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츠머스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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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츠머스 FC '''
'''Portsmouth FC '''
'''정식 명칭'''
Portsmouth Football Club
'''애칭'''
폼페이[1] (Pompey)
'''창단'''
<1898년
'''소속 리그'''
'''EFL 리그 원 (EFL League One)'''
'''연고지'''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 햄프셔포츠머스 (Portsmouth)
'''홈 구장'''
프래턴 파크 (Fratton Park)
(20,620명 수용)
'''라이벌'''
'''사우스햄튼 FC'''[2], 플리머스 아가일 FC
'''구단주'''
토르난테 컴퍼니 (Tornante Company)[3]
'''회장'''
마이클 아이스너 (Michael Eisner)
'''감독'''
케니 자켓 (Kenny Jackett)
'''주장'''
톰 네일러 (Tom Naylor)
'''공식 홈페이지'''

'''전 시즌 성적'''
EFL 리그 원 4위
'''우승 기록'''
'''프리미어 리그 (1부)'''
(2회)

1948-49, 1949-50
'''챔피언십 리그 (2부)'''
(1회)

2002-03
'''EFL 리그 1 (3부)'''
(3회)

1923-24, 1961-62, 1982-83
'''EFL 리그 2 (4부)'''
(1회)

2016-17
'''FA 컵'''
(2회)

1938-39, 2007-08
'''FA 커뮤니티 실드'''
(2회, *는 공동 우승)

1939, 1949*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
피터 크라우치 (Peter Crouch)
(2008년, From 리버풀 FC, 1100만 £)
'''최고 이적료 방출'''
라사나 디아라 (Lassana Diarra)
(2008년, To 레알 마드리드 CF, 1800만 £)
'''최다 출장'''
지미 디킨슨 (Jimmy Dickinson) - 834경기 (1946-1965)
'''최다 득점'''
피터 해리스 (Peter Harris) - 211골 (1946-1960)
1. 개요
2. 상세
3. 역사
3.1. 2003년 이전
3.2. 프리미어 리그 시절
3.3. 몰락과 강등
3.4. 하부 리그에서의 수난기
3.4.1. 2011-12 시즌
3.4.2. 2012-13 시즌
3.4.3. 2013-14 시즌
3.4.4. 2014-15 시즌
3.4.5. 2015-16 시즌
3.4.6. 2016-17 시즌
3.4.7. 2017-18 시즌
3.4.8. 2018-19 시즌
3.4.9. 2019-20 시즌
3.4.10. 2020-21 시즌
4. 소속 선수
5.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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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남해안의 항구도시 포츠머스에 소재한 프로 축구단으로 인근의 사우스햄튼 FC와 더불어 런던 이남을 대표하는 클럽들 중 하나다.

2. 상세


2000년대 초반 프리미어 리그에서 나름의 족적을 남기며 한국의 축구팬들에게도 익숙한 클럽이지만 현재는 재정문제로 인해 4부 리그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재정난이 해결된 이후 가까스로 3부 리그에 복귀했을 정도로 몰락했다. 사우스햄튼과의 라이벌리는 '남해안 더비(south cost derby)'라 불리는 이 일대에서 가장 치열한 매치업 중 하나다. 같은 남해안 항구 도시를 소재로 하는 플리머스 아가일 FC와의 라이벌리도 있지만[4] 플리머스가 성적으로 한번도 부각이 되어본적 없는 클럽이다 보니 남해안 더비 보다는 덜한 편이다. 최근에는 포츠머스가 성적이 곤두박질 치면서 리그 2에서 만나게 되고, 17/18 시즌에는 리그 1에 나란히 1,2등을 하며 승격 하는 등, 플리머스와의 접점이 더 많아지고 있다.
프리미어 리그 시절 주축으로 유독 아프리카 선수들이 많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시즌이 되면 긴장을 많이 했던 구단이었다. 유럽 출신 중에서도 우타카나 제임스, 글렌 존슨, 캠벨, 디스탱 등 흑인들이 많아 피파와 같은 축구 게임에서 흑인 팀을 컨셉으로 할때 선호되던 구단이기도 했다.

