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션 오브 이슬람
Nation of Islam (N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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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번역하면 "이슬람의 민국"에 해당하는 네이션 오브 이슬람은 미국 내 이슬람 단체이다. 1930년 메카에서 디트로이트로 이민 온 월러스 D. 파라드가 결성하였다. 이 단체는 정통 순니파 이슬람 등과 교리상 현격한 차이가 있으며, 흑인 우월주의를 주장하며 미국 흑인 민권 운동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말콤 엑스가 이 단체 출신으로 유명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무슬림들은 복음주의의 영향을 받아 꾸란을 자유롭게 해석하는 성향이 있는데 이러한 배경 하에서 이 단체 멤버들은 정통파 순니 이슬람과는 다른 독특한 교리와 가치관을 지니게 된 것으로 유명하다.
초창기 미국 내 이슬람 개종자의 상당수는 미국 흑인이었다. 이들은 기독교가 백인에 의해 강요된 정체성이라고 주장하며 그 대안으로 이슬람을 택한 것이다.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창립자 파라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조상들은 레콘키스타 시절 스페인을 지배했던 모리타니-세네갈계 무슬림 무라비트 왕조의 후손으로 백인보다 우월하다는 선민사상을 보급하였다. 그는 흑인이 고대에 예언을 계시받은 서아시아 출신 샤바즈 부족[1] 의 후손으로 문명의 창시자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흑인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한 피조물이고 백인은 악마가 창조한 피조물로서 흑인이 백인보다 우월하다는 논란의 소지가 많은 주장을 내세웠다. 파라드의 추종자들은 파라드를 신의 현신으로 여겼고, 그의 부하 일라이저 무함마드[2] 를 그의 예언자로 믿었다.
1932년 파라드는 '''실종'''(...)되었고 일라이저 무함마드가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네이션 오브 이슬람이라는 단체 이름대로 흑인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일라이저 무함마드의 네이션 오브 이슬람 사상에 심취한 이로는 조직폭력배의 일원이던 말콤 엑스가 있었다. 말콤 엑스는 일라이저 무함마드의 가르침대로 흑인 분리주의와 백인에 대한 증오 선동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메카로 성지순례를 다녀온 이후 백인 무슬림들의 예기치 못한 환대[3][4] 를 경험한 이후 네이션 오브 이슬람을 떠나 순니파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말콤 엑스는 1964년 네이션 오브 이슬람과 절연한 후 독자적으로 모스크를 세웠으며 사람은 인종을 떠나 모두 평등하며 인종간 화합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결국 그의 급격한 방향 전환을 배신으로 간주한 네이션 오브 이슬람 회원들에 의해서 1965년 뉴욕에서 암살당한다. 말콤 엑스 사후에 네이션 오브 이슬람은 두 분파로 분열되었다. 일라이저 무함마드의 아들 와리스 딘 무함마드가 이끄는 다수파는 인종 분리 프로파간다를 포기하고 순니 이슬람의 보편적인 관행과 신앙을 수용하고 백인도 포용하며 대신 흑인과 아프리카와의 관계를 강조했다. 이 분파는 단체의 이름을 American Society of Muslims로 변경한다.
한편 루이스 파라칸은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해체에 반기를 들고 일라이저 무함마드는 구세주이며 자신은 일라이저의 예언자라고 주장하면서 흑인 우월주의, 인종 분리주의, 반유대주의 성향을 이어간다. 초창기에 순니파 이슬람 교리와 갈등하며 적대하던 파라칸은 이후 '''주마 예배(이슬람의 금요일 주일 예배)와 라마단을 수용하며'''[5] 걸프 아랍 국가의 지원을 요청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이 외에도 "5 퍼센트 사람들의 국가(Five-Percent Nation)"라는 조직도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서 기원했다. 이 분파는 흑인 우월주의와 대중 문화를 융합시켰고 랩 음악으로 청년층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소통했다. 창시자는 '클래런스 13엑스'라는 말콤 엑스 비슷한 이름을 따서 활동했으며 1969년 피살되었다. 하지만 단체는 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이 단체의 구성원들은 기독교 신흥종파들처럼 자신들이 심판의 날에 유일하게 구원받을 최후의 선택받은 사람들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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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어로 번역하면 "이슬람의 민국"에 해당하는 네이션 오브 이슬람은 미국 내 이슬람 단체이다. 1930년 메카에서 디트로이트로 이민 온 월러스 D. 파라드가 결성하였다. 이 단체는 정통 순니파 이슬람 등과 교리상 현격한 차이가 있으며, 흑인 우월주의를 주장하며 미국 흑인 민권 운동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말콤 엑스가 이 단체 출신으로 유명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무슬림들은 복음주의의 영향을 받아 꾸란을 자유롭게 해석하는 성향이 있는데 이러한 배경 하에서 이 단체 멤버들은 정통파 순니 이슬람과는 다른 독특한 교리와 가치관을 지니게 된 것으로 유명하다.
2. 역사
초창기 미국 내 이슬람 개종자의 상당수는 미국 흑인이었다. 이들은 기독교가 백인에 의해 강요된 정체성이라고 주장하며 그 대안으로 이슬람을 택한 것이다.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창립자 파라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조상들은 레콘키스타 시절 스페인을 지배했던 모리타니-세네갈계 무슬림 무라비트 왕조의 후손으로 백인보다 우월하다는 선민사상을 보급하였다. 그는 흑인이 고대에 예언을 계시받은 서아시아 출신 샤바즈 부족[1] 의 후손으로 문명의 창시자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흑인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한 피조물이고 백인은 악마가 창조한 피조물로서 흑인이 백인보다 우월하다는 논란의 소지가 많은 주장을 내세웠다. 파라드의 추종자들은 파라드를 신의 현신으로 여겼고, 그의 부하 일라이저 무함마드[2] 를 그의 예언자로 믿었다.
