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무라 슈지

 


'''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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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 개요
2. 생애
3. 수상 경력


1. 개요


나카무라 슈지(일본어: 中村 修二, 1954년 5월 22일 ~ )
에히메현 출신, 일본 도쿠시마대학 공학부 전자공학과 출신(공학 박사). 2014년에 아카사키 이사무, 아마노 히로시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공적은 청색 발광 다이오드의 발명.

2. 생애


원래는 이론물리학 혹은 수학 계열의 학부로 진학하고자 했으나, 취직을 생각하라는 교사의 조언으로 인해 도쿠시마대학[1] 공학부의 전자공학과로 진학하였다. 졸업 당시의 성적은 최상위권이었다고 한다. 학부 졸업후에 도쿠시마대학의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공학연구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2]
석사학위 취득 후 바로 중소기업이던 도쿠시마의 마츠시타 전기산업에 지원했으나, 학부 및 석사시절 성적은 항상 최상위권이었으며, 도쿠시마대학 대학원의 추천서도 받았지만 결국 떨어졌다고 한다. 이유는 졸업논문 주제가 너무 이론적인 내용이라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대학원 시절의 지도교수로부터 지적받았다고 한다. 그 후로 교세라에 합격했지만, 이 시점에 이미 아내와 자식이 있었기에 출신 지방에 취직하기를 원해 니치아 화학공업으로 입사하게 된다.
이후 나카무라 슈지는 회사원 시절 플로리다 대학교에 교환 연구원으로 갈 일이 있었는데, 이 때 박사 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해서 박사학위를 따기로 결심한다. 노벨상 수상 직후 연구의 원동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분노다. 그것이 내게 모든 동기부여를 했다."''' 라고 답했다. 당시 일본에는 논문 5편을 내면 대학원에 가지 않아도 박사 학위를 주는 제도가 있었는데[3], 논문 주제로 당시 구현이 불가능했던 청색 LED를 연구했는데 그것이 성공한 것. 정말 분노에 휩싸여 세기적인 발명을 해버린 것.
나카무라 슈지의 청색 LED 발명으로 니치아 화학공업은 1조 2천억의 수익을 올리는 세계 제일의 LED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나카무라 슈지에게 준 것은 보너스 2만엔뿐이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나카무라 슈지의 미국인 동료 연구자는 월급 이외의 발명에 대해 회사에서 얻은 보상이 너무 적다며 그에게 '슬레이브(노예) 나카무라' 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였다. 사실 니치아 화학공업의 오가와 노부오 사장은 초창기에 나카무라 슈지가 하고 싶다는 청색 LED 연구를 위해서 당시 회사 규모로서는 결코 적지 않은 3억엔을 지원해 주는 등 전폭적으로 지지를 해 주었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특허권도 나카무라 슈지 개인이 아니라 회사 이름으로 등록했지만 정작 청색 LED 발명 이후에는 하고 싶은 연구는 못하게 하고 관리직으로 보내서 강연이나 돌아다니면서 회사 홍보나 시키는 회사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다만, 이후 나카무라 슈지는 니치아 화학공업과 치열한 법정공방을 펼치게 되지만 그와는 별도로 상기 이유로 인해 오가와 노부오 사장은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법적 공방으로부터 수년의 시간이 흐른 노벨상 시상식 소감에서도 오가와 노부오 사장에 대한 감사 인사를 했다.
결국 나카무라 슈지는 니치아 화학공업을 퇴사하고, 2000년에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바바라 캠퍼스 재료물성공학과 교수로 취임했다. 그런데 니치아 화학공업은 회사를 그만둔 그에게 "영업 비밀 누설 혐의"로 노스캐롤라이나주 동부지구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걸어서 집은 물론 대학 연구실도 조사를 받아 추진하던 연구도 중단되게 하는 등 그를 계속해서 집요하게 괴롭혔고, 결국 나카무라 슈지는 자신의 특허권을 돌려달라며 일본 법원에 니치아 화학공업을 제소했다. 이것이 유명한 '404 특허' 건이다. 소송 결과 니치아 화학공업이 나카무라 슈지에게 건 소송은 기각되었고, 나카무라 슈지가 니치아 화학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도쿄 지방재판소는 '니치아 화학공업은 '404 특허' 발명에 대한 대가의 일부로 나카무라 슈지에게 200억엔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후 진행된 항소에서 도쿄 고등재판소는 8억 4천만엔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또한 이 과정에서 니치아 화학공업은 소송이 끝나자 특허권을 나카무라 슈지에게 양도하지 않고 전면 폐기하는 보복성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나카무라 슈지는 항소심 후 '일본의 사법은 부패했고 신뢰할 수 없다' 라고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법적 공방으로부터 수 년 후, 2014년 파란색 LED 발명의 업적으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에 선정되었는데, 노벨상 위원회의 수상 이유는 "LED는 저전력의 태양광 발전으로 작동할 수 있기에 전기 공급이 되지 않는 지역에 사는 15억 인구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었다." 였다. 나카무라 슈지는 노벨상 상금 중 절반을 모교인 도쿠시마대학에 기부하였다. 또한 나카무라 슈지로 인하여 도쿠시마 대학은 그저 그런 지방 국립대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국립대로 지위가 상승했으며, 도쿠시마 대학의 LED 관련 기술 연구는 2020년 현재까지도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다. 관련된 학부는 이공학부 이공학과 정보광 시스템 학과의 광학계. 2016년경부터 이학부와 공학부가 합쳐졌기에 현재는 이공학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 "일본을 사랑하지만 일본식 시스템에 실망을 느껴"[4] 미국으로 떠난 나카무라 슈지는 2005년경 미국 시민권을 획득, 일본 국적을 포기했다. 국적 취득 경위에 대해 "미국 대학에서 교수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연구비를 취득하는 일이다. 내 연구 분야의 경우 연구비의 절반 이상이 미국 정부, 미군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그것을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시민권이 필수적이다."라고 후술했다. 미국 국적 취득 이후, 일본은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자연스럽게 일본 국적이 소실되었다는 것이다.[5]
출신 대학인 도쿠시마대학과의 관계는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은 듯 보인다. 실제로 도쿠시마 대학 이공학부 건물 내부에는 나카무라 슈지 박사에 대한 기사들이 수상후 6년이 지난 2020년까지도 여전히 붙어있 으며, 상기한 대로 노벨상 수상금의 일부를 도쿠시마 대학에 기부하기도 했기 때문.
이후 "좋아하는 일만 해라" 라는 자서전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3. 수상 경력


  • 니시나키 기념상(1996년)
  • 오코지 기념상(1997년)
  • 밀레니엄 기술상(2006년)
  • 아스투리아스 공상 학술/기술연구부문(2008년)
  • 하비상(2009년)
  • 63회 에미상 기술개발부문(2011년)
  • 노벨 물리학상(2014년)
  • 찰스 스타크 드레이퍼상(2015년)

[1] 2016년 기준으로 일본 내 대학 순위 28위[2] 교토대학에도 지원했지만, 단 '''1점'''이 부족해서 불합격되었다고 한다.[3] 논문 박사 제도. 201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요시노 아키라도 논문 박사 제도로 오사카대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4] 2014년 10월 조선일보 인터뷰[5] 2014년 10월 withnews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