3. 역사



3.1. 2003년 이전


창단 이전에 포츠머스 AFC(1883~1896), 포츠머스 타운(?~1891~?), 군인팀 로얄 아틸러리 FC(1894~1899/1900~1901) 등의 아마추어 축구팀이 있었으나, 모두 각각 사라졌다. 이후 1898년에 양조업자 존 브릭우드 등 사업가와 체육인 5명이 모여 '포츠머스 FC'를 창단했다. 초기에는 핑크색 상의와 흰색 하의를 입고 뛰었기에 '새우들(The Shrimps)'이란 별명이 붙었으나, 1909년부터 흰색 상의와 군청색 하의를 입었다가 1912/13 시즌부터 파랑색 상의와 흰색 하의를 입기 시작했다.
한동안 서던 리그 1부에서 뛰다가[5]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19/20 시즌에 풋볼 리그 3부로 입성했고, 1924년 2부로 올라갔다가 1927년에 1부 리그로 승격했다. 1933/34 시즌부터 상의 색깔을 진한 파랑으로 바꾸고 1938/93 시즌에 FA 컵 결승전에서 울버햄튼 원더러스를 4-1로 꺾어 우승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8/49 및 1945/50 시즌에 각각 1부 리그 2회 연속 우승을 거두던 시절도 있지만 이젠 머나먼 추억의 영광일 뿐이다. 1958/59 시즌 뒤에는 2부 리그로 강등되기 시작해 3부 리그까지 강등당하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1987년에 1부 리그로 승격한 적이 있었으나 그마저도 1시즌만에 강등되었다.
1991년부터 전 QPR 감독 짐 스미스가 지휘봉을 잡아 1992/93 시즌에 3위로 프리미어리그 승격 문턱까지 갔으나 준플레이오프에서 레스터 시티에게 져서 좌절했다. 이후에도 재정난이 심화돼 1999년에는 파산 위기까지 갔다가 세르비아계 미국인 사업가 밀란 만다리치가 인수해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3.2. 프리미어 리그 시절


2002-03 시즌에 새로 부임한 해리 레드냅 감독의 지휘 하에 2부 리그에서 우승하여 15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한 뒤[6], 웨스트 햄과 유벤투스 등으로부터 골키퍼 샤카 히스롬, 불가리아의 스트라이커 스베토슬라프 토도로프, 나이지리아의 야쿠부 아이예그베니, 카메룬의 빈센트 페리카드[7] 등을 사들여 전력 보강을 했다. 첫 시즌인 2003-04시즌 초반 5경기를 무패로 마친 뒤 부진에 빠져 강등권으로 떨어졌다가 마지막 10경기에서 1패만 허용하며 13위로 마쳤다.[8] 당시 야쿠부는 16골을 득점하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고, 프래튼 파크는 요새나 다름없을 정도로 홈경기 성적이 좋았다. 그 시즌 무패로 우승한 아스날에게 지지 않은 유이한 팀[9]이었다.
그러나 2004/05시즌 도중에 해리 레드냅 감독은 밀란 만다리치 구단주와의 불화 끝에 팀을 떠나 라이벌인 사우스햄튼 FC 감독으로 옮겼고, 벨리미르 자예치 단장이 임시 감독이 되었다. 자예치 임시감독 체제에서 치른 5경기에서 2승2무1패[10]로 괜찮은 성적을 내자, 임시감독에서 정식 감독으로 승격된다. 그러나 정식감독이 되자마자 팀은 거짓말처럼 무승과 연패행진에 빠지고 13경기에서 2승2무9패를 기록하며 포츠머스는 중위권에서 순식하게 강등위기에 몰렸다. 결국 자예치 감독은 풋볼 디렉터로 돌아가고 알랭 페랭이 새 감독이 되어 포츠머스를 프리미어리그에 잔류시켰다. 라이벌인 사우스햄튼 FC와의 홈경기에서 라이벌을 4:1로 깔아뭉개며 사실상 잔류를 확정지었고, 시즌 최종전에서는 강등경쟁팀인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원정에서 0-2로 패하며[11] 맨유와의 홈경기에서 1-2로 패한 사우스햄튼을 강등시키는데 크게 일조했다. 그러나 팀의 간판 공격수였던 야쿠부는 미들즈브러로 이적하며 전력에 큰 타격이 생겼고, 페랭 감독은 2005/06시즌 초반 13경기에서 단 2승에 그치며 팀은 강등권으로 추락, 결국 경질되었다. 새 감독은 놀랍게도 불과 1년 전, 만다리치와의 불화로 라이벌로 떠났던 해리 레드냅이었다. 그러나 레드냅의 컴백에도 불구하고 포츠머스는 연패를 거듭하며 2월이 끝났을 때 잔류권인 17위와 승점 8점차로 강등이 유력해보였다. 하지만 포츠머스는 29라운드부터 9경기에서 6승2무1패의 급상승세를 타며 웨스트브롬과 버밍엄시티를 제치고 17위 턱걸이 잔류에 성공했다.
2006년 프랑스 국적의 러시아 석유 재벌인 알렉상드르 가이다마크가 전 구단주 밀란 만다리치에게서 팀을 인수해 당시 "제2의 첼시 FC"로 떠오르는 것 아닌가 화제를 모았으며,[12] 솔 캠벨, 데이비드 제임스, 은완코 카누, 니코 크란차르, 글렌 존슨[13] 등 유명 선수들을 영입했다. 2006/07시즌 초반 5경기에서 무실점 4승1무를 거두며 잠시나마 선두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고, 전반기에는 유럽대항전진출권을 유지했다. 그러나 후반기에 DTD를 겪으며 기복을 겪었고[14] 결국 9위로 마쳤지만 지난시즌 간신히 잔류했던 것을 생각하면 훌륭한 성과였다.
설리 문타리라사나 디아라가 들어온 2007/08시즌에는 리그에서 8위를 기록하고 69년 만에 FA컵을 우승[15][16] 하는 마지막 영광(?)을 누렸다. 뭐 결승 상대가 2부 리그인 카디프 시티였기에 맥빠지긴 했지만 주전을 총동원하여 필사적으로 경기를 벌여 1:0으로 이겨 우승을 차지했다. 여담으로 포츠머스가 FA컵 결승에 총력을 다한 탓에 마지막 리그 38차전에서 2진급을 동원한 풀럼 FC과의 경기에서 풀럼이 1-0으로 이기면서 극적으로 강등을 모면했던 바 있다.[17] 그러나 FA컵 우승은 선수들의 주급 상승으로 이어져 팀의 재정난을 불러오며 선수들의 이적러시가 이어지고, 결국 강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다. 여담으로 해당 시즌 리그에서 역대 프리미어리그 한 경기 최다득점 경기의 승리팀이 되기도 했다. 바로 8라운드 레딩 FC와의 홈경기에서 7:4라는 어마어마한 난타전 끝에 승자가 된 것.

