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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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면천 박씨의 시조. 고려 초기의 군인이자 정치가. 대중적 이미지와는 달리 통일 전쟁 이후의 행적이 더 주요한 인물.
2. 생애
본래 호족 가문 출신이었으며 18세의 나이에 궁예의 호위관으로 발탁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나서 후삼국 통일 전쟁에서 공을 여러 차례 세우면서 승진을 거듭했고 무엇보다 그 출중한 전공을 바탕으로 왕건의 신임을 받았다.
왕건이 어찌나 박술희를 신뢰했는지 장남인 왕무를 태자으로 삼았을 때 그의 출신과 지지 배경이 한미한 것을 염려해 박술희에게 태자의 후견인 자리를 맡겼을 정도였다. 왕건이 붕어했을 때는 '군국 대사'라는 주요 직책을 맡기고 직접 훈요 10조를 남겼을 정도였으니 박술희를 향한 왕건의 신임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왕건 나름의 정치적인 계산도 깔려 있었다. 나주 출신으로 외가의 뒷배경이 약했던 정윤 무를 보호해주려는 의도가 가장 컸고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박술희 같은 신흥 세력이 잘 헤아려줄 것이라 생각해 박술희를 정윤 무의 후견인으로 삼은 것이다. 박술희도 기존의 호족 집단에 속한 기득권자가 아니라 밑에서부터 잔다리를 밟아가면서 본인의 실력을 배경으로 출세한 인물이라 왕실에 대한 충성심도 높아서 당시 강력하던 황해도와 충청도 호족 세력들[1] 을 견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 왕건의 패착이 되고 말았는데 기반이 약한 태자를 보호하려면 오히려 박술희보다 기반이 안정적이고 강한 인물을 붙여줬어야 했다.[2] 박술희 자신도 군권 외에는 정치적 기반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왕건의 선택은 고려 초기 100년간 복잡한 왕위 계승 싸움으로 얼룩지게 만들었고 현종이 즉위하여 혼란을 잠재울 때까지 고려 내정을 뒤흔들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무조건적으로 유화적인 혼인 정책을 통한 동맹의 말로는 후손들 간의 골육상쟁과 혈연을 매개로 한 배신과 권력 암투만을 낳았을 뿐이라는 씁쓸한 예시 중 하나인 것.
박술희는 왕건의 사후에도 왕건의 유지를 받들어 왕건의 후계자인 혜종을 붕어하는 순간까지 보필하다가 혜종의 다른 측근이자 역심을 품은 왕규의 무리에게 모함을 받아 끝내 유배를 떠나게 되었고[3] 결국 유배지에서 왕규 세력에 의해 암살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하지만 945년 비슷한 시기에 왕규도 반란을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유배되었다가 처형되었고 박술희 사후 벌어진 여러가지 사건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기 때문에 혜종의 이복동생이자 왕권을 노리던 정종이 박술희를 유배보낸 뒤 처형을 빌미로 그를 암살해버리고는 책임을 왕규에게 떠넘긴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한편 사후에 혜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동 코스트코 뒤편 무지랭이 약수터 올라가는 길목에 무덤이 있는데 가묘인 관계로 시 문화재나 도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지 않아 정비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 한다. 최근에는 길목을 닦고 어지럽게 흩어진 고사목을 치운 듯.
3. 여담
3.1. 식성
'''述熙性勇敢, 嗜啗肉, 雖蟾蜍螻蟻, 皆食之.'''
'''박술희는 성질이 용감하고 과감하여 육식을 아주 좋아하였는데 비록 두꺼비, 땅강아지, 개미일지라도 마다하지 않고 먹었다.'''
고려사에 서술된 박술희의 식성.
'''고맙사옵니다, 성주님. 소인은 고기라고 생긴 것은 무엇이든 먹사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포식하게 생겼사옵니다. 아이고 이놈아, 너 본지 오래다.'''
태조 왕건 24회.
