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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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김밥과의 관련성
2.1. 김밥의 직계 조상
2.2. 일본과의 관련성
3. 결론


1. 개요


김쌈은 과거 밥 등의 곡류를 김에 싸 먹는 형태를 지칭하는 명칭이다.

2. 김밥과의 관련성


한국민족대백과는 김밥의 기원을 두고 "기존에 존재하던 한국 요리가 외국 식문화의 영향으로 형태가 바뀐 것"으로 설명했다. 식용 관련 기록은 한국이 앞서 있고, 밥을 김에 싸 먹는 고유문화 또한 오래 전부터 존재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용되는 김밥의 제작 방법과 말이 도구 등은 일제강점기를 거쳐오면서 일본의 노리마키 제작법에 영향을 받은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다만 이 논쟁의 본질은 '김밥의 진화 과정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주장들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지, 김밥의 국적 논란은 아니다. 김밥은 한국 현대사 속에서 한국인에 의하여 향유되고 한국인의 풍토에 맞게 재창조되고 변형되어 한국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았으며, '''한국의 김 식용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음식'''이 분명하다. 이는 돈가스고로케가 유럽식이 아니라 일식이자 분식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사회학에서는 이를 문화 변용(acculturation)이라고 한다.

2.1. 김밥의 직계 조상


한국에서는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김을 먹었다고 봐야 한다. 을 한문으로 해의(海衣) 또는 해태(海苔)라고 한다. 김이 문헌상으로 처음 나타난 것은 삼국유사인데, 신라시대부터 '김'을 먹었다고 전한다. 또한 명나라 때 편찬된 박물사전인 본초강목을 보면 "신라의 깊은 바다 속에서 채취하는데, 허리에 새끼줄을 묶고 깊은 바다 속에 들어가 따온다. 4월 이후로는 ”대어가 나타나 해치기에 채취할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김 양식을 서술한 첫 문헌은 1424년에 집필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이다. 하동지역의 전승에 따르면 약 260년 전 한 할머니가 섬진강 하구에서 패류(貝類)를 채취하던 중, 김이 많이 착생(着生)한 나무토막이 떠내려 오는 광경을 보고 거기에 붙은 김을 먹어보니 매우 맛이 좋았다. 그래서 죽목(竹木)을 수중에 세워 인공적으로 김을 착생시킨 데서 김 양식이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보면 ;전남 광양군에서는 400년 전부터 김을 토산으로 진중(珍重)하게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1] 1809년에 쓰여 진 [만기요람]에도 이미 ‘해의전(海衣田)’이란 이름이 보인다. 인조18년(1640년경) 병자호란의병장이었던 전남 광양 태인도의 김여익이 해변에 표류해온 참나무 가지에 김이 붙은 것을 보고 양식하기 시작하여 그 양식법을 널리 보급하였다 하여 그의 성(姓)을 좇아 ‘김’이라 명명하였다고도 한다.
현대김밥의 특징으로는 '''기름을 바른다는 것과 수많은 재료들을 한꺼번에 넣어서 먹는다는 것'''이 있다. 1800년대 말엽에 지어진 《시의전서》(是議全書) 의 김쌈에 대한 기록을 보면

김쌈은 김을 손으로 문질너 답틔 뜯고 반 우에 펴노코 받개 깃로 기름을 발으며

쇼곰 숄숄 뿌려 재여구어 네모 반듯시 버허 담고 복판에 꼬지 질너야 허여지

라는 것으로 보아 기름을 김에 발라 구운 현재의 판김과 유사한 형태의 김을 싸먹는 데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28년 5월 1일, 명월관이라는 음식점이 <별건곤> 식도원주(食道園主)에 '조선요리의 특색'이란 글을 실었으며 명월관의 글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 되었다.

