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 연쇄 독살사건

 



1. 개요
2. 사건 경과
2.1. 사건의 시작
2.2. 가족들의 사망
2.3. 검거와 조사, 그녀의 최후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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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잦은 카바레 출입과 도박으로 인해 주변 지인들에게 [1]을 빌린 뒤 도박으로 잃어서 불어난 채무를 감당하지 못한 김선자가 '''채권자와 본인의 아버지, 여동생을 청산가리[2]를 탄 건강음료를 먹여서 살해'''한 사건이다.

2. 사건 경과



2.1. 사건의 시작


1986년 10월 31일, 그녀는 이웃집에 살던 친구이자 계모임의 회원이었던 49세 여성 김계환에게 목욕탕에 가자고 제안했고, 둘은 신당동에 위치한 한 목욕탕에 방문한다. 그런데 김계환이 탈의를 하던 도중 김선자가 건넨 음료를 마신 뒤 갑자기 심한 경련과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즉사한다. 이후 사인은 독극물 중독으로 밝혀졌으며, 김선자는 그 사이 목걸이와 반지 등 패물을 가로챘다.
당시 유족들은 이웃에 사는 김선자가 함께 목욕하러 가자고 했고 가지고 있던 귀중품이 사라진 게 이상하다고 진술했지만, 당시 김선자는 이를 부인했고 별다른 증거가 없었다.
1987년 4월 4일, 그녀는 대담하게도 시내버스 안에서 일을 벌였으며, 50세 여성 전순자가 독극물 중독으로 버스에서 쓰러져 즉사했다. 그녀는 이전의 목욕탕에서 사망한 김계환과 같이 김선자와 함께 계를 하는 회원이었고, 김선자는 그녀에게 약 700만 원 가량의 빚을 진 상태였다. 김선자는 전순자에게 영등포에서 돈을 받을 일이 있으니 동행을 권유하였고, 그렇게 영등포 방면 버스를 타고 이동 중 김선자가 건넨 음료를 마시고 사망하게 된다. 이때부터 김선자는 경찰의 의심을 받게 되었다.
1988년 2월 10일, 김선자는 쌓여가는 빚 독촉에 지쳐 가깝게 사는 46세 여성 김여인[3]에게 접근하여 오늘 불광동에서 채무자에게 돈을 받을 것이 있으니 나와 함께 채무자를 보러 가자고 한다. 김여인은 김선자에게 받을 돈이 120만원이나 있었기 때문에 이를 준다는 김선자의 말을 믿고 따라 나섰지만, 나타난다는 채무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당시 김여인은 김선자가 건넨 율무차를 마셨다가 계속 구토를 했다.
이후 김선자와 함께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탄 김여인은 구토 증세로 힘들어 했고, 김선자는 음료수를 마시면 괜찮아 질 것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녀가 의심스러웠던 김여인은 김선자가 음료를 구입하기 위해 잠시 택시에서 내린 사이 차를 그대로 출발시키면서 살인미수에 그쳤다. 그 뒤 김선자는 다시 김여인의 집에 방문해서 120만원을 김여인에게 갚은 뒤, 그녀의 안부를 챙겼다고 한다.

2.2. 가족들의 사망


1988년 3월 27일에는 김선자의 아버지인 73세 남성 김종춘이 김선자와 함께 친척의 환갑 잔치에 방문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 안에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아버지가 고령자인 것을 고려해 당시 법의학 지식이 없던 의사들에 의해서 노인성 심장마비를 일으켜 숨진 것으로 마무리가 된 뒤 화장되었다. 이 사건도 딸 김선자가 건넨 건강음료를 마시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나, 화장된 유골에서 독살의 증거를 찾을 수 없었고, 아버지에게 돈을 빌렸거나 유산 상속 등의 살해 동기가 미미했던 점을 들어 이 건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로 판결되었다.
네번째 범행이 성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해 4월 29일에는 그녀의 동생인 43세 여성 김문자 역시 아버지처럼 같은 변을 당했으며, 독극물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심장마비로 처리되었다. 김선자는 동생 김문자에게 약 천만원의 빚을 지고 있던 상태였고, 여동생이 사망했음에도 동요하거나 슬퍼하는 내색 없이 사망 확인 후 여동생의 집을 뒤져 '''금품 및 귀금속''' 등을 털어갔다.
당시 재판 과정에서 김선자와 함께 여동생을 병원에 데려간 청년들의 증언에 따르면, 옆자리에 있던 김선자의 여동생이 버스 안에서 쓰러지자 김선자와 함께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병원에서 여동생이 위독하니 큰 병원으로 옮겨야한다고 하자 갑자기 김선자는 '''모르는 사람이라며 여동생의 생명을 구하는 일엔 아랑곳도 없이 여동생의 핸드백을 가지고 황급히 나가버리는 비정한 모습'''을 보여 청년들은 황당했다고. 이후 약 3개월 뒤인 8월 8일에 사촌조카인 46세 여성 손미림도 같은 변을 당했다. 김선자의 12촌 조카인 손미림은 김선자의 소개로 집을 사기 위해 현금 480만원을 들고 그녀를 만났다고 한다.