역사 서적에도 기록될 정도로 특이한 박술희의 기이한 식성은 영국의 외과의사이자 박물학자인 프랭크 버클랜드[4] , 영국의 탐험가 겸 작가인 베어 그릴스[5] 에 버금갈 정도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박술희는 육식을 좋아하여 고기를 먹는 것을 즐겼는데 소, 돼지, 뱀[6] , 개구리, 두꺼비, 개미[7] 도 즐겨먹은 사실이 전해진다. 동료들은 박술희가 괴상한 요리들을 먹을 때마다 늘 기겁하며 놀라워하였다. 하지만 박술희는 동료들이 뭐라고 하던 이렇게 맛있는 것을 왜 마다하냐며 그저 맛있게 먹을 뿐이었는데 동료들에게 권한 적도 많지만 다들 거절하고는 먹지 않았다. 박술희의 식성이 기록으로 남은 것은 상류층이 아니면 아사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고려 시대에도 유별난 식성인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박술희는 실제로 뱀을 먹었지만 태조 왕건에서는 법적 문제도 있고 개인적인 거부감도 있어서 뱀을 사냥하여 먹을 수는 없으므로 배우 김학철은 뱀을 대신하여 먹장어를 먹었다.[8] 제24회에서는 닭고기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장면이 등장하여 박술희의 식성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였다. 반대로 최재성은 2002년작 KBS 드라마 제국의 아침에서 사냥한 노루의 피를 마시는 장면을 그대로 연기하는데 노루를 사냥하는 것은 합법이기 때문이다.[9]'''신숭겸''' : '''이보게, 체하겠네. 천천히 들게나.'''
'''유금필''' : '''아니, 아니 저... 이보게, 아우. 왜 그리 식성이 고약한가? 어저께는 두꺼비를 생으로 먹더니 오늘은 또 뱀인가?'''
'''홍유''' : '''허허허... 참 대단하시외다.'''
'''배현경''' : '''허허허... 그러게 말이외다.'''
'''박술희''' : '''허허허! 거 모르시는 말씀이십니다! 아, 이게 얼마나 맛있는 줄 아십니까? 하하하!'''
'''해설''' : '''박술희, 외모만큼 식성도 괴팍한 것 같다. 고려사 열전 박술희 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그는 육식을 좋아하여 비록 두꺼비와 개미라도 모두 먹었다. 아마도 박술희의 이런 식성은 그 시대에도 특이하게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유금필''' : '''하하하! 하여간 대단하구만. 눈 깜빡할 사이에 다 해치웠어? 으하하하!'''
태조 왕건 41회.
4. 창작물에서
두 작품에서 모두 공히 왕건과 의형제로 나온다. 희대의 명대사는 형님폐하(...)
4.1. 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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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배우 김학철이 열연하였으며 꽤 주목을 받았는데, 극 중 활약도 크고 개그 캐릭터적인 측면이 있어 아자개나 애술과 함께 극 중 최고의 개그 캐릭터로 활약했다.[10] 주무기는 무쇠 철퇴라고 직접 언급한다. 그러나 언급만 했을 뿐, 정작 철퇴를 사용하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극 중에서는 견훤의 누이동생인 여걸 대주도금 연애도 화제가 되었다.
첫 등장은 23화 끝부분 파트로 훗날 신숭겸이 되는 능산과 함께 왕건이 한창 궁궐 건설을 하고 있는 송악에 인부로서 나타난다. 하지만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무예를 자랑하는 모습을 보여 24화에서 왕건의 무술스승인 변사부와 치열한 대결을 펼치고, 이후 능산과 유금필의 대결로 이어지지만 왕건이 중단시킨 후 따로 술자리에 데려간다. 술자리를 마친 후 인부들을 거들어 공사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25화에서는 왕건, 능산, 유금필과 정식으로 의형제가 된다.
태조 왕건이라는 드라마의 시대 특성상 자고 일어나면 전쟁이 일어나는 시대가 주로 묘사되었으나, 박술희가 수십 년 동안 사벌주에 들인 노력은 이 드라마에서 '''거의 유일하게 인간적인 정'''을 바탕으로 평화적인 귀부를 이루어낸 성과로서 의미가 자못 깊다. 그래서인지 전쟁이나 궁예의 폭정 와중에서도 박술희와 아자개와 만날 때마다 우스운 장면들을 연출해 냈다.
팔자 수염 및 더부룩한 턱수염에 괄괄하고 호방한 성격은 아무리 봐도 창만 안 쓸 뿐이지, 영락없는 장비다.[11] 두 인물 모두 암살당하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물론 태조 왕건의 작중에서는 삼한 통일 이후 시점은 다루지 않기 때문에, 그 상황은 나오지 않는다. 작가인 이환경이 삼국지 덕후고, 신숭겸이 관우와 같은 역할을 맡았다는 걸 상기하면 별반 놀랄 일은 아니다마는.
