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무라류

 

나카무라류. 정식 명칭은 나카무라류 팔방베기 발도도(中村流八方切り抜刀道: 나카무라류 핫포기리 핫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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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나카무라류, 나카무라류 발도도라고 부르며, 일본육군 하사관으로 토야마 육군병학교 검술교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나카무라 타이사부로(中村泰三郎)가 전쟁에서의 경험과 군도술(軍刀の操法)을 배운 경력을 토대로 연구 끝에 창시한 거합 유파이다.
1. 개요
2. 특징
3. 나카무라 타이사부로와 비판
4. 한국과의 관계
5. 관련 항목


1. 개요


태평양 전쟁이 끝난 이후 패전한 일본에서는 군대가 해체되고 토야마 육군병학교를 비롯한 사관학교가 폐쇄되는 사태를 겪었다. 따라서 일본군에서 교습되던 군도의 조법 및 시참(軍刀の操法及試斬)도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없었으나, 토야마류를 배웠거나 관련 보직에 종사하던 전직 군인들이 점차 모임을 결성, 그들이 배웠던 군도술을 재정립하고 몇 가지 기술을 더해[1] 민간 무술유파로 새출발한 것이 토야마류(戶山流)이다.
그런 사람들 중에 나카무라 타이사부로(中村泰三郎)란 사람이 있었다. 나카무라는 토야마 육군병학교에서 검술교관을 지내던 사람이었는데, 자기가 가르쳤던 군도의 조법(軍刀の操法)을 기반으로 전쟁터에서 얻은 경험을 더해 전후에도 도법 연구를 계속했고, 마침내 팔방참(八方斬: 팔방의 자세, 팔방베기, 팔종의 납도)를 고안했다. 이것을 토대로 형(型) 8본, 그리고 칼을 든 상대와 창을 든 상대를 제압하는 쿠미타치(組太刀) 6본을 더하여 1953년에 나카무라류 팔방베기 발도도(中村流八方切り抜刀道)를 창시하게 된다.
배우기 쉽고 퍼포먼스적인 면에서 압도적인 베기에서 뛰어나 현대 검술계에서 영향력이 대단하다. 진검도(眞劍道) 등 일본 현대 유파들이 여기서 갈라져나왔고, 해외에도 진출이 활발해 미국이나 유럽 등 서양권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정도. 심지어는 한국에도 굉장히 큰 영향을 주었는데, 상세한 내용은 아래 문단에 기술한다.

2. 특징


군도의 조법과 이를 계승한 토야마류, 기타 고류 거합이나 제정거합의 목적이 불시의 상황에서 칼을 빨리 뽑아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라면, 나카무라류 발도도의 목적은 베기 그 자체이다. 나카무라 다이사부로는 일찍이 이를 발도도의 특징이라고 설파했다. 나카무라 자신이 했던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抜刀道は居合・剣道との連携により真剣斬を習得し、剣の理合にそった
「居・剣・斬」の三道一体を目標に、真剣による間合いと刀線の刃筋・角度・円形線を修得する
「발도도는 거합, 검도와 연계하여 진검참을 습득하고, 검의 이치에 맞춘 거-검-참의 삼도일체를 목표로 진검에 의한 간합과 검선의 베기,각도,원형선을 수련하고 습득한다.」
中村流抜刀道 八方斬刀法 「刀法理念と修練留意点」 より抜粋
나카무라류발도도 팔방참도법 「도법이념과 수련유의점」에서 발췌
나카무라류 발도도의 베기. 시연자는 젋을 때의 나카무라 타이사부로.
나카무라류도 기본적으로는 토야마류에서 나왔으므로 군도의 조법(軍刀の操法)7본을 기본으로 가르치고 그 다음에 나카무라류를 가르친다. 나카무라류의 베기 훈련 중에 팔방참을 구현하기 위한 수련으로 영자팔식, 심자베기, 광자베기 등이 있는데, 각 한자의 모양새대로 베어나가는 훈련이다. 훈련방식과 추구하는 바는 세이버 검술의 물리네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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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방참의 골자)
다음은 나카무라류의 형과 쿠미타치이다.
型 - 카타, 정해진 동작을 반복해서 훈련하는 것이다.
  • 一本目:片手初発刀、左袈裟斬 좌한손발도, 좌가사베기[2]
  • 二本目:右斜め上方斬、右袈裟斬 비스듬히 우상방베기, 우가사베기
  • 三本目:左袈裟斬、右横一文字斬、左袈裟斬 좌가사베기, 우수평베기,[3] 좌가사베기
  • 四本目:右袈裟斬、左横一文字斬、右袈裟斬 우가사베기, 좌수평베기, 우가사베기
  • 五本目:左斜め上方斬、右横一文字斬、左袈裟斬 비스듬히 좌상방베기, 우수평베기, 좌가사베기
  • 六本目:右斜め上方斬、左横一文字斬、右袈裟斬 비스듬히 우상방베기, 좌수평베기, 우가사베기
  • 七本目:左袈裟斬、右袈裟斬、左袈裟斬 좌가사베기, 우가사베기, 좌가사베기
  • 八本目:片手右袈裟斬、左袈裟斬、諸手突き 한손 우가사베기, 좌가사베기, 양손 찌르기
  • 据え物斬り(一刀両断) 스에모노기리(일도양단)
組太刀 - 쿠미타치. 둘이서 하는 검술형을 의미한다.
  • 一本目:抜き打ち、左袈裟斬 뽑아베기, 좌가사베기
  • 二本目:中段刺突 중단 찌르기
  • 三本目:中段、左袈裟斬 중단, 좌가사베기
  • 四本目:平中段、抜胴 평중단, 발동
  • 五本目:中段、右袈裟斬 중단, 우가사베기
  • 六本目:平中段、左袈裟斬 평중단, 좌가사베기
일단 뭐 기본적으로 이것이긴 한데, 보면 알겠지만 카타는 그냥 연속베기이며 쿠미타치는 검도의 본에 비견될 정도로 군더더기 없다. 뭐 보기에 화려한 맛도 없고[4] 영상의 나카무라 역시 고령이라 영 뻣뻣해 보이긴 하지만 이 구성이야말로 나카야마가 생전 직접 남긴 교습 동영상에 나오는, 두말할 것 없는 진퉁 나카무라 류다. 문제는 그 이후 인터넷 등지에서 찾을 수 있는 다른 나카무라 류인데, 대체 어디서 누구한테 배워서 뭘 수련하고 있는지 의문일 정도로 원본과 다른 기술 구성을 보이고 있다.