1932년 파라드는 '''실종'''(...)되었고 일라이저 무함마드가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네이션 오브 이슬람이라는 단체 이름대로 흑인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일라이저 무함마드의 네이션 오브 이슬람 사상에 심취한 이로는 조직폭력배의 일원이던 말콤 엑스가 있었다. 말콤 엑스는 일라이저 무함마드의 가르침대로 흑인 분리주의와 백인에 대한 증오 선동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메카로 성지순례를 다녀온 이후 백인 무슬림들의 예기치 못한 환대[3][4] 를 경험한 이후 네이션 오브 이슬람을 떠나 순니파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2.1. 분열
말콤 엑스는 1964년 네이션 오브 이슬람과 절연한 후 독자적으로 모스크를 세웠으며 사람은 인종을 떠나 모두 평등하며 인종간 화합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결국 그의 급격한 방향 전환을 배신으로 간주한 네이션 오브 이슬람 회원들에 의해서 1965년 뉴욕에서 암살당한다. 말콤 엑스 사후에 네이션 오브 이슬람은 두 분파로 분열되었다. 일라이저 무함마드의 아들 와리스 딘 무함마드가 이끄는 다수파는 인종 분리 프로파간다를 포기하고 순니 이슬람의 보편적인 관행과 신앙을 수용하고 백인도 포용하며 대신 흑인과 아프리카와의 관계를 강조했다. 이 분파는 단체의 이름을 American Society of Muslims로 변경한다.
한편 루이스 파라칸은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해체에 반기를 들고 일라이저 무함마드는 구세주이며 자신은 일라이저의 예언자라고 주장하면서 흑인 우월주의, 인종 분리주의, 반유대주의 성향을 이어간다. 초창기에 순니파 이슬람 교리와 갈등하며 적대하던 파라칸은 이후 '''주마 예배(이슬람의 금요일 주일 예배)와 라마단을 수용하며'''[5] 걸프 아랍 국가의 지원을 요청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이 외에도 "5 퍼센트 사람들의 국가(Five-Percent Nation)"라는 조직도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서 기원했다. 이 분파는 흑인 우월주의와 대중 문화를 융합시켰고 랩 음악으로 청년층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소통했다. 창시자는 '클래런스 13엑스'라는 말콤 엑스 비슷한 이름을 따서 활동했으며 1969년 피살되었다. 하지만 단체는 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이 단체의 구성원들은 기독교 신흥종파들처럼 자신들이 심판의 날에 유일하게 구원받을 최후의 선택받은 사람들이라 여겼다.
3. 여담
- 미국 흑인을 나일강 이집트 문명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세속주의,반종교 성향의 흑인우월주의자들과 갈등하고 있다.
- 아프리카와 동남아(네그리토)의 무슬림 국가 출신 순니 무슬림 이민자들과도 갈등하고 있는 편이다. 이슬람 정통 교리와 많이 상충하기 때문. 아프리카 이민자 출신 무슬림들은 꾸란을 하디스에 입각하여 해석하는 반면 네이션 오브 이슬람 및 해당 계열 미국 흑인 개종자 출신 무슬림들은 기독교 복음주의의 영향으로 꾸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벌어지는 보편교회와 개신교가 교리 해석 차이를 보이는 것의 이슬람 버전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 무하마드 알리 역시 이 단체 회원이었다가 이후 순니파로 개종했다. 네이션 오브 이슬람 내 다른 전 멤버들이 이리저리 말썽과 논란을 만든 것과 다르게 모범적인 사회 개혁가로 활동하였기에, 미국 내 무슬림들 사이에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 스눕 독이 2009년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 가입하면서 공식적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가 포르노 산업 운영 문제로 갈등을 빚고 2012년 래스터패리교로 재개종했다. 말콤 엑스 사후에 잔존한 네이션 오브 이슬람 조직이 사실상 사이비 취급 받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가 순니파로 개종했다가 포르노 산업 논란으로 배교했다면 진짜 엄청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1] 이슬람 개종 이후 말콤 엑스의 성이기도 하다.[2] 이슬람 개종 전 이름은 일라이저 풀[3] 무슬림이라고 인종차별 안하는것도 아니고, 이쪽도 사실 옛날 옛적에는 아랍인 vs 베르베르인 대립부터 사하라 횡당 아프리카 노예무역까지 흑인을 상대로한 인종차별의 역사도 분명 있지만 하지 같은 평생의 한번급 성지순례에선 자연스럽게 인종을 초월한 같은 무슬림이란 통일감이 더 증폭되기 마련이다. 역사적으로나 현대나 하지 성지순례 갔다온 여행기, 회고 문학을 관통하는 주제가 전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다양한 처음 만난 사람들과 느낀 영적 일치감이기도 하고. 게다가 백인 무슬림이라 하면 보통 현대 보스니아 같은 남동부 유럽인들이 많은 만큼 사회적 소수자로서 겪은 시련은 이들에게도 익숙한 주제이기도 하다.[4] 메카에선 심지어 최악의 앙숙인 수니파와 시아파도 원칙적으로 다툼을 벌여서는 안 된다.(!!)[5] 바꿔 말하면 네이션 오브 이슬람은 금요일 예배 같은 이슬람의 기본적인 정체성마저도 취사선택 과정에서 제외했다는 말이 된다. 사실 서구 사회에서 일요일 대신 금요일을 주일로 잡으면 모일 때 불편하긴 했지만 대놓고 금요일 예배를 부정한 것은 다른 무슬림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주기 충분했다.