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노래)

 


1. 개요
2. 가사
3. 우리나라 최초의 랩송 논란
4. 여담


1. 개요


1989년에 가수 홍서범김병연을 모델로 한 노래다. 대한민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의 랩송으로 알려져 있다.

2. 가사



김삿갓 김삿갓 김김 삿갓삿갓 김김 삿갓삿갓
김삿갓 김삿갓 김삿갓 김삿갓 삿갓삿갓 삿갓삿갓
1807년 개화기[1]에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글공부를 좋아하여
열 살 전후에 사서삼경 독파 이십세 전에 장원급제했네
안동 김씨에 본명은 김병연 어머니를 모시고 아들 둘에 처 하나
중국의 이태백 일본의 바쇼 그렇다면 보여주자 대한민국 김삿갓
백일장 과거에서 조상을 욕한 죄로 하늘이 부끄러워 삿갓을 쓰고
이름도 버리고 가정도 버리고 욕심도 버리고 양반 또한 버렸네
그 후로 한평생 삿갓을 쓰고 삼천리 방방 떠돌아다니니
사람들은 그를 보고 김삿갓 김삿갓 삿갓이라 하네
김삿갓 김삿갓 나는 좋아 김삿갓
김삿갓 김삿갓 너무너무 좋아 김삿갓
삿갓 쓰고 죽장 짚어 바람 부는대로 구름처럼 떠돌며
착한 서민의 친구 되어 못된 양반 혼내 준 의리의 사나이
도인에는 도 시에는 시로 맞서 시 짓기 내기에 져 본 일이 없네
산첩첩 수중중 구경하고 동가식 서가숙 방랑하네
외롭고 고독한 방랑의 생활 술은 삿갓의 유일한 친구
한 잔 하면 시상이 떠올라 두 잔 하면 세상이 내 것이라
한 잔에 시 한 수 또 한 잔에 시 한 수 신선의 목소리 무아의 경지로다
천재로다 천재로다 김삿갓 김 삿갓
삿갓 삿갓 삿갓 삿갓
김삿갓 김삿갓 나는 좋아 김삿갓
김삿갓 김삿갓 너무너무 좋아 김삿갓
김삿갓 김삿갓 김김 삿갓삿갓 김김 삿갓삿갓
김삿갓 김삿갓 김삿갓 김삿갓 삿갓삿갓 삿갓삿갓
가사가 좀 고증에 안 맞는 부분들이 있다.
  • 1807년 개화기에 태어나: 개화기라고 부르려면 강화도 조약 이후에나 되어야지 이 시점은 개화기가 아니라 조선 후기라고 해야 한다. 시대상의 개화기(開化期)가 아니라 양력 4월인 봄에 출생해서 꽃피는 개화기(開花期)라는 얘기도 있다.
  • 20세 전에 장원급제했네: 전술했듯이 예전에 김삿갓이 과거에 장원급제했는데 알고보니 할아버지를 욕한 것이 되어버려서 충격먹고 삿갓쓰게 되었다라는 통설에서 나온 거지만 현재의 연구성과로 보면 김삿갓은 장원급제는커녕 과거 급제도 한 적이 없다.

3. 우리나라 최초의 랩송 논란


이에 대해서 반론도 약간 있는데 우선 1년 먼저 공개된 김수철의 '무엇이 변했나'의 중간 부분도 랩과 매우 유사하다. 김완선의 '그건 너'를 원조로 보기도 하지만 랩이라 하기엔 좀 애매하다는 의견이 많고, 김삿갓보다 한두달 정도 이른 날짜인 1989년 8월에 발표한 박남정의 '멀리 보이네'도 원조로 보나, 실제 앨범 발매일은 김삿갓보다 늦다는 듯. 그 외에 서수남과 하청일의 '팔도유람'을 한국 최초의 랩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건 랩을 '멜로디보다 리듬에 중점을 두고 가사를 읊조리는 스타일의 노래'로만 이해하는 오류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랩은 힙합음악의 한 부분으로서 발전한 장르인 만큼 미국 힙합음악과의 연관성을 기준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페라가 그 형식뿐 아니라 계보적으로 16세기 이탈리아 음악극의 전통 아래 있는 가극으로 정의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팔도유람'이 나온 1971년은 미국에서도 아직 힙합/랩 음악이 등장하지 않았던 시절이다.[2],따라서 '팔도유람'은 우연히 결과물의 형식적인 측면에서 랩과 유사한 부분들이 있었던 것뿐이고[3] 한국 최초의 랩송은 홍서범의 '김삿갓'이 맞다.[4] 홍서범이 직접 '미국에서 최근에 유행하는 장른데 한번 시도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을 뿐만 아니라 초창기 힙합음악처럼 디스코 훵크 반주에 랩을 얹었으니 힙합 스타일에도 나름대로 충실했다.[5]또한 이 인터뷰에서 전설적인 힙합 그룹인 Run DMC까지 콕 집어서 언급했으니...

