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선 다이어

 

[image]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
'''네이선 안톤 조너 다이어
(Nathan Antone Jonah Dyer)
'''
'''생년월일'''
1987년 11월 29일
'''국적'''
[image] 잉글랜드
'''출신지'''
윌트셔, 토로브리지
'''신체 조건'''
165.1cm, 57.1kg
'''포지션'''
윙어[1]
'''소속 클럽'''
사우스햄튼 FC (2005~2009)
번리 FC (2005 / 임대)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2008~2009 / 임대)
스완지 시티 AFC (2009 / 임대)
스완지 시티 AFC (2009~2020)
레스터 시티 FC (2015~2016 / 임대)
1. 개요
2. 커리어
3. 국가 대표
4. 여담
5. 같이 보기


1. 개요


스완지 시티에서 윙으로 뛰고있는 잉글랜드국적의 프로 축구 선수이다. 사우스햄튼에서 유스 시절을 보내며 1군 까지 갔고, 셰필드 유나이티드, 번리, 레스터 시티에서 임대를 경험했다. 또다른 다이어가 더 유명해지기 전, 다이어하면 모두 네이슨 다이어를 떠올렸다.

2. 커리어



2.1. 사우스햄튼 FC


다이어는 10대일 때 사우스햄튼 아카데미에 합류했으며, 2005년 유스 FA컵 결승전 멤버였다. 하지만 다이어는 출전하지 못했고, 팀은 입스위치 타운에 1, 2차전 합산 점수로 패했다.
다이어는 사우스햄튼에서 2005년 12월 26일에 데뷔전을 치뤘다. 당스 크루 알렉산드라와의 경기에서 87분 교체투입돼, 2-0 승리에 기여했다. 2005년 말, 다이어는 번리로의 임대 계약을 채결하는데 성공했다. 다이어는 번리에서 5경기를 뛰었는데 밀월전과 크루 전에서 각각 골을 기록했다. 이후 다이어는 당시 번리 감독이었던 스티브 코터릴의 잔류 요청에도 불구하고 사우스햄튼으로 돌아왔다. 팀이 임대 복귀 조항을 이용한 듯. 어쨌던 번리로의 임대 이후, 다이어는 사우스햄튼과 새 계약을 채결했다.
다이어는 2007년 9월, 왓포드와 3-2로 패한 경기에서 첫 리그 골을 기록했다. 이 골은 다이어가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여빌 타운과의 리그 컵 경기에서 각각 득점한 이후 시즌 세번째 골이었다. 다이어가 보여준 모습은 사우스햄튼과 '사우스 코스트 더비'관계에 있는 포츠머스 FC의 관심을 샀다. 포스머스는 다이어와의 계약을 시도했으나, 당시 사우스햄튼 감독 조지 벌리는 그들의 공개적인 작업을 비판했다.
2008년 7월 24일, 다이어를 두고 벌어진 오랜 분쟁 끝에 결국 다이어는 사우스햄튼에 잔류하기로 결정하고 3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다이어는 계약을 맺을때까지 프리시즌 동안 팀에서 제외돼 혼자 훈련했다.
2008년 9월, 당시 감독들이던 얀 푸르트펠리트마르크 보트에게 자신을 알리고 1군에 들기위해 노력했으나 실패로 돌아가고, 2009년 1월까지 완전이적을 결정할 수 있는 조항이 달린 계약으로 12월까지 셰필드 유나이티드로 임대를 가게 되었다. 또한 임대 스왑딜로 인해 조나단 로버트슨은 반대로 사우스햄튼에 합류했다.
다이어는 왓포드를 2-1로 꺾은 경기에서 후반 늦은시간에 교체두입돼 셰필드 유나이티드 선수로 데뷔전을 치뤘다. 다이어는 셰필드에서도 1군자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다음 3달동안 30분이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교체투입만으로 출전했다. 그러다 12월 20일, 다이어는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서 선발 출전을 했는데, 첫골을 넣었지만 팀은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2.2. 스완지 시티 AFC


