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오 바쇼
에도시대의 하이쿠 시인.''“방랑에 병들어
꿈은 시든 들판을
헤매고 돈다.”'''''- 바쇼가 사망 사흘 전에 쓴 하이쿠'''[1]
시성(俳聖: 하이쿠의 성인)이라고까지 불리는, 일본 하이쿠 역사상 최고봉인 사람이다. 지금의 미에현 이가시 출신.
바쇼는 배호(하이쿠 시인의 필명)이다. 본명은 무네후사(宗房).[2]
1. 개요
이가우에노 출신으로 재야무사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이 어려워 농사도 짓고 했다는 듯. 13세 때에 아버지가 사망, 생활이 어려워져 지역 유지인 토도 가에 시종으로 들어간다.무네후사가 모시던 사람은 두 살 위인 토도 요시타다였는데 이 둘은 함께 하이쿠를 배웠다. 요시타다를 모시던 마츠오는 따르던 주군이 25살로 요절하자 갈 곳이 없어졌는데 무사를 그만두고 젊은 나이에 키타무라 키긴에게 사사한 뒤 하이쿠 시인의 길에 들어섰다.
자주 여행을 다니며 노자라시 기행, 카시마 기행 등의 기행문을 남겼다. 제자 중 카와이 소라와 함께 겐로쿠 2년(1689년)부터 반년간 토호쿠, 호쿠리쿠 지방을 돌며 기후현 오오가키까지 여행하고 남긴 '오쿠로 가는 작은 길(奥の細道, 오쿠노호소미치)'[3] 이라는 기행문이 가장 유명하다.
최후도 여행 도중의 객사였다. 향년 51세.
쇼몬짓테츠(蕉門十哲)라고 불리는 타카라이 키카쿠, 핫토리 란세츠, 모리카와 쿄리쿠, 무카이 쿄라이, 카가미 시코우, 나이토 죠소우, 스기야마 산푸, 타치바나 호쿠시, 시다 야바, 오치 에츠진 등 특히 뛰어난 수제자 10명을 포함한 많은 제자를 두었다.
유명한 구절(중에 번역이 있는 것)
- 古池や蛙飛び込む水の音(고요한 연못/개구리 뛰어드는/물보라 소리)
- 五月雨をあつめて早し最上川(오월 오란비/거두어모아 거센/모가미가와)
- 夏草や兵どもが夢の跡(여름 나절 풀/수많은 병사들이/꿈꾸던 자취)[4]
- 名月や池をめぐりて夜もすがら(밝은 달이여/정원을 산책하며/밤을 새누나)
- 閑さや岩にしみ入る蝉の声 (고요함이여/바위에 스며드는/매미의 울음)
2. 여담
2000년 아사히 신문에서 '지난 1천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은 누군가?'라는 설문조사에서 6위를 기록했다. 1위는 나쓰메 소세키였다. 2위는 무라사키 시키부, 3위 시바 료타로, 4위 미야자와 겐지, 5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7위 다자이 오사무, 8위 마쓰모토 세이초, 9위 가와바타 야스나리, 10위 미시마 유키오였다.#
주문은 토끼입니까?에서 우지마츠 치야가 존경하는 인물이라서 라떼아트로 하이쿠를 쓰기도 했으며,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서는 히로세 코이치가 자신의 스탠드를 각성할 때 바쇼의 시가 나왔다.
3. 바쇼 닌자설
출신지가 닌자로 유명한 이가우에노[5] 이고, 전문 하이쿠 시인들은 여러 곳을 여행하곤 해서 첩보활동을 맡게 되곤 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또한 바쇼 자신도 여행 중에 여러 의문점을 남겨 실은 닌자가 아니었느냐는 설이 있다.
특히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의 기술이 여행 중 동행한 카와이 소라가 쓴 '소라 여행일기'와 80가지 이상에 달하는 차이가 있다는 것도 근거가 되곤 한다.
- 여행출발일자가 '오쿠로 가는 작은 길'에서는 5월 16일인데 '소라 여행일기'에서는 5월 9일로 기록되어 있다.
- 쿠로바네마치에서 14박, 스카가와에서 7박을 하며 수많은 시구를 남겼지만 출발 시에 절찬했던 센다이번 내의 마츠시마에서는 단 1구도 남기지 않고 하루만 묵고 통과해버렸다.(이것은 센다이번의 내부를 조사할 기회를 찾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다.)
- '소라 여행일기'에선 바쇼가 센다이한의 군사요새라고 하는 즈이간지(瑞巌寺), 상업항구인 이시노마키 항을 집요하게 구경했던 것이 기록되어 있다.(소라는 막부에서 임무를 받고 그 위장으로 바쇼의 여행에 동행했다는 설도 있다)
- 하루 400 km를 이동했다는 등 상식을 벗어난 여행속도
또 다른 이야기로는 핫토리 한조의 가명이 바로 마츠오 바쇼이고 그가 동요로 유명한 카고메카고메를 지었으며 그 노래가 말하는 속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숨은 진실(혹은 그가 숨긴 보물)이라는 이야기도 있긴 하다.
물론 후대의 설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어땠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탓에 마츠오 바쇼는 현대의 창작물에서 닌자로 그려지기도 한다. 게임인 전국 란스 등이 그 예.
와패니즘 사이버펑크 소설 닌자 슬레이어에서는 닌자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헤이안 시대를 카라테로 지배했던 닌자들을 파멸시킨 중요인물로 언급된다.
