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선

 


1. 본문
2. 정체


1. 본문


태조 왕건고려 측 등장인물. 원로배우 민지환[1]이 연기했다.[2]
궁예때부터 관직에 있어온 신하로, 패서 지역 인물이다. 궁예 정권 말기, 왕건을 음해하려는 종간의 계획으로 들어온 고경참문에 관하여 최응이 학자들이 있는 부서인 금서성에 고경참문의 해석을 하자 하였고 이 뜻을 알지만 해석하기 난감해 하는 모습을 보인다. 최응의 기지로 구랏발을 쳐서 위기를 넘긴 이후 한동안 등장이 없다가 궁예 정권이 몰락하고, 왕건의 고려가 들어서면서 시중 자리에 앉게 된다. 이후 광평성의 원로들 중 한 명이 된다.
시중이라는 높은 자리에서 왕건을 보좌하고 아래의 신료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등 역할을 하지만, 오히려 이 자리 때문에 '''사실상 고려 왕실 최고의 동네북'''이 되버리는 안습한 인물이다. 왕조가 들어선 이후 후계자 문제가 생길 때는 패서 지역에서 후계자가 생기지 않아 영향력에 문제가 생길까 같은 패서 지역 신하들과 논의를 하는 등 이해관계에 따른 분열의 한 축에 서 있었다. 이 때, "빠르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최응의 이야기를 들은 왕건은 후계 구도와 조정 내부의 분열을 막기 위해 김행선과 자기 장인들 두 명(오다련, 유긍달)을 모조리 불러놓고 담화를 하는데 사실상 그 담화 내용은 자기 장인들을 본래 고향으로 좌천시키는 내용이었고(더 이상 조정 내부의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 "시중께서도 이젠 나이가 지긋하시니, 이제 좀 쉬셔야겠지요?"하며 왕건이 묻자 "아..아니옵니다! 신은 아직 펄펄하옵니다! 거뜬히 일 할 수 있사옵니다!"하며 깨갱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래도 이때까진 잘 수습되었지만, 조물성 전투 이후 왕건이 백제에 인질로 보낸 왕식렴의 동생 왕신으로 인해 전투를 주저하자 '''전쟁을 해야 한다고 들고 일어난 무신들의 등쌀에 시달려야 했다.''' 김행선은 기본적으로 왕건의 뜻에 따라 잠시 전쟁은 보류하자는 입장이었지만 주전파인 무신들의 수가 많아 할 말을 잘 못했고, '''홍유나 배현경은 아예 회의때 김행선이 말 하는 와중에 중간에 끊고 자신의 할말을 하기까지 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왕건에게 무신들의 입장을 이야기 하러 가게 된다.
한참 후인 유금필을 두고 왕식렴과 홍유 등이 걸고 넘어져 벌어진 논쟁[3][4]에서는 '이게 왜 문제가 되나' 하는 입장이었지만, '''이번에도 '이건 불충한 일이다'라고 주장하는 왕식렴과 홍유의 등쌀에 난처해 했다.''' 왕건이 유금필을 삭탈관직 하고 곡도로 유배를 보낸 이후에는 '''박술희가 찾아와서 김행선과 광평성 원로들에게 소리를 치고 꼬장을 피워대자''' '''"아 왜 늙은 우리에게만 이러냐"'''라고 진심 섞인 짜증을 내기에 이른다. 아예 이후 왕건에게 유금필의 복귀를 청하러 갈 때, 이 사실을 알게 된 왕건이 "박술희 장군이 시중부에서 난리를 쳤다고요? 이런 못된 것이 있는가! 연세도 많으신 시중께 결례를 저질렀다는 말입니까!"하며 혀를 차는데 ''''젊은 사람들 투정도 들어주고 해야죠'라며 체념한 모습을 보인다.''' 이 자리에서 물론 김행선과 광평성 원로들의 주장은 왕건에게 퇴짜를 맞는다(...)
그래도 극중 후반에 가서 내분이 생기지 않게 되어 좀 편해진 듯하다. 경보대사를 만나기 위해 최지몽과 함께 다녀오기도 하고, 견훤의 귀순 이후에는 견훤을 모시는 일의 총 책임자로 임명되었으며 그의 마지막에는 견훤의 임종 때 견신검 형제들이 처형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는 등 소소하게 등장하였다.

2. 정체


출신이나 행적을 볼때 실존 인물 김행도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김행도는 패서(황해도) 서흥 출신이며 김행선과 마찬가지로 시중도 역임했다. 이 외의 기록은 없으니 나머지는 드라마적 창작이라 봐야 할 것이다.
본래 고려의 시중은 조선의 영의정처럼 자주 교체되는 직책이라 고려 태조 연간의 시중도 여러번 교체되었기에 김행선 혼자서 오래도록 시중을 한건 실제와 전혀 다르다[5]. 이 때문에 공산 전투 당시 실제로 시중이었으며 일리천 전투에도 참전했던 강공훤은 등장하지 못했다.
[1] 디워에서 보천대사로 나온 그 분이다.[2] 실존인물 김행선에 대한 자료는 현재 거의 없다. 태조의 즉위교서에서 당시 광평성의 수장인 시중 김행선의 이름이 올라 있으나, 자세한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 여기서는 드라마상의 인물 설명을 먼저 서술한다. 역사인물에 관한 자료는 밑에 서술.[3] 왕건이 유금필, 왕식렴, 복지겸 등과 서경(평양)을 방문할 때, 오랑캐 부족들이 마중나왔는데 이들이 유금필에게 만세를 외쳤다며(만세는 오로지 황제만이 받을 수 있다) 불충하다 걸고 넘어진 것. 물론 계기는 이거지만, 그 이면에는 화려한 전공을 쌓는 유금필을 우대하는 왕건에게 쌓인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4] 왕식렴의 경우, 왕건에게 서경(평양) 천도를 생각해보시는 것도 어떻겠냐고 말했는데 유금필이 북방이 안정되지 않았다고 강하게 반발하자 앙심을 품게 되었다.[5] 후백제 쪽도 능환이 건국 당시부터 멸망 때까지 이찬을 지내는 것으로 나오며, 최승우 역시 건국 당시부터 목숨을 잃을 때까지 파진찬 직을 유지했다. 아무래도 극의 내용이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것을 피하고자 다소 비현실적인 일을 감수하기로 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