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수
1. 소개
대한민국의 전 프로야구 선수.
2. 아마추어 시절
천안북일고 시절 최고 145km/h 안팎의 직구와 슬라이더를 앞세워 봉황대기 MVP를 수상하는 등 초고교급 투수로 주목받았고, 2000년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1차 지명을 받아 2억 800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다. 김태균이 그의 초-중-고 1년 직속 후배다.
팬들은 조규수가 '제2의 정민철'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했고, 구단 역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떠난 정민철의 등번호였던 55번을 조규수에게 주면서 기대를 걸었다.
3. 프로 데뷔후
프로 첫 시즌, 조규수는 4월에만 5연승을 거두며 정민태와 공동 다승 1위를 달리기도 하는 등 특급 신인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활약을 펼친다.
하지만 5월 19일 열린 현대 유니콘스전, 조규수는 이 날 박경완에게 두 개의 홈런을 헌납했고 박경완은 프로야구 최초 4연타석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이 경기 이후 페이스가 떨어지며 10승 12패 ERA 5.05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고, 신인왕도 SK 와이번스의 이승호에게 내주게 된다.
2001 시즌에는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7승 8패 2세이브 ERA 4.24의 그럭저럭 준수한 성적을 기록한다. 하지만 이 때부터 조규수의 한계가 뚜렷하게 보인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직구가 가벼워 장타를 많이 허용하고 체력이 좋지 않아 긴 이닝을 소화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팔꿈치 부상과 잦은 투구 폼 변경도 조규수에게 악재로 작용했고, 이후 2002시즌에는 5승, 2003시즌에는 4승에 그치며 이른바 만년 유망주 테크를 밟게 된다.
그리고 2004 시즌에는 새가슴으로 낙인찍히며 아예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내다가 설상가상으로 시즌 후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는 등 최악의 한 해를 보냈고, 이듬해인 2005 시즌이 끝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된다.
그리고 2008 시즌부터 팀에 합류했으나, 공익근무 기간동안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조규수의 공은 채 140km/h를 넘지 못하는 배팅볼로 전락해 있었다.
복귀 후 2군에서만 시간을 보내다가 2009 시즌 후 이대수를 상대로 김창훈과 함께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되었지만 두산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했고 결국 2011 시즌 후 방출되었다.
방출 이후 천안에서 사회인 야구단에서 선수생활 및 심판을 본다는 제보와 함께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4년 12월 23일, 평택시 리틀야구단 감독으로 부임했다.
4. 기타
2004년 한화 시절, 8회 1사 만루에서 유승안 시프트가 걸린 상황에서 큼지막한 좌측 2루타를 맞으면서 유승안 감독을 쓴웃음 짓게 한 전력이 있다. 해설자에 따르면 1사 만루에서 병살 땅볼을 노리고 있는데 풀카운트까지 간 게 패인이라는 듯.
5. 연도별 주요 성적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