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소네 코테츠

 

도검난무-ONLINE-에 등장하는 나가소네 코테츠(도검난무)를 찾아서 왔다면 이쪽의 링크를 참조.
長曽祢虎徹
1. 16세기 일본의 유명한 도공 코테츠
1.1. 개요
1.2. 도공명에 대해
1.3. 특징
1.4. 평가
2. 1이 만든 신센구미의 국장 곤도 이사미가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그의 애검


1. 16세기 일본의 유명한 도공 코테츠



1.1. 개요


일본도의 가장 중요한 시대 구분 기준으로 고도(古刀), 신도(新刀), 신신도(新々刀)라는 구분이 있다. 코테츠(虎徹)는 에도시대 전기 신도의 대표적인 도공 중 한 명이다. 활동지는 무사시쿠니(武蔵国)였으며, 오늘날의 도쿄와 사이타마에 해당한다. 또한 당시 일본의 무기, 갑옷의 이름은 관습적으로 제작자의 이름을 따라 불렀므로, 그가 만든 일부 명검에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1.2. 도공명에 대해


본명은 오키사토(興里, おきさと)이며, 갑주를 만들었다. 도공 시절에는 입도[1]명을 하네토라(虎徹 : 코테츠와 표기가 같다.)라고 하였다가, 뜻이 동일한 하코토라(乕徹)로 바꾸었으며, 다시 코테츠(虎徹)로 바꾸면서 읽는 방법만 바꾸었다. 활동한 시기는 하코토라가 가장 길었으며, 따라서 제작한 일본도의 개수도 이 시기가 가장 많다. 그리고 앞에 나가소네(長曽禰)를 붙였는데, 코테츠의 고향이 아닌 코테츠가 속해있던 대장장이 일족의 성씨였다. 하여튼, 전문서적에서는 도공의 본명인 오키사토(興里, おきさと)로 찾지 않으면 아예 찾을 수 없는 경우도 많으니 주의하여야 한다.
보다시피 코테츠라 불린 시기는 아주 짧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불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乕가 상용한자가 아닌 데다가 虎와는 달리 표기에서는 그 의미가 확 오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서브 컬처에서 외면받은 것이 한몫한 듯하다.
코테츠(古鐵)는 그가 고철(古鐵)을 이용하여 칼을 만들었고, 이를 자랑하는 의미에서 고철(古鐵)이라는 입도명을 지었다가, 중국의 장수인 이광의 고사[2]를 따라 虎徹로 개명하였다는 설이 있다. 이 설은 말 그대로 참고만 할 일이지만, 마을을 돌며 농기구나 녹슨 무기를 사들여 녹인 고철로 작품을 만든 것은 사실인 듯하다.

1.3. 특징


갑옷 장인에서 도공으로 전업한 시기는 60세라고 전하며, 82세까지 장수하였고, 20년 동안 칼을 만들었다. [3] 그가 일본도를 만드는 대장장이로 전업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야사에서는 자신의 작품이 일본도에 뚫리는 것을 보고 도공이 되었다고 한다. 반면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진 이후에 코테츠가 활동하였기 때문에, 전쟁에서만 사용되는 갑옷의 수요가 줄면서 도공으로 전업하였다는 설을 일어 위키피디아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설득력이 있다.
고철로 작품을 만든 것도 사실인 듯하며, 그 결과 사철을 사용한 다른 장인들에 비하여 우월한 내구도를 가지게 되었다는 듯하다. 코테츠가 우월한 내구도를 가진 원인은 이질적인 디자인도 들 수 있는데, 다른 타치에 비해서 폭이 넓고, 두께가 두껍다.
작풍으로서는 전후의 평화시대에 활동하였기 때문에 창과 나기나타를 만들지 않았다. 마사무네 등과는 달리 단검을 거의 만들지 않고 타치와 와키자시가 주류를 이루는데, 이는 코테츠가 장군가와 영주들에게 직접 납품하였고, 납품한 용도도 가신들에게 하사하려는 용도가 아닌, 그들 자신이 직접 소지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4] 미술품으로서 취급받는 일본도들과는 달리 섬세한 면은 거의 없으나, 곡률이 낮고 두터운 도신에서 보여주는 남성적인 면, 도신 조각과 입도명에서 보여주는 강렬한 불교적인 색채 때문에 당대에도 명품으로 간주되었다. 이후에는 카타나 자체가 분쟁 시의 주 무장이 된 평화시대가 오면서, 도신의 특성 덕분에 다른 일본도보다 바뀐 분쟁 환경에 더 유용하였으므로, 이후로는 실전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더 고평가 받게 된다.
하몬과 이름 새김 패턴은 20년간의 제작기간 수시로 바뀌었는데, 이는 활동 당시부터 위작이 판을 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일관성 없게 제작한 덕분에 후대에 더욱 위작에 시달리게 되어서, 10자루의 코테츠가 있다면 11자루가 가짜라는 말이 있을 정도고, 현대에 와서도 일본미술도검보존협회의 인증서도 가짜가 많아 믿을 수 없다.
오늘날에 가장 중요하게 간주되는 감정 기준으로는 '코테츠의 テコ鉄'라고 하는 것이 있다. 타마하가네(玉鋼)를 단조할 때 쇠를 붙들기 위한 용도로 テコ鉄 [5]라는 걸 대서 단조하게 되는데, 이것이 녹아서 일본도의 표면을 망치거나 혹은 질이 낮아서 내구도를 깎아먹는 경우가 있다. 코테츠의 경우는 작풍에 일관적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어서, 위치도 항상 하바키[6] 부근이다.