그러나 이렇게 왕건 파티 내에서 유달리 뚜렷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임과 별개로 전투력은 홍유, 김략, 배현경과 더불어 세계관 내에서 약한 편은 아니나 다른 네임드들에 비하면 살짝 아쉬운 정도인데, 왕건에게는 진작에 한참 못 미치고 그보다 아래인 수달에게도 처절하게 발리며 애술보단 아주 근소하게 위인 수준으로 최강 논쟁에 낄 정도의 강자는 아니다.
생김새는 정말 무식한 산적처럼 생겼고, 설정상으로도 무지막지한 용모였던 것 같다. 실제 성격도 불 같아서, 양길과의 일전에서는 물론 직속 상관은 아니라지만, 엄밀히 말하면 상급자중에 위라 할 수 있는 환선길이 지원군이 제 때 오지 않은 탓이라며 왕건을 비꼬자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줬더니 봇짐 내놓으라 하느냐?"며 그의 뻔뻔함을 지적했고, 이에 환선길이 "일개 하급 무관 나부랭이가 감히 장수 앞에서 입을 놀리다니!"[12] 라고 갑질을 하자 기가 죽기는 커녕 되려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냐며 할 말은 확실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36화에서 전투 중에 대주도금을 보고 한눈에 반해 쫓아가다가 계략에 걸려 혼쭐이 나고, 돌아온 박술희가 왕건에게 자초지종을 고하자 왕건이 "'''아니, 그 얼굴로 여자를 다 생각했단 말인가?'''"라 물으며 기가 막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농담이 아닌, 진지한 상황에서 진지하게 묻는 것이었다는 것이 오히려 개그 포인트.[13] 또한, 한참 후인 149화(조물성 전투)에서도 백제 장수들과 대면한 자리에서 대주도금과의 정분 이야기가 나오자, 백제의 애술이 "'''그런 얼굴로도 여자 생각은 나는가?'''"라 물은 바 있다. 하지만 대주도금과의 로맨스는 드라마에서는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앞에서의 귀부 이후, 철원에서 결혼 준비 이야기 등을 하려던 아자개 부부와 보개, 유금필, 능산, 박술희가 웃을 때, 대주도금은 홀로 편지를 쓰고, 잠깐 바람 쐬며 나왔던 박술희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웃음을 지으며, 하직 인사를 올리고 말을 타고 사라졌다. 한참 후에야 상황을 파악하고 박술희가 쫓아갔을 때에는 늦은 뒤였고, 역시 나중에야 박술희의 말과 대주도금이 남긴 글을 본 아자개 부부와 다른 이들도 놀라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드라마 후반에 고려로 귀순한 견훤이 박술희를 알아보고, "그대는 박술희 장군이 아닌가? 하마터면 내 매제가 될 뻔 했었다지?"라 묻고 박술희 또한 "예, 상부 어른, 그럴 뻔한 적이 있었사옵니다."라고 웃으며 대답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생긴 것과는 달리 나름대로 문무를 겸비하고 성품이 대방한 호걸로, 아자개가 자신의 생김새를 보며 천자문은 아냐고 묻자 바로 《대학》의 한 구절[14] 을 술술 말하며 아자개를 놀래키고 감탄하게 한다. 이후, 아자개의 생일 잔치에서도 선물로 가져온 맛 좋은 술들[15] 을 대접하면서 아자개의 기분을 좋게 하고, 능애와 공직의 난입으로 분위기가 험악해져 떠날 때에는 마지막까지 아자개에게 예의를 다해서 아자개와 그 부인은 적국의 무장인 것이 안타깝다고 할 정도로 인정받았다.[16] 그 밖에 견훤 휘하의 적장인 애술과 대면했을 때, 박술희의 생김새를 본 애술이 "너도 아마 나처럼 무식할 거야."라 지레짐작하자 학문의 수준을 은근슬쩍 뽐낸 바 있다.[17] 애술은 박술희의 학식[18] 에 놀라며 "이거 큰일났구먼, 박술희라는 못난이가 더 좋아 보이니 말일세."라 하는 장면이 은근히 또 개그 포인트.