김을하동엣것이 상둥이니 구워노면 얄고고으며연도색이나나니라

김쌈은별수업시 죠흔김을티뜻고부벼서 한장식처노코 기름발으로 티업는소곰을뿌려가며

설당을죠곰뿌리고 재여두엇다가석쇠에구어 항용법대로하는대

요사이는 날로구어 진상에찍어서 밥위에노아먹기도하나니라

오늘날 '''김밥이 식초가 아니라 김쌈처럼 기름을 김에 바른다는 점'''은 김밥과 김쌈의 관계를 보여주는 또다른 특징이다. 새롭게 나타난 조리법도 일본 조리법도 아니라 전통 방법이다. 기름 외에도 이 기록은 김이 종이 형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김 다음으로 안에 넣는 재료들을 보자. 김쌈에서 중요한 건 7가지 나물의 사용이다. 그 야채들을 따로 먹든 김쌈에 넣어서 먹든 정월대보름에 이런 야채들과 김쌈을 먹는 것이 한국의 맛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배춧잎과 김으로 밥을 싸서 먹는 것을 복과(福裹)라 했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는 인일(人日)에 7가지 나물을 캐다가 국을 끓인 풍속이 정월 대보름날로 옮겨진 것으로 보았다.《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는 해의(海衣)에다 마제채(馬蹄菜) 등속을 싸서 박점(縛占)이나 복쌈이라 불렀다. 그 외 다양한 지방에서 노적쌈(露積쌈), 볏섬, 김쌈으로 부르는 음식을 먹는 풍속이 있었다. 그 원형은 노적 쌓듯 쌓았다는 기록이나 김쌈이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주머니처럼 싸낸 쌈에 가까운 형태이며 한국민족대백과의 한국세시풍속사전 복쌈 사진도 마찬가지 모습이다. 즉 안에 갖가지 재료를 넣어 둥글게 말아서 만드는 김밥과는 형태가 다르나 밥을 종이 형태의 김에 싸서 먹는다는 기본형의 시작이다. 고려 말 목은 이색의 시에 강릉절도사가 보내준 '해의'를 받고 감사의 시를 썼는데 해의가 바로 종이형태의 김이다.

軟炊盈椀白 新擷滿盤靑 和合午牕下 齒牙微有馨

곱슬곱슬 지은 밥은 사발에 하얗고

새로 따온 김은 소반 가득 푸르네

한낮에 김에 싸서 먹는 밥

이빨에 슬쩍 묻어나는 향내

『만기요람(萬機要覽)』에는 김[海衣]을 포함하여 미역[常藿], 분곽(粉藿), 다시마[多士麻], 감태(甘苔) 등의 해조류가 공물로 진상된 기록이 있다. 공물 진상에는 백성들의 고통이 따랐다. 경상도 암행에서 백성들은 해의를 진상하는 것에 대해 매우 고통스럽게 여겼다(『선조실록』 34년 4월 1일). 백성들의 고충을 살핀 효종은 어공(御供)하는 해의 1첩 값이 목면 20필까지 간다고 하니 봉진하지 말 것을 명하였다(『효종실록』 1년 3월 23일). 정조는 삭선(朔膳)으로 바치는 물품 중에 해의, 어란(魚卵), 광어 등은 길이와 너비에 구애되어 풀로 붙이거나 침을 발라 규격에 맞춘다고 하니, 그렇게 하면 정갈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민폐도 적지 않을 것이므로 폐단을 바로잡도록 교서를 내렸다(『정조실록』 17년 11월 27일). 『성호사설(星湖僿說)』 「만물문(萬物門)」에는 속명 김[海衣]이란 것이 있는데, 이는 바로 바다 돌[石] 위에 돋는 이끼[苔]로 빛깔은 붉다. 그것을 따서 마치 종이처럼 조각으로 만드니, 이것이 조(組)라는 것인 듯하다고 하여 마른 김을 만들어 유통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후 앞서 열거한 수 많은 김쌈의 기록들로 이어진다.

