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우태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이자 前 KIA 타이거즈의 투수코치.
2. 선수 시절
서울 대방동의 성남고와 대구의 계명대를 졸업하여, 계명대 시절 포수 김성태와 배터리를 이루면서, 1994년 OB 베어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지명 당시만 해도 죽을 힘을 다해 던져도 133km/h가 최고 구속이었던 아리랑 볼러였다. 그래서 프로 무대에서 상당히 험난한 경쟁을 펼칠 것이라고 예상했고, 지명 당시만 해도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좌완도 아닌 우완이 133km/h가 최고 구속이었으니 당연한 지도...
그러나 홍우태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바이킹 수준으로 꺾이는, 속된 말로 죽여 주는 '''포크볼'''이었다. 그 각도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엄청난 것이어서 지금까지도 낙폭으로는 KBO 최고로 불리는 예술의 포크볼이었다. 고교와 대학 시절에 그 똥볼을 가지고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그 포크볼이었다. 그래서 '''"홍포크"'''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1994년 깜짝 선발로 낙점받아 규정 이닝까지 채우며 OB 베어스의 선발로 자리매김했다. 이 공 느린 투수의 성공으로 볼이 느려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으로 여겨졌었다. 1994년에 7승 11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3.52로 준수한 성적을 냈다. 여담으로, 스탯티즈에는 1994년의 홍우태가 평균자책점 10.35로 '''역대 한시즌 최저 WAR'''[2] 으로 기록되었으나 현재는 ERA 및 WAR 모두 수정된 상태이다.
'''그러나 이 신인 때의 성적이 결국 커리어 하이였다는 것.'''
원채 구속도 떨어지고 가벼운 새털 직구에 포크볼 이외에 이렇다 할 무기가 없었던 그에게 KBO의 무대는 방위 복무까지 겹치면서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결국 신인 이후 별 볼일 없는 커리어를 남기면서 1997년 6월 30일 한화 이글스의 외야수 박상현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었고, 2001년 한화에서 은퇴하고 만다.
3. 지도자 시절
은퇴 후에는 모교인 성남고등학교에서 아마야구 지도자의 길을 걸었고, 이희수 감독 옆에서 코치로 일했다. 2006년 이희수 감독이 지도자 은퇴를 선언하자 2007년부터 성남고 감독을 맡아 그 해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전주고에게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3] 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3년부터 KIA 타이거즈에 영입되어 프로 코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KIA 팬들은 그의 현역 시절에 보여 주었던 사기적인 포크볼을 투수들에게 제대로 전수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규 시즌 시작 전에 뜬금없이 1군 불펜코치에서 3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이동되었다. 2014년 6월 KIA 투수진의 부진으로 김정수가 3군으로 내려가면서 이대진이 불펜코치에서 1군 메인으로 승격되자, 1군 불펜 투수코치로 콜업되었다.
이후 2018시즌이 끝나고 재계약에 실패했다. 2019년에 울산공고 감독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