왕건의 후계 구도와 관련해서는 적장자 계승 원칙에 근거해 장화왕후 오씨 소생의 왕무의 태자 계승을 우직하게 밀어 붙인다. 이때 전개 구도를 보면 나주 오씨와 충주 유씨 소생의 왕자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패서지역 성주들은 나주나 충주가 아닌 패서지역 부인 소생의 왕자가 보위를 이어가길 바라며 후계자 책봉을 최대한 미루려 하고, 박술희, 신숭겸, 유금필 등 왕건의 의제들은 출신을 떠나 왕실의 인척된 입장으로 적장자를 지지한다. 홍유와 배현경 등 여타 친위 무장세력은 자신들이 후계 결정과정에서 소외되었다고 느끼며 불만을 표출하고 정체성을 유학에 둔 최응과 태평은 적장자 계승을 고수하며 대립을 중재하려 한다. 이 대립을 지켜보던 왕건은 이들을 차례차례 불러 왕으로서 권위를 내세워 딴 생각 못하도록 확실히 눌러 놓는다.[19] 주인공 편은 무조건 선하게라는 부작용을 불러왔다는 비판을 받은 태조 왕건이지만 그래도 이때까진 서로 대립도 하고 협력도 하고 울고웃는 인간군상을 꽤 세심하게 조명해주곤 했는데 그런 대표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누가 '''장비 오마쥬 아니랄까봐 호전적이고 괄괄한 성미'''가 곳곳에서 드러나기도 하는데, 삼년산성에서 패한 왕건이 배신자의 가족을 처형하려고 하자, 배현경, 유금필, 홍유와 함께 가진 술자리에서 세 사람이 모두 떨떠름해하는데 혼자서 다 끌어내 죽여야 한다고 언성을 높이는 장면이라든가,[20] 고창 전투에서 본래는 화살을 쏴서 백제군을 잡기로 되어 있으나, 유금필과 상의하여 모습을 드러낸 후에 애술과 일기토를 벌이는 장면이라든가, 유금필이 귀양을 갔을 때 억울하다고 아주 분을 참지 못해서 어쩔 줄 몰라 광평성 신료들에게 화풀이하는 장면이라든가 등등 여러 장면들이 있다.
특히나 삼년산성 전투에서 호족들의 배신으로 후백제에 또 대패하였을 때, 개경에 볼모로 있던 배신자들의 가족들을 처형하는 장면에서 철퇴를 쓰라는 왕건의 명령이 떨어지자 신료들이 당황해하는[21] 걸 보다가 나서서 철퇴를 쓰라는 명령을 재촉[22] 한다든지, 마지막 혼자 남아 살려달라고 빌고 있는 어린아이를 죽일 것을 독촉[23] 한다든지 하는 장면은 극 중 박술희가 어떤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볼 수 있다. 이 처형 장면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로 끝까지 보던 두 사람 중 하나.[24] 나머지 한 명은 시종일관 차분하고 조용한 눈으로 바라보던 최응.
193회에는 철원에 남아있던 100살이 다 된 아자개[25] 를 찾아가 왕건이 보내온 산삼 선물과 함께 후백제의 정변 소식을 전하고, 아들인 견훤의 고려 귀부를 설득하는 서신을 작성토록 요청하라는 태조 왕건의 지시를 이행한다. 아자개는 처음에 꼴 좋게 됐다며 비웃다가 갑자기 울음이 터진다. 울고 있는 와중에도 박술희의 요청사항을 들어주어 서신을 작성해 주었다. 박술희의 요청으로 작성한 서신은 견훤이 고려로 귀부하게 되는 큰 계기로 작용한다. 또한, 이 회차에서 박술희가 아자개의 집에 도착해 부부 앞에서 큰절을 하면서 인사를 올리자, 아자개 옆에 있던 남원부인이 슬쩍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라 말했고, 영문을 모르던 박술희를 외면하고, 그 자리에서 난데없이 "스님, 무상스님, 손님이 오셨다오."라고 말해 박술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더니만 곧 이어 방안에서 불가에 귀의해 '무상'이라는 법명을 받은 대주도금이 승복에 삭발한 모습으로 나타나 박술희를 놀라게 만든다.[26]
200회에서는 일리천 전투에서 와해되는 후백제 군을 공격하는 중에 길을 잃던 선봉장 애술을 생포하면서 설득한다[27] . 이로 인해 후백제군의 플랜B였던 황산 퇴각의 기밀을 알려주게 하는 공을 세운다.
