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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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서범은 대한민국 가수, 방송인이다. 1959년 1월 15일에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참고로 부모는 다 이북 출신이다.[3]
캠퍼스 밴드 옥슨을 만들었으며, 옥슨80은 '불놀이야'로 제3회 TBC 젊은이의 가요제 금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후 여러 히트곡들을 냈다. 참고로 장로회 신자다.
2. 학력
- 1971년 서울덕수초등학교 졸업[4]
- 1974년 서울양정중학교(60회) 졸업
- 1977년 충암고등학교(6회) 졸업[5]
- 1984년 건국대학교 농축산학 학사
- 1988년 건국대학교 대학원 농업공학 석사
- 2006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영상학 석사
3. 경력
4. 결혼 전
충암고등학교를 졸업 후 건국대학교 농대에 재학 중 2학년때 팀 '옥슨79'를 창설하면서 멤버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1980년에는 건국대학교 캠퍼스 밴드 '옥슨80'을 결성하여 리더를 맡게 되었는데, 같은 해 TBC 젊은이의 가요제에 불놀이야[7] 라는 곡으로 출전, 금상을 수상했다.
1984년, 홍서범의 전역 후 2집을 발표한 옥슨80은 '가난한 연인들의 기도'와 '걷잡을 수 없어요' 등으로 KBS 음악대상 '가사대상'에서 그룹 부문을 수상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3집(1985년)의 '당신은 왜'가 시위사건에 연루되며 빛을 보지 못했고, 결국 1987년 밴드는 해체하게 됐다.
1989년 솔로 가수로 정식 데뷔했다. 솔로 가수로 데뷔한 뒤에는 '나는 당신께 사랑을 원하지 않았어요'가 사랑을 받기는 했지만 구인광고, 대한민국 최초로 공식 발표된 타이틀 트랙 '''랩'''송으로 꼽힌다는 김삿갓을 발표하며 화제를 모았다. 한국 힙합가수가 퓰리처상을 받는다면
90년대 초반 '구인광고'를 부르던 시절 예능에 출연, 각종 콩트에서 군대를 갓 제대한 FM군인 캐릭터를 실감나게 연기한 적이 있는데 이 당시에 히트친 유행어가 바로 '''"뭘 보나? 경제를 살리자는데?"'''.
그러던 중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대학가요제 출신인 조갑경과 함께 1990년에 듀엣으로 발표한 '내사랑 투유'였다.[8] 이후 둘은 1994년 진짜로 결혼에 골인하면서 연예인 부부로 유명해지게 된다. 더욱이 홍서범은 결혼 당시 35세 노총각이었고 조갑경과의 나이차도 9살이나 나서 여러모로 화제가 된 결혼이었다.
실제로도 홍서범은 조갑경을 보자마자 미모에 반해서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시작했지만 조갑경이 몇차례 거절했었다고 한다. 결혼 전,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해서 열애설을 부정하는 인터뷰를 한 적도 있는데 이때 조갑경 말이 "저도 눈이 있는데 이런 아저씨랑 결혼하겠어요?" 그런데 바로 옆에서 듣고있던 홍서범은 시종일관 흐뭇한 미소를 짓고있어서 보는 사람들을 모두 헷갈리게 만들었다. 결혼 발표 후에 한 인터뷰에선 이때 이미 거의 결혼을 허락한거나 마찬가지 상태였다고. 즉, 자길 디스하는 소릴 듣고도 "우리 자기 연기 잘하네"라며 흐뭇해 했던 것이라고...
5. 결혼 후
조갑경과 결혼 후에는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9] 과 TV 방송에 출연하였다. 특히, 홍서범은 다재다능한 예능 감각으로 인하여[10][11] '종합예술인'이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했다.
학업에도 몰두하여 2005년 "《7080콘서트》의 의미구조와 신화연구 : 문화의 소비유형 패턴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성균관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지도교수는 신문방송학과 백선기 교수. 이 논문에는 7080 노래들의 신화적 해석도 들어가 있다. 이 논문 때문에 홍서범은 다른 교수들을 제치고 성균관대 학술정보관 홈페이지 인기검색어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2014년에는 그의 큰아들 홍석준[12] 도 건국대학교에 입학하여 동문이 되었다.[13] 그리고 막내딸 홍석주는 박남정의 딸로 알려진 박시은과 함께 고양예고에 입학했다고 한다.