4. 여담


그리고 한국에서 선구적인 랩 장르에 따른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 곡은 처음에 심의에서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유는 '''음정불안'''. 당연하지만 당시 심의를 하는 사람들은 힙합과 랩이라는 장르 자체가 생소하여 '''멜로디가 없는 곡'''은 처음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이에 홍서범은 직접 미국 힙합을 들려주며 미국에선 멜로디 없는 '''이라는 장르가 있다'''고 해명하여 방송이 가능하게 됐다.
홍서범이 가사를 좀 더 진지하게 쓰고 지속적으로 활동했다면 명실공히 최초의 한국 힙합음악이라고 추켜세우겠지만, 가사가 너무 뜬금없고 랩스타일도 그닥이라 홍서범의 기행 정도로 평가되는 모양. 뭐 홍서범이 이 곡을 만들 땐 제대로된 레퍼런스도 없이 런DMC의 음악만 참고했을 테니 들어서 알 수 있는 음악적 형태(펑키한 반주에 멜로디 없이 말을 빨리하는 정도)만을 참고하여 라임은 그냥 가사에 김삿갓을 반복하여 끼워넣고 요즘 힙합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자신의 이야기를 남 눈치 안보고 가감없이 솔직하게 한다'''라는 개념도 없었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한국어 라임은 2000년대 들어서야 등장하고 본격적인 힙합뮤지션들의 초창기 작업물들도 지금 들어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플로우를 들려주기 때문에[6] 지금의 기준으로 홍서범의 도전을 폄훼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다만 당시 미국에선 뉴잭스윙이 대세였기에 약간 늦은 감이 있었다. 이 후 뉴잭스윙 스타일의 힙합 음악으로 등장한 현진영의 '슬픈 마네킹'(1990)이나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1992)보다 앞선 랩송.
하지만 정작 가사 내용은 김삿갓을 표현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서 특별한 의의는 없다(?).
동어반복으로 중독성을 준다는 점과 특별한 의미없는 가사는 놀랍게도 현재 큰 인기를 끄는 래퍼 릴 펌프의 스타일과 상당히 유사하다. 어떻게 보면 너무 시대를 앞서간 곡이라 할 수 있다.
스타골든벨 절대음감에도 등장했다. 이때는 상반기 결산 특집이라 역대 최고난도 단어가 주제였는데 이 중에서 난이도는 ★★☆☆☆ 수준으로 다른 단어에 비하면 쉬웠지만, 절대음치 최정원이 무려 2분 42초를 잡아먹은 끝에 MC의 긴급제안으로 혼자 도전했고 결국 2분 55초를 기록하며 힘들게 성공했다. 미션도 걸려있었지만, 애초에 통과만 해도 기적이라...

[1] 실제로는 1807년은 개화기보다 몇십 년 전이지만 꽃이 피는 개화기로 이해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2] 다만 이 때 미국에선 랩의 청사진으로 평가받는 노래가 발표되었다. 미국의 가수인 길 스콧 헤론(Gil Scott Heron)의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가 그것. 이 노래는 훵키한 재즈 반주에 높낮이 없는 시적인 가사를 붙인 곡이다.[3] 가사를 빠르게 읊조린다는 점 외에는 딱히 랩 같지도 않다. 오히려 포크 음악 비슷한 느낌이다.[4] 이런 점에서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가 없으면 못마십니다.'가 한국 최초의 랩이라는 말도 틀렸다. 물론 이쪽은 노래가 아니라 서영춘의 만담에서 나온 일종의 유행어에 가까워서 진지한 주장이라기보다는 농담에 가깝지만.[5] 아마도 팔코(Falco)의 'Rock me Amadeus'에 영감을 받은 듯하다.[6] 언더 힙합의 제왕이자 마스터플랜의 간판스타였던 주석이 아직 동호인 수준에 지나지 않던 시절, 하이텔 동호회 BLEX 멤버들과 만든 음반인 '검은소리, 첫번째 소리'를 들어보자. 나름대로 속사포 랩을 하고싶었던 모양이지만 귀가 썩는 수준의 랩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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