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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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남상갑(南相甲)
생몰
1924년 2월 15일 ~ 2000년 10월 26일
출생지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사망지
대전광역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남상갑은 1924년 2월 15일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중앙중학교에 재학중이던 1939년 경복중학교에 다니던 이현상 등과 동지가 되어 조국 광복을 위해 친일파 및 일본인 고관을 처단하기로 결의했다. 이후 1941년 세브란스의전에 진학한 그는 그해 가을 봉래동 소재 주낙원(朱樂元)의 집에 모여 장의찬, 이현상(李賢相), 주낙원(朱樂元), 명의택, 성익환, 최고, 홍건표 등과 함께 항일학생결사인 흑백당(黑白黨)을 조직하고 당원으로 가입했다.
흑백당원들은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 절대 비밀, 책임 완수 등을 기본 강령으로 정했으며, 남상갑은 자금책 일을 맡았다. 그들은 우선 친일파 처단 명부를 작성했고, 일본인이 밀집하여 살고 있는 욱정(旭町) 일대를 방화해 일본인을 섬멸하려 했다. 또한 일제가 곧 패망할 것이며 조국 광복이 가까이 왔다는 내용의 격문을 각처에 뿌리 민족의 각성을 촉구했다. 이때 남상갑은 최고와 함께 격문의 문안을 맡았다. 한편 흑색당은 특공대를 조직하여 경복중학교 무기고에서 교련용 38식 소총 2자루와 실탄 및 총검을 빼내기도 했다.
그러나 1943년 1943년 10월 흑백당의 동조자였던 보성전문학교 학생 김창흠(金昌欽)이 귀향도중 열차 안에서 일제를 욕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가택수색을 당하던 중 흑백당에 관한 문서가 발각되면서 모든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에 흑백당원들은 긴급 모임을 갖고 국내 활동이 어려워졌으니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조직한 대한광복군에 투신하기로 결정하고, 일단 당원 김성근(金盛根)의 자형이 있는 만주의 신민(新民)에서 집결하기로 했다. 이리하여 1943년 12월 초부터 2~3명씩 조를 나누어 떠났다. 이때 그는 국내에 머무르며 활동을 지속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제의 추적으로 만주로 떠난 이들이 1944년 1월경에 모두 체포되고 말았고, 남상갑 역시 서울에서 체포되었다. 이후 모진 고문을 받은 그는 1944년 12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8.15 광복 직후 석방되었다. 이후 대전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2000년 10월 2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남상갑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2000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