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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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
별명은 '''한국의 마이클 잭슨'''. 댄스 실력으로 보면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남성 댄서'''라는 평가도 받는다. 춤만 잘 추는 것이 아니라 MBC합창단 출신으로서, 듣는 이로 하여금 청량음료를 원샷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시원한 가창력으로, 노래만 들어도 어? 박남정이네? 할 정도로 고유의 음색과 특유의 창법을 가지고 있다. 또한 대히트곡 '널그리며'를 직접 작사·작곡하였으며 음정과 화음을 자유자재로 변조해서 부르는 등 음감이 뛰어난 뮤지션으로서의 기량 또한 아주 탁월하다.
곱상한 외모와 화려한 댄스 실력으로 당시 소녀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터넷 상의 전성기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 박남정이 등장하면 소녀 팬들의 환호성이 정말 대단했고 박남정 특집이 실린 하이틴 잡지는 완판되었다. 1980년대 말을 주름잡던 말 그대로 원조 아이돌.
2. 활동
1988년 '아 바람이여'로 화려하게 데뷔했으며, 노래와 함께 로봇춤이 인기를 얻었다.
1989년 '널 그리며'를 통해 더 큰 인기를 얻었으며, ㄱㄴ춤이 전국적으로 크게 유행했다. "널 그리며"는 디스코 풍의 댄스곡으로, 비 지스의 1979년 빌보드 1위곡 "Tragedy"와 흡사하다. 그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 곡은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로 골든컵을 수상했으며 후속곡인 '사랑의 불시착' 역시 골든컵을 수상하면서 조용필 이후 한 앨범에서 2곡의 골든컵을 배출한 수상자가 되었다.
참고로 박남정의 트레이드 마크로 알려진 이 ㄱㄴ춤은 사실 8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춤으로, 자넷 잭슨의 1986년 앨범 Control의 싱글로 발매된 'The Pleasure Principle'의 뮤직 비디오(1987)나, 같은 해에 나온 티파니의 'I Saw Him Standing There' MV, 마이클 잭슨의 1989년 싱글 Speed Demon의 MV 등에서 이미 등장했던 나름 유명한 춤이다. 뉴미디어 등장 전인 당대에는 외국 팝 시장의 것들을 베껴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알리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1분 42초부터 등장한다.
9분 27초부터 보면 된다. 4초 정도 가볍게 추고 만다.
놀라운 점은 이 노래들을 대부분 본인이 작사와 작곡을 직접 했다는 것이다.[5] 하지만 최전성기 때 히트 시킨 곡들은 뽕끼가 강한 댄스곡들이라서 90년대 이후 주류가 된 아이돌, 댄스 가수들과 음악적으론 별다른 접점이 없다.
특히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과 함께 인기가 하향세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선보인 타이틀 곡 '비에 스친 날들'은 지금 들으면 상당히 파격적인 랩이 들어있다. 박남정은 그 이전 1990년에 '멀리 보이네'에서 파격적인 랩을 선보이기도 했다. "멀리 보이네"는 1980년대 말 미국에서 인기를 끈 세련된 댄스 팝 스타일의 곡이다. 실제로 1987년~1989년 사이 미국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던 트렌디한 스타일이다. 댄스 팝과 프리스타일(Latin Freestyle)을 결합한 스타일으로 볼 수 있다. 뉴잭스윙과 함께 80년대 말 미국 댄스음악을 주도하던 스타일이었다. 원래 Dance-pop/Freestyle 장르에서 랩을 하진 않으나, 박남정이 이 스타일에 랩을 붙인 건 혁신적이다. 힙합과 R&B가 합쳐진 뉴잭스윙은 원래 노래와 랩이 같이 있으나 힙합의 드럼이나 비트, 멜로디 등에서 영향을 받은 프리스타일 계열의 댄스 음악은 원래 노래 위주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 장르에 1989년 당시 미국 메인스트림에서 쓰이기 시작한 랩을 붙이는 실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선 1989년부터 랩을 기반으로 한 댄스 음악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갱스터 랩 등의 "진짜" 힙합이 미국 "메인스트림"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건 4년이 지난 뒤인 1993년이다. 닥터 드레의 "The Chronic"이 갱스터 랩을 중심으로 한 서부 힙합을 대중화시켰던 것. 그전의 4년 동안은 랩을 기반으로 한 유로댄스 / 하우스/ 댄스 음악이나 Vanilla Ice, MC Hammer 등의 팝 랩이 인기를 끌었다.