4.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의 바쇼
[image] [image]
오른쪽은 메카 마츠오 1호의 하이쿠 댄스.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의 '오쿠로 가는 작은 길' 에피소드의 주요 캐릭터. 성우는 나이토 료, 국내방영 성우는 오노노 이모코와 같은 현경수.[7]
제자 카와이 소라와 함께 여행을 하고 있으며 이 콤비는 팬들 사이ㅡ에서 '호소미치조(細道組)'로 불리고 있다. 실제 마츠오 바쇼는 이 시기에 노인이었으나.[8] 여기서의 외견은 그냥 아저씨(....)
쇼토쿠 태자와 마찬가지로 보케 담당 캐릭터가 되어 허구한날 바보짓을 하고 그때마다 제자에게 얻어맞고 사는 인물. 처음에는 성격 나쁜 제자에게 당하는 불쌍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계속 보다보면 정말 구제불능 아저씨라는걸 알게된다.(....)
만년 슬럼프를 겪고 있어 제대로 된 하이쿠를 짓지 못하고 있다. 아니, 슬럼프 이전에 하이쿠의 기본인 5·7·5[9] 조차 안 지키고 멋대로 지어내는 것이 태반. 그때마다 제자 소라에게 단죄당한다.
정말 드물게 좋은 하이쿠를 짓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실제 마츠오 바쇼의 작품이다.
나이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허약한데다 된장꼬치를 라스베가스로 잘못 듣는 등 신체상태가 영 좋지 않다. 제자보다 잘하는 건 물수제비 뜨기 달랑 하나. 힘은 제로에 가깝지만 '코딱지 미사일', '비듬 어드벤처', '비듬 토네이도' 등의 기술의 파괴력은 강력하다. 단 한 번도 소라에게 이긴 적은 없지만.
머피 군이라는 곰인지 뭔지 모를 봉제인형을 좋아해서 여행 중에도 가지고 다니며 유일한 친구라고 하고 있다. 하나가 아니라 가방 속에 두세 개 이상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소라가 하나의 목을 뜯어 내장(솜)을 드러내고 눈과 입을 꿰매버렸다.
아래는 만화 내에서 바쇼가 지은 엉터리 하이쿠 일부.
- 忍者かと思ってたら違ってた(닌잔가 하고/생각해 보았더니/아니었더라)
- かさねちゃんファイト一発根性だ(아자 카사네/파이팅 한방이다/근성이 최고)
- かさねちゃん元気はつらつどっこいしょ
- お尻はでん部ともいう
- アゴから指毛が生えたらイヤだ
- どうしてみんな私をバカというの(대체 어째서/모든 이들이 나를/바보라 하지)
- 野茂だもの逆から読んでものもだもの(만두먹두만/거꾸로 읽어봐도/만두먹두만)
- 最近いいこと少ない
- エマニエル夫人
- おいでやす京都(어서/오세요/쿄토)
- チクショーーーーー!(제/엔/장 -!)
- うんこ(또/오/옹)
- のぼせてきた
- 어제와 오늘/궁둥짝의 데미지/심각하구나
- 대낮이라도/숙박해 버릴거다/왜 아니꼽냐
- 다람쥐의 뺨/먹이가 들어가는/볼주머니지
- 버섯을 먹으니/섰구나/거기가
하이쿠가 아닌 것들이 많은 것 같지만 신경쓰지 말자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전혀 5.7.5구에 맞지 않았었다.
의외로 인기가 높아서 1회 인기투표 때는 우사미와 같은 표로 4위였다가 2회째에는 1위로 껑충 뛰었다.
[1]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돈슈라는 문하생이 바쇼가 읊는 하이쿠를 대신 종이에 적었다.[2] 바쇼는 두번째 배호이고 첫번째로 썼던 배호는 푸른 복숭아라는 뜻인 도세이(桃靑)였다. 38살 때 에도의 생활에 질려 파초암(바쇼안 芭蕉庵)으로 이사를 갔을 때 제자가 보내준 파초가 마음에 들어 배호를 바쇼로 바꾸었다.[3] 오슈(奥州)로 가는 작은 길이라는 뜻. 오슈는 넓은 뜻으로 토호쿠 지방 전체를 가리킨다[4] 히라이즈미에서 지은 시. 히라이즈미는 오슈 후지와라의 본거지로 영화를 누리던 곳이었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 형사 듀얼리스트에서 모역을 꿈꾸던 병판의 검에 새겨지기도 했는데 번역은 좀 다르다. 1991년 걸프전이 발발하자 미국의 선불교신자인 시인 샘 해밀이 영역본을 페르시아 만 주둔 미 군사령관 노먼 슈워츠코프에게 보내기도 했다. 또한 뒷부분의 '兵どもが夢の跡'라는 구절이 사무라이 스피리츠 제로에서 스탭롤 후에 나오는 게임오버 화면에 등장한다.[5] 이가의 토착무사들이 영주에게 반란을 꾀하려 해서 오다 노부나가가 두번에 걸쳐 이가를 토벌해 괴멸당했지만 다시 많은 사람이 이가에 모여 살았다.[6] 당시 막부는 다테번에 닛코 토쇼 궁을 수리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지출이 막대하기 때문에 다테번이 불만을 품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7] 졸지에 한국판 한정으로는 태자를 이겨먹는 이모코가 도리어 태자에게 당한다는 성우개그 성립이 되었다. 쇼토쿠 태자 한국판 성우와 카와이 소라 한국판 성우는 동일한 이규석이 담당했기 때문에 나온 성우개그.[8] 지금 보면 그냥 중년이지만 평균수명이 적었던 옛날에는 노인[9] 실제로 바쇼는 5·7·5 형식에서 조금씩 벗어난 하이쿠를 짓기도 했다. 이것을 글자가 넘친다고 지아마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