LG 트윈스 하드코어 팬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 뜬금없이 현대 유니콘스 응원가를 녹음했다고 알려졌는데, 자세한 내용은 이 문단에서 참조 바람.
6. 출연작품
6.1. TV방송
6.2. 라디오
6.3. 영화
6.4. CF
- 롯데칠성음료 홍대추 (홍록기, 홍진경과 함께 출연)
- 롯데제과 포동포동 - 홍서범편 (1993)
- 농심 조청유과
- 국제약품 고프레 - 홍서범부부 (1994)
- 비락 마파밥짜장밥 -밥통편 (1995)
- 대추음료 홍대추 (1996)
- 데이콤 국제전화 002 (1998)
- LG유플러스 국제전화 002 (전원주와 함께 출연)
- LG생활건강 랑데뷰알파샴푸
- 한국가스안전공사
- 동성제약 세븐에이트
- 태화 고무장갑
- 두크펌프 (조갑경과 함께 출연)
7. 음반 활동
7.1. 그룹 옥슨80
그룹밴드는 옥슨80 문서를 참조하세요.
7.2. 정규
7.3. 비정규
7.4. 듀엣
조갑경 2집(내사랑 투유)(1990)
7.5. 참여
8. 공연
9. 복면가왕 출연
10. 여담
- 홍서범은 1979년 6인조 밴드 '옥슨 79'를 경설해서 <전국 대학 보컬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이듬해 후배 기수가 대회 출전을 위해 곡을 써달라 해서 써줬는데 마땅한 가수가 없어서 본인이 '옥슨 80'으로 제3회
에 출전했는데, 금상을 수상했다. 옥슨 80 (1980)의 그룹 멤버는 홍서범(보컬), 김정욱(베이스), 이태중(기타), 윤중서(키보드),안기정(드럼), 이태선(기타)으로 구성되어 있다. - 옥슨 밴드그룹은 다른 학교들의 캠퍼스 밴드와 마찬가지로 후배들이 계속 이어서 활동하는 밴드다. 11기에 해당하는 옥슨89가 1989년 MBC 강변가요제에 참가해 '청개구리'라는 곡으로 금상을 수상했는데 당시 밴드를 이끈 사람이 마지막 승부의 주제곡을 부른 김민교다.
- 그의 곡 김삿갓(1989년 발표)은 대한민국 최초의 랩 음악으로 꼽힌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보다 3년 먼저 출시되었다. 데뷔 후 홍서범의 라디오에 출연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홍서범에게 이 노래를 듣고 랩을 시작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초의 한국어 랩을 아시나요? 김완선이 대한민국 최초로 '그건 너'(이장희 노래 리메이크 트랙)라는 비타이틀 트랙을 랩 노래 부분 가사로 열창하였던 이후로는 처음인 데다가 단순히 음이 없고 말이 빠른 수준이 아니라 원시적이지만 라임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곡이다. 초기 힙합 음악처럼 디스코 펑크에 빠른 랩을 얹은 형식을 한국화한 초창기 힙합 음악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발매 당시에는 한국 가요계에 힙합은 물론 랩이란 개념 자체도 없던 시절이라 발매하자마자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 홍서범이 심의실에 가서 이유를 물었더니 그 이유가 음정 불안이었다고.
- 방송활동 뿐 아니라 CM경력도 여러번 되는데 그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라면 데이콤(LG유플러스 전신) 국제전화 관련 광고. 요금환급제 관련인데 돈 하면 생각되는게 세종대왕이라서... 순수 곤룡포를 입고 임금님 코스프레를 하는데 방정맞은 목소리로 CM송을 부르는게 압박이다.
- 前 한국프로야구 선수, 코치로 활동한 김성갑의 건국대 3년 선배[14] 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성갑의 딸을 보고 '성갑이 딸이네?'라고 반가워했다.
- 최근에 장녀인 석희에게 애인이 생겼는데 자신에게는 무뚝뚝한 석희가 애인에게는 애교를 부리는 등 다른 모습을 보이자 서운해 했다.