3.3. 몰락과 강등


2008/09 시즌 첼시에 4-0 대패, 맨시티에 6-0 대패가 있긴 했지만 리그에서 4승1무3패로 순항하던 상황에서 2008년 10월 레드냅이 후안데 라모스가 경질된 토트넘 핫스퍼로 떠난 이후 팀은 끝없는 막장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레드냅 감독은 애제자인 저메인 데포를 1년 만에 토트넘으로 컴백시켰고 수비력 강화가 절실했던 레알 마드리드라사나 디아라를 영입했다. 아스날의 레전드 토니 애덤스가 감독을 해서 주목받았으나 부진한 성적으로 강등권 근처까지 가자 경질되었다. 그나마 08/09 시즌은 폴 하트가 어수선한 팀을 수습하며 14위로 마감했지만...
2009년 6월 가이다막이 갑자기 UAE의 부호 술레이만 알 파힘에게 구단을 매각한 후 포츠머스의 상황은 더더욱 막장으로 흘러갔다. 포츠머스는 당장 자금이 급하게 필요하여 선수를 팔아야 했다. 레드냅은 데포만 데려간 데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피터 크라우치, 니코 크란차르까지 모두 같이 토트넘으로 데려가 버리면서 공격 자원이 거덜나 버렸다. 거기에 솔 캠벨노츠 카운티를 거쳐 아스날 FC로, 글렌 존슨은 리버풀 FC, 실뱅 디스탱에버튼 FC,, 유네 카불은 2010년 1월에 토트넘으로 각각 이적하며 수비 자원이 완전히 구멍나고 만다. 더욱 안습한 것은 대다수의 선수들을 제 값도 못 받고 팔았다는 것.
알 파힘 구단주는 개막 후 최다 연패기록인 7연패로 막장에 치닫자 팀에 애정을 두지 않았고 여전히 재정난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선수들과 구단 직원들에 대한 임금 체불 문제가 불거졌다. 2009년 10월에는 경영권이 사우디의 재벌인 알리 알 파라이에게 넘어갔다. 매각 금액은 공개되지 않고 알 파힘은 10%의 지분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알 파라이는 네팔계 홍콩 기업가 발람 차인라이에게 17만 파운드를 빌려 와 포츠머스에 투자하는 척한 뒤[18] 몇 주 만에 종적을 감춰버렸고, 포츠머스 팬들에겐 특급 마무리가 아닌 불쇼만 저지른 구원투수로 남게 됐다. 결국 포츠머스는 8개월 만에 발람 차인라이라는 4번째 구단주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사이 빚은 1억 3천만 파운드나 쌓였는데, 부채의 상당수가 전 구단주 가이다막의 횡령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결국 2010년 들어 선수들과 구단 직원들에 대한 월급 체불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EPL 사무국에서 이 책임을 물어 승점을 '''9점이나''' 삭감하겠다고 발표했고, 발람 구단주는 해체를 막고자 법정관리를 요청했다. 결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잔여경기를 5경기나 남겨두고 7년 만에 챔피언십으로 강등당했다. 그러나 FA컵에서 준결승에서 토트넘 핫스퍼를 물리치는 등 선전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 상대 팀은 첼시 FC. 하지만 FA컵을 우승해도 UEFA컵 진출권이 박탈되었다.[19] 안습. 게다가 결승에서 0:1로 아쉽게 지면서 76년 만에 3번째 준우승을 차지하는 것으로 그쳐야 했다. 뭐 2년 전 우승했긴 했지만... 그게 마지막 영광이다.
참고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관중석이 적은 경기장을 가진 구단이었는데... 강등당하면서 반대로 승격된 블랙풀 FC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관중석이 12,500석). 그런데 그 블랙풀도 한 시즌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강등당했다.