2.2. 일본과의 관련성


현대김밥의 외형이 노리마키에서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노리마키가 한국에 들어와 김밥으로 변한 것은 아니며, 노리마키 조리법을 김쌈과 같은 한국 식습관에 맞게 차용해 새로 생겨난 요리가 김밥이라고 봐야한다.
일본의 경우 김을 부르는 명칭은 ‘노리(海苔)’ 로서, 직역하면 해태(바다이끼) 라는 의미이다. 몬무 덴노 재임기인 702년 2월 6일에 공표된 다이호율령에 김(海苔)이 조세의 대상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김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이며 713년에 편찬된 히타치국풍토기(常陸国風土記)에서도 그 지방이 김으로 유명하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그러나 '''종이 형태의 김'''이 탄생된 것은 에도시대 중기로서 도쿄(東京)의 아사쿠사(浅草) 주변에서 양식한 노리를 잘게 다진 후 사각 틀에서 얇게 펴 말린 ‘아사쿠사노리(浅草海苔)’ 가 그것이며 아사쿠사노리의 제법이 바로 오늘날 일본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이따노리(板海苔) 제법에 해당한다. 즉 노리(海苔)의 위에 밥을 넓게 펴서 올린 후 다양한 재료를 얹어 돌돌 마는 노리마끼(海苔巻き)는 18세기 넘어서야 서민들에게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후사쓰요시’박사의 <바다채소> 바다야채(1985) 를 참고하면 에도 시대 교호 초기부터 김을 요리로 활용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일본은 18세기 초중반 이후부터 종이 김을 취급하였으며 한국보다 훨씬 나중에 김을 이용하여 음식을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즉 한국은 훨씬 이전부터인 신라시대 또는 최소한 조선초기인 1400년경부터 종이 김을 취급해 왔으며, 김의 음식문화 발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양식 역사 또한 한국의 발전과정이 앞서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보면 한국이 일본에 비해 ‘김’식단 문화가 훨씬 앞서 있다는 결론을 쉽게 단정할 수 있다.
참고로 일본에서 유래된 초밥의 원조가 관서 지방이지만 김밥과 비슷한 김 초밥(노리마끼)은 관동지방(도쿄)이 원조다. 김 초밥은 모양이 총을 닮았다고 하여서 '대포마끼'라고도 부르는 '호소마끼'(細巻)[2]'데까마끼'(鉄火巻: 생선말이김밥)는 에도(도쿄)지방에서 창안한 것이다.
김밥과 매우 비슷한 데까마끼는 속에 참치가 들어간 김밥의 일종으로 에도 시대 말부터 메이지 시대 초기 사이에 도쿄의 한 초밥 가게에서 고안했다고 한다. 도박장에서 놀던 사람들이 색다른 김밥을 부탁하여 박 속 대신 참치를 넣고 와사비를 첨가해 먹기 편하게 작게 싼 데서 유래했다. 호소마끼의 반대인 후토마끼(太巻) 또는 '오오마끼'는 호소마끼와 달리 김을 자르지 않고 그대로 싼다. '''일본에서 이러한 노리마끼(김초밥)가 생긴 것도 에도 시대 말부터 메이지 시대 초기로, 주로 1860년대 이후다.'''
일단 김쌈과 후토마끼는 공통점들이 많다. 김쌈이 한국 전체에 퍼져있던 것과는 달리, 후토마끼는 일본의 칸사이 지역에서만 세츠분 축제에서 먹었다고 하는데, 이 문화가 일본 전국에 2000년도까지 퍼졌다고 한다. 다른 마끼 종류들은 후토마끼에서 시작된 것이다. 후토마끼는 에호마끼라고도 불리는데, 이건 행운 방향 마끼라는 뜻으로 그 이유는 7가지 재료들을 넣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의 노리마끼가 에도 말 19세기에 시작된 문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고려 말 목은시고의 해의 쌈밥 부터 시작하여 18세기에 동국세시기에도 기록 된 '''김쌈의 역사가 더 길다.'''
첫째, 우선 이름들을 보자. 김밥은 새로운 단어지만 복쌈과 김쌈은 전통 단어들이다. 노리마끼에서 노리는 김이고 마끼는 쌈이라는 뜻이다. 후토마끼는 에호마끼라고도 불리는데 에호는 복이고 마끼는 쌈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노리마끼와 후토마끼는 한국의 전통 용어들 김쌈과 복쌈의 직접 번역이 된다. 다음은 세부적인 특징들을 보자. 동그랗게 마는 것은 일본이 시작한 형태라고 하더라도 다른 특징들은 한국 김쌈에게서 시작된 것들이 많다.
둘째, 후토마끼는 김쌈처럼 전통적으로 자르지 않는다. “김쌈을 싸는 김은 칼로 자르지 않고 통김을 그대로 올리며, 상위에서 손으로 대충대충 잘라서 쌈을 싼다. 칼로 자르면 벼 모가지 자르는 것이라 하여 삼간다.”
셋째, 자르지 않는 풍습 외에도 김쌈에서 중요한건 한국 정월 대보름 방식인 7가지 나물의 사용이다. 그 야채들은 따로 먹어도 되고 김쌈에 넣어서 먹어도 되는 한국의 맛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박, 오이, 버섯 등 각종 채소 말린 것과 콩, 호박, 및 순무 등 각종 무를 저장해 둔 것을 묵은 나물 이라고 하며 이 날 반드시 이 나물들을 만들어 먹는다. 오이꼭지 가지껍질 무잎 등도 모두 버리지 않고 말려두었다가 삶아서 먹는데 이렇게 하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채소 잎이나 김으로 밥을 싸서 먹는데 이것을 복쌈 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형초세시기 (荊楚歲時記)에 인일(人日)에 일곱가지 채소로 국을 끓인다 고 하였는데 이것이 지금 풍속에는 정월 보름날로 옮겨졌으며."