여담으로 2020년 10월 15일부터 22일 오전 8시까지 태조 왕건 전체 에피소드가 무료 스트리밍 됐는데, 담당 배우인 김학철이 직접 채팅에 '사모하오, 대주낭자'라는 덧글을 남기기도 했다.
4.2. 제국의 아침
태조 왕건에 다음작인 제국의 아침에서는 조경환[28] 이 맡았는데 빡빡머리가 아닌 정상 머리로 나와 많은 사람들이 충공깽하기도 했다. 게다가 태조 왕건에서 개그 캐릭터이면서도 충직한 성격도 보여주는 등 복합적인 매력을 어필했던 것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오로지 왕의 말에만 따르는 등 우직한 무장이자 충신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사실 극에서 다루는 시대가 겹칠 뿐 다른 작품이므로 박술희 역도 다른 배우가 맡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할 수 있지만, 워낙에 태조 왕건에서 박술희의 존재감이 매우 컸던지라... 어쨌든 병부령으로 등장하며 왕건이 죽기 전에 특별히 불러서 훈요십조를 남길 정도로 가장 신임하는 관료로 묘사되었다.[29][30] 통일 후 7년이 지난 시점이라 홍유, 배현경, 유금필 등이 사망해 전장을 풍미한 무장들 중 혼자 남은 만큼 군부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이때문에 박술희와 척을 진 왕규가 군부의 버림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박술희 또한 정치와 담을 쌓는 너무 정직한 무관이었다보니 본래대로라면 정치적 뒷배가 되어 주어야 할 왕규가 몰락하자, 왕식렴을 비롯한 정종 즉위 세력의 정치적 음모에 무력하게 휘말려 유배를 떠났으며 끝내 왕규를 사칭한 정종 세력에 의해 암살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1] 황주 황보씨와 충주 유씨 일족들이 대표적이다.[2] 붙여줄 수 있는 강력한 후견 세력은 널려 있었다. 왕건 자신이 속한 패서계 중에서도 잘나가던 황주 세력, 왕식렴이 장악한 서경 세력, 김부를 위시한 경주의 구 신라 왕족들도 있었다.[3] 고려사 열전에서는 박술희를 유배보낸 주체가 왕규가 아닌 왕요(정종)로 기록되어 있다. 왕규는 왕명을 사칭해 박술희를 유배지에서 암살한 후 곧바로 정종을 공격했지만 이미 정종 세력은 그의 의중을 알고 있었고 이 때문에 패했다고 한다. 왕규와 박술희는 대립을 했는데 아무래도 왕소, 왕요 형제 숙청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4] 프랭크 버클랜드는 19세기의 유럽에서는 식사로 취급하지도 않은 해삼을 먹어치운 인물이다. 개, 고양이, 돌고래, 두더지, 기린, 코뿔소, 집게벌레 등 웬만한 요리는 다 먹었으며 가장 유명한 요리는 루이 14세의 심장.[5] 드라마를 본 베어 그릴스의 팬들은 박술희를 베어 그릴스의 대선배로 대접해야 한다는 농담을 치기도 한다.[6] 뱀고기의 경우 별미로 즐길 고기인 것은 맞으며 뱀 특유의 선천적인 혐오감과 제대로 익히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기생충 문제 때문에 널리 퍼지지 않는 것일 뿐이다.[7] 개미는 혀를 깨물기 때문에 반드시 배를 깨물어 죽여야 하므로 까다롭지만 새콤하고 달아서 의외로 맛있다는 사람도 있다. 크기가 작아서 먹는게 어려울 뿐이지 간식으로 먹을 법하며 개미의 몸에는 개미산이라는 성분이 있어서 꽁무니를 빨면 새콤한 맛이 난다.[8] 베어 그릴스가 설명한 것처럼 뱀을 구울 때의 맛과 형태는 먹장어와 유사하다.[9] 최재성은 1991년작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실제로 뱀을 생으로 먹은 적도 있다.[10] 하지만 박술희의 후손들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개그 캐릭터로 전락되었다고 싫어하였다. 