3.4. 하부 리그에서의 수난기



3.4.1. 2011-12 시즌


오프시즌 중이던 2011년 6월에 러시아 사업가 블라디미르 안토노프의 콘버스 그룹이 팀을 샀으나, 2부 리그 첫 정규시즌 성적은 31라운드까지 22위로 3부리그인 리그 1 강등권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동안 지역 라이벌인 사우스햄튼 FC과 '사우스 코스트 더비'를 이뤘었는데, 과거엔 사우스햄튼 FC가 포츠머스 FC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2000년대 와선 포츠머스 FC가 앞섰었다. 하지만 2011~12 시즌 2부리그인 챔피언쉽에선 정반대로 사우스햄튼이 압도하며 1부 리그로 승격했다.
안 그래도 3부 리그 강등권에 빠지던 2011년 11월 안토노프 구단주가 리투아니아 스노라스 은행 대주주 시절에 횡령 등을 벌인 혐의가 드러나 영국 경찰에게 체포되면서 모기업 콘버스 스포츠 이니셔티브스가 법정관리를 받았고, 팀도 법정관리를 또 받음으로써 강등이 아니라 아예 구단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빠졌다. 아슬아슬하게 구단이 유지되었지만 승점 10점이 삭감되며 결국 22위로 처지면서 3부리그 강등권에 빠졌다. 막판 2경기를 남겨두고 있었는데 2경기를 다 이기고 21위인 브리스톨 시티가 남은 2경기를 져야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4월 22일에 열린 45차전에서 브리스톨 시티가 이기고 포츠머스가 지는 바람에 결국 3부리그 강등이 확정되었다. 사우스햄튼은 2위로 승격했고...

