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흠돌
?~681년
1. 소개
신라의 귀족, 군인. 신문왕의 장인. 김흠돌의 난의 주모자. 여러모로 고려 초기의 유력 호족이었던 왕규와 비슷하다.
2. 생애
삼국통일전쟁의 공신으로 661년 7월 17일 대당장군에 임명되어 백제 부흥군 정벌에 참가해 시이곡정까지 진격했으며 668년 6월 21일 김인문, 김흠순, 문충, 진복, 지경, 김양도, 김개원 등과 함께 대당총관에 임명되어 고구려 정벌에 참가, 공을 세워 파진찬 벼슬을 제수받았다. 자세한 활약이 사서에 나오지 않지만 쟁쟁한 인물들과 함께 싸웠고 왕가와도 사돈까지 된 인물임을 보면 역전의 용사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김흠돌의 딸은 신문왕이 태자이던 시절부터 궁에 들어가 생활했는데 681년 8월 8일 소판으로 지내면서 김흥원, 진공 등과 함께 반란을 도모하다가 패한 후 죽음을 당했고 이후 딸 김씨는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고 김흠돌이 반란을 도모한 일에 연좌되어 궁에서 쫓겨났다. 오늘날에는 김흠돌의 난이 삼국통일전쟁 공신 세력의 약화와 왕권 강화를 꾀했던 신문왕이 유도했거나 없던 일을 조작해서 김흠돌에게 뒤집어씌운 숙청극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화랑세기 필사본에서는 27대 풍월주로 김유신과 영모 사이에 낳은 딸 중에 차녀인 김진광의 남편이라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