그런데 또 정작 그 쪽 문중 사람 중에서는 김학철에게 고마워하며 저녁을 대접한 일도 있다고 하니 마냥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만은 아닌 듯.[11] 극중에서는 박술희 자신이 '무쇠 철퇴를 애용' 한다고 밝힌다. 다만 극 중반 이후부터는 철퇴는 어디다 팔아먹고 검을 휘두르는 장면이 대부분. 일대일 대결 장면이 많아지면서 대련을 연출하기 어려운 철퇴(정확히는 유성추)가 자연스럽게 도태된 것으로 보이는데, 철퇴에는 유성추처럼 쇠뭉치를 쇠사슬로 연결한 것 외에 쇠몽둥이도 포함되므로 처음부터 몽둥이를 들려 주면 될 일이었다. 다만, 131화의 이흔암의 반란 당시 유금필, 능산(신숭겸) 등과 함께 귀부하러 상주에서 철원으로 오던 아자개 가족들을 경호하던 중 마주친 환선길의 옛 수하들이 아자개 부부를 내놓으라고 할 때, 부모를 지키기 위해 나선 대주도금보다 앞서 철퇴를 휘두른 것이 유일![12] 본작 세계관에서는 일반 병사와 장수 사이에 부장이라는 별개의 지위가 존재한다. 부장 역시 대열의 앞에서 군사를 이끌고 지휘할 수는 있으나, 계급상으로 장수는 아니기 때문에 몇몇 성격이 좋지 못한 장수들에게 멸시를 당하기도 한다. 견훤 역시 첫 등장시에는 부장이었다.[13] 엄밀히 말하면, '니 험상궂은 비호감 외모 주제에 여자 생각하고 다니냐?' 는 뜻이 아니라, '니 얼굴 보면 그냥 치고 박고 싸우는 것만 아는 꼴마초 스타일인데, 그런 외모에서 영 상상할 수 없게도 여자를 생각하면서 연모하는 감정을 품다가 일을 그르치게 된거냐' 는 정도의 책망이었다. 진지하다면 진지한 상황이지만, 왕건이 박술희가 물러난 후, 짐짓 일부러 진지한 척 했다고 말한 것도 있고, 나중에 궁예를 만나 저 이야기를 할 때도 둘 다 피차 '그 친구 생긴 건 안 그런데 저런 낭만적인 부분이 있었네..' 라는 식으로 서로 참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는 일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봐서, 박술희의 외모를 비하하면서 그 얼굴로 연애하고 싶냐.. 로 들리는 저 대사의 워딩과는 자뭇 다른 의미. 그냥 이환경 작가의 워딩이 좀 구렸을 뿐이다. 참고로, 궁예는 이후에 박술희를 다시 만났을 때도 그 얘기를 한번 더 했다.[14] 사람이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게 '편파적인 감정' 을 갖게 되는 경우에 대한 부분. 아자개가 자신의 생김새만을 보고 조롱하자, 그를 반박한 것이다. 그리고 대학은 사서삼경의 하나이기 때문에, 오늘날로 치면 '초등학교는 졸업했냐?' 라는 질문에 '대학 졸업장도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답한 셈이다. 다만 대학의 구절을 읽는 방법은 크게 잘못되었는데, 앞뒤 네 글자씩 딱딱 끊어 읽었지만 '之其所親愛而僻焉' 의 경우 '親愛하는 대상' 이기 때문에 붙여 읽고 而에서 떼야 한다. 아무튼 드라마에서 고증은 안 됐지만 박술희는 호족 출신이니만큼 일반적인 평민들보다는 우수한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15] 당시 상황이 북원부인의 49재 기간이라 금주령이 고려군 전체에 내린 상황에서 상주에 정탐하러 갔던 세작으로부터 칠석이 생일인 아자개가 술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사흘 밤낮 동안 더덕주, 백사주, 산삼주 등을 준비해온 것이며 그 전에 사람을 보내 '''자신이 직접 축하사절로 가겠다'''고 했다. 물론, 이는 '''당시 주변에 있던 여러 장수들은 물론이고, 순행 중에 젼령(어디서 많이 본 인물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입전 역을 맡았던 오성렬이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1인 다(多)역의 절정을 보여주었다.)으로부터 그러한 정보를 들은 왕건과 궁예, 은부까지 놀라거나 말문이 잠시 동안 막힐 정도!''' 