어쨌든 1989년에 한국에서 랩을 시도했다는 건 전 세계적으로도 뒤쳐지지 않은 것이었다. 랩 자체는 이전에 신해철, 소방차, 홍서범 등이 시도한 적이 있으나 '난 알아요'가 되어서야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알려졌다. 그 뒤 1996년에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를 패러디한 "멀어지는 너" 로 컴백했지만 그렇게 큰 반응은 얻지 못했다. '멀어지는 너'는 공교롭게도 2장의 6집 앨범에 모두 타이틀곡으로 수록되었는데, 전자는 1993년 12월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후자는 1995년 9월 서울음반에서 발매되었다. 1993년 앨범은 전곡이 박남정의 자작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드럼 프로그래밍과 편곡, 샘플링도 해냈기에 의미가 있다. 5집과 심의를 같이 받았으나 모종의 문제로 누락된 'The Lover(내 곁을 떠나줘)'가 수록되었다. 해당 곡은 뉴욕에서 온 래퍼 SLI 가 피쳐링하였으며 길고 타이트한 영어랩과 박남정의 보컬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1995년 앨범은 본인이 프로듀싱했으나, 자작곡보다도 다른 작사가와 작곡가의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타이틀곡을 제외한 전곡이 신곡으로 채워져 있는데 굳이 정규 6집이라는 카운트를 다시 왜 했는지는 의문. 이 두 장의 6집이 발매되던 시기에 베스트 앨범도 두 장이나 나왔는데, 이 앨범들은 전 기획사에서 발매된 것으로 하나는 안타프로덕션, 다른 하나는 오아시스레코드사. 후자는 박남정이 직접 세트리스트를 정해 재편곡한 베스트 앨범이라 색다르다.(5집 수록곡은 원곡들이니 제외) 이렇게 다른 앨범이 같은 카운트를 갖고 있는 가수로는, 권인하가 있으며 해당 앨범은 1995년의 5집이다.
2011년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홍서범은 랩이 아니지"라고 해놓고 이 랩을 선보였으나 MC들에게 홍서범과 똑같다고 핀잔을 들었다.
2.1. 한국 힙합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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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자켓
1980년대 한국 흑인음악, 클럽댄스계의 0세대 인물중 하나다. 이 시절의 흑인음악, 흑인댄스는 한국에서 연마하기 어려운 기술로 주한미군들을 통해서 대도시의 나이트클럽 등지에서 미국의 힙합, 클럽댄스 문화가 조금씩 유입되던 시기였다. 이때 서울 이태원동의 나이트클럽에 주로 모이던 박남정과 이주노, 박철우[6] 등의 댄서, DJ들이 이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했다.
이들의 뒤를 따라 1세대 멤버들인 현진영, 양현석, 강원래, 구준엽, 유영진 등 최신 트렌드 춤에 미쳐 있던 당시 20대 댄서들은 이태원의 나이트클럽들[7] 에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거나, 미군들과 교류하며 기술을 연마하게 되었다.
이들 중에서 박남정이 가수로 성공하자 당시 가요계의 음반기획자들이 이들을 주목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이수만이 현진영을 스카웃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대에 줄줄이 오버그라운드에 입성하기 시작했다.
양현석과 이주노는 데뷔전에 박남정과 프렌즈라는 이름의 박남정 백댄서로 활동하던 도중에 서태지와 아이들에 참여하였다.
2007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경제야 놀자 코너에서 박남정이 2002년 국내최초로 제작했던 영어랩 CD가 소개돼 화제가 되었다. 판매량은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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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 자켓
2011년 엠넷의 비틀즈코드에서 출연해 여전히 녹슬지 않은 댄스실력을 선보였다. 2015년 시점에서도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고.
애초에 박남정은 선명회 합창단[8] →MBC합창단→가수데뷔 테크를 탄 경우로, 기본적으로 우수한 가창력을 가지고 있다.
3. 그 외 활동
1986년 전국디스코경연대회 금상 1위를 차지했으며, 2위는 이주노였다고 한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1989년에 '새앙쥐 상륙 작전'이라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 바 있다.
