고려대학교 재학 중 심각한 목 디스크로 프로지명에 실패했다.
3. 프로 시절
드래프트 지명을 받는데 실패한 김병준은 1999년 한화 이글스의 신고선수로 입단하게 된다. 당시 선발이었던 송진우, 이상목, 정민철이 모두 빠져나가고, 불펜진에서 이상열, 임창식, 홍우태 등등으로 어찌 버텨나가던 투수진은 5886899678의 암흑기 때만큼의 멸망 상태였고, 이희수 감독은 조규수, 허진석 등과 함께 그를 울며 겨자먹기로 등용하게 된다.
김병준은 고교 시절 150을 찍던 강속구 투수에서, 프로 입단 시 130이 겨우 넘는 속구로 인해, 처음 2년 동안 타자들에게 맥을 못 춘 모습을 보여줬고 2000년과 2001년엔 2년 연속으로 삼성 라이온즈전 빈볼 시비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2002년 이광환 감독이 복귀시킨 정민철이 초반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과감하게 2군으로 내린 후, KIA와의 대전 홈경기에서 선발 기회를 잡았고, 5와 1/3 이닝 동안 1실점으로 첫 선발승을 따냈다.
하지만 그 강렬함도 잠시 김병준은 전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다, 그 해 시즌이 끝나고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대했고 상무 입대 후 선수 생활 지속 의욕이 떨어지면서 군 제대 후 한화에서 방출 처리되어 유니폼을 벗었다.
4. 은퇴 이후
상무 제대 이후, 대전광역시 체육회 임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유소년 및 실업 선수들 관리, 갑천 수상 레포츠 사업을 담당했다.
2011년 KBS 대전방송총국 김연선 아나운서의 소개로, 이희수 전 감독과 로테이션으로 프로야구 해설을 시작했고, 부업으로 주 1~2회 해설을 담당했다.
그러다 2016년 시즌 종료 후인 11월 3일, 한국일보에 부동산 투자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단 소식이 알려졌다. 기사상에서는 실명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1999년 입단한 한화 투수 출신 해설위원이면 딱 1명뿐이다. 이듬해 5월 24일 징역 3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5. 여담
벤치클리어링 발생 시에도 격렬하게 상대팀 선수들과 싸울 정도로 굉장히 다혈질적인 선수였다. 2000년 6월 11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삼성 정경배에게 대놓고 헤드샷을 맞췄고, 결국 양 팀간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하게 된 단초를 제공했다. 1년 뒤인 2001년 8월 18일 또 삼성과의 경기에서 당시 삼성의 외국인 타자였던 매니 마르티네스에게 대놓고 위협구를 던진 뒤 이에 마르티네스가 흥분해 마운드로 달려들자 이단옆차기로 맞받아쳤고, 결국 8경기 출장+제제금 200만원이라는 징계를 부여받았다. 본치않게 양팀간 벤치클리어링 역사 중 두 차례나 연루된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