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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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소설가 나도향은 나병규의 장손자이다.
2. 생애
나병규는 1852년 1월 9일 평안도 성천도호부 숭인방 흥인리(현 회창군 숭인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청년기에 고향을 떠나 방황하다 한의술을 익혀 경기도 경성부 용산면 청파1계(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동)에 정착하였으며, 1902년에는 광제원의 사무위원에 임명되었으며#, 한일합병 후인 1914년 2월에는 조선총독부로부터 등록번호 45호의 의생(醫生)면허를 받고# 경성부 어성정(현 중구 남대문로5가)에 한의원을 차렸다.
한편, 1909년 7월 기호흥학회에 참여하면서 청파청년학교(靑坡靑蓮學校)기금에 30환을 기부하는 등 애국계몽운동에도 관심을 가지곤 했던# 그는 서울에서 상동교회(尙洞敎會)에 다니던 중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비밀 지원 단체였던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 단원 조종대와 친분을 맺게 되었는데, 조종대의 모친을 한의술로 치료해준 인연으로 조종대와 의형제를 맺기도 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하여 나병규도 그의 독립운동에 동참하게 되어 자신의 한의원을 대한독립애국단의 연락 거점으로 제공하고 조종대에게 물자, 자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가 1920년 1월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었고, 그는 여기에 연루되어 그해 10월 30일 예심이 종결되었으며#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정치범죄 처벌령 위반·증회·출판법 위반·보안법 위반·공갈취재 등의 혐의로 벌금 100원형에 처해졌으며, 만일 기한 내에 100원을 완납치 않으면 50일간 노역장에 유치되는 것으로 판결이 났다.##2
이후 1922년 7월 25일 조종대가 죽자 조종대의 두 딸 조숙경·조현경을 보살폈으며 서울에서 계속 한의원을 운영하다 1924년 7월 31일에 사망했다.[3]
대한민국 정부는 나병규에게 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