3.4.2. 2012-13 시즌


2013년 2월 기준으로 5승 6무 18패로 리그 23위에 놓여 있어서 이젠 리그 2로의 강등을 걱정해야 할 상황. 자금난에서 시작해 구단 내외적으로 최악의 시대를 보냈다. 법정관리 상태로 구단주 자리에 대한 법정공방이 이어진 데다 선수를 확보하지 못해 리저브 팀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2월 말 기준으로 보유 선수는 고작 14명에 불과하고, 잉글랜드 프로 축구팀(프리미어 ~ 리그 2까지 92개 구단) 중 유일한 2013년 승점 0점(...)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날개를 잃고 추락 중이다.[20] 선수도 없는 상황이니 감독은 당연히 없다.[21] 단 5년만에 1부에서 4부로 떨어질 위기에 놓였는데 FA컵 우승까지 차지했던 구단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몰락하는 것은 리즈 유나이티드 정도를 제외하면 정말 보기 드문 일이며, 현재 돌아가는 모습은 리즈꼴이 양반#s-3으로 보일 정도. 리즈는 방만한 구단 운영이 잘못이었다면 포츠머스는 구단 소유권의 표류로 인해 현 상황이 연출된 것[22]. 조속한 구단 정상화가 없다면 4부 리그가 문제가 아니고 풋볼 리그 바깥으로 튕겨져 나갈지 모른다. 물론 성적으로 강등되기 전 법정에서 청산 명령이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니, 그야말로 꿈도 희망도 찾기 힘든 비극적인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포츠머스가 4부리그에 있었던 것은 79-80 시즌이었다. ('막장 운영' 포츠머스, 추락은 어디까지?)
작은 구장을 가진 스몰마켓 팀으로 구단주의 힘을 빌어 야심찬 스쿼드를 운용하다가 구단주의 파멸과 스쿼드의 유출로 아작이 난 팀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해리 레드냅이 이 일련의 과정의 중추에 있었다는 점에서, QPR 구단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반면교사이다. 루머도 돌았듯이 토니 페르난데스 구단주가 클럽에 더 이상 신경쓰지 못하게 되는 날이라도 온다면, 방만한 주급구조에 성적도 좋지 않은 QPR이 포츠머스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다행히 무승 23경기째인 크루 알렉산드라전부터는 승점을 쌓기 시작했고, 발람 전 구단주의 재인수설 속에서도 팬들이 클럽을 지켜내는 데에 성공하면서 2013년 4월 19일부로 법정관리가 해제되었다. 팬들이 십시일반(적게는 1000파운드부터 수만, 수십만 파운드까지) 쌈짓돈을 보태어 세운 '폼페이 서포터 조합'이 구단의 인수에 성공한 것. 이로써 포츠머스는 팬들이 소유한 잉글랜드 축구 구단 중 가장 큰 팀이 되었다.[23] 비록 리그 2로의 강등은 피할 수 없었지만, 안정된 재정으로 새 시즌을 맞이하는 만큼 지금보다는 밝은 미래를 기대해 볼 수 있겠다. 감독이 없는 긴 시간 동안 수석코치로 팀을 이끌었던 가이 위팅엄 코치를 정식 감독에 임명하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였으나...

3.4.3. 2013-14 시즌


결국 리그2에서도 2014년 1월 25일,26차전까지 21위에 머물며 강등권과는 불과 승점 1점 차이로 컨퍼런스로의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그마저도 22위 브리스톨 로버스가 1경기를 덜 치룬 상태라서 강등권으로 내려갈 수 있는 상황. 만약 포츠머스의 컨퍼런스 행이 실현된다면 프리미어 리그서 뛰던 팀이 5부리그로 추락할 위기. 프리미어리그를 최상위 리그로 하는 현 제도가 정착된 이후 프리미어리그 소속 구단이 아마추어 리그까지 떨어지는 것은 최초. 더 넓게 볼 경우 잉글랜드에 '''리그'''가 창설된 이래 리그 우승팀이 프로리그에서 탈락하게 되는데, '''1888년 이후 최초'''가 된다(...).
다행히도 13-14 시즌을 13위로 마무리하면서 그런 일은 없게 되었다.

3.4.4. 2014-15 시즌


14-15 시즌은 16위로 잔류했다.

3.4.5. 2015-16 시즌


15-16 시즌은 26라운드 기준 5위, 41라운드 기준 한 경기를 덜 한 채로 6위를 유지하고 있어서 7위까지 올라가는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FA컵 64강(3라운드) 재경기 에서 풋볼리그 챔피언십 팀인 '''입스위치 타운 FC를 2:1로 이기고 32강에 진출했다.''' 32강 상대는 프리미어리그 팀인 AFC 본머스였고, 32강에서 본머스에게 1:2로 패했다.
45라운드 기준 승점 78점으로 5위에 랭크되며 최종 순위가 5위 혹은 6위로 정해지며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되었다. 플레이오프 4강 상대는 플리머스로 3-2로 패하여 이번 시즌에도 승격에 실패하게 되었다.