다이어는 3개월간의 임대기간이 끝나고 사우스햄튼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즉시 스완지 시티로 2008-09 시즌 말까지 임대를 가게 되었다. 다이어는 레딩과의 홈경기 데뷔전에서 2-0승리에 기여하며 감독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2009년 1월 24일, 다이어는 지난시즌 FA컵 우승 팀 포츠머스와의 경기에서 득점을 했고, 팀은 승리를 거둬 포츠머스를 탈락시켰다. 2009년 2월 28일, 다이어는 찰튼 애슬레틱을 상대로 첫 골을 기록했다.
2009년 4월 5일, 다이어는 라이벌팀 카디프 시티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
2009년 6월 2일, 다이어는 4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스완지에 완전이적했다. 다이어는 2009-10시즌 개막전이었던 레스터 시티 전에서 풀타임을 뛰었다. 다이어는 팀의 정식 멤버로서 2009년 9월 26일날 치러진 셰필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팀은 승리했고, 2009년 11월 7일 카디프 시티와의 라이벌 경기에서 두번째 골을 기록했다. 이 골은 무려 골문 바로 앞에서 넣은 헤딩골이였고 스완지는 카디프를 3-2로 눌렀다. 다이어는 QPR과의 1-1 무승부 경기에서 또 득점했다.
2010-11시즌이 개막하고 다이어는 브랜든 로저스 체제에서 절정의 폼을 보이며 스완지는 홈 승리를 이어나갔다 : 다이어는 프레스턴과 4-0으로 완승한 경기에서 1골과 데이비드 코터릴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활약했다. 2011년 2월 12일에는 미들즈브러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넣으며 4-3 난타전 승리에 기여했다. 다이어의 폼은 지속되어 결국 2010-11 시즌 '스완지 시티 서포터의 선수 상'을 받았다. 다이어는 '풋볼 리그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스티븐 도비스콧 싱클레어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레딩을 4-2로 꺾는 데에 기여하며 팀은 드디어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하게 되었다.
2011-12시즌을 앞두고, 다이어는 2014년에 만료되는 새 계약을 체결했다. 다이어는 스완지가 보여준 EPL 첫시즌 돌풍에 기여하며 괜찮은 폼을 보였다. 2011년 9월 17일 WBA전에서 첫 프리미어리그 골을 기록하며 3-0 완승에 기여했고, 볼튼 원더러스를 3-1로 꺾은 경기에서는 로저스 감독이 다이어의 주력과 필드에서의 변칙적 움직임이 승리를 이끌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다이어는 다소 논란이 된 페널티킥을 만들고, 득점까지하면서 EPL의 전통강호 아스날 FC을 3-2로 꺾는 데에 기여했다. 이때 아스날의 감독 아르센 벵거가 다이어가 고의로 다이빙을 한 것이 아니냐 하는 논란을 재기해, 다이어가 대중의 압박을 받은 적이 있었다. 2012년 3월 3일에는 스완지가 위건을 2-0으로 이겼으나, 다이어는 조르디 고메즈에게 범한 파울로 인해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당했다. 다이어는 자신의 태클에 악의는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축구협회는 다이어에게 3경기 징계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2012년 4월 14일, 다이어는 본인의 시즌 4번째 골을 기록하면서 블랙번 로버스를 3-0으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2012년 4월 24일, 울버햄튼 원더러스전에서 다이어는 시즌 다섯 번째 골을 넣었고 대니 그레엄의 골도 어시스트 했으나, 팀은 난타전 끝에 4-4로 비겼다.
프리미어리그의 새 시즌이 개막하고, 스완지는 QPR[2]을 5-0으로 꺾어 충격적인 승리를 거둔 바 있는데, 이때 다이어는 스콧 싱클레어와 교체 아웃되기 직전에 골을 넣었다.
2012년 9월 22일, 스완지는 에버튼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다이어는 후반전 교체투입 되었는데, 55분에 심판에게 항의를 하다가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3분 뒤 레이턴 베인스에게 걸었던 태클이 늦게 들어가면서 경고를 한번 더받아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다이어는 투입된지 12분만에 경기를 망쳐버렸고, 팀은 0-3으로 패했다.
2013년 2월 24일, 다이어는 브래드포드 시티와 펼쳐진 리그 컵 결승전에 선발 출전해 선제골와 세번째 골을 넣으며 5-0 완승에 기여했고 MoM에도 선정되었다. 이때 약간의 헤프닝이 있었는데, 많은 축구 팬들은 기억할 조나단 데 구즈만과의 페널티킥에 대한 약간의 다툼이었다. 다이어는 웸블리에서의 해트트릭은 특별하다며 본인에게 해트트릭을 기록할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지만, 데 구즈만은 본래 페널티킥 키커는 자신이라며 이를 거절한 것. 보통 이런 상황이면 해트트릭을 기록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하곤 하는데, 데 구즈만의 경우 그런거 없었다. 이때 다이어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아쉬워 했지만, 경기가 끝나고 우승 셀러브레이션을 할때 천진한 모습을 보이며 기뻐했다. 한국 팬들의 반응은 다이어가 귀엽다는 반응이 많았다. 다이어는 경기 이후 팀에 오랫동안 남고 싶다고 표현했고, 미구엘 미추를 자신이 아는 선수중 가장 침착한 선수라며 칭찬했다.
2013년 8월 6일, 다이어는 새로운 4년 계약에 서명했다. 그리고역시 주전급 자원으로 가동되었고, 부상으로 인한 결장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기에 출전했다. 시즌 37경기 6골.
14-15 시즌에도 여전히 스완지 선수. 주전급 자원으로 중용받았지만,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은 이래 가장 적은 득점을 기록한 시즌이 되었다. 리그 3골, 시즌 5골.
그러다 2015년 9월 1일, 다이어는 한 시즌간 레스터 시티로 임대되었다. 2015년 9월 13일에 교체 선수로 데뷔전을 치뤘고, 89분에 결승 골을 넣으며 팀이 아스톤 빌라를 꺾는 데 기여했다.
이때의 임대가 다이어에게는 신의 한수라고 할 수 있었는데, 바로 '''레스터 시티가 132년만에 1부 리그 우승이라는 기적을 거두었고 그 멤버 중 한 명''' 이었기 때문이다.
스완지 복귀 후에는 예전만 못한 입지로 인해 출전 기회가 부족했다. 16-17 시즌은 총 10경기 0골.. 그러다 17-18 시즌에는 어느 정도 기회를 부여받았으나 리그에서 득점은 '''0'''(...) 그나마 Fa컵에서 3골을 넣었다.
챔피언십 강등 후에도 여전히 스완지에 있다 2020년 팀을 나왔다.

3. 국가 대표


비록 국가 대표 생활을 하지는 못했지만 2012년 10월, 다이어는 자메이카 축구 국가대표팀일원으로 2014 브라질 월드컵 출전에 근접했던 적이 있었다.

4. 여담


다이어의 아버지는 크리켓 선수였고, 어머니는 아버지 못지않게 운동신경이 뛰어났다고 한다. 다이어에 따르면, 다이어의 어머니는 100미터를 11.6초만에 돌파했다고 한다. (알다시피, 상당히 빠른 속도이다.)
다이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으로 자라왔는데, 다이어의 어머니가 종종 맨유선수중 한명에게 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5. 같이 보기


[1] 오른쪽 윙어로 더 자주 뛴다.[2] 당시에 박지성이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