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서는

“이날 김에다 취나물 등속과 밥을 싸서 많이 먹으면 좋다고 하는데 이를 복쌈이라고 하며”

라고 하는 것을 보면 김쌈은 밥만 싸는 것이 아니라 반찬도 같이 싸서 먹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동국세시기에 나오는 7가지 나물들도 김쌈 안에 들어가거나 또는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은 에호마끼라고 불리우고 7가지 재료를 넣는 후토마끼와 일치한다.
넷째, 후토마끼는 복쌈처럼 명절에만 먹었다. 이 음식이 일상적으로 먹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다. 원래는 칸사이 지방에서만 세츠분 축제에서만 먹었다고 하는데, 이건 복쌈을 먹는 정월 대보름과 비슷한 날짜다.

3. 결론


'김'의 특성 자체가 '''밥을 싸먹기 위한 형태로 제조된 것'''이 가장 중요하다. 즉, '김밥'이라는 요리의 주제는 하나의 해조류에 불과한 김을 밥에 쌀 수 있는 형태로 제조하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으며, 김의 제조 및 식용 역사 자체가 수백년 앞서는 한국의 '김쌈'처럼 밥을 '''종이 형태'''의 김으로 싸 먹는 것이 바로 한국 김밥의 기원이다.
예를 들자면 밀로 빵을 만들어 고기를 통째로 쌈해 먹어온 요리가 있고 , 그 빵을 만드는 방법을 전수받아 고기를 넣고 썰어먹는 요리가 있다면 어느쪽이 기원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빵에 고기를 싸 먹건 김에 밥을 싸 먹건 기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김이나 빵을 만드는 방법이지 썰어먹는 방식이 아니다. 당시 전 세계에서 종이모양의 김을 만들어 먹던 국가는 오직 한/일 뿐이었고 이것은 두 국가 간의 비교이므로 사실 빵이나 국수, 절임 같은 글로벌한 식재료보다 더욱 기원을 유추하기 쉽다.
현재 종로김밥에서 취급하고 있는 김밥이나 어릴 적 소풍 갈 때 싸 가지고 다니던 김밥을 보아도 김밥은 일본의 김밥과는 차이가 있다. 소금에 절인 오이를 넣으면 규리마키, 참치를 넣으면 데카마키라고 부르는 일본식 노리마키와는 애초에 재료도 그 결을 달리한다. 또한 김밥은 썰었을 때의 미적 외형보다 푸짐하고 탐스러운 맛을 강조한 실용적 구성이다. 깔끔한 맛을 강조하여 무순, 생선, 계란말이 등으로 간단히 구성하거나 아예 복잡하게 몇 번을 말아 튤립 형태, 물고기 형태 등을 표현하여 생선초밥을 장식하는 ‘장식김밥’의 형태로 발전한 일본의 김밥과 비교하여도 현재의 김밥은 다분히 한국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여러가지 이유로 지금 먹고 있는 김밥이 일본 요리 ‘김 초밥’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때문에 김쌈, 복쌈과 같은 고유 문화가 바로 한국 김밥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1] 동국여지승람은 1481년 4월에 서거정(徐居正)이 여지승람을 펴낸 이후 1486년 김종직(金宗直) 등이 이를 개정하여 동국여지승람이라 하였다.[2] 김 1장을 반으로 잘라 밥의 가운데에 박 속을 넣어만든 것으로 일본에선 일반적인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