3.4.6. 2016-17 시즌


2016-2017 시즌에는 퐁당퐁당 승리/패배/무승부를 기록하며, 2016년 12월 23일 현재 21경기 8승 6무 7패로 4위를 기록중이다.
이후로도 시즌 막판까지 좋은 폼을 유지하였고, 43라운드 승점 78점으로 최소 3위를 확정지으며 4년만에 리그 1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인근의 라이벌 팀 플리머스 역시 이날 2위로 함께 리그 1으로 승격하였다.
그리고 46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첼트넘을 6-1로 완파하고 리그 2에서 역전우승을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것으로 풋볼 리그의 1부에서 4부까지 모두 우승해 본 다섯 번째 팀이 되었다.[24] 재미있게도 포츠머스는 시즌 중 단 한 차례도 1위 자리에 올라 본 적이 없었고 최종전도 3위로 시작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었다. 우승을 예감하지 못한 포츠머스는 트로피도 없이 우승 축하연을 벌였고 2만여 포츠머스 팬들은 모두 프래턴 파크에 모여들어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3.4.7. 2017-18 시즌


승격을 이끈 폴 쿡 감독이 위건 애슬레틱 감독으로 이적하면서 종전 밀월 FC울버햄튼 원더러스 등의 감독을 거친 케니 자켓 감독을 선임했다.
그리고 2017년 8월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전 CEO였던 마이클 아이스너가 £5.67m의 금액에 서포터 연합의 구단 지분 48.5%를 모두 인수하며 클럽의 새 주인이 되었다. 향후 1000만 파운드의 투자 계획을 밝힌 아이스너와 함께 클럽이 성공적인 재기에 나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26라운드까지 승격 플레이오프권인 6위를 지키고 있으나 10위와 승점차가 3점이고 5위와 승점차가 8점인 상황.
최종 순위는 8위로 6위 찰튼과 승점 5점 차이로 뒤지며 승격에 실패하였다.

3.4.8. 2018-19 시즌


현재 연전연승을 거두며 리그1 1위를 수성중.
최종순위는 4위로 마무리하고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승격 플레이오프 준플레이오프에선 리그 5위 선더랜드와 대결했는데, 1차전 0:1, 2차전 0:0으로 1무 1패에 그치며 승격에 실패했다. 한편 조선소 라이벌인 플리머스가 21위로 EFL 리그 2로 강등됐다.

3.4.9. 2019-20 시즌


EFL컵에서 챔피언십 팀인 버밍엄 시티퀸즈 파크 레인저스를 꺾고 3라운드에서 영원한 원수 사우스햄튼 FC를 7년 만에 상대했는데 결과는 리그 수준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홈에서 0:4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FA컵은 1~4라운드를 통과한 뒤 5R 16강에서 아스날 FC를 상대로 홈에서 0:2로 져 탈락했다.
리그는 초반 중하위권에 머물렀으나 10월을 기점으로 상승세를 타면서 5위까지 올라간 상황에서 코로나19로 리그가 중단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리그가 조기 종료되어 순위 5위로 2년 연속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 준결승 상대는 옥스포드 유나이티드다.
옥스포드와의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 두 번 모두 1:1로 비겼고 결국 승부차기에서 5대4로 져 다음시즌도 리그1에서 보내게 되었다.

3.4.10. 2020-21 시즌


EFL컵은 2라운드에서 브라이튼에게 4대0 대패를 당하며 탈락했고, FA컵은 3라운드에서 하락세였던 브리스톨 시티에 의해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탈락했다.
그래도 리그에서는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중. 리그 3~6위 자리를 유지하며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이 유력해보인다.

4. 소속 선수


  • 알렉스 배스
  • 잭 왓모
  • 이석재
  • 하비 화이트[25]