- 2006년, 대한 남성과학회와 한국릴리는 홍서범, 조갑경 부부는 국내 첫 발기부전 홍보대사에 위촉되었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영화배우 폴 뉴먼, 브라질의 축구스타 펠레등이 바기부전 치료제의 홍보대사에 나선적이 있으나 국내에서는 처음이다.국내 첫 발기부전 인식전환 홍보대사에 홍서범, 조갑경 부부 선정
- 2016년 EBS 시대공감
>저 하늘로 떠난 불꽃을 보며 힘껏 소리치며 우리 소원 빌어봐”
> - 곡 ‘불놀이야’ 중
>현재까지 모교의 응원가로 불리는 이 노래는 80년대 청춘들의 심장에 정확히 불을 지폈다. 시대적 상황과 맞물린 가사가 인기의 첫 번째 이유였지만, 당시 캠퍼스 그룹사운드에선 쉽게 발견할 수 없는 펑키(funky)함을 전면에 내세우며 청자들을 자극한 것이 한몫을 했다. 또한 뮤지션 홍서범의 작곡 능력이 드러난 첫 결과물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는데, 이후 그는 옥슨80의 1집(1981)에서 전곡을 창작하며 그 재능을 꽃피우게 된다. ‘불놀이야’의 연장선에 있는 곡 ‘그대’나,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와 같은 작풍의 ‘날개’에서 발견되는 음악적 정체성은 현재 대중이 인식하고 있는 홍서범이란 인물과는 확연히 다른 로커로서의 DNA였다.
- EBS 시대공감
> - 곡 ‘불놀이야’ 중
>현재까지 모교의 응원가로 불리는 이 노래는 80년대 청춘들의 심장에 정확히 불을 지폈다. 시대적 상황과 맞물린 가사가 인기의 첫 번째 이유였지만, 당시 캠퍼스 그룹사운드에선 쉽게 발견할 수 없는 펑키(funky)함을 전면에 내세우며 청자들을 자극한 것이 한몫을 했다. 또한 뮤지션 홍서범의 작곡 능력이 드러난 첫 결과물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는데, 이후 그는 옥슨80의 1집(1981)에서 전곡을 창작하며 그 재능을 꽃피우게 된다. ‘불놀이야’의 연장선에 있는 곡 ‘그대’나,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와 같은 작풍의 ‘날개’에서 발견되는 음악적 정체성은 현재 대중이 인식하고 있는 홍서범이란 인물과는 확연히 다른 로커로서의 DNA였다.
- EBS 시대공감
11. 관련 문서
[1] 음력 1958년 12월 7일.[2] 홍석희와 홍석주는 딸임에도 석자돌림을 억지로 끼워넣어 이름이 극도로 남성적이게 되었다.[3] 양친만 피난 와서, 친척들과 전혀 왕래가 없었다고 한다.[4] 임백천, 주병진과 동기다.[5] 김영식 육군 대장과 동기다. 제1야전군사령관 취임식에 홍서범이 참석했다.#[6] 현재까지 발기부전 홍보대사를 맡고 잇는 것 같다. 여담 참조.[7] 홍서범은 "당시 부모님들은 공부를 안 하고 기타치고 노래하면 혼을 내서, 대학생들이 몰래 노래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가요제 대상을 수상하면서 놀란 부모님들이 노래를 부르라 허락했다"고 했다.[8] 사실 이 곡은 원래 장필순과의 듀엣곡으로 녹음까지 마친 곡이었으나 조갑경에게 반한 홍서범이 조갑경과 곡을 재녹음하여 발표한 것이라고 한다.[9] KBS 라디오 프로그램 홍서범의 뮤직쇼를 진행하였고, 2003년에는 SBS로 옮겨 라디오 프로그램 홍방불패 DJ를 진행하였다. 2년뒤에는 또다시 WBS로 옮겨 라디오 홍서범의 가요 TOP 10 DJ를 진행하였다.[10] 심지어 일요일은 즐거워의 캠퍼스 영상가요는 비공식 영상가요 대학 PV의 감독 전담이었다. 시작전에 대놓고 'Directed by Hong-Seo-Pum'이라고 매번 나온다.[11] 오프라인 콘서트를 가 본 위키러 증언으로 언어유희를 사용하는 유머에 굉장히 능하시다고 한다.[12] 축구부로 활동하고 있다.[13] 현재 부천 FC 1995에 입단해 2군에서 뛰고 있다.[14] 홍서범 78학번, 김성갑 81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