심지어 일부는 이러한 박술희의 행동이 마치 처갓집에 가는 것 간다면서 혼담이 잘 됐으면 한다고 놀리기까지 했다. 이후 66화에서 다시 상주로 공격하려고 할 때에는 당시 현장에도 있지 않았던 환선길과 이흔암, 복지겸도 알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천하에 소문이 다 나고야 말았다.[16] 그러면서 아자개는 박술희에게 머루주 한 동이를 선물로 주었는데, 그 머루주는 자신보다 일찍 도착했던 궁예가 맛을 보고나서 주안상을 다시 차리라 할 정도였다. [17] 이 때는 무려 삼경 중 하나인 주역을 인용한다.[18] 사실 아무리 장교라도 저 시대에 그 정도면 오늘날로 치면 석사 학위 정도는 갖고 있는 수준이다. [19] 이러한 서열 정리는 유금필 귀양 에피소드때 한 번 더 한다.[20] 다만 이건 애먼 화풀이가 아니라 배신에 대한 응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술희도 수도에 가족을 남기고 전장으로 나서는 것은 일종의 약속이고, 약속이 깨졌으니 응징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이런 응징이 없다면 배신을 막을 심리적 장치가 사라질테니...[21] 이 때, 시중이던 김행선은 옆에 있던 왕규에게 지금 상황을 보니, 예전의 폐주가 생각난다고 할 정도였다. 극 중에서 고려 왕건 조정의 중신들의 90%가 대부분 궁예 정권을 경험한 사람들이니 당연히 철퇴란 말이 나오자마자 그 때의 참상이 떠오를 수 밖에.[22] "뭘 하느냐! 철퇴를 쓰랍신다! 철퇴를 써라!"[23] "죄인들이다. 뭘 망설이느냐! 어서 쳐라!" 라고 박술희가 독촉하자 부장은 바로 그 어린아이를 처단한다.[24] 단 궁예처럼 편하게 지켜봤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박술희는 어디까지나 정해진 법을 시행하는데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배현경의 집에서 유금필, 홍유, 배현경과 대담할때 도읍에 처자를 두고 전장에 나서는 것은 서로간의 약속이며 이 약속이 깨졌다면 이쪽에서도 응분의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법이 아무때나 좋기만 하다면 어떻게 나라를 운영하겠냐는 분명한 소신을 밝힌다. 맞는 말이라서 유금필과 다른 장수들도 잔혹한 방식에 께름칙해할뿐 박술희가 틀렸다고 하지는 못한다. 이런 소신은 이후 같은 배우가 연기한 다른 작품의 캐릭터도 비슷하게 언급한다.[25] 그 이전 회에서 경보대사가 금산사로 간 목적이 그 곳에 같혀 있는 견훤을 설득해 고려로 귀부하려는 복지겸의 발언에 배현경이 박술희에게 아자개의 안부를 알아보면서 본인이 직접 찾아가게 되었다.[26] 대주도금은 박술희와 서로 끌리는 마음과 오빠 견훤을 배신할 수 없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스님이 되어 도피안사에 주석하면서 자기 마음을 정리했다고 한다. 물론 연로한 부모님 걱정에 잠시 와서 지내긴 했는데, 박술희가 아자개 부부를 만날 때가 하필 그 날이었다고... 이를 보고 들은 박술희는 대주도금이 물러나고 난 후에도 매우 씁쓸해한 표정이었다.[27] "애술이. 그대의 백제는 오늘 그 운명이 끝났다. 그대의 옛 주인이 저기 기다리신다." 고 하자 애술은 순순히 고려군에게 투항한다. [28] 조경환씨도 탈모인인만큼, 전작의 박술희와 비슷한 헤어스타일로 출연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여러모로 전작과의 연계성을 살리지 못해 호감도를 잃어버린 드라마의 특성을 보여주는 부분.[29] 훈요 십조를 남길 때 왕건이 장막으로 주변을 가려 다른 관료들은 물론이고 황후들까지 못보게 한 상황이니 박술희에 대한 신임이 어느정도인지 잘 알 수 있다.[30] 여기서도 의형제로 묘사되어 형님폐하(...)라고 한다. 신임을 강조하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