3. 나카무라 타이사부로와 비판


나카무라 타이사부로(1912–2003)는 여러 무술을 수련한 무도의 달인이다. 그는 발도도의 10단 범사, 전일본검도회 7단 교사, 총검도 8단 범사, 단검도 8단 범사의 직위를 획득했다. 1912년 출생. 1932년 20살에 검도 3단, 유도 3단을 취득했고 1933년에 제8사단 야마가타 제32보병연대에 자원입대한다. 이때 병사이면서 장교/하사관을 가르치는 검술교관이 되고,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만주로 출병, 1935년에 만기제대한후 도쿄의 토시바 전기회사에 입사한다. 이 때 가와사키 시립청년학교의 검술교관을 맡게 된다.
1939년에 토야마 육군병학교 청년학교의 검도/총검술 지도를 받고 교사책임서를 수여받는다. 1941년 동원소집되어 북부제18부대에 입대후 만주 흑천성 제7232부대로 전출, 국경수비 임무를 맡는다. 1944년에는 사단검술경기회의 특별교관, 제2야마시타 병단 남방돌격대(南方斬込隊)의 실전무도 특별교관을 역임. 1945년 3월에는 본토결전을 대비해 사단이 일본으로 돌아오고 나카무라 타이사부로는 실전무도 특별교관으로써 민간인 의용대에게 검도와 죽창술을 순회지도중 종전을 맞게 된다. 이후 토시바 전기회사에 복직. 무도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다 1953년 나카무라류 발도도를 창시하게 된다.
이후 2003년 5월 13일 92세로 사망.
나카무라 타이사부로가 직접 시연하는 베기 영상
일본 내에서 검 그 자체에 대한 연구나 베기술의 연구가 깊어 도검계는 물론 검술계에서도 이름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의 과거 행적과 그에 이은 전쟁 이후의 행동 등이 주된 비판의 대상이다.
나카무라 타이사부로는 중국이나 대만에서 자신의 베기술 연구를 위해 전쟁 중 민간인을 잡아다가 철사로 결박하고 베어버리는 등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행동을 하였고 부하에게 사진까지 찍게 하였다. 그것을 통해 그의 베기술의 경지가 한층 높아졌다고 하지만…… 문제는 전쟁 이후의 태도인데, 전후에도 그것을 반성하는 태도 없이 자신을 방문한 방문객들에게 그 참살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자랑하고, 스모 선수를 보면서 "저런 게 베는 맛이 좋다"는 등의 발언을 하는 등 일본 내에서도 그러한 점 때문에 비판이 많았다. 더불어 나카무라류도 다른 유파들처럼 활인검, 불살검을 강조하는 이념을 내세우고 있는데, 이 이념도 고류유파인 신카게류의 활인검 이론을 표절했다는 비난에 휩싸인 적이 있다.