1.4. 평가


후기로 갈수록 평가가 좋아지며, 일본의 문화재로 지정된 5자루의 칼들도 모두 후기의 작품이라고 한다.
에도 시대에 관동 제일의 명도공으로 불리었으나, 서쪽에는 그보다 이름난 도공들이 여럿 있어서 콩라인 취급을 받는다. 물론 이름이 멋있어서인지, 서브컬쳐에서의 지명도는 코테츠가 압도적이다.
일본도 역사에 있어서 다양한 명도가 있지만, 대체로 한국 서브 컬쳐 및 중세도검 매니아계에서의 코테츠는 유난히 이채로운 위치에 서 있다.
우선 일본도 관련 항목에는 위작에 대한 평가가 매우 관대하게 이야기되곤 하는데, 코테츠는 의심의 여지없이 위작들에게 살아서도 심한 피해를 입었고, 죽어서는 더더욱 심한 피해를 입은 도공이며, 그가 만든 칼들의 명성을 깎아먹을 정도로 지명도에 손실을 입었다. 코테츠가 에도 시대의 신도여서 전쟁에서 소모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진품의 숫자가 썩 많다고 할 수 없는 이유도 위작으로 간주되는 칼이 너무 많아서인 면도 있으니, 이쯤 되면 뭐라 할 말이 없는 지경이다.
코테츠는 특히 신센구미 관련 소설에서 곤도 이사미가 위작을 사용하였다고 언급하여, 신선조 빠들에게는 위작에 대해 더욱 관대한 시선을 받고 있는 기이한 칼이기도 하다.
그 다음으로는 일본도의 장식성 여부와 관련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나름 기묘한 위치에 있다. 왜냐하면 코테츠는 검신의 조각 퀄리티가 대단한 일본도가 여럿 있는 것으로도 이름난 칼이어서[7], 위작들도 이 부분을 베끼는데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들어서 현대에 팔리는 공장제 일본도에서 저런 요소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무기 매니아들이[8] 21세기 들어 크게 늘어났는데, 그 사람들이 코테츠가 실전성 높은 칼이라는 이유로 호평하는 점[9]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부분.
칼에 새기는 문구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식으로 일본도의 칼날의 제작 방식 항목에 서술되어 있으나, 코테츠는 새기는 방식도 수시로 바꾸었고 새기는 내용 자체도 여러번 바꾸었다.
현대 기술로 만들어진 일본도가 중세부터 내려온 네임드 일본도를 씹어먹는가 여부에 대한 별 의미없는 논쟁 에서도 기묘한 위치에 있다. 현대 기술은 원재료를 만드는 제강기술부터 먹고 들어가는데, 코테츠 역시 오래된 고철을 사용하여 사철을 사용한 다른 경쟁자들보다 도공으로서의 경력은 비교적 짧음에도 에도 시대 초기의 관동 제일 도공이 되었다. 물론 당대에 재료가 아닌 제작 스킬로 판단해야 한다고 태클을 건 도공이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대 기술에 대해 하나 더 첨언하자면, 코테츠에 새겨진 무늬나 문구는 흉내내기 매우 어려워서[10] 중요한 감정 기준으로 간주되었는데, 사진 기술과 근대적인 제강 및 금속가공 기술이 등장하면서 감정 기준으로 신뢰할 수 없을 정도로 베껴지는 일대 굴욕을 겪었다.
마지막으로 코테츠의 장점을 서술한 내용들을 보면 일본도는 몇명 베다가 뼈에 박히면 종종 못쓰게 되버리는 소모품처럼 쓰였음을 쉽게 알 수 있는데,[11] 한동안 일본도가 현대의 서바이벌 나이프 정도의 내구도를 가졌을 것이라고 가정하거나, 서양의 바스타드 소드와 정면 충돌시키는 악의적인 실험 짤방이 유행하였다.