5.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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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2008년 동안 사용한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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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015년 동안 사용한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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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018년 동안 사용한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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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사용 중인 엠블럼
[1] 화산에 묻힌 도시 폼페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포츠머스의 지역 이름인 Portsmouth Point에서 Po'm. P. (Po'rtsm.outh P.oint)로 줄였다는 설이 있으며, 또는 영국 해군기지인 포츠머스에 정박하고 있던 선박인 HMS Pompée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존재한다.[2] "사우스 코스트 더비(South Coast Derby)"[3] 마이클 아이스너의 개인 회사[4] Dockyard Derby. 조선소 더비 라고 불린다. 두 도시 모두 근대부터 현재까지 영국의 가장 큰 군항 겸 조선소이다.[5] 1900~1909년까지 웨스턴 리그에서 뛰었다.[6] 2003-04시즌은 1959년 이후 1부리그에서의 2번째 시즌이었다. 1987년 1부리그로 올라왔지만 1년 만에 강등되었기 때문.[7] 2002/03 시즌에도 임대로 뛰었다.[8] 레스터 시티의 2014/15시즌과 흐름이 굉장히 유사하다.[9] 하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10] 1패도 아스날과의 경기이다.[11] 최종전이 열리기 전까지 꼴찌였던 WBA는 강등권 라이벌인 팰리스와 노리치, 소튼의 경기결과를 틈타 17위로 껑충 상승. 극적인 잔류에 성공했다.[12] 가이다마크도 첼시의 로만 아브라모비치처럼 유대인계이다.[13] 2006/07시즌 임대영입 후 2007/08시즌 완전영입[14] 대표적으로 선두 맨유의 연승행진을 끊은 뒤, 불과 이틀만에 꼴찌 왓포드 원정에서 2-4 뜬금패를 당했다.[15] 8강 맨유 원정이 최대고비였으나, 맨유의 반 데 사르 골키퍼가 부상당하고 대신 들어온 쿠쉬착이 퇴장당하며 페널티킥을 얻었고, 맨유의 골키퍼 리오 퍼디난드를 상대로 설리 문타리가 페널티킥 결승골을 넣었다.[16] 이 승리로 인해 맨유의 두 번째 트레블이 저지되었다. 맨유가 해당 시즌 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우승했기 때문.[17] 35라운드까지 리그 19위로 강등이 유력한 상황에서 2연승을 거두며 17위로 골득실 차로 18위 레딩, 승점 1점 차로 19위 버밍엄 시티에 앞서 있는 상황이었다. 최종전에서 레딩은 4-0으로 버밍엄은 4-1로 이기는 상황에서 풀럼은 비기면 강등되는 상황인데, 주장 대니 머피의 천금같은 결승골로 겨우 잔류에 성공했다.[18] 성적 부진을 이유로 폴 하트를 경질하고 아브람 그랜트를 선임한 것이 이 시점이었다.[19] 많은 사람들이 이 사례 때문에 유럽 2부리그 클럽은 대외컵에 진출하지 못한다는 오해를 한다. 하지만 포츠머스는 엄연히 재정 문제로 인한 것 뿐이고, 하부리그라고 하더라도 자국 FA컵(잉글랜드는 칼링컵 포함)을 우승할 경우에는 무조건 진출권은 주어진다. FA컵에서는 우승팀이 챔스권일 때는 준우승팀이 UEFA컵 진출권을 따내는데(준우승 팀도 챔스권일 경우 리그 순위에 따라 준다.), 포츠머스의 경우는 진출권을 따냈지만 그 시즌에 2부리그 강등 확정, 그 이후 진출권까지 박탈이 된 모양새여서 아마도 그런 오해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축구 리그만 해도 2부 리그 팀이 컵을 우승해서 참가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잉글랜드팀인 위건 애슬레틱이 2부 리그로 강등 당했음에도 FA컵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이기고 우승했었기 때문에 유로파리그에 참가했었다.[20] 사실 무승 행진은 2012년 10월부터 시작되었다. 무려 20경기를 넘게 치루면서 1승도 거두지 못하는 처참한 상황.[21] 마이클 애플턴 감독이 2012년 11월 블랙풀로 떠난 이후 새 감독을 선임하지 못했다. 무너지는 집에는 아무도 살려 하지 않았다. 여담으로 애플턴은 겨우 5달도 안돼 2013년 2월 블랙번 감독으로 이적했는데, 블랙번에서도 67일만에 경질당하고 만다(...).[22] 2013년 기준으로 말라가 C.F.가 포츠머스 테크의 초입단계에 접어들었었다. 그런데 정작 리그에선 리그 4강에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 다만 2~3년 뒤에 어찌 될지... [23] 프리미어 리그의 스완지 시티 역시 팬베이스의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구단 지분의 전체를 팬들이 가지고 있지는 않다.[24] 이 기록을 가진 팀들 중 세 팀은 모두 풋볼 리그 원년 참가팀들인 프레스턴 노스 엔드울브스, 번리 FC이다. 이외에 셰필드 유나이티드가 4개 리그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했다.[25] 토트넘 홋스퍼 FC에서 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