2.3. 검거와 조사, 그녀의 최후


5명을 독살한 혐의로 경찰에 검거된 김선자는 ''''증거를 대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하는 등 온갖 소란과 발광을 했고, 결국 검.경찰은 신당동 목욕탕 희생자 등 이미 묻혀 있는 시신 4구에 대해 부검을 결정했다. 경찰은 이미 장례가 끝난 시신을 유족들에게 어렵게 동의를 구하여 다시 부검하여 4구에서 청산염 성분을 검출했다. 이 때 무덤 속 시신에 대한 부검은 유족이나 수사당국으로서는 극도로 피하고 싶은 일이었고, 관을 쪼개고 무덤을 헤집는 부관참시(剖棺斬屍)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데다 소득이 없을 경우에 쏟아질 세간의 비난이 만만치 않을 터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중 4구의 시신 중 3구에서 청산염 성분이 검출되었으며, 가장 먼저 사망한 40대 여성의 시신은 너무 부패한 탓인지 청산염 성분을 찾을 수가 없었고, 이미 사망한 아버지 김종춘의 경우 화장되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유골에선 청산염 성분을 찾을 수 없었다.
이어서 영장을 받은 그녀의 집을 압수수색한 경찰은 깜짝 놀랐는데, 그동안 그녀가 아버지, 동생, 친구 등을 살해한 후 훔쳐낸 물건들인 다이아몬드 반지, 수표, 통장 등이 쏟아져 나온 것. 참고로 살인 용의자의 몸수색을 위해 여성 경찰들이 동원되었다.[4]
이후 결정적인 증거는 다소 황당하게도 압수수색을 하던 경찰관이 김선자의 집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발견되었다. 당시 김선자가 거주하던 집은 일본식 가옥이었고 화장실이 목조였는데, 경찰관이 화변기에 쪼그리고 앉자 화장실의 나무기둥 뒤에 작은 구멍이 하나 보였고, 그 구멍 안으로 손을 넣자 돌돌 만 신문 뭉치 하나가 잡혀 빼 내어 펼쳐 보니 화공약품 회사에 근무하는 친정 조카로부터 "꿩을 잡는다."며 구한 밤알 크기의 청산염 덩어리가 숨겨져 있었다. 이 청산가리는 결정적 물증으로 작용하여 대법원은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을 선고받은 8년 후인 1997년 12월 30일에 여의도광장 차량질주 사건의 범인인 김용제를 비롯한 다른 장기 미집행 사형수 22명과 같이 처형되었으며, 이것이 사실상 대한민국의 마지막 사형 집행이다.[5]
60년대부터 사형수 교화 활동에 힘쓰던 삼중 스님의 회고에 따르면 김선자는 아버지와 여동생을 살해한 것에 대해 자신의 사치욕을 꾸짖고 외면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하며, 사형 직전 '부자가 부럽고 동시에 증오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나도 그들처럼 태어나 마음대로 돈을 써보고 죽을 것이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가난하게 태어난 것 뿐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6]

3. 기타


  • 여러 범죄 재연 프로그램에서 이 사건을 재현했으며 iTV의 리얼스토리 실제상황[7] , 채널A의 실화극장 그날,[8] MBC에서 방영했던 실화극장 죄와벌 34화[9], KBS 스펀지 251회[10]에서도 다루었다.
  • 라이프 온 마스에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사건이 등장한다.
  • 일본판 김선자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1960년의 '스기무라 사다메 사건'은 범행 동기가 빚을 갚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함이었고 독극물을 탄 음료를 사용했다는 점이 김선자와 같다. 다만 스기무라 사다메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김선자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범행을 부인했다는 말이 있으나 이는 와전된 것으로, 정확히 말하면 결백을 주장한 게 아니라 자신은 가난해서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지른 것이니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며 자기합리화를 시도한 것이다.

4. 둘러보기




[1] 화폐와 혼용.[2] 먹으면 호흡독으로 즉사한다.[3] 본명이 공개되지 않았다.[4] 용의자의 몸을 샅샅이 수색하기 위해서이다. 실제로 실화극장 죄와 벌에서 이 사건을 다루는 에피소드가 나왔는데, 그 에피소드에서도 몸수색하는 장면이 나왔다.[5] 이 이후로 대한민국은 사형 집행이 중단되었고, 사형 집행이 중단된 지 10년 이상이 지난 국가는 국제적으로 실질적 사형 폐지국가로 분류되기 때문이다.[6] 출처- 『사형수들이 보내온 편지』, 박삼중 저[7] 김선자를 박소영이라는 가명으로 처리했다.[8] # 여기서는 김선자 실명을 제외한 나머지를 가명으로 처리했으며 사촌동생 손미림도 시누이 김진희로 변경했다.[9] 여기서는 김선자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이름이 모두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김선자는 이재숙, 실화극장 그날에서 시누이 김진희로 변경됐던 사촌동생 손미림은 김지원으로 바뀌었고, 실제 범행에 사용된 독극물(청산가리)도 여기서는 '엑스투'(X2)라는 가칭으로 변경되었다. 또한 김선자의 범행 당시 나이가 49세였는데, 여기서는 38세로 기재되었다.[10] 여기서는 주인공을 제외한 주요 사람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김여인의 이름은 김미선이라는 가명으로 처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