2011년 개봉한 영화 위험한 상견례에서는 카메오로, 1980년대 말의 박남정 자신으로 등장한다. 빡빡한 스케줄로 졸다가 행사장을 부산으로 착각하곤, 광주의 나이트 클럽에서 경상도 사투리로 행사를 진행하다가 몰매를 맞는 역할이다. 박남정 본인이 실제로 겪었던 에피소드라고 한다. 더군다나 단순히 경상도 사투리로 진행만 했다면 모를까 전라도에서 "역시 경상도가 전라도보다 물이 좋네, '부산 갈매기들 어딨노?"라고 이야기하는 등 전라도 사람들에게 안 좋은 말만 늘어놨다고.(...)
2013년 JTBC의 예능 프로그램인 유자식 상팔자에 장녀인 박시은 양과 함께 출연하면서 딸바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철없는 아빠 박남정이 의젓한 딸 박시은 양에게 잔소리를 듣는 모습이 웃음 포인트이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에서 박남정의 인간적인 모습이 많이 나오는데, 굉장히 착하면서도 순박하고 어리버리해서 귀엽다는 평이 많았다.
2016년 1월 24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2차 경연에서 폴짝폴짝 아기강시라는 가명으로 참가했으며 그 특유의 가창력과 녹슬지 않은 댄스 실력을 과시했다.[9]
듀엣가요제 22회에서 브로맨스 멤버인 박장현과 팀을 이루어서 우승한 전적이 있었다.
2018년 1월 21일에 대화가 필요해 1987에서 카메오로 출연하였다.
2020년 4월 25일 불후의 명곡2에 출연하였다. 영상1 영상2
2020년 11월 5일 사랑의 콜센타에 출연해서 널 그리며, 인디안 인형처럼을 불렀다. 영상1 영상2
2020년 12월 27일, 2021년 1월 3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149차 경연에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고양이는 없네... 십이지신[10] 라는 가명으로 다시 참가해서 준우승하였다.
4. 기타
- 장녀인 박시은은 2014년부터 아역 배우로 활동해왔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JYP엔터테인먼트에서 가수 트레이닝도 병행하다가, JYP에서 배우 부문 사업을 접으면서 같은 해 작곡팀 블랙아이드필승이 설립한 기획사인 <하이업엔터테인먼트>와 연습생 계약을 맺었다. 이후에 2020년 11월 걸그룹 STAYC의 메인보컬로 가수로 정식 데뷔하였다.
- 어머니가 전도사였으며, 어머니 성화에 신학교에 갔었지만 중퇴했다.
5. 관련 문서
[1] 한때 영등포구 출생으로 알려졌으나(현재는 강서구로 분리되었다) 현진영과의 인터뷰에서 용산구 만리동(현 서계동)에서 태어났다고 밝혔다.[2] 후에 각주에서 언급할 학창 시절의 합창단 활동도 그렇고 꽤나 종교적인 면에 연관이 있다. 오버그라운드 가수로 진로가 정해진 뒤 학업을 중단한 듯. 여담으로 박남정의 어머니도 전도사였고 군부대를 돌면서 정기적으로 예배 인도 및 설교를 하기도 했다.[3] 부모님께서 어릴 때 헤어져 홀어머니 아래에서 성장했다. TV는 사랑을 싣고에 나온 바에 따르면 6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다고 한다.[4] 이름도 남자 이름 같고 머리가 숏컷이라서 아들로 오해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딸이 맞다.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때 나온 모습을 보면 충분히 오해할 만 하다. 기사. 최근 인스타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머리가 꽤나 길렀다.[5] 예외적으로 '사랑의 불시착'은 본인이 직접 만든 곡은 아니다.[6] R.ef 그사람 맞다.[7] 라디오 스타 클론편에서 강원래가 직접 실명 언급.[8] 개신교 계열 아동구호기금으로 알려진 월드비전 산하 단체. 국가적인 귀빈이 오면 청와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어린이 합창단으로, 박남정 개인도 중학생 때 1등을 하여 당시 대통령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다. 여담으로 구글에서 선명회를 검색하면 통일교와의 연관성에 대해 답변한 사항이 맨 처음 뜨는데, 명칭에 '선명'이 들어가다 보니 생긴 오해가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9] 이후에 딸도 복면가수로 참가했다.[10] 당시 독주하던 얌전한 고양이가 가왕석에 먼저 올라간다! 부뚜막 고양이를 노린 것. 근데 베트남과 네팔에서는 고양이가 토끼 대신 십이지신에 들어간다.[11] 박남정이 한 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