4. 한국과의 관계


나카무라류에서 추구하는 광자베기, 심자베기, 영자팔식, 베기의 각도와 깨끗한 선 등등.... 국내에서도 결코 낯설지 않은 용어들이다. 특히 해동검도를 오래 했던 사람들이라면 한 번씩이라도 듣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해동검도가 나카무라류와 관계가 깊기 때문이며, 근본적으로 토야마류와 나카무라류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대한도법협회이영식 씨가 과거 베기술을 추구하면서 검도의 원로들에게 검술을 사사하고 나카무라류의 교본을 우연히 입수하고 그것을 보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다 종국에는 나카무라 타이사부로를 초청하여 직접 나카무라류와 토야마류를 사사하고 그 기술들이 이영식씨의 제자들에게 전파된다. 해동검도가 현재는 베기를 장기로 삼고 있으며 그것을 크게 강조하지만, 초창기 해동검도의 베기술은 힘으로 억지로 베다가 칼을 망가뜨리거나 자기 발등을 찍는 등 형편없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해동검도가 사범단기연수로 도장과 세력을 급격히 불리면서 이영식씨의 제자들이 해동검도로 많이들 들어가게 됐는데, 이 이후에서야 겨우 베기술이 제대로 정립되었고, 현재도 해동검도 도장에서 토야마류의 발도술을 수련하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원래 해동검도 창시 시절에는 이러한 기술들이 없었지만, 사범 단기연수를 통해 해동검도 측으로 들어간 도법협회 계통의 사람들이 많아서 생긴 현상이다. 거기에다 해동검도는 단체들이 워낙 사분오열 되어있어 나한일, 김정호의 통제를 받지 않는 해동검도 도장도 많아서 더욱 그런 외래 기술이 들러붙은 감도 있다. 좋게 말하자면 외부와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기술을 향상시키려 노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나쁘게 본다면 여기저기서 조금씩 따 와서 뒤섞은 '근본이 없는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도법협회 계통 단체에서는 기본적으로 이 토야마류와 나카무라류의 검리에 기반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내 기타 검술 단체들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특히나 절대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 알게모르게 토야마류와 나카무라류가 한국내 검술 단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무예도보통지 관련 단체에서도 복원 시 베기에 있어서는 토야마류나 나카무라류를 참고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특히 진검베기 계통에서는 압도적.[5] 이러한 단체들은 대개 한국의 전통이나 민족의식과 같은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면서, 정작 수련하고 사용하는 기술들은 '''중일전쟁 때 민간인들을 베어죽이고 죄책감을 안 느끼는 일본군 교관 출신'''이 만든 검술에 영향을 받은 기술이라는 것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만 하다.
이러한 배경 덕분인지 나카무라류나 그 방계 유파들(발도도 용성검 등)은 의외로 한국과의 관계가 우호적이고, 사범들이 자주 한국에 다니면서 기술을 지도할 만큼 사이가 좋다. 외국의 무술인들이 자신들의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데에서 보람을 느끼는 듯.

5. 관련 항목


[1] 예를 들어, 20세기의 전쟁터에서 적과 칼을 맞대고 싸울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군도의 조법에는 검으로 검을 상대하는 기술이 아예 없다. 이처럼 꼭 필요한 기술들만을 최소한으로 추려내서 빠른 시간 내에 소양을 쌓을 수 있도록 한 부분은 전쟁에서 사용해야 하는 '군용무술'로써는 합리적일 수 있지만, '검술 유파'로써는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을 보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2] 가사란 불승이 입는 옷을 말하는데, 검술에선 그 옷깃처럼 어깨에서 배로 비스듬히 내려가는 베기 궤도를 일컫는다.[3] 횡일문자, 요코이찌몬지라는 단어는 일본 검술에서는 수평으로 베는 것을 의미한다. 횡-수평, 일문자-한자 一자처럼 일자로 죽 지나간다는 의미이다.[4] 물론 검술에서 중요한 것은 화려함이 아니니 상관 없지만[5] 사실 토야마류와 나카무라류는 역사가 짧은 유파인 것 치고는 베기에 대한 기술만큼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일본군의 군도술로써 만들어질 당시부터 타메시기리를 통한 베기 기술의 향상을 매우 중시하는 유파였던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거기다가 토야마류 같은 경우 상당히 개방적인 성향을 띄고 있어 외부 단체와의 교류가 매우 원활하기 때문에 더더욱 영향을 받게 되기가 쉬운 것이다.

이 문서의 2015년 4월 17일 이전 저작자는 이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