2. 1이 만든 신센구미의 국장 곤도 이사미가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그의 애검


[image]
이미지는 곤도 이사미가 사용한 그 코테츠가 아니다.
'''나가소네 코테츠(長曽祢虎徹)'''
'''도공'''
나가소네 오키사토(長曽禰興里)
'''도파'''
코테츠(虎徹)
'''제작 시기'''
에도 시대
'''종류'''
우치가타나
'''길이'''
68.2 ㎝
'''현존 여부'''
불명
'''명문'''
미상
'''문화재 등록'''
-
여러 매체에서 패러디되는 '오늘밤 코테츠는 피에 굶주려 있다(今宵の虎徹は血に餓えている)'의 바로 그 코테츠이다.
1번의 코테츠는 날카로움과 함께 표면에 세겨진 무늬로 유명한 명검이었다. 그만큼 가짜도 많았는데, 곤도의 애검인 코테츠역시 속아서 산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12] 진품 여부를 떠나서, 그는 이 칼을 무척이나 아꼈다고 전해진다.

바람의 검심에서도 세타 소지로시시오 마코토에게 잠시 이 검을 받아서 히무라 켄신과 싸운다. 역날검을 부러트렸지만 이쪽도 칼날이 전부 깨지고 금이 가서 못쓰게 된다. 유미의 설명에 명도 31종 중 하나라는게 아마 1의 코네츠가 만든 동명의 다른 검인듯하다.
장갑악귀 무라마사에서도 등장. 물론, 여기서는 검이 아니라 검주이자 에미시이다. 코테츠(장갑악귀 무라마사) 항목 참조.
도검난무에서도 도검남사 중 하나로 등장한다. 지명도에 비해 게임에는 다소 늦게 추가된 편인데,[13] 여기서의 나가소네 코테츠는 자신이 위작이라고 인정하면서 그에 대해 변명할 생각도 없다는 태도를 취한다. 나가소네 코테츠(도검난무) 항목 참조.

[1] 入道는 일어로 출가를 뜻한다.[2] 모친의 복수를 위해 호랑이를 사냥하러 갔다가 바위를 호랑이인 줄 알고 쏘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단단한 바위에 화살이 꽂혀 있었다. 그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화살이 바위를 뚫은 것이다.[3] 생몰년일과 관련된 내용은 일단 반론이 없는 듯하다.[4] 단검은 단시간 내에 여러 개를 만들 수 있어서, 가신들에게 선물하는 용도로 대량 제작되곤 했다.[5] 한국에서는 단조할 때 왼손은 집게로 단조 대상물을 고정하므로 저것에 대응되는 것이 없는 것 같다.[6] 일본도의 칼 손잡이 부품 중에서 제일 칼날 쪽에 위치한 고정용 부품.[7] 항상 새기지는 않았다.[8] 실전성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비판한다.[9] 신신도(新々刀)의 시대를 연 스이신시 마사히데(水心子 正秀)의 평이라 한다.[10] 특히 興자를 베끼는 것이 최대의 난관이었다고 한다.[11] 가령 곤도 이사미는 편지에서 자신의 코테츠가 사람을 베도 휘지 않았는데, 오키타 등의 일본도는 휘어서 쓸 수 없게 되었다고 자랑했다.[12] 유명한 검객이자, 애도가인 그가 가짜를 구별하지 못했다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시바 료타로의 신선조 혈풍록 등에도 나오듯 획득 경로나 그 자신의 출신문제와 결부되어 나오듯 대체적으로는 가짜라고 본다.[13] 다만 스타팅 도검인 하치스카 코테츠가 언급하는 것을 보면 게임 내 실장이 늦었던 것뿐이지 초창기